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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변호사의 세상바라기

공양왕릉이 자리 잡은 산은 역적산?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15]

[그린경제/얼레빗 = 양승국 변호사]  이성계 일파가 조선을 건국하였을 때, 전 왕조의 임금을 그대로 두면 아무래도 뭔가 목에 걸린 듯 불편하겠지요? 그래서 그들은 후환을 없애고자 공양왕을 살해하였다고 합니다. 공양왕뿐만 아니라 고려 왕족들을 거제도로 데려간다며 배에 태워 가다가, 일부러 배에 구멍을 내어 고려 왕족들을 통째로 수장시켰다고도 하지요. 이걸로도 모자라 왕씨들을 강화도와 거제도로 몰아넣고 더 죽이려고 하자, ()씨들이 성을 전(), ()씨 등으로 바꾸고 산속으로 숨어들어 목숨을 부지했다는 얘기도 있더군요. 

그리고 조선 건국에 협조를 거부하고 경기도 개풍군 광덕면 소재 광덕산 서쪽 골짜기의 두문동으로 들어간 고려 유신 72명이 - 정확하게 72명은 아니었을 텐데, 공자의 72 제자에 맞추어 72명으로 한 듯 - 계속 회유해도 나오지 않자 불을 질러 죽었다고 하지요. 일부러 죽이려고 한 것은 아니고, 불을 지르면 살려고 나올 줄 알았는데, 아무도 안 나오고 죽음을 택했답니다.  

그래서 여기서 두문불출(杜門不出)이란 말이 생겼다고 하지요. 글쎄요, 죽일 생각이 없었다면 이들이 나오지 않을 때 얼른 불을 꺼야 할 텐데, 그대로 불과 연기에 죽게 놔두었다면 미필적이나마 죽일 생각도 있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공양왕을 이렇게 홀대하고 살해한 조선이 공민왕에 대해서는 종묘에 공민왕의 신당을 두고 있습니다. 공민왕이 신진 사대부와 이성계를 비롯한 신진 무장들을 중용하였기 때문에 그런가요? 전설에 의하면 종묘를 만들 때 공민왕의 영정이 바람에 실려 마당으로 떨어져 조정에서 회의 끝에 그 영정을 봉안키로 하여 신당을 건립하였다고 하더군요. 그렇지만 공민왕도 조선 건국 때까지 살아 있었다면 아마 죽이지 않았을까요? 

   
▲ 동묘에 있는 공양왕 신당

, 그리고 공양왕릉이 자리 잡은 현달산(見達山)은 일명 역적산이라고 한다네요. 역적산? 아니 현달산이 무슨 역적질을 했나? 혹시 공양왕이 여기에 있다는 것을 일러바친 것이 아닐까? ^^ 여기에는 중국과 관련된 전설이 있네요. 옛날에 중국의 천자가 - 누군지는 안 나옵니다 - 어느 날 세수를 하려고 세수 대야를 들여다보는데, 세수 대야의 물에 어떤 산이 비치고, 그 산에 감이 세 개 달린 감나무가 있더랍니다. 그래서 천자는 신하에게 그 감나무가 있는 산이 어느 산인지 찾아보라고 했답니다. 그런데 신하들이 중국을 샅샅이 뒤졌으나 찾지 못하고, 그래서 혹시나 하고 우리나라에 왔다가 마침내 천자가 말한 그 산, 현달산을 찾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국의 천자가 찾은 산이라 그런가요? 현달산 근처의 다른 산들은 모두 서울을 향하고 있는데, 오직 현달산만이 천자가 있는 중국 쪽을 향하고 있더라나요? 그래서 현달산을 역적산이라고 한다는군요 

   
▲ 1872년 지방지도(고양군)의 현달산 일대(한국지명유래집에서)

어떻게 하여 현달산에 이런 전설이 생겼을까? 뭔가 사연이 있을 듯한데, 더 이상 자세한 이야기는 안 나오지만, 재미는 있군요. 그런데 현달산은 또 다른 이야기를 품고 있습니다. 공양왕릉에서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간 곳에는 세종대왕과 혜빈 양씨 사이에서 태어난 수춘군 부부의 묘가 있습니다. 수춘군은 병약하여 25살의 나이로 죽었는데, 수춘군이 죽은 후 그의 부인인 군부인 연일 정씨는 출가하여 비구니가 됩니다. 

