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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변호사의 세상바라기

소나무 아래서 차를 달이며, 강항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6]

[그린경제/얼레빗 = 양승국 변호사] 

솔 그늘 아래서 솔방울로 차 달이며
솔뿌리에 걸터앉아 솔바람 소리 듣노라
솔바람 소리가 본래 솔가지에서 나더니
홀연 선생의 돌솥 속으로 들어가네
 

강항(1567~1618)의 문집인 수은집 1권에 나오는 <소나무 아래서 차를 달이며(松下煎茶)>란 시입니다. 강항은 찻물 끓는 소리를 솔바람에 비유했네요. 솔바람 소리가 홀연 차가 끓고 있는 돌솥 속으로 들어간다는 표현이 재미납니다. 저야 한시를 잘 모르니까 더 이상 시 감상을 적을 수는 없고, 강항이 겪은 인생 역정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미 많은 분들이 알고 있듯이 강항은 포로로 일본에 끌려갔다가 돌아온 유학자이지요. 

   
▲ 강항의 ≪간양록(看羊錄)≫, 정유재란 때 일본군에 포로가 되었던 강항(姜沆)의 기록을 모은 책 표지(왼쪽)와 내용

강희맹의 5대손인 강항은 임진왜란 발발 다음해인 1593년 별시 문과에 급제합니다. 전란 중에도 인재는 필요한 것이니 과거는 봤군요. 형조좌랑이던 강항이 1597년 휴가를 얻어 고향 영광에 내려갔을 때 정유재란이 일어납니다.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강항은 참판 이광정 밑에 배속되어 남원 일대에서 군량 운반을 관리하였습니다. 그러나 남원성이 함락되면서 강항은 고향으로 돌아와 의병을 일으키지만 결국 영광도 함락됩니다. 

이제 어떻게 합니까? 강항은 가족들과 함께 살길을 찾아 배를 타고 이순신 장군에게 가려고 하지요. 그러나 짙은 안개에 왜군에 사로잡혀 일본으로 끌려갑니다. 왜군에게 사로잡힐 때, 또 현해탄을 건널 때에 강항의 식솔들은 많이 죽습니다. 왜놈들은 강항의 여덟 살 난 조카가 병이 나자 조카를 바다에 던져 버리기도 합니다. 왜군에게 잡힐 때에 강항은 어린 자식들을 잃는데, 이때의 심정을 간양록(看羊錄)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어린 놈 용이와 첩의 딸 애생의 죽음은 너무 애달프다. 모래사장에 밀려 물결따라 까막까막 하다가 그대로 바다 깊숙이 떠내려가 버리고 말았다. ‘엄마야, 엄마야!’ 부르던 소리 아직도 귓가에 아련하다.” 

일본에서 강항은 승려 후지와라 세이카에게 성리학을 가르치는 등 일본 성리학의 출발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후지와라 세이카는 강항으로부터 성리학을 배우고 환속하여 일본 성리학의 선구자가 됩니다. 일본 유학계가 퇴계 이황을 존경하고 있는 것도 강항을 통해 퇴계를 배웠기 때문입니다. 강항은 일본에 성리학을 가르쳤지만 마음은 항상 고국에 가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한번은 탈출을 시도하다 붙잡히기도 합니다. 

   
▲ 전남 영광 내산서원에 있는 강항 영정

강항의 고향을 그리는 마음에 감복하였는지 후지와라 세이카는 강항이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여러 가지로 도와줍니다. 그리하여 강항은 1600519일 일행 38명과 함께 부산에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전쟁 중에 수많은 사람들이 일본에 끌려갔지만 강항처럼 돌아올 수 있었던 사람은 얼마 되지 않습니다. 

일본에서 돌아온 강항은 간양록을 씁니다. 원래 강항은 자신은 왜적에 사로잡혀 갔다가 죽지 못하고 돌아온 죄인으로 자처하여 선조가 주는 벼슬도 받지 않았기에 책 제목도 죄인을 태우는 수레(巾車) 이름을 따 건거록(巾車錄)’이라고 하였는데, 강항이 세상을 떠난 뒤에 제자들이 책을 펴내면서 간양록이라고 제목을 바꾼 것이지요. 

간양(看羊)이란 양을 돌본다는 것인데, 한나라 무제 때 흉노에 사신으로 갔다가 억류되어 19년 동안 양을 돌보는 노역을 하다가 돌아온 소무(蘇武)의 충절에 강항을 빗대어 간양록이라고 제목을 바꾼 것이지요. 저는 보지 못했지만 이러한 강항의 이야기는 1980년대에 텔레비전 사극 <간양록>으로 방영이 되었답니다. 

   
▲ ≪명가필보≫에 있는 강항의 필적

이 때 <간양록>의 주제가를 신봉승 선생이 작사하고 가수 조용필이 곡을 붙여 불러 히트를 쳤습니다. 저도 조용필이 부른 간양록은 기억합니다. 

이국 땅 삼경이면 밤마다 찬 서리고 어버이 한숨 쉬는 새벽달일세
마음은 바람 따라 고향으로 가는데 선영 뒷산에 잡초는 누가 뜯으리
피눈물로 한 줄 한 줄 간양록을 적으니 임 그린 뜻 바다 되어 하늘에 닿을세라
 

가사도 절절하지요? 조용필의 노래도 피를 토하는 듯합니다. 그런데 이 시는 간양록에 나오기는 하지만 강항의 시는 아니라고 합니다. 강항처럼 포로로 일본에 끌려온 이엽이 탈출하다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이엽이 쓴 시를 강항이 간양록에 기록한 것이라네요.  

강항의 이런 인생역정에 따라 강항의 고향인 영광군과 강항이 포로 생활을 했던 일본 오즈시는 2001년부터 자매결연 하고 교류하고 있다고 하고, 오즈시 중심가에는 홍유 강항 현창비(鴻儒姜沆顯彰碑)가 서있답니다. 현창비 옆의 안내문에는 일본 주자학의 아버지, 유학자 강항이라고 되어 있다고 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