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얼레빗 = 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 속풀이에서는 김혜란 명창의 <배따라기>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다. 무엇보다도 이 소리극은 대사보다는 거의 소리(창)위주로 극을 진행시켜 마치 서양의 오페라를 연상하게 만들었다는 이야기, <배따라기>란 말은 방언으로는 <선리-船離>, 즉 배 떠나가며 부르는 노래라는 의미인데, 그 곡조가 매우 쓸쓸하고 처량하여 바다로 떠나가는 어부들의 신세 자탄가(自嘆歌)와 같은 노래였다는 이야기, 이 소리극을 제작한 김혜란은 이창배, 안비취 문하에서 경서도 소리 전반을 공부한 명창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또 외국의 유명한 페스티벌 주최측에서“그녀는 청중을 꼼짝 못하게 사로잡는 세계적으로도 매우 드문 목소리를 지니고 있으며 한국의 토속가요를 강렬함과 우아함, 그리고 가창력과 경쾌함이 조화된 훌륭한 가수”라고 평가했다는 이야기, 그녀의 소리극 <배따라기>를 통해 관객은 이 노래가 더 이상 어부들의 신세자탄가가 아닌, 무사귀환(無事歸還)을 비는 아낙들의 희망이 담긴 합창곡이며 삶의 활력을 느끼게 되는 새로운 노래라는 점 등을 이야기 하였다.
이번 주 속풀이 <152>에서는 현재 서울시 송서·율창의 예능보유자로 활동하고 있는 유창 씨의 소리극과 관련한 이야기를 해 보도록 하겠다.
그는 2000년도부터 자신이 직접 <장대장타령>이나 <이춘풍전>에 주인공으로 출연한 경험이 있는 소리꾼이다. 여러차례 무대에 섰던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이 직접 소리극을 제작하기 시작하였는데, 그 대표적인 작품들이 바로 <봉이 김선달>, <능소전>, <맹인굿과 춘양전>, <한강수야>와 같은 작품들이다.
유창 역시 이춘희나 임정란, 백영춘, 김혜란 등과 같이 경서도 소리의 저변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명작(名作) 소리극으로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고 주장해 온 소리꾼 중의 한 사람이다. 그러나 경서도 민요의 전통적인 공연양식은 남도의 판소리와는 전혀 다른 형태이어서 이야기를 이끌고 가면서 출연자들이 서로 대화를 나누는 형태의 전통적인 공연물은 찾아보기 어렵다.
서도의 1인 창극인 배뱅이굿이나 경기지방의 장대장타령과 같은 재담소리 등이 있을 뿐이다. 그 이외 대부분의 경기소리들은 12잡가처럼 느짓한 노래를 혼자, 또는 여럿이 부르는 좌창(坐唱)의 형태나, 산타령과 같은 선소리 형태, 그리고 민요와 같은 짧은 노래를 연이어 부르는 연창의 형태가 대부분인 것이다.
이러한 연창형태로는 다양한 형태의 변화를 갈망하는 많은 애호가들을 만족시키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사정이 이러하기 때문에 경서도 전문 소리꾼들의 고민이 깊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 그의 소리극 <한강수야> 팜플렛에 나는 다음과 같은 느낌을 담았었다.
“<유창>씨를 대할 때마다 그는 육탄(肉彈)으로 정상을 정복하기 위해 돌진하고 있는 무모하리만큼 겁 없는 병사라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딱히 믿을만한 후원자나 지원단체도 없으면서 동료들을 설득해 가며 힘겹게 소리극을 무대에 올리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그의 모습에서 더욱 진하게 각인되고 있는 것이다. 어찌 보면 생존을 위한 처절한 투쟁처럼 보이기도 하고, 또 어찌 보면 무풍지대(無風地帶)에 안주하지 않고 스스로 삶의 길을 헤쳐 나가려는 용감한 개척자 같게도 보인다.
그가 준비하고 있는 작품들이 비록 소리극으로서의 종합적인 설득력을 견지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괜찮다. 축적된 경험이나 인적자원이 부족한 현 상황에서 하루아침에 국, 공립 단체와 비교되는 공연물을 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도 세종문화회관에 올려질 서울시민과 함께하는 명창 유창의 경기소리 한마당, <한강수야>는 소리, 춤, 극이 어우러진 음악극으로 전통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문화콘텐츠의 개발에 기여할 것이며, 많은 이야기거리를 남길 것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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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리극 <춘풍별곡> 한 장면 |
전문 소리꾼이나 애호가 층이 엷고, 또한 경서도창의 이해가 성숙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극적인 소재를 발굴하여 창(唱)과 대사, 동작으로 어우러지는 소리극의 무대를 만든다는 일은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닐진대, 과감하게 소리극 운동을 전개해 온 유창은 어떤 소리꾼인가?
그는 박태여 사범으로부터 경서도 소리를 배우기 시작하였고, 이어서 황용주 사범에게 산타령을 익혔으며 묵계월 문하에 들어가서 송서 삼설기 및 경기의 12좌창을 배운 다음, 2001년도에 문화재청으로부터 57호 경기민요의 전수조교로 선정되었다. 이 무렵부터 10여편의 소리극에 주연을 맡아 출연을 하기 시작하였으며 제작에도 앞장서 왔다. 2009년도에는 경기민요의 전수조교를 사임하고 송서 율창으로 서울시 문화재의 예능보유자로 인정되어 이 분야의 보급과 전승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스승 묵계월 명창은 “유창은 타고난 재능과 뛰어난 가창력, 그리고 우수한 연기력을 복합적으로 지니고 있어요. 그는 저, 고음을 넘나들며 경기소리의 맛을 살려내는 시원스런 창법을 구사하여 듣는 이로 하여금 경기소리의 매력으로 빠져들게 하지요. 제 뒤를 이어가기에 조금도 손색이 없는 유능한 소리꾼이지요”라고 힘주어 말한바 있다. 경기 소리극 초창기에 경기소리의 확대 발전을 위해 남다른 열정을 보여 주었던 유 명창은 현재, 또 다른 세계, 즉 송서 율창의 보급과 발전을 위한 소리극 제작을 꿈꾸고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