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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혼은 발써 춘향집으로 가고, 등신만 앉아 글을 읽는 듸

[국악속풀이 119]

[그린경제=서한범 교수]  판소리 춘향전에 나오는 재미있는 부분이나 고사성어(故事成語), 또는 발음이 불분명한 경우나 빠른 장단에 얹히는 사설들은 그 의미를 놓칠 수 있다. 그래서 이 난에서는  감상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부분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지난주에는 방자가 춘향을 데려가기 위해“인걸은 지령이라, 사람이라 하는 것이 다 그 고을 산 지형대로 태어나는 법이라고 춘향을 설득하는 대목을 소개하였다.

방자의 설득 요지는 이도령은 서울 산세를 타고난 인물이고, 훌륭한 양반 가문의 자손이니 잘 생각해서 인연을 맺으라는 선의의 압력이었는데, 과연 적절한 설득이었는지는 의문이다. 사람이 지형대로 태어나기 보다는, 태어나 자라면서 산세나 산의 모양, 또는 산과 산이 연이어 만들어 가는 곡선을 보면서 정서나 심성에 영향을 받는 것이 더 가까운 표현이 아닐까 라는 이야기도 하였다.

그리고 방자는 욕인 줄 알고 도령에게 전한 말, 안수해, 접수화, 해수혈이라는 말은 욕이 아니라, 남자가 여자를 찾아야지 어찌 여자가 남자를 찾아가겠는가 하는 의미, 즉 안수해(雁隨海)는 기러기는 바다를 따르고 접수화(蝶隨花)는 나비가 꽂을, 해수혈(蟹隨穴)은 게가 구멍을 좇는다는 의미임을 이야기 하였다.

이번 속풀이 119에서는 천자문을 노래하는 <천자뒤풀이> 대목을 소개한다.
춘향으로부터 안수해, 접수화, 해수혈이라는 마음을 전해받은 이도령은 가슴이 뛰기 시작한다. 책방으로 돌아와 글을 읽긴 읽되, 제대로 온전하게 읽을 리 만무하다. 이 상황을 소리꾼은 아니리로 이렇게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혼은 발써 춘향집으로 가고 등신만 앉아 글을 읽는 듸, 노루글로 뛰어 읽든가 보더라.”

참으로 재미있는 표현이다. 구수하면서도 그 분위기를 충분히 그려낼 수 있도록 간결하게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맹자(孟子)≫ 첫 구절도 읽다가 집어 치우고, ≪대학(大學)≫도 첫 구절 읽다가 덮고, 이번에는 ≪등왕각서≫에 나오는 “남창(南昌)은 고군(故郡)이요, 홍도(洪都)난 신부(新府)로다.”를 읽는다. 이 문장은 글자 그대로 남창이란 곳은 옛 고을이요, 홍도라는 곳은 새로운 마을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도령은 이 글을 읽으면서도 “홍도 어이 신부되리, 우리 춘향이 신부되지.”로 읽고 있어서 이미 혼이 춘향에게 가 있음을 재미있게 그려 내고 있는 것이다.

   
▲ 김홍도의 풍속도첩 가운데 <서당>

그러다가 천자(千字)를 들여오라고 분부하니 방자가 깜짝 놀란다. ≪천자문(千字文)≫이란 것이 한문의 기초요 기본서로 공부를 처음 시작할 때, 읽는 책인데 이것을 초보자도 아닌 도령이 지금 들여 오라하니 방자가 놀래지 않을 수 없어 “아니, 또 천자는 갑작스럽게 웬일이시오?” 라고 묻는다. 도령이 대답한다.

“니가 모르는 말이로다. 천자라는 것은 칠서(七書)의 본문이라. 뜻을 새겨 놓고 보면 별 희한한 맛이 거기 다 들어 있느니라. 내 이를 테니 한번 들어 보아라.”
참고로 칠서란 유교에서 말하는 《논어》《맹자》《중용》《대학》의 사서와 《시경》《서경》《주역》의 삼경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천자문≫은 양나라의 주홍사가 우주의 크고 작은 모든 것을 1,000자로 적어 놓은 책으로 알려져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한문을 익히는 입문서로 널리 쓰여 온 책이다. 천자 뒤풀이 대목은 천자문에 있는 글자의 뜻을 풀어서 중중모리 장단으로 매우 흥겹게 부르는데, 전체를 다 부르는 것이 아니라 30글자만 부르고 있다.  

천자문의 시작은 하늘 천, 따 지, 검을 현, 누루 황으로 읽어나가는데 판소리에서의 천자뒤풀이 대목은 이렇게 간단하게 구성되어 있지 않고 글자 하나하나의 의미를 부여하면서 훈과 음을 붙여 노래하고 있기 때문에 노래와 함께 고급 지식도 얻을 수 있다

예를 들어 하늘 천(天)은 “자시에 생천하니 불언행사시, 유유피창에 하늘 천(天), 과 같이 부르고, 따 지(地)의 경우에는“축시으 생지허여 금, 목, 수, 화,(토)를 맡었으니 양생만물 따 지(地), 라고 부른다.

자시(子時)란 하루를 12로 나눈 시간 중에 첫째 시(時)인 밤 11시~01시를 말하고, 축시(丑時)는 자시 다음인 01시~03시를 말하는데 먼저 하늘이 열리고 그 다음 축시에 땅이 생겼다고 한다. 이는 송나라의 소옹이 지은 ≪황극경세(皇極經世)≫ 중에 “하늘은 맨 처음 깜깜한 자시에 열리고 땅은 그 다음 축시에 생겼다”는 구절에서 유래 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불언행사시(不言行四時-실창에서는 불연행사시로 부름)라는 말은 아직 4계절의 구별이 없을 때를 가리키는 말이고, 유유피창(悠悠彼蒼)은 끝없이 멀고 먼 저 하늘을 의미하는 말이다. 그러므로 하늘을 뜻하는 천(天)은 자시에 열렸으며 4계절의 구별이 없던 시절 끝없이 멀고 먼 하늘이라는 의미가 된다. 또한 땅을 의미하는 지(地)는 하늘이 열린 자시 다음의 축시에 생겼고, 금(金), 목(木), 수(水),화(火),토(土) 등 소위 우주만물을 이루고 있는 5행을 맡았으니 이 세상 모든 생물을 낳고 키우는 땅이라고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천자문을 부를 수 있고 들을 수 있다는 것은 이러한 깊은 지식도 함께 쌓는 일이기 때문에 그 속에 담겨진 의미를 이해하고 듣는다면 천자뒤풀이가 얼마나 유용한 대목인가를 알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