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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부여팔경(八景)을 아십니까?

<윤재환의 신부여팔경> ①

[그린경제=윤재환 기자] 


< 편집자 주 > 윤재환의 <신 부여팔경>을 시작하며
부여는 백제의 고도다. 그래서 누구나 부여를 찾고 부여를 잘 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윤재환의 신 부여팔경>을 읽으면 생각이 달라진다. 그동안 보지 못했던 부여의 새로운 정경이 펼쳐진다. 윤재환 선생의 깊고 넓은 <신부여팔경> 우리 모두 함께 해보자.

 

   
▲ 창산 신맹선, <부여관광안내도>, 창산은 묵매를 즐겨 그리는 화가였는데, 이와 같은 관광안내도를 소상하게 그려 남겼다는 것은 그의 부여 사랑을 엿보게 하는 자료라 여겨진다.

한 지방의 특히 빼어난 여덟 군데 경치를 일컬어 흔히 팔경(八景)이라 부른다. 중국 북송(北宋, 960~1126) 때 학자이던 심괄(沈括, 1030~1093)이 지은 몽계필담(夢溪筆淡)에 송적(宋廸)이란 사람이 삽화를 그렸다. 그 삽화 가운데 여덟 군데의 풍경 그림이 매우 아름다웠는데, 팔경은 여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송적의 대표작인 <소상팔경(瀟湘八景)>은 양자강 남쪽의 소강(瀟江)과 상강(湘江)이 서로 만나는 두물머리의 아름다운 풍광 여덟 군데를 그린 것인데, 그 사연은 이러하다. 

산시청람(山市靑嵐) 산시의 푸른 아지랑이
연사모종(煙寺暮鐘) 연기에 둘러싸인 산사의 저녁 종소리
원포귀범(遠浦歸帆) 멀리 포구로 돌아오는 배
어촌석조(漁村夕照) 어촌 마을의 저녁노을
소상야우(瀟湘夜雨) 소상에 내리는 저녁 비
동정추월(洞庭秋月) 동정호의 가을 달
평사낙안(平沙落雁) 평사에 내려앉는 기러기
강천모설(江天暮雪) 강천의 저녁 눈 

위의 내용 중 소상야유소상강에 내리는 저녁비에는 슬픈 사연이 담겨 있다. () 임금이 정사를 펴다가 창오(蒼梧)에서 죽자, 그의 아내 아황(娥皇)과 여영(女英)이 이 소식을 듣고 소상강가에서 순 임금을 그리워하며 슬피 울다가 그를 따라 죽는다. 그때 흘린 두 여인의 눈물은 소상강가에 우거진 대나무 쭐기에 얼룩이 되어 남겨졌다고 한다. 이것이 소상강의 반죽(斑竹)이다.  

이를 보면 원래 팔경은 경치만 아름답다고 해서 지정되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풍광과 마음으로 느끼는 역사적문화적 심미(心美)가 동시에 어우러진 곳이어야 팔경이 들 수 있는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는 중국의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가 고려시대 중반부터 그려지기 시작했으며, 조선조에 들어와서는 우리 땅의 팔경들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그 대표적인 진경(眞景)이 겸재 정선(1676~1759)<관동팔경>이다. 통천의 총석정, 고성의 삼일포, 간성의 청간정, 양양의 낙산사, 강릉의 경포대, 삼척의 죽서루, 울산의 망양정, 평해의 월송정 등 누각이 동해를 굽어보는 그 경치는 예나 지금이나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그런가 하면 퇴계 이황이 단양군수로 재임할 때 지정한 <단양팔경>은 도담삼봉, 석문, 옥순봉, 사인암, 하선암, 중선암, 상선암 등 빼어난 바위 중심으로 팔경이 지정되었다. 이렇듯 팔경은 고장에 따라 다양하게 지정되었다.  

부여는 538(성왕 16)에 백제의 도읍이 되었다. 이후 123년 동안 찬란한 문화의 꽃을 피웠다. 당연히 <부여팔경>도 지정되었다. 1920년 당시 부여군수이던 김창수(金昌洙)가 이미 없어진 만광지(萬光池)와 허물어진 석탄정(石灘亭)을 제외한 여덟 군데의 명승지를 지정했다 

   
▲ 구드레 조각공원에 있는 부여팔경 승람비에 새겨진 <백제탑석조> 크로키(왼쪽)와 <부소산모우> 크로키(오른쪽)

첫째 경()백제탑석조(百濟塔夕照)”이다. 정림사지 오층석탑으로 저 널리 알려진 이 석탑에 석양이 내려 앉는다. 이 고아한 석탑이 석양에 물드는 모습은 백제의 미학을 한눈에 보여주는 한 폭의 그림이다. 

