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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선생은 무슨 재미로 평생 산조음악을 연주해 오셨나요?”

[국악속풀이 133]

[그린경제/얼레빗 = 서한범 교수]  산조 음악은 판소리의 기악화, 또는 시나위 가락에서 유래하여 틀을 잡은 기악독주곡이라 했다. 산조를 일러 헛튼가락이니, 허드렛 가락이니, 또는 흐트러진 가락이라는 말은 적절히 못한 표현이다. 이유는 연주자의 음악세계를 개성 있게 표출해 내는 고난도의 음악을 그렇게 폄하하는 것은 당치 않기 때문이다.

필자의 주장은 이제부터라도 한자의 <산(散)>을 흩어진다는 개념보다는 음악적 전파력이 강해 이웃으로 널리 널리 퍼져나가는 <확산(擴散)>의 개념으로 보아야 한다는 점이다. 산조 음악은 느리게 -보통으로-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점에서 고려시대의 가요나 조선조의 세틀형식과 맥을 같이하는 민족 기층의 역량이 응집된 시대성을 지닌 양식이라는 생각이다.

이러한 산조가 현재에는 가야금뿐 아니라 거문고, 대금, 해금, 아쟁, 피리, 태평소 퉁소, 단소 등등 선율악기들에 의해 연주되고 있으며 19세기 말엽 김창조, 한숙구, 심창래, 박팔괘 이후, 수없이 많은 명인들이 명멸하며 가야금의 산조음악을 오늘날까지 전해 주었고 현재는 이들의 제자들이 가야금 산조 음악을 지켜나가고 있는 것이다.

   
▲ 가야금산조를 연주하는 김남순 교수

그렇다면 산조음악의 미(美)적 특징은 무엇인가?
오늘은 이 점에 관하여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명인들이 연주하는 가야금산조를 들어보면 정악 가야금연주와는 달리 줄을 자주 흔들거나 깊게 누르고, 또는 밀어 올리거나 흘려 내리는 표현법들을 쓰기 때문에 매우 적극적이며 자유분방한 음악임을 알게 한다.

속도도 그렇다. 처음에는 느리게 시작하나 곧 빨라지기 시작하여 걷잡을 수 없이 휘몰아치며 진행되는 것이다. 여기에 정악 연주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고수의 추임새도 쉴 새 없이 터져 나오기 때문에 흥취가 점점 고조되어 절정에 이른다. 대학시절 은사 이혜구 선생으로부터 들었던 이야기가 떠오른다.

1950년대 중반, 가야금의 명인 심상건(沈相健:1889~1965)과 함께 세계 민속축제에 참여하였는데, 심상건의 산조연주를 듣고 놀랜 음악학자나 전문기자들이 연주자에게 이렇게 물었다는 것이다.
“선생은 무슨 재미로 평생 이 음악을 연주해 오셨나요?”

가야금을 평생 탔어도 무슨 재미가 있어서 탔는가를 물어온 사람은 처음이어서 매우 당황하였음은 물론이다. 무슨 재미로 탔는가? 즉 무엇이 좋아서 이 음악을 놓지 않고 타 왔는가? 를 묻는 것인데 선뜻 대답이 궁했다. 잠깐의 시간이 흐른 뒤 심상건 명인은“헤헤 그저 줄 죄고 푸는 맛이라고나 할까요”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줄을 죄고 푸는 맛에서 줄을 조인다고 하는 말은 바로 긴장을 의미하는 말이다. 또한 줄을 푼다는 말은 이완을 가리키는 말이다. 즉 음악이란 음의 운동으로 때로는 우리를 긴장시키기도 하고 이완시키기도 하는 것이라고 주장한 오스트리아의 음악미학자 <한스 릭>의 이론과 동일한 내용인 것이다.
서로 만난 적도, 서로 의견을 교환한 적도 없는, 동서양의 전문가들이 음악을 바라보는 시각이 일치한다는 점에서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흔히 연극이나 영화의 장면 속에 악한 자가 선한 자를 해치는 장면이거나, 평화스러운 가정에 도둑이 잠입하여 공포심을 유발할 때의 배경음악은 우리를 충분히 긴장시키고도 남는다. 그 이유는 음의 진행이 불협화음, 즉 어울리지 않는 화음을 쓰거나 불완전한 음정으로 선율의 운동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즐겁거나 평화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는 음의 운동은 우리로 하여금 긴장을 풀고 이완의 세계로 안내하도록 음이 완전4~5도 음정이나 장음정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산조음악에서의 긴장과 이완은 선율이나 악조에서도 자주 느낄 수 있고 리듬의 진행이나 음역을 통해서도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으며 더 구체적인 표현을 위해서는 농현(弄絃)의 다양성이나, 리듬의 변화, 강약의 다이나믹스 등이 적극적이고도 자연스럽게 표출되어야 한다.

그러기에 산조음악의 이러한 표현법들이 초보자들에게는 매우 어려운 과정인 것이다. 어떻게 이러한 표현들을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의 연구와 실습이 곧 산조음악으로 통하는 접근방법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