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반재원 소장] ‘서방(書房)’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다음과 같다.
*서방 - 남편을 속되게 이르는 말.
지난날 벼슬이 없는 남자의 성 뒤에 붙여 일컫던 말. 김 ~ , 이 ~ .
손아래 친척 여자의 남편 성 뒤에 붙여 일컫던 말.
*서방님 - 남편을 높여 일 컽는 말. 결혼한 시동생을 일컽는 말. 지난 날 상사람이 벼슬 없는 선비를 일컽는 말.
*서방맞다 - 남편을 얻는 일.
*서방맞이 - 남편을 맞는 일.
*서방 맞히다 - 남편을 얻게 하는 일.
*서방질 - 남편이 있는 여자가 새 서방을 보는 것.
(이기문 감수. 동아출판사. ≪동아새국어사전≫)
*서방(書房) - 고려 때 최이(崔怡)가 자기 집에 둔 임시 특별관청. 문신 및 유학자들을 교대로 숙직시키며 나랏일을 의논하였음.
*서방 가다 - 장가가다(함경도).
*서방 보내다 - 장가들이다(함경도).
*서방재 - 신랑(함경도).
(신기철, 신용철. 삼성출판사. ≪새우리말큰사전≫)
이상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서방’은 주로 벼슬 없는 남자의 성 뒤에 붙여 일컫는 말이거나 장인, 장모 등 처가 집의 윗사람이 ‘사위’를 부를 때 쓰이는 말임을 알 수 있다. 또 ‘서방님’은 주로 남편을 높여 일컫는 말로 쓰였으며 또한 결혼한 시동생을 높여 부르는 호칭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낱말이 나타내는 글방(書房)의 뜻은 찾아볼 수 없다. 즉 ‘글 읽는 총각’ 이라든지 ‘글방 훈장’ 이라든지 하는 뜻은 그 어디에도 나타나 있지 않다.
여기서 잠깐 ‘사위’에 대하여 살펴보면 ‘사위’란 딸의 남편으로 직접 호칭은 ‘~ 서방’ ‘여보게’ 등이고 지칭은 ‘사위’ ‘여서女壻’ 등으로 나와 있다. 또 ‘동상(東床)‘이라는 말이 ‘사위’의 뜻으로 쓰이며 ‘새사위’를 일컽는 말이라고 되어있다.
*동상(東床) - 남의 ‘새사위’를 높여 일컽는 말. 저집 ~ 님은 글씨를 잘 쓰더라.
*동상(東牀) - 사위. 왕희지(王羲之) 고사에서 온 말. 왕희지는 태위(太尉, 영의정격) 극감(郄鑒)의 사위였다. 왕희지의 천자문은 주흥보다 100년이 빠르다.
*동상례(東床禮) - 혼례식이 끝난 뒤 신랑이 신부집에서 마을 사람 및 친구들에게 음식을 대접하는 말
(신기철, 신용철. 삼성 출판사. ≪새 우리말큰 전≫)
위에서 보는 바와 같이 ‘동상’은 ‘사위’를 이르는 말이며 ‘동상례’란 혼례가 끝난 뒤 신랑이 신부집에서 마을 사람 및 처가 동네의 친척과 친구들에게 음식을 대접하면서 처족들에게 올리는 일종의 신고식이라 하겠다. 또 ‘동상례’란 ‘동쪽에 상을 차리는 예’ 또는 ‘사위가 동쪽으로 와서 상을 차리는 예’를 이르는 말로 보인다. 그렇다면 그 말은 곧 그 사위가 서쪽에서 왔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즉 서쪽에서 동쪽으로 장가들었으므로 동쪽에서 상을 차려 신고식을 하는 것이며 따라서 ‘서방’이라는 말은 ‘사위’가 살던 곳이 서방(西方)이라는 방향을 따서 부른 말로 보는 것이다.
그리하여 아내에게는 ‘서방에서 온 사람’, ‘서방에서 온 님’이란 뜻으로 ‘서방인(西方人)’ ‘서방님(西方任)’이 된 것으로 보인다. 이는 삼황오제(三皇五帝) 시대에 신농(神農) 이 서쪽인 섬서성(陝西省) 서안(西安)에서 황제(黃帝) 집안인 동쪽 산동성(山東省) 곡부(曲阜)로 장가든 방향과 일치하니 ‘서쪽에서 동쪽으로 장가(丈家) 온 사람’ 이라는 뜻으로 ‘서방님(西方任)’으로 불렸던 것으로 짐작된다. 그 당시에는 ‘인(人)’과 ‘임(任)’이 모두 사람이라는 뜻으로 함께 쓰였다. 지금도 산동 지방에서는 사위(女婿)를 ‘동상(동상)’이라고 부르고 있으며 동상례도 “東牀禮”가 아니라“東床禮”로 쓰고 있는 점으로 보아 왕희지 고사보다 훨씬 이전에 쓰였던 말로 보는 것이다.
또 ‘장가든다’, ‘장가들인다’, ‘장가보낸다’라는 말도 장가(丈家) 즉 처가 집으로 아들을 들여보낸다는 뜻이다. 그 당시는 모계 사회였으므로 남자가 여자 집으로 장가들어 처가살이를 하던 시대였다. 그래서 우리도 불과 한 세대 전 까지만 하더라도 여자 집에 가서 혼례를 치르고는 신부는 처가에 남겨 두고 수시로 왔다 갔다 하다가 석 달, 여섯 달, 또는 한해 만에 신부를 데리고 오는 유풍이 남아 있었다.
그것은 비록 부계사회로 바뀌면서 여자가 남자 집으로 시집오게 되었지만 그 풍습이 단번에 변하지 않고 유구한 세월에 걸쳐 서서히 바뀌어 온 과정으로 보인다. 서방님도 처음에는 ‘서방인(西方人)’ 또는 ‘서방님(西方任)’이던 것이 장차 서방님이 될 도련님이 주로 글방에서 글 읽던 것에 기인하여 시대의 흐름에 따라 ‘서방님(書房任)’이 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