그 둘째 경()부소산모우(扶蘇山暮雨)”이다. 웅장하고 화려했던 백제 궁궐은 간데온데 없고 손나무와 참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찬 부소산에 저녘 무렵 부슬부슬 내리는 비를 바라보면 왜 부소산이 부여의 진산(鎭山)인지 알게 될 것이다. 

   
▲ 구드레 조각공원에 있는 부여팔경 승람비에 새겨진 <고란사효종> 크로키(왼쪽)와 <낙화암숙견> 크로키(오른쪽)

그 셋째 경()고란사효종(皐蘭寺 曉鐘)”이다. 고란사 뒤란에서만 서식하는 고란초그 잎을 약수 한 잎에 띄워 쯜겨 마셨다는 백제 임금들, 그 고란사의 새벽 종소리는 백마강의 적막을 깨뜨리며 은은히 울려퍼진다. 마치 임금의 마음을 백성에게 전하는 소리 같다. 

그 넷째 경() 낙화암숙견(落花巖宿鵑)”이다. 백제의 자존심과 정절을 지키기 위해 삼천궁녀는 백마강으로 몸을 던진다. 이 비극적인 현장에는 불행했던 원혼들이 소리로 환생한 듯 오늘도 두견새가 울고 있다. 

   
▲ 구드레 조각공원에 있는 부여팔경 승람비에 새겨진 <구룡평낙안> 크로키(왼쪽)와 <백마강침월> 크로키(오른쪽)

그 다섯째 경()구룡평낙안(九龍坪落鴈)”이다. 부여에서 가장 넓은 평야가 구룔평이다. 기러기 떼가 느릿느릿 이곳에 내려앉는 모습은 퍽 여유스럽다. 그 모습은 우리에게 서두르지 않고 느리게 산다는 참 의미를 깨닫게 해준다. 

그 여섯째 경()백마강침월(百馬江沈月”)이다. 고요한 백마강은 어머니의 품처럼 늘 아늑하고 포근하다. 그 백마강에 담긴 달은 마치 어머니의 품에 잠든 예쁜 아기의 모습이다. 우리는 순결한 백제인의 모습을 여기에서 발견할 수 있다. 

   
▲ 구드레 조각공원에 있는 부여팔경 승람비에 새겨진 <수북정청람> 크로키(완쪽)와 <규암진귀범>(오른쪽)

그 일곱째 경은 수북정청람(水北亭淸嵐)”이다. 긴 겨울동안 잠자던 봄기운이 기지개를 켠다. 기지개 사이로 아른아른 아지랑이가 피어오른다. 그 아지랑이가 수북정 아래 기암절벽을 타고 오를 때 우리는 백제인의 생기를 느끼게 된다. 

그 여덟째 경은 규암진귀범(窺巖津歸帆)”이다. 금강 하구로부터 만선의 깃발을 나부끼며, 규암진으로 들어오는 배, 그 배를 바라보는 가족들의 얼굴에는 비로소 안도와 기쁨의 표정이 담긴다. 이것이 백제인들의 소박한 삶 풍습이었다.  

그런데 구경(九景)도 있고, 십경(十景)도 있을 터인데 왜 하필 파경(팔경)일까? ()의 의미는 뭘까? 풍수(風水)애서는 조선 8대 명당이니 호남 8대 명당을 들먹인다. () 8의 개념은 동양적 사고에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동양에서는 숫자마다 간직한 의미가 있다. 숫자마다 음양오행을 가지고 있다. 홀수는 양()이고 짝수는 음()이다 

   
▲ 오용길,금성산 정산에서 바라본 부여 읍내, 화선지에 수묵담채, 126×87cm, 2007

역경(易經)<계사전>에서는 하늘은 칠[天七]이요, 땅은 팔[]이라 했다. 땅을 건(, 서북), (, ), (, ), (, ), (, 동남), (, ), (, 동북), (, 서남으로 나누는데, 이것은 여덟 방위를 나타낸. 이 여덟 방위는 땅의 전부를 가리키며, , 자연을 일컫는다. 그래서 팔경은 자영 전체를 아우르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부여팔경>의 모습은 오늘날 많이 변해버렸다. 필자는 이 변화된 모습을 바탕으로, 새로운 부여팔경을 탐색하고자 이 글을 시작한 것이다.
    
                                                       * 자세한 내용은 윤재환의 신 부여팔경》, 스펙트럼북스,  2010 참고

(다음 제2편은 4경과 외4, 이것이 신 부여팔경이다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