그리고 숭인동에 있는 정업원에서 일생을 보냅니다. 정업원은 궁중의 여인들이 출가하여 서로 의지하면서 살던 곳인데, 정업원에서 제일 유명한 인물은 단종비 정순왕후일 것입니다. 단종이 영월로 유배되어 사사된 후 정순왕후도 정업원에서 기거하는데, 연일 정씨는 단종비 정순왕후와 함께 정업원에서 일생을 같이 보낸 것입니다. 

사실 연일정씨가 비구니가 된 것은 수춘군의 어머니 혜빈 양씨 때문일 것 같습니다. 혜빈 양씨는 무덤을 찾을 수 없어 이곳 수춘군 묘소 아래에 단()만 모셔져 있습니다. 무덤은 없고 단만 있다? 수춘군 이외에도 한남군과 영풍군을 낳은 세종대왕의 후궁이 무덤이 없다는 것이 이상하지 않습니까? 여기에는 또 슬픈 사연이 있습니다.  

단종의 어머니 현덕왕후가 단종을 낳고 하루 만에 죽자, 혜빈 양씨가 단종을 키우지요. 그러니까 할머니가 키운 것이네요. 이렇게 자신이 직접 아들처럼 키운 단종이 수양대군에 의해 왕위를 빼앗겼으니, 혜빈 양씨의 심정이 어떻겠습니까? 

혜빈 양씨는 수양대군이 계유정난으로 정권을 잡은 후에도 단종을 지키려다가 청풍으로 유배되고 얼마 후 죽임을 당합니다. 그렇게 죽임을 당했으니 주검인들 제대로 보존되었겠습니까? 그 후 혜빈 양씨가 복권된 후 양씨의 무덤을 찾으려고 하였으나, 결국 찾지 못하고 이렇게 아들 무덤 앞에 단만 있는 신세가 된 것이지요.  

이런 사연이 있으니 저는 당연히 수춘군의 무덤과 혜빈 양씨의 단을 찾아보려고 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공양왕릉에서 100m만 더 들어가면 있다고 하는데, 아무리 찾아보아도 찾지 못하겠습니다. 이런! 이정표를 친절하게 세워주면 어디가 덧나나? 

몇 번을 찾아보다가 다음 가야 할 곳이 있어 더 이상 찾는 것을 포기하고 돌아 나와야 했습니다. 그런데 나오는 길에 사당이 하나 있습니다. “그래! 아무리 바빠도 무슨 사당인지는 보고 가자. 내가 언제 또 여길 와보겠냐!” 이런 생각으로 차에서 내려 얼른 사당 앞으로 갔습니다. 효령대군의 손자인 율원군의 사당 충의재이더군요.  

이시애의 난이 일어났을 때 율원군도 출정하여 난을 토벌하는데 큰 공을 세워 적개공신 3등에 책봉되었다는군요. 이런 공이 있기에 신주를 영구히 사당에서 제사지내게 하는 불천위(不遷位)의 특전을 받아 그 후손들이 이곳에 사당을 세운 것이었지요. 율원군의 무덤도 사당 건너편 산자락에 있다고 하는데, 시간이 없어 그냥 사당만 보고 출발했습니다. 

처음엔 공양왕릉만 보러 왔던 것인데, 이렇게 수춘군과 혜빈 양씨 이야기 그리고 율원군의 이야기까지 덤으로 얻어갑니다. 고양시가 바로 서울 북쪽에 있어서인지 재미있는 역사 이야기가 많이 있네요. 이제 또 다른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는 월산대군의 묘를 만나러 갑니다.  

(편집자 덧붙임)

경기도 고양시의 일산동구 문봉동에 있는 산이다(산 높이139m).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군의 서쪽 10리 지점에 있으며, 고려 공양왕릉(恭讓王陵)이 자리하고 있다."는 기록이 있다. 해동지도, 광여도, 여지도등에는 현달산의 동쪽으로 공양왕릉이 표기되어 있으며, 팔도군현지도에서는 벽제역의 서남쪽에 현달산을 표기하였다. 이 산의 이름은 현달산(見達山)으로 쓰고, 부르기는 현달산으로 하기로 고양시 지명위원회에서 정하였다한국지명유래집중부편, (2008.12, 국토지리정보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