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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홍준 교수, 섣부른 일본답사 멈추라

[편집국에서]일본답사 중 했다는 광륭사(고류지)미륵상에 대한 잘못된 말들

[그린경제/한국문화신문 얼레빗=김영조편집국장]  지난 811일 나는 편집국에서” <일본 국보 1"미륵상" 일본인 얼굴로 성형수술>라는 칼럼을 올린 적이 있었다. 그 칼럼의 내용 가운데는 우리나라에도 내로라하는 미술사학자가 많지만 아직 이에 대해 분명히 말하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다. 아니 한 술 더 떠서 이미 성형 되어버린 광륭사 미륵상과 우리나라 국보 제83호의 미륵상이 꼭 닮았다고 주장하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깝다.”라는 대목이 있다.  

그런데 어제 아침 경향신문을 보다가 깜짝 놀랐다. 바로 그 유명한 미술사학자가 일본 교토 답사를 하는 중 했다는 말 광륭사(고류지) 목조반가사유상과 한국 국보 제83호인 금동미륵보살반가상이 꼭 닮았다.”를 읽었던 것이다. 이는나의 유산 답사기시리즈로 일약 대스타가 되었고, 문화재청장까지 지낸 유홍준 교수가 한 말이다. 나는 눈을 부비고 다시 한 번 읽어 보았다. 하지만 그 말을 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 아닌가? 

나의 유산 답사기가 처음 나왔을 때부터 나는 이 책을 참 좋아 했고, 책을 통해 많은 공부를 했으며, 동시에 유 교수를 존경하기까지 했었다. 그리고 그 책에 나온 영주 부석사를 방문했을 때 한국 최고의 가람배치라는 말이 잘못 되었음도 알았지만 유홍준 교수가 쓴 책에 대한 큰 믿음은 변함이 없었다. (방문 당시 만났던 부석사 스님은 남향이었던 부석사의 가람들이 일제에 의해 동향으로 왜곡되어졌는데도 책에 최고의 가람배치라 했다며 개탄했다.) 

그런 유홍준 교수였다. 유려한 글 솜씨와 화려한 입담으로 한국 답사단을 안내했다는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유 교수가 광륭사 미륵상이 서로 꼭 닮았다라고 했다는 것을 알고는 나는 정말 어처구니가 없었다 

   
▲ 광륭사(고류지) 일본 국보 제1호 미륵상(왼쪽), 한국 국립중앙박물관 국보 제83호 미륵상 / 이 두 미륵상은 몸체만 닮았고 얼굴은 절대 닮지 않았다. 얼굴은 명치때 조선인 얼굴에서 일본인 얼굴로 성형수술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지난 칼럼에 썼던 내용을 다시 되짚어보자 처음 광륭사 미륵상과 대면하던 날 나는 이 두 미륵상이 전혀 닮지 않았음을 직감했다. 하지만, 언론과 전문가들이 한결같이 닮았다고 하는데 미술사 전공자도 아닌 내가 그것을 문제 삼을 일은 못되기에 혼자 가슴앓이를 해야 했다. 그러다가 광륭사 미륵상에 대한 놀라운 정보가 있다는 이윤옥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장의 제보를 받았다. 그는 광륭사 미륵상에 대한 깜짝 놀랄 사실을 확인했다고 하면서 그 근거로 일본잡지 역사공론19766월호의 <아스카불에 보는 일본과 조선>이라는 글의 원문을 제시했다. 

역사공론19766월호의 <아스카불에 보는 일본과 조선>이라는 글에서 나가이 신이치라는 일본 미술사학자는 일본 국보 제1호 광륭사 미륵상 얼굴이 수리되었으며 그것도 수리 전 조선인의 얼굴에서 수리 후 일본인의 얼굴로 바뀌었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결국 두 미륵상의 얼굴은 닮을 수가 없는 사실(현재는 얼굴 성형이 되어 몸통만 닮아 있다)이 밝혀졌는데도 유 교수는 이러한 사실을 꼼꼼히 살피지 않은 채 옛사람들이 무지로 써 놓은 것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거기에 더하여 유 교수는 독일 철학자 야스퍼스가 광륭사 미륵상을 극찬했다는 이야기도 아무 여과 없이 곁들인다.  

그리고 유 교수는 한 대학생에 의해 미륵상의 손가락이 파손되었던 사건을 말하면서 그 대학생은 이쑤시개 1/4만한 크기의 파손 부위를 얻어갔다고도 말한다. 당시 이 사건은 국보를 훼손한 것으로 일본 전국을 강타한 큰 사건이어서 대학생이 구속되기까지 했었는데 파손 부위를 얻어갔다니 이 무슨 소설이란 말인가? 

