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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민족

명치천황을 받들라! 남원 노암동 남원신사 터를 찾아서<1>

황국화 상징 조선의 신사(神社) 돌아보기

[그린경제 = 이한꽃 기자]  남원신사를 찾아가는 길에 이도령과 춘향의 사랑이 얽혀있는 광한루를 들렀다. 연못에서는 팔뚝만한 잉어들이 퍼덕 거렸고 광한루 안에 늘어진 버드나무는 운치를 더했다. 서울에서 내려간 나를 위해 지인 몇이 나와 광한루 구석구석을 구경 시켜주었지만 내 눈에는 요천강 언덕 위 오두커니 서있는 금수정 쪽으로 자꾸만 눈이 갔다. 광한루를 대충 둘러보고 우리는 승사교를 건너 노암동이라는 커다란 돌 표지석이 버티고 있는 곳으로 갔다.  
 

   
▲ 1936년 당시의 남원신사

   
▲ 남원 신사 입구

바로 오른쪽으로 돌계단이 층층이 나 있었는데 이 계단 위가 바로 남원신사가 있던 곳이다. 일제강점기 조선에 들어선 신사는 남산의 조선신궁 처럼 그 지역에서 가장 전망이 좋고 신성한 곳에 자리하고 있는데 남원 신사 역시 광한루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절경의 위치에 자리하고 있었다. 거친 숨을 내쉬며 돌계단을 오르니 널찍한 공간이 나오는데 지금은 테니스장이 들어선 자리가 남원신사가 들어앉았던 자리다.

 

남원신사는 1936년 10월 25일 건립한 것으로 모시던 주신은 천조대신(天照大神)과 명치천황(明治天皇)의 혼백이다. 당시 전라북도에는 남원신사를 포함하여 전주신사, 군산신사, 이리신사, 김제신사, 정읍신사, 서수신사, 대장신사, 태인신사, 조촌신사, 신태인신사 등 모두 11곳의 신사가 있었다.

해방이 되면서 강제로 신사참배를 해야 했던 억눌림이 일시에 폭발하여 가장 먼저 부수게 된 것이 신사건물이 아닌가 한다. 이곳 신사가 언제 헐렸는지는 모르나 신사의 흔적은 쉽게 눈에 띄었다. 일제의 악랄한 수탈과 식민지 국민의 서러움을 기억한다면 돌부리 하나 조차 남김없이 치워 버려야 성에 찰 것이다. 그것은 당해보지 않은 사람이 아니고는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이며 아픔이었다. 나뒹구는 신사 울타리용으로 쓰였을 듯한 돌기둥을 보면서 선조들이 강제로 이곳을 드나들었을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 현재는 테니스장으로 쓰는 신사 본전 자리

 

   
▲ 이곳이 신사 터였음을 알리는 돌 흔적들

신사 터를 둘러보고 나니 금암봉 오른쪽 아래로 조붓한 길이 나있는데 깎아지른 듯한 절벽위에 금수정이라는 정자가 고즈넉한 모습으로 버티고 있다. 이 금수정의 유래를 보니 1936년 이현순 외 조광엽, 서봉선 등이 주축이 되어 향토문사들의 시문풍영(詩文諷詠)과 주변 경치를 즐기려는 사람들의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건립된 누정이라한다. 그러나 1936년 금수정을 건립할 당시는 일제의 민족문화 말살 정책의 하나로 신사참배 강요가 극에 달한 시기로 남원주민이 신사참배를 위해 이곳에 와야 했다.  

그래서 일설에는 지역 유지인 이현순 등이 일제의 민족문화 말살정책에 저항하여 민족의식을 고취하고 신사참배를 거부하기 위한 방안으로 남원신사가 있는 금암봉 정상 아래쪽 요천강이 바라다 보이는 곳에 금수정을 짓고 신사 참배를 가는 척하다 이곳에서 시문을 지으며 쉬어 갔다고 한다. 금수정을 세운 시기와 남원신사를 세운 시기가 비슷한 것으로 보아 신사참배의 거부와 민족의식 고취를 위한 방편으로 세운 것이라는 믿음이 간다.

남원신사를 기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강요당한 역사를 기억하기 위한
표지판 하나  있었으면...

요천강과 광한루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금암봉 꼭대기의 남원신사 터를 둘러보고 내려오면서 단군왕검도 아닌 명치천황을 위해 고개를 숙이고 묵념을 올려야 했던 민중들의 고초가 떠올라 94개 돌계단이 어질어질 하게 느껴졌다. 아쉬운 것은 남원신사 터 자리에 이곳이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 현장인 남원신사 터라는 것을 알리는 표지판이라도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그것은 남원신사를 기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신사참배 강요를 해야 했던 기억을 잊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 신사참배를 가는 척하려 지었다는 금수정

   
▲ 신사로 오르는 가파른 참도(參道)는 예전 모습 그대로다

  

        <남원신사(南原神社)>

*소재지:전라북도남원군남원읍노암리(全羅北道南原郡南原邑鷲岩里) 현, 노암동
*제신(祭神):천조대신(天照大神) 명치천황(明治天皇)
*창립일:1936년 (소화1110월 25일
*사격(社格): 읍공진사(邑供進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