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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국악속풀이 120] 천자뒷풀이 대목 이야기

[그림경제=서한범 교수]  지난주에는 춘향으로부터 안수해, 접수화, 즉 기러기가 바다를 따르고 나비가 꽃을 찾는 법이라는 언질을 받고 돌아온 이 도령이 책을 읽는데, “혼은 발써 춘향집으로 가고 등신만 앉아 글을 읽는 듸, 노루글로 뛰여 읽는” 상황을 소개 하였다.

≪맹자(孟子)≫, ≪대학(大學)≫도 첫 구절 읽다가 덮고, ≪등왕각서≫의 “홍도(洪都)난 신부(新府)로다.”를 “홍도 어이 신부되리, 우리 춘향이 신부되지.”로 읽는다. 그러다가 초보자가 읽는 기본서인 ≪천자문(千字文)≫을 들여오라고 하는 대목, 그 중에서 하늘 천(天)과 따 지(地)에 관한 이야기를 조금 하였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천자문을 읽는다고 하면 흔히 <하늘 천(天), 따 지(地), 검을 현(玄), 누루 황(黃)>을 떠 올리게 마련이다. 그러나 판소리에 나오는 <천자 뒤풀이> 대목은 글자의 뜻을 하나하나 풀어서 중중모리 장단으로 매우 흥겹게 부르고 있으며 그 사설 내용도 재미있다.

   
▲ 한석봉 천자문 초간본(동국대 중앙도서관)

예를 들면 하늘을 의미하는 천이라는 글자는 “자시에 생천하니 불언행사시, 유유피창에 하늘 천(天)”이라고 부르는데, 이 말의 의미는 하늘은 자시에 열렸으며 4계절의 구별이 없던 시절에 끝없이 먼 것이 곧 하늘이라는 뜻이다.

또한 지는 “축시으 생지허여 금목수화를 맡었으니 양생만물 따 지”로 부른다. 땅을 의미하는 지(地)는 하늘이 열린 자시 다음의 축시에 생겼고, 금(金), 목(木),수(水),화(火),토(土) 등 소위 우주만물을 이루고 있는 5행을 맡았으니 이 세상 모든 생물을 낳고 키우는 것이 바로 땅이라는 말이다. <천>, <지>, 두 글자의 의미가 예사롭지 않음을 알게 한다.  
이렇게 해서 천개의 글자 중 30글자를 글자 하나하나의 의미를 부여하면서 훈과 음을 붙여 노래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천자뒷풀이> 대목을 부를 수 있거나, 또한 제대로 그 사설을 이해하며 들을 수 있다면 음악적인 면은 말할 것도 없고, 교양이나 지적 수준이 매우 높다 아니 할 수 없는 것이다.

천과 지 다음으로 이어지는 글자들의 의미는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가?
일일이 풀이하는 작업을 생략하고 춘향가에 나오는 <천자뒷풀이> 대목을 그대로 소개해 보도록 하겠다. 한 글자, 한 글자 그 의미를 어떻게 풀어나가는가 소리 내어 읽어 보시기 바란다. 참고로 이 대목은 조상현 명창이 부른 대로 뿌리깊은 나무 판소리에 적혀 있는 사설을 그대로 인용한 것이다.

“자시에 생천하니 불연행사시 유유피창에 하늘 천(天), 축시으 생지허여 금, 목, 수, 화, (토)를 맡었으니 양생만물 따 지(地), 유현 미묘 흑정색 북방 현무 감을 현(玄), 궁상각치우 동서남북 중앙 토색으 누루 황(黃), 천지 사방이 몇 만리 하루 광할 집 우(宇), 연대 국조 흥망성쇠 왕고래금 집 주(宙), 우치홍수으 기자 초연 홍범이 구주 넓을 홍洪), 전원이 장무호불귀라, 삼광이 취황 거칠 황(荒), 요순 천지 장할시구 취지여일 날 일日), 억조 창생 격양가 강구연월 달 월(月), 오거시서에 백가어 적안영상 찰 영(盈), 이 해가 어이 이리 더디 진고, 일중즉측의 지울 측(), 이십팔수 하도 낙서 진우천강 별 진(辰), 가련금야숙창가라 원앙금침 잘 숙(宿), 절대가인 좋은 풍류 나열춘추 벌일 열(列), 의희월색 삼경야으 탐탐정회 베풀 장(張), 부귀공명 꿈 밖에라 포의한사 찰 한(寒), 인생이 유수같이 세월이 절로 올 래(來), 남방 천리 불모지라 춘거하래 더울 서(署), 공부자으 착한 도덕 이왕지사으 갈 왕(往), 상성이 추서방지으 초목이 황락 가을 추(秋), 백발이 장차 오거드면 소년 풍도 거둘 수(收), 낙목한천 찬 바람에 백설 강산의 겨울 동(冬), 오매불망 우리 사랑 규중심처 감출 장(藏), 부용 작약으 세류 중으 왕안옥태 부를 윤(閏), 저러한 고운 태도 일생 보아도 남을 여(餘), 이 몸이 훨훨 날아 천사만사 이룰 성(成), 이리저리 노니다 부지 세월 해 세(歲), 조강지처는 박대 못허느니 대전통편으 법 중 율(律), 춘향과 날과 단둘이 앉어 법 중 여(呂) 자로 놀아 보자.”

끝 부분에서 이도령의 마음이 춘향집에 가 있음을 재미있게 묘사하고 있다.

책 읽는 일은 지식인들의 일상이다. 책을 열고 책 속에 담겨있는 진리를 터득하면서 세상 살아나가는 방법을 깨우치고, 책속에서 바른 길을 찾으려는 사람들을 우리는 선비라고 불러 왔다. 일상에서 책읽기의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바로 송서나 율창의 방법이다. 글자를 눈으로 읽는 것이 아니고 노래를 부르며 음악적으로 읽는다면 암기는 물론이고, 스스로 오래 앉아 읽어도 지루함을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소리꾼들도 사설을 외우라면 몇 줄 이어가기 어려우나 가락을 올리고 장단을 붙이면 그 사설은 4~5시간, 때로는 7~8시간도 불러나갈 수 있는 것이다. 훌륭한 문장도, 가슴을 울리는 명시도, 명사설도, 가락을 얹고 장단을 타면 전파력도 강력해 지지만 그보다는 듣는 사람들을 더 진한 감동의 세계로 안내하는 힘을 갖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