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얼레빗 = 서한범 명예교수] <장대장타령>과 같은 고전 재담극이 현재의 세련된 개그나 코미디에 비하면 별 웃음거리가 되지 않는다고 해도 일제의 치하에서 웃음을 잃고 살던 당시의 대중들에게는 충분한 구경거리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재담극의 무대가 없어지고 관객의 발걸음이 끊어진 뒤, 다른 대중 오락물들이 생겨나면서 단절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맞은 것이다.
다행히 벽파 이창배 문하의 백영춘 사범이 제자들과 함께 박춘재의 <장대장타령>을 거의 완벽하게 복원하여 무대공연물로 재구성하였고 관련학자들도 이 공연물을 높게 인정한 것이다. 결과 서울시는 재담극을 무형문화재로 지정하고 백영춘을 보유자로 인정하기에 이른다. 민초들의 애환을 달래주던 익살과 해학의 소리극이 당당히 제도권의 보호를 받게 되었으니 앞으로의 활동이 기대되는 것이다.
국악속풀이에서는 1990년대 후반부터 일기 시작한 경서도 소리극의 활동 현황을 점검하며 앞으로의 활성화 가능성을 이야기 하고 있다. 그동안 이 면에는 국립국악원을 비롯하여 개인적으로 활동해 온 이춘희, 임정란, 백영춘 등을 소개하였다. 이번 속풀이 151에서는 김혜란 명창의 <배따라기> 이야기를 이어갈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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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혜란 명창의 소리극 <배따라기>의 한 장면 |
경기명창 김혜란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소리극 <배따라기>는 2003년 12월 초에 국립국악원 예악당 무대에 처음 선을 보였는데, 예상을 뒤엎고 대성황이었다. 무엇보다도 이 소리극의 특징은 배우들의 대화에 있어서 대사로 처리하는 부분보다는 거의 소리(창)위주로 극을 진행시켰다는 점에서 마치 서양의 오페라를 연상하게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기실 경서도 소리극에 있어서 대화를 배제하고 소리위주로 극을 진행시켜 나간다고 하는 점은 쉽지 않은 연출인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배따라기>는 소리극으로서의 성공 가능성을 충분히 인정받은 작품이었으며 예상대로 그 이후 여러 지방에서 초청공연이 이루어졌다. 특히 2005년 새해 벽두 동숭동의 문예회관에서 3일간 앵콜 공연을 가질 정도로 인기를 누렸다.
<배따라기>란 무슨 말이고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 노래일까?
18세기 말, 실학파의 영수였던 연암 박지원이 쓴 《한북행정록(漢北行程錄)》에 따르면 “우리나라 악곡에 <배타라기-排打羅其>라는 곡이 있는데, 이를 방언으로는 <선리-船離>, 즉 배 떠나가며 부르는 노래인 것이다. 그런데 그 곡조가 매우 쓸쓸하고 처량하기 그지없다”라고 적고 있다. 이를 보면 이 노래는 가족을 등지고 멀리 바다로 떠나가는 어부들의 신세 자탄가(自嘆歌)라는 점을 알게 한다. 여기서 <배타라기>는 배 떠나기이고, <배따라기>는 배 떠나기의 변화형으로 볼 수 있다.
이 노래가 널리 퍼지게 된 것은 1900년대 초기 원각사(圓覺社)시절의 명창, 박춘재(朴春載)를 비롯하여, 홍도(紅桃), 보패(寶貝)로부터 비롯된다고 전해지고 있다.
일반적인 상식이지만, 농사일을 하면서 부르는 농요나 고기잡이를 하면서 부르는 어요(漁謠)의 음악적 형식을 보면 대체로 <긴 것>과 <잦은 것>, 즉 느림과 빠름이 짝을 이루고 있는 노래들이 대부분이다. 서도민요의 하나인 <배따라기> 역시 <잦은 배따라기>와 짝을 이루고 있으며, 느리고 빠른 장단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일부 가사에 따라서는 강세나 리듬이 분할되는가 하면, 빠르기에 따라 유사형이나 변화형의 장단들이 출현하고 있어서 극적인 느낌을 받게 되는 점이 또한 특징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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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혜란 명창의 소리극 <배따라기>의 한 장면 |
<배따라기>라는 소리극을 준비한 김혜란은 어떤 명창인가? 얼마 전 <세계여성목소리 페스티벌>의 주최측에서 그를 소개하고 있는 내용을 옮기면 아래와 같다.
“한국의 한(恨)을 세계인의 가슴에 심게 될 김혜란(중요무형문화제 제57호 경기민요 보유자후보)은 5살 때부터 노래를 시작한 가수이다. 그녀는 청중을 꼼짝 못하게 사로잡는 세계적으로도 매우 드문 목소리를 지니고 있다. 한국의 토속가요를 강렬함과 우아함, 그리고 가창력과 경쾌함이 믿기지 않을 만큼 잘 조화된 호흡으로 노래하는 훌륭한 가수이다.”
그녀는 독특한 음색의 소유자로 알려져 있으며 경기소리와 함께 다양한 장단의 변화나 즉흥성이 발휘되는 가락이나 신명 등에 스스로가 빠져 버리는 서울굿의 대가로 이름이 나 있다. 김혜란은 17살 때부터 벽파 이창배의 청구 고전성악학원에서 기초를 충실히 닦았고, 그 이후로는 안비취 문하로 옮겨 경서도 소리 전반을 다듬은 이 바닥의 큰 명창으로 알려져 있고 현재 국가무형문화재 경기소리의 예능보유자 후보로 이름을 올리고 있는 경기 명창이다.
여러 창자들과 함께 동작을 맞추어 가며 단순하게 부르는 종래의 창법이나 연창방법으로는 일반 대중에게 가까이 접근하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배 띄어라><예쁜아이 착한아이>와 같은 새로운 노래곡을 CD에 담거나 <차세대 명인전>과 같은 무대를 통해 능력 있는 젊은 국악인들에게 발표의 기회를 주는 일, 그리고 <배따라기>와 같은 종래의 민요를 바탕으로 줄거리를 만들고 이야기로 꾸민 다음, 새롭게 연출하여 소리극을 제작하고 있는 것이다.
소리극 <배따라기>를 통해서 관객은 이 노래가 더 이상 어부들의 신세자탄가가 아니라, 남정네의 무사귀환(無事歸還)을 비는 아낙들의 희망이 담긴 합창으로, 그래서 삶의 활력을 느끼게 되는 새로운 노래로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