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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음악이 어찌 죄가 된단 말인가!

[국악속풀이 126]

[그린경제=서한범 교수]  가야국의 악사였던 우륵(于勒)은 나라가 어지러워지자 가야금을 안고 신라로 투항하게 되고 지금의 충주 지방에서 가야금을 타면서 세월을 보냈는데, 세상 사람들은 이곳을 탄금대라 부르고 있다는 이야기, 그곳에서 진흥왕과 우륵과의 만나게 되었고, 법지와 계고, 만덕에게 가야금 노래, 춤을 가르쳤다는 이야기, 제자들은 선생의 음악이 번거롭고 음탕하다고 해서 5곡으로 편 작곡을 새롭게 하였다는 이야기, 우륵 선생이 처음에는 화를 냈으나 다 듣고는 눈물을 흘리면서 낙이불류(樂而不流)애이불비(哀而不悲)라는 유명한 소감을 남겼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이렇게 감동을 준 우륵의 제자들은 그 음악을 임금 앞에서 연주를 하게 된다. 임금은 크게 기뻐하며 전에 들었던 그 음악이 그대로 신라인들의 솜씨로 재현되었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한 나머지 좌우의 신하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왕; “하하하 정말 훌륭한 음악이오, 어떻소, 나는 이 음악을 신라의 대악으로 삼으려 하는데 경들의 생각은 어떠하오?
임금의 의도와는 달리 신하들은 이구동성으로 반대의 합창을 하는 것이었다.  
신하; “아니 됩니다.”, “말도 안됩니다.”
임금; “안 된다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이오?”
신하: “네, 말씀드리지요. 가야는 망한 나라이고 가야금은 망한 나라의 음악입니다. 어찌 융성일로의 신라에서 망한 나라의 음악을 받아들인단 말씀입니까, 절대로 받아드릴 수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 신하들이 반대하는 이유입니다.  
임금; “하하하, 그렇다면 내가 하나 묻겠소? 가야가 망한 이유는 가야금이 있어서 망한 것이라 생각하오? 그렇지 않소, 가야왕이 음란하여 스스로 정치를 돌보지 않았기 때문에 망한 것이지 가야금이 있어서 망한 것이 아니란 말이오! 악하죄호(樂何罪乎), 음악이 어찌 죄가 된단 말이오!!
신하;  ????

그렇다.
신하들의 주장대로 가야국이 망한 것은 가야금이 있어서 망한 것이 아니다. 임금이 백성들을 위해 가야금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거나 또는 정치를 올바르게 펴지 않고 주색에 빠져 있었기에 국력이 약해져 망한 것이다. 1,400여  이 지난 지금까지도 가야금이라는 악기와 가야금을 다루는 사람을 구별하지 못하는 분위기는 아직도 남아 있는 듯 보인다.

   
▲ 가야금 산조를 연주하는 김남순 교수

피아노도 그렇고 바이올린도 그렇듯이 누가, 어떤 사람들을 대상으로 악기를 연주하는가 하는데 따라 같은 음악, 같은 악기라도 전혀 다르게 보이는 법이다.

시골의 먼지 쌓인 시장 한복판에서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 바이올린을 켜면서 약을 파는 사람과 예술의 전당, 또는 문화예술회관에서 수많은 청중들에게 감동을 주는 연주자와는 같은 바이올린이라 하드라도 전혀 다르게 보이는 것이다. 누가 어느 장소에서 어떤 사람들을 대상으로 연주하는가 하는 점에 따라 음악의 수준이 구별되는 것이고 따라서 악기도 존귀도 달라지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국악기 가야금의 경우는 과거 전통사회에서 기녀(妓女)들이 가까이 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현재까지도 가야금을 기녀들의 악기로 보려는 시각은 옳지 않다.

시대가 달라져 가야금 연주자들이 대학교수가 되기도 하고, 또는 공공연주단체에서 활발한 연주활동이나 창작활동을 펼치는가 하면, 대학사회에서도 석박사가 쏟아져 나올 정도로 학문적 연구도 심화되고 있는 사회분위기인 점을 모르는 사람들의 시선이다.

우륵과 진흥왕, 진흥왕과 신하들 관계에서 남다른 안목과 판단력을 지녔던 진흥왕의 존재가 곧 가야금의 오늘을 이어준 결정된 계기가 되었음을 생각해 볼 때, 한 유능한 지도자의 능력이나 판단, 그리고 결단은 역사를 바꾸고도 남는다는 점을 알게 만든다.

“악하죄호, 음악이 어찌 죄가 된다고 하는가!”
신하들의 주장을 한 마디로 일축하고 가야금을 신라의 악기로 파급시킨 진흥왕의 혜안이 이 시대에 더더욱 빛을 발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다음 주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