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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키다시’는 이제 ‘곁들이찬’이라 하자

[≪표준국어대사전≫ 안의 일본말 찌꺼기(11)]

[얼레빗=이윤옥 기자]  주로 횟집이나 일식집에서 많이 쓰던 ‘쓰키다시’를 요새는 한식집에서도 마구잡이로 쓰고 있다. 쓰키다시란 정확히 발음하면 ‘츠끼다시(つきだし, tsukidasi)’이다. 츠메끼리(쓰메끼리, 손톱깎기), 츠나미(쓰나미, 지진해일), 츠시마(쓰시마, 대마도)의 ‘츠'를 우리는 ‘쓰’라 발음한다. 어차피 털어내야 할 말인데 정확한 발음까지 해줄 필요는 없다. 


국립국어원 말다듬기위원회가 '쓰키다시'의 다듬은 말로 '곁들이찬', '지리'는 '맑은탕', ‘후리카케'는 '맛가루' 따위로 새롭게 다듬었다고 지난 4월 30일 밝혔다. ‘쓰키다시’란 우리말로 밑반찬, 딸린반찬, 공짜반찬, 덤반찬, 맛보기요리, 맛배기요리, 곁들이찬 같은 뜻으로 번역 할 수 있는데 이번에 ‘곁들이찬’으로 정했다니 그렇게 앞으로 고쳐 쓰면 좋을 일이다. 그런데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쓰키다시’가 없다. ‘무데뽀(<일>muteppô [無鐵砲]:일의 앞뒤를 잘 헤아려 깊이 생각하는 신중함이 없음을 속되게 이르는 말. 막무가내, 무모로 순화.’는 실려 있는데 말이다. 


   

▲ 횟집에는 저렇게 다양한 “곁들이찬(쓰키다시)”이 나온다(통영 ‘궁전횟집’ 제공)


일본음식 관련 말이 나왔으니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음식에 관한한 일본말은 한국말을 따라 올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 한 예로 우리말에 “푸짐한 상차림”이란 말이 있는 데 일본말에는 이 말을 번역할 만한 말이 없다. 기껏해야 “많이 차린 음식” 정도지만 많이 차린 것과 푸짐한 것의 개념은 다르다. 일본인에게 푸짐하다를 설명하기는 마치 눈을 본 적이 없는 더운 나라 사람에게 눈을 설명하는 것과 같다. 


이것은 무엇을 말함인가? 음식문화가 예부터 서로 달랐고 상차림도 달랐음을 말하는 것이다. 궁궐음식을 다룬 ‘대장금’이란 드라마가 일본에서 방영될 때 일본인들의 눈은 휘둥그레졌다. 일본은 무사정권 600여 년 간 (1192-1868)을 싸움으로 지샌 역사를 갖고 있다. 전국시대(戰國時代)란 1식 3찬도 버거운 노릇으로 오사카성 안에 전시된 풍신수길의 밥상이 말해주고 있다. 밥 한 공기, 멀건 된장국(미소시루), 단무지(다쿠앙), 생선 1마리가 전부이지 않는가? 


일본에 있을 때 가장 힘들었던 것은 바로 음식이었다. 일본 음식의 기본양념은 간장, 소금, 설탕, 식초 정도이다. 따라서 우리처럼 “갖은양념”이란 말도 존재하지 않는다. 동태탕, 조기매운탕, 아구탕, 대구탕, 알탕, 감자탕, 설렁탕, 곰탕... 등은 물론 없고 얼큰한 김치찌개, 된장찌개, 두부전골, 곱창전골, 우거지국 같은 것도 없다. 


거기다가 김치만 해도 파김치, 갓김치, 배추김치, 깍두기, 총각김치, 오이소박이, 고들빼기 여름철에 시원한 열무김치에 나물은 또한 어떠한가? 콩나물, 시금치나물, 가지나물, 고사리나물, 도라지나물하며, 파전, 호박전, 부추전....등 시쳇말로 게임이 안 될 만큼 다양하고 푸짐한 게 한국요리이다. 