   
▲ 이렇게 일본 미술사학자 나가이 신이치 교수는 "조선인 얼굴에서 일본인 얼굴로 바꾸니까 좋다."고 고백했다.(그림 이무성 한국화가)

광륭사 미륵상에 대한 나가이 신이치의 글을 찾아낸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 이윤옥 소장은 최근 유 교수가 일본 고대문화는 죄다 우리가 만든 것이란 통념을 깨야한다.”는 이상한 말을 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어서 가장 쉽고 간단한 방법은 일본을 물고 들어가는 것이다. 일본은 2000년간 우리 문화에 빨대를 꽂아 빨아먹어 성공했다. 그럼 우리는 이미 세계에 알려진 일본 문화를 보여주며 우리에게서 가져가거나 배워간 것을 강조하고 우리가 더 우위에 있음을 강조하면 된다."는 말도 비판했다.  

일본을 물고 들어 간다는 것은  고대한국의 자신감 있는 문화의식의 결여에서 나온 말이며 유 교수 자신이 주장하는 우리 것에 대한 자신감이 생기면 일본을 보는 시각이 달라진다.”는 말과도 모순된다고 지적한다. 또한 유 교수의 영국과 프랑스는 100년 전쟁을 했고, 나폴레옹이나 히틀러는 얼마나 많은 이들의 목숨을 앗아갔나. 임진왜란은 겨우 7년 전쟁이고 진정한 승리는 우리나라였다. 일본이 금방 반성하고 통신사를 보내달라고 하지 않았나?’ 같은 말도 우려스런 발언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대한민국 문화재와 관련하여 유홍준 교수는 사실 아주 중요한 인물이다. 사람들이 별로 관심을 갖지 않았던 문화유적 답사 붐을 일으키고 문화유적을 사랑해야 한다는 생각을 확고하게 심어준 대단한 학자인 것이다. 또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어 책을 읽지 않은 풍토에 새바람을 일으킨 인물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것은 한국미술사에 관해서일 뿐이지 일본의 문화재에 대한 그의 견해는 매우 우려되는 수준이라는 일부 목소리에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유 교수의 경향신문 인터뷰 기사도 그러한 '가벼움'을  느낄 수 있다. 그대로 옮겨본다.

도후쿠지는 유 교수가 우연히 찾은 사찰이다. 오래전 오사카에서 교토로 가는 게이한 선을 타고가다 교토역 전에 도후쿠지역이라고 적힌 표지판을 봤다. 불국사역이라는 표지판을 보면 내리고 싶잖아. 딱 내려서 걸어서 왔다며 웃었다. 문화유산에 관한 유 교수의 남다른 시각은 도후쿠지에서도 찾을 수 있다. 그가 도후쿠지에서 중요한 곳 중 하나라며 답사 무리를 이끌고 간 곳이 바로 측간, 즉 변소다. ‘일본의 중요문화재로 지정돼 있어요. 스님들이 일 볼 적에 재를 섞어 태우고, 손을 씻는 과정이 다 수행 과정이었던 겁니다. 우리는 변소가 문화재라는 생각을 못해요. 도후쿠지 다녀왔다는 사람이 많은데, 인터넷에 변소 사진 올린 걸 못 봤어요. 선암사 변소(해우소)도 얼마나 멋있어요.” 

그가 단순한 흥미로 우연히 찾아간 일본 절의 화장실을 소개하는 것은 그의 자유지만 고대 한국 관련 문화유적지도 이런 식으로 접근하면 곤란하다. 자칭 타칭 한국 최고의 미술사학자 유홍준 교수는 고대 한국이 찬란한 문화를 일본에 전수해준 것을 얕보거나 물타기해서는 안된다고 본다.  

한국미술사라고 해도 그 자신이 방송 인터뷰에서 말 한 것처럼 일본인 학자들이 써놓은 미술사로 공부했다는 고백을 곱씹는다면 일본문화유산 답사는 학자답게 신중한 태도로 학문적인 근거를 토대로 말해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차제에 섣부른 일본답사도 멈추기를 권한다. 그간 유 교수의 앞장선 한국답사문화에 대한 고정된 인식에 젖어 잘못 전해지는 일본문화와 답사에 대한 왜곡된 사실들이 어물쩍 넘어가면 안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