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얼레빗 = 서한범 명예교수] 지난 주 속풀이에서는 국립국악원이 <남촌별곡>이나 <시집가는 날>과 같은 소설을 기반으로 한 창작 경서도 소리극들을 제작 공연한 시기가 1990년대 말에서 2000년도 초기인데, 이 당시 작창을 맡았던 이춘희 명창이 국악원의 공연과는 별도로 자신이 설립한《(사)경기민요보존회》의 이름으로도 <노들골에 단풍드니>와 <춘풍별곡>과 같은 작품들을 제작하기 시작하였다는 이야기를 했다.
또 그의 스승 안비취 명창의 일대기를 그린 <한오백년>과 그 이후의 <일타흥>이나 <진(眞)사랑>, <미얄할미뎐>, 2010년의 <일패기생 명월이>, 2011년의 <나는 춘향이다>와 같은 소리극들을 《한국전통민요협회》이름으로 무대에 올리며 경서도 소리극의 초창기 활동을 주도하였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이처럼 경서도 소리극의 필요성을 일찍이 깨닫고 경서도 소리극에 직접 출연하거나 또는 민요협회의 기획 공연으로 소리극을 꾸준히 제작해 온 이춘희 명창의 남다른 열정을 높게 인정한다는 이야기, 그리고 경서도 소리의 특징은 밝고 경쾌한 분위기가 대종을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소리극의 주제에 있어서도 슬픔이나 이별보다는 희망과 기쁨, 사랑과 만남을 주제로 하는 내용이 훨씬 노래성격에 어울린다는 점 등도 이야기 하였다.
이번 주 속풀이에서는 경기소리극의 한 분야로 재담을 기본으로 하는 소리극, 즉 재담극의 전통을 잇고 있는 백영춘의 활동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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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대장타령"을 하는 백영춘(오른쪽)과 최영숙 명창 |
백영춘은 재담을 극 형식으로 꾸며 2000년도부터 매해 꾸준히 각본을 만들고 작창을 하며 최영숙이나, 노학순 등과 함께 주연 배우로 활동해 온 열성 소리꾼이다. 그의 대표적인 작품은 역시 <장대장타령>이다. 해마다 이 작품을 무대에 올려왔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삼생인연>이나 <아! 도라산아>, 그리고 최근에 화제를 낳은 <아리랑>등도 백영춘의 작품들이다.
재담극이란 어떤 극인가? 말 그대로 재담을 기본으로 하며 노래와 춤, 연기로 진행되는 극이다. 그렇다면 재담이란 무엇인가? 재담(才談)이란 단순한 말재주나 말장난이 아니다. 줄거리가 있는 이야기를 익살과 해학으로 상황에 맞게 전개시켜 나가면서 멋들어진 소리와 연기로서 관객을 울리고 웃기는 민속극의 한 장르인 것이다.
백영춘이 전승하고 있는 <장대장타령은>은 재담과 경기소리를 기본으로 하는 고전 해학극의 하나로 1900년대 초기에 박춘재가 잘 불렀다고 한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서도지방의 1인 창극조인 배뱅이굿과 함께 큰 인기를 끌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시기 재담에 능했던 박춘재라는 사람은 구한말의 유명했던 경기명창이다. 1900년대 초기 당시의 노래들을 모아적은 잡가집에는 그를 가리켜 ‘조선 제일류가객(朝鮮第一流歌客) 박춘재’라는 기록이 보이고 있을 정도이다. 그는 경기소리의 대가이면서 발탈과 또한 재담의 일인자로 유명했는데, 그의 주특기 재담은 <장대장타령>과 <개넋두리><장님타령><발탈> 등이었다고 한다.
불과 100년 전만 해도 광무대ㅡ 원각사 등에서 박춘재의 의해, 또는 김홍도, 문영수 등과 함께 2~3인이 무대에 오르면 많은 관중들로부터 환호와 박수갈채를 받던 독특한 창법의 고전 해학극이었으나 이를 계승 하려는 전승자가 없어 단절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최근에 와서 백영춘 등 경기 명창들에 의해 복원이 된 작품이다.
<장대장타령>의 줄거리를 소개해 보면 서울 장안에 장대장이라는 사람이 살았는데, 워낙 성품이 호쾌하고 놀기를 좋아해서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을 몽땅 탕진하였다. 살길이 막막해 진 장대장은 친구들의 도움으로 만포(함경북도 소재)지역의 첨사(군 진영의 무관직)자리를 얻어 가는 도중, 개성 근처의 장단이란 곳에서 굿하는 무녀(巫女)를 보고 서로 반해 가까운 사이가 된다.
장대장과 무녀는 함께 만포에 가서 살다가 임기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게 되고 이 과정에서 장대장은 동거녀가 과거의 무녀였다는 사실이 알려질까 각별히 조심한다. 그러나 제 버릇을 쉽게 버릴 수 없는 법, 무녀는 병든 아들을 데리고 굿하는 곳에 갔다가 자신도 모르게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게 된 바람에 과거의 무녀임이 들통나게 되었고, 이 약점을 잡은 허봉사가 갖가지 요구를 해 온다는 다소 허황된 이야기이다.
그러나 이들의 대화가 재미있고, 유머와 재담창, 춤, 연기 등이 하나가 되어 무대를 웃음판으로 끌고 가는 과정이 예스러워 정감이 가는 작품이다. 과거 일제치하에서 웃음을 잃고 살던 대중들에겐 웃음을 제공할 수 있었던 거의 유일한 무대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다. <장대장타령> 대화에서 재치있는 대화나 유머스러운 부분을 예로 들어 본다면 다음과 같다.
<예1> “장대장의 아버지가 어디서 사느냐 하면 저 농속에서 살겠다.” “응 장 안 말이지?” “그래 장안이란 말이야” 장롱의 줄인 말이 농, 그래서 농속은 장안(長安)이 되는 것이다.
<예2> “돌아선 여자의 얼굴이 얼마나 얽었던지 얽은 구멍에 물을 한 종지 부으면 모자랄 정도였다.” 지금은 얼굴이 얽은 사람을 찾기가 어렵지만, 과거에는 흔치 않았던 모양을 재미있게 묘사하고 있다.
<예3> “시골 무당일망정 양화도 곡식이거든” “응, 수수하단 말이지 그래” 양화도는 한강 남쪽의 작은 섬으로 이곳에는 예부터 수수를 많이 재배하였다고 해서 수수를 양화도의 곡식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주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