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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국악속풀이 116] 춘향가의 시작부분 감상

[그린경제=서한범 교수]  <판소리>의 뜻으로 판놀음에서 하는 소리가 곧 <판소리>라 하였다. 소리란 곧 노래의 또 다른 명칭이다. 과거에는 잡가(雜歌), 극가(劇歌), 창가(唱歌), 본사가(本事歌), 창극조(唱劇調) 따위의 한자말도 썼으나, 요즈음에는 판소리로 굳어졌다. 판소리 하는 사람들도 창우, 가객, 광대라고 했으나 창자, 또는 소리꾼 등으로 쓰고 있다. 북치는 사람은 고수(鼓手)이다. 그러나 추임새를 잘 구사해야 명고수의 대접을 받는다.

판소리에서 말로 하는 것은 <아니리>, 몸짓은 <발림>이다. 발림도‘너름새’또는‘사체’라고 했는데 이는 머리, 몸통, 팔, 다리를 가리키는 말로 곧 몸 전체를 적절히 활용한다는 의미라고 했다. 소리꾼이 손에 부채를 들고 서서 슬픈 가락으로 구경꾼을 울리기도 하고 재미있는 아니리로 웃기기도 하며 긴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데 소리가 무르익으면 구경꾼들의 다양한 추임새가 터져 나오기 시작한다. 소리판이 저녁부터 시작되면 밤이 새도록 넋을 잃고 소리를 들었고, 겨울철에 눈이 내려도 밤새도록 자리를 뜰 줄 몰랐다고 하는 이야기가 공공연히 전해오고 있다.
 

   
▲ 고수의 장단에 맞춰 춘향가 한 대목을 부르는 김수연 명창


그렇다면 어떤 명창은 6시간, 어떤 명창은 9시간이 넘게 걸리는 춘향가의 시작부분은 어떠한 사설을 어떻게 부르는가? 창자마다, 또는 제(制)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시작하지만 김세종의 초입은 <아니리>로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호남좌도 남원부는 옛날 대방국이라 허였것다. 동으로 지리산, 서으로 적성강, 남북강성하고 북통운암허니 곳곳이 승지요, 산수 정기 어리어 남녀간 일색도 나려니와, 만고 충신, 관행묘를 묘셨으니 당당한 충렬이 아니 날 수 있겄느냐.

숙종대왕 즉위 초에 사도 자제 도련님 한분이 계시되, 연광은 16세요, 이목이 청수하고, 거지 현량허니 진세간 기남자라. 하로 일기 화창하야 방자 불러 물으시되,

“이 애, 방자야.” “예이.” “내 너의 골 나려온 지 수삼삭이 되�으나 놀 만한 경치를 모르니, 어디어디 좋으냐?” 방자 대답허되, “공부하신 도련님이 승지는 찾어 뭣허시려요?” “니가 모르는 말이로다. 고래의 문장 호걸들이 명승지는 다 구경허셨느니라. 천하지제일강산, 쌓인 게 글귀로다. 내 이를 테니 들어 보아라.”

남원의 경관이 빼어나다는 내용과 이도령이 방자에게 놀만한 곳을 안내하라고 조르는 대화로 시작된다. 사설의 내용은 특별히 어렵지 않으나 생소한 용어들이 보인다. ‘관행묘’는 관우를 모신 관왕묘를 창자의 발음 그대로 쓴 말이고, “거지 현량(賢良)하니 진세간 기남자”라는 말은 행동거지가 어질고 좋아서 세상에 보기 드문 남자라는 의미, 그리고‘승지’는 명승지(名勝地)를 줄인 말이다.

말로 하는 아니리 대목이라도 책 읽듯 밋밋하게 해서는 들을 맛이 없다. 고저와 강약을 넣어 사실감 나도록 말해야 하고 특히 도령이 말을 할 때는 도령다운 기품이 느껴지도록 해야 하고 방자의 역할은 방자답게 처리해야 자연스러운 아니리가 되는 것이다.  

아니리가 끝나면 이어서 창이 중중몰이장단에 맞추어 시작되는데 그 사설은 유명한 문장가들이 놀았다는 내용만을 뽑아 부른다. 소개해 보면 다음과 같다.

“기산 영수 별건곤, 소부, 허 유 놀고, 채석강 명월야의 이 적선도 놀고, 적벽강 추야월의 소동파도 놀아 있고, 시상리에 오류촌 도연명도 놀고, 상산으 바돌 뒤던 사호 선생도 놀았으니, 내 또한 호협사라, 동원도리편시춘, 아니 놀고 무엇 헐거나. 잔말 말고 일러라.”

기산은 빼어난 높은 산이고 영수는 맑고 맑은 강의 이름이다. 그러니 그곳이 별건곤 즉 별천지라는 것이다. 그곳에서 소부와 허유가 살았다는 말이다. 소부와 허유는 판소리뿐 아니라 경기의 잡가나 민요의 노랫말에도 여기저기 나오고 있다. 채석강 달밝은 밤에는 이적선, 즉 이태백이 시를 짓고 놀았으며 적벽강 가을밤에는 소동파도 놀았고, 도연명, 사호선생 등등이 책방에만 앉아 글을 읽지 않고 좋은 경치를 따라 다니며 놀았다는 이야기를 끌어들이고 있다.

그러면서 결론은 본인(이도령)도 호쾌하고 의협심이 많은 선비로서 동원도리편시춘, 이말도 노래마다 등장하는 사설로 젊음은 잠깐이라는 뜻이다. 그러니 어찌 놀지 않을 수 있겠는가 어서 놀만한 경치를 안내하라고 방자를 조르고 있다.

장시간에 걸쳐 부르는 춘향가의 첫 머리는 대부분 기억하기 마련이다. 기산 영수 별건곤 그 곳에 소부, 허유라는 선비가 놀았다는 말이 나오는데, 도대체 이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일까? 초입을 배우는 초보자들은 그 의미를 모르는 채 그저 입으로만 따라 부르는 예가 많아 간단히 알아보기로 하겠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