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린경제/얼레빗 = 이윤옥 기자] "키가 작고 뚱뚱한 대머리 일본군 장교가 딱 버티고 서서 나를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히죽거리기까지 했지요. 저항하려 했지만 그는 강압적으로 나를 끌고 침대로 갔습니다. 나는 말했죠. '절대 이런 짓을 할 수 없어요.' 그러자 그가 '순순히 말을 듣지 않으면 죽여주마. 정말 죽이겠어!'라고 했습니다.
- 그러더니 칼을 뽑았습니다. 나는 무릎을 꿇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느님을 아주 가까이에서 느꼈습니다. 나는 죽는 것이 두렵지 않았습니다. 그는 나를 침대에 집어던지고는 내 옷을 모두 찢어버리고 잔인하게 강간했습니다.
- 정말 너무나 끔찍한 일이었어요. 나는 고통이 그렇게 심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가 방을 나갔고 나는 충격에 빠졌습니다. 욕실에 가서 다 씻어버리고 싶었습니다. 그 부끄러움과 모든 더러운 것을. 그저 다 씻어버리고 싶었을 뿐입니다.
- 그 공포를 절대 잊지 못할 겁니다. 마치 전류처럼 몸속을 파고 흘러들거든요. 공포는 결코 나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평생 동안 나와 함께 있었죠. 나는 밤이면 그 공포를 여기 내 응접실에 앉아서도 느낄 수 있습니다. 창밖을 바라보다가 날이 어둑해질 때쯤이면 소름이 끼쳐요. 어두워진다는 것은 내가 다시 거듭해서 강간을 당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지요. 아시겠어요? 그 공포는 절대 나를 떠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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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얀 루프 오헤른 할머니의 영어판 '오십년만의 침묵' 일본어 번역 책 표지에는 젊고 아리따운 모습의 오헤른 할머니 모습이 인상적이다. - 위는 신동아 2007년 5월호에 재호주 윤필립 시인이 쓴 글의 일부다. 윤 시인은 당시 호주 국영 abc-TV 다큐멘터리 ‘Australian Story’에서 이를 인용했다고 했다. 이 다큐멘터리는 호주인 들의 눈물을 자아내게 했는데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호주 국적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얀 루프 오헤른(현 91살, 당시 84살) 할머니의 회상을 기록한 것이다.
- 19살이던 해맑은 처녀 오헤른은 아버지를 따라 인도네시아에서 살면서 수녀가 될 꿈을 꾸고 있었다. 그러나 1942년 일본군이 자바섬에 진주하면서 끔찍한 일본군 성노예로 씻을 수 없는 쓰라린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이른바 스마랑 사건(아래참조)이라 불리는 일본군 위안부로 고통의 나날을 보내야 했던 오헤른 할머니는 일본이 패망한 뒤 호주에 정착, 포로 캠프에서 만난 남편, 두 딸과 함께 살다가 10여 년 전 남편을 여의고 지금은 애들레이드에서 혼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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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얀 루프 오헤른 할머니 - 오헤른 할머니는 1992년 보스니아 전쟁으로 여성들이 겁탈당하고 있다는 소식과 한국 위안부 출신 할머니들이 일본 정부의 보상과 사과를 요구하는 TV 뉴스를 보면서 두 딸에게 50년 동안 감춰왔던 자신의 과거를 적은 장문의 편지를 썼다. 편지를 받아든 두 딸 캐럴 러프와 아일린 미턴은 일본군이 어머니에게 했던 행위에 치를 떨었으며 심한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 이후 오헤른 할머니의 이야기는 ‘50년간의 침묵’이라는 책으로 발간됐으며 TV 다큐멘터리로 제작돼 호주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오헤른 할머니는 한국의 위안부 할머니들을 여러 번 만나 서로의 고통을 나눈 바 있다.
- 올해 8월 15일 광복절에는 호주에서 한․중 커뮤니티가 추진 중인 일본군 위안부 소녀상 건립을 추진 중에 있으며 오헤른 할머니도 동참 의사를 밝혔고 청원서에 서명한 상태다. 위안부 소녀상은 한국의 소녀상, 중국의 소녀상 그리고 호주인 오헤른 할머니를 모델로 한 동상이 인구 500만의 호주 시드니에 들어 설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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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소녀상
- 시드니 한인회에 따르면 애들레이드에 거주하는 네덜란드계 호주인 얀 루프 오헤른(91) 할머니는 최근 송석준 한인회장과 옥상두 스트라스필드시 부시장 등과 만난 자리에서 호주 내 위안부 소녀상 건립 운동에 적극 동참하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전했다.
- 또한 황명하 광복회 호주지회장은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오헤른 할머니는 최근 아베총리를 비롯한 우익인사들이 아시아 침략에 대한 반성은 커녕 위안부는 '전시(戰時)' 어느 곳에나 있었다는 등의 잇따른 망언과 야스쿠니 신사 참배 등의 후안무치한 행동을 지켜보면서 '가증스런 일'이라고 일침을 가했다"고 전했다.
- *일본군의 ‘스마랑 강간사건’이란?
- 스마랑 강간사건은 일본군이 점령 중이던 인도네시아 자바섬 스마랑(Semarang)에서 벌어진 일본군 군인의 네덜란드 여성 강제연행·감금·강간 사건을 말한다. 스마랑 사건은 일본군의 위안부 강제연행은 없었다고 주장하는 일본내 `고노담화 수정파'들 조차도 부인하기 힘든 강제연행의 한 증거로 받아들이고 있다.
- 이 사건은 1944년 2월 일본군 남방군 관할의 제16군 간부후보생 부대가 민간인 억류소 3곳에서 네덜란드인 여성 35명을 강제 연행한 뒤 스마랑에 있던 위안소에 감금하고 강제로 매춘을 시키고 강간한 사건이다
- 일본군 위안부문제 연구자인 일본 중앙대학 교수인 요시미 요시아키(吉見義明) 씨에 따르면 당시 스마랑에는 이미 위안소가 있었지만 성병이 만연하자 일본군은 새로운 위안소를 설치할 계획을 세웠고, 장교 여러명과 위안소 업자가 여러 억류소에서 17~28세의 네덜란드인 여성 35명을 연행한 뒤 스마랑 시내의 건물에서 일본어로 적힌 취지서에 강제로 서명하게 하고 스마랑에 있는 위안소 4곳으로 연행했다.
- 여성들은 1944년 3월1일부터 매일 강간당했다. 급료는 받지 못했고, 폭행을 당하거나 성병에 걸리거나 임신한 여성도 있었다. 일본군 사령부는 이 사실을 알고도 당사자를 처벌하지 않았다. 요시미 교수는 해당 책임자가 오히려 출세했다고 증언했다.
- 종전 뒤 1948년 바타비아 군법회의에서 11명이 유죄 선고됐다. 책임자인 오카다 게이지(岡田慶治) 육군 소좌에게는 사형이 선고됐다. 재판에서는 35명 중 25명이 강제연행됐다고 인정됐다. 이 사건은 아사히신문이 1992년 네덜란드 국립공문서관에서 사건 관련 판결문과 법정심문서를 입수해 보도하며 세상에 알려졌다.
- 네덜란드 정부는 고노 담화가 발표된 이듬해인 1994년 1월 일본군이 인도네시아 곳곳에서 자행한 네덜란드 여성들을 위안부로 강제 연행한 약 8건의 사건들을 조사하여 보고서를 발표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