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06 (일)

  • 구름많음동두천 22.4℃
  • 구름많음강릉 23.7℃
  • 맑음서울 24.0℃
  • 구름많음대전 24.7℃
  • 구름많음대구 23.5℃
  • 구름조금울산 24.7℃
  • 구름많음광주 25.8℃
  • 구름조금부산 27.9℃
  • 구름조금고창 26.8℃
  • 구름조금제주 27.7℃
  • 구름조금강화 23.1℃
  • 구름많음보은 23.4℃
  • 구름많음금산 24.8℃
  • 구름많음강진군 25.9℃
  • 구름많음경주시 24.7℃
  • 맑음거제 25.1℃
기상청 제공
상세검색
닫기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과연 사람은 그 고을의 산 지형대로 태어나는가?

[국악속풀이 118]

[그린경제=서한범 교수]  지난주에는 춘향가의 시작 부분에 나오는 소부 허유의 이야기와 동원도리편시춘 이야기를 하였다. 태평성대의 상징인 요임금이 허유에게 임금자리를 맡기겠다고 하자 귀가 더러워 졌다고 하며 맑은 강가로 나가 귀를 씻었다는 이야기, 이 광경을 목격한 소부 선비는 한술 더 떠서 그 더러운 물을 자기 소에게도 먹이지 않았다는 이야기, 그리고 <동원도리편시춘>이라는 시구(詩句)는 당나라 왕발의 시「임고대」에 나오는 한 구절로  봄 한때 동산에 핀 복숭아꽃과 오얏꽃을 뜻하는 말로 젊음도 잠깐이고, 따라서 인생도 무상하다는 뜻이라고 했다.

짧은 인생, 내가 좋아하는 시를 짓고 노래를 부르며 초가삼간에 누워  마음 편하게 사는 것을 행복으로 알던 옛 선비들과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명예와 부를 쟁취하려는 추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오늘날의 지식인들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도록 한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판소리 춘향전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판소리를 들을 때, 어려운 고사성어(故事成語)들은 일일이 뜻풀이가 없어 그냥 넘기기도 하고, 또한 발음이 불분명하거나 이를 빠르게 부르면 그 의미를 놓칠 수도 있다. 그래서 부분적으로 재미있는 문장들을 되짚어 감상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야기를 진행해 나가고 있다.

이 도령의 요구에 방자가 남원 지방의 놀만한 경치를 일러주니 이 도령은 그 중에서도 광한루(廣寒樓)를 고른다. 광한루는 조선조 세종 원년, 정승으로 있던 황희가 누명을 쓰고 남원으로 유배되었는데 그 때 세웠다고 전해지는 누각이다. 처음에는 ‘광통루’라고 이름 지었으나 후에 전라관찰사인 정인지가 광한루로 고쳤다 한다.    

이 광한루는 지금도 남원을 찾는 관광객들에게는 가장 인기가 있는 장소이다. 이곳에 온 이 도령은 가곡의 분위기를 물씬 풍기고 있는 우조풍의 “적성의 아침날은 늦인 안개 띠여있고 녹수의 저문 봄은 화류동풍 둘렀난듸”로 시작되는 적성가를 부르며 봄기운에 취해 있다. 그렇다가 멀리 그네를 타는 춘향을 보게 되면서 춘향과의 인연이 시작되는 것이다. 춘향을 보게 되고, 방자로부터 춘향에 대한 내력을 듣게 된 이 도령은 곧바로 춘향을 데려 오도록 청한다.

방자의 요청에 춘향은 단호하다. “초면 남자 전갈 듣고 따라가기 무슨 체며, 내 비록 미천하나 기안책명한 일이 없다”고 한다. 기안책명(妓案冊名)이란 관가의 기생 이름 적어 두는 명부에 이름이 들어 있지 않다는 말이다. 그러니 여염질 아이로서 초면 남자가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는 사람이 아니니 방자 전갈 듣고 따라가기 만무하다고 거절한다.

방자도 이에 굴하지 않고 있는 지식, 없는 상식 동원하여 춘향을 대동하려고 한다. 인걸은 지령이라, 사람이라 하는 것이 다 그 고을 산 지형대로 태어나는 법이라고 춘향을 다음과 같이 설득하려고 든다.

   
▲ 과연 사람은 그 고을의 산 지형대로 태어나는가?(그림 이무성 한국화가)

“산세를 이르께 네 들어라. 산세를 이르게 네 들어, 경상도 산세는 산이 웅장허기로 사람이 나며는 정직허고, 전라도 산세는 산이 촉허기로 사람이 나면 재주있고, 충청도 산세는 산이 순순허기로 사람이 나면 인정있고, 경기도를 올라 한양터를 보면 (중략). 사람이 나면 선할 때 선하고 악하기로 들면 별악지상이라.”

전라도 산세가 촉(矗)하다는 말은 높이 솟아 끝이 뾰죽한 형태이거나, 무성하게 우거진 형태이고, 별악지상(別惡之象)은 특별히 나쁜 형상을 뜻하는 말이다. 방자의 설득 요지는 내가 모시고 있는 이도령이야말로 서울 산세를 타고난 인물이고 훌륭한 양반 가문의 자손이니 잘 생각해서 인연을 맺으라는 선의의 압력인 셈이다.

위 사설에 나오는 말처럼 정말 사람이 산 지형대로 태어나는 법일까? 태어나기 보다는, 태어나 자라면서 산세나 산이 생긴 모양, 또는 산과 산이 연이어 만들어 가는 곡선을 보면서 정서나 심성에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닐까?  

여하튼 방자의 강력한 요청에 춘향도 어리석어 속는 듯이, “도련님 전에 안수해, 접수화, 해수혈이라고 전해 올리라”고 하는데, 방자는 이 말이 욕인 줄 알고 도령에게 전한다. 그러나 도령은 그것이 욕이 아님을 안다. 오늘밤 춘향을 찾아오라는 말인 것을 알고 있다.

안수해의 안(雁)은 기러기, 수(隨)는 따를 수, 해(海)는 바다, 그러므로 기러기는 바다를 따른다는 의미이다. 마찬가지로 접수화(蝶隨花)는 나비가 꽂을 따르고, 해수혈(蟹隨穴)은 게가 구멍을 좇는다는 말이니 어찌 여자인 춘향이가 남자인 도령에게 먼저 다가갈 수 있겠는가! 하는 속마음을 은근히 비취고 있는 말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