여기서 글쓴이는 한국음식이 최고이고 일본음식이 그렇지 않다는 말을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나라마다 각각의 음식문화가 존재하는 것은 정한 이치다. 다만 “갖은양념으로 푸짐한 상을 차려 먹던 음식문화를 가진 나라” 사람들이 무엇 때문에 ‘쓰키다시’니 ‘복지리’ ‘사시미’ 같은 말을 뜻도 모른채 그대로 가져다 쓰냐는 것이다. 자기나라 말로 바꾸면 알기 쉽고 편한데 말이다. 


국립국어원에서 ‘쓰키다시’를 ‘곁들이찬’으로 고쳤다고 발표하자 누리꾼들의 반응이 뜨겁다. 왜 밀려드는 영어는 안고치고 일본말만 고치냐, 입에 익숙한 말인데 왜 고치냐는 등...이런 반응을 보면서 글쓴이는 지난 2012년 3월 6일자 오마이뉴스에 올린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 구로다 가츠히로(黑田勝弘, 71) 씨를 겨냥해서 쓴 글이 떠올랐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


구로다 씨의 주장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한국인들이 ‘쓰키다시’를 버리고 ‘곁들이찬’을 쓰는 것은 ‘지독한 내셔널리즘’ 이라는 식이다. 그래서 한국인들이 고생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글쓴이는 구로다 씨의 비뚤어진 “한국어 인식”에 쐬기를 박은 적이 있다. 일본사람들이 한국의 불고기를 "야키니쿠"라고 부르는 것은 내셔널리즘의 문제가 아니라 일본인들의 편한 언어 생활을 위한 것임을 들어 말이다.


또 한가지 예로  일본 국어학자 호시나 코이치(保科孝一, 1872~1955)씨의 국어(일본어) 사랑론을 들었다. 호시나 씨는 국어학자로 문부성에서 50년간 국어정책에 몸담았던 사람이다. ≪국어학 제1집(國語學第1輯: 9-13, 1948)≫에서 그는 국어(일본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혔다.


“프랑스 국민은 모국어에 대한 존중심이 대단하다. 독일에서도 국어사랑 정신을 소학교 1학년 때부터 가르치며 영국에서는 언어사용에 대한 사회적 제재가 엄중하다. (중략) 일본이야말로 국어에 대한 통제를 한층 강화해야 한다. 지금처럼 아무런 통제 없이 둔다면 국어의 체재가 황폐화되어 갈 것이다. 특히 한어계(漢語系)의 말과 외래어가 남용되어 국어의 순수성을 해치고 있다. 독일에서도 16세기 이래 외래어가 유입되었으나 19세기에 이르러 국민이 반성하여 국어순화운동을 전개해 왔다. 우리 일본도 민주일본 건설을 계기로 국어순화운동을 크게 전개해야 할 것이다.” 


나라마다 자기 국어를 아끼고 사랑하는 정신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며 이는 칭찬할 일이지 빈정대거나 조롱할 일은 아니다. 자국민의 태도도 문제지만 한국말을 아끼고 다듬어 쓰고자 노력하는 한국인들을 조롱하는 구로다 씨 같은 사람의 천박한 투정은 용납할 수 없다고 본다. 


국립국어원이 우리말 속의 일본말찌꺼기를 걸러내는 작업을 포기하지 않고 그나마 지속하고 있는 것은 다행이다. 그러나 이번 음식관련 일본어 다듬기를 보면 2013년 4월 2일부터 4월 12일까지 겨우 10일간 일반 공모하여 24일 “말다듬기위원회”에서 공모된 제안어를 검토했다고 하는 것을 보니 하나의 이벤트성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어떻게 우리말글 다듬는 일을 얼렁 뚝딱 10일 만에 결정한단 말인가! 아예 전담부서를 두고 365일 연구해도 시원찮은 데 말이다. 


바라건대 “쓰키다시(곁들이찬)”같은 생활용어도 용어지만 “국민의례, 국위선양, 서정쇄신...” 같은 일제국주의의 음흉함이 숨어 있는 말이라든가 개불알꽃, 며느리밑씻개 같은 식물용어를 비롯한 무수한 일본어찌꺼기를  바로잡는 일에도 꾸준한 연구를 해주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