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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민족

[백년편지]이봉창의사! ‘당신의 의거는 성공이었습니다.’ -최희주-

[그린경제/얼레빗 = 이윤옥 기자] 
 

100년 편지에 대하여.....

100년 편지는 대한민국임시정부 100년(2019년)을 맞아 쓰는 편지입니다. 내가 안중근의사에게 편지를 쓰거나 내가 김구가 되어 편지를 쓸 수 있습니다. 100년이라는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역사와 상상이 조우하고 회동하는 100년 편지는 편지이자 편지로 쓰는 칼럼입니다. 100년 편지는 2010년 4월 13일에 시작해서 2019년 4월 13일까지 계속됩니다. 독자 여러분도 100년 편지에 동참해보시지 않겠습니까? 앞으로 매주 화요일 100년 편지를 소개합니다. -편집자-

 문의: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02-3210-0411

일제강점기 시기의 독립운동에 관심이 많아 관련 사적지들을 답사하는 것을 좋아하는 직장인입니다.

보통 사적지 답사는 국내 또는 중국을 많이 갔지만 올해에는 일본에 가볼 생각을 하고 계획을 하던 중 이봉창의사 순국지라는 한 장!!  우연히 본 사진 한 장이 나를 이봉창이라는 사람에 대해 주목하게 만들었습니다. 아쉽게 실패한 의거로만 알고 있던 사건이 관심을 가지고 볼수록 아주 중요한 사건임을 알게 되었고, 4월과 6월 2차에 걸쳐 도쿄에 가서 당신의 행적을 찾아보고 독립운동과 관련된 장소 몇몇 곳을 찾아보고 왔습니다.

답사는 당신이 일왕에게 폭탄을 투척하던 날의 동선을 나름대로 찾아가보고 최종적으로 폭탄 투척을 한 장소와 마지막으로 그가 순국했던 장소를 찾아가보는 것에 주안점을 두고 당신의 마음을 느껴보려 애썼습니다.


   
▲ 이봉창 의사

제가 첫 목적지로 정한 곳은 바로 우에노역이었습니다. 당신이 1931년 12월 13일 상해에서 출발해 도쿄에 도착해 처음으로 숙박을 했던 곳이 바로 그곳입니다. 추운겨울 상해에서 일왕 폭살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폭탄 2개를 숨겨 온 당신, 일본으로 향할 때 짐 검사를 하면서 ‘얼마나 떨리고 두려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에노에서 의거를 도모하며 몇 일 있는데, 일왕이 1월 8일 요요기연병장에서 거행되는 육군시관병식 행사에 참석한다는 내용의 기사를 보고 ‘기회가 왔다’며 기뻐했을 당신의 얼굴표정이 눈에 선합니다. 관병식장 참관일정이 정해지자 지도를 펴고 일왕이 이동할 예상루트를 짜고 거사 예상 지역들을 바쁘게 돌아다닌 것을 알고 있습니다.  답사를 위해 요요기 연병장근처로 택시를 타고 가던 중 택시운전기사가 '탑승객중 헌병대장이 있었는데 관병식 구경을 오려면 오라고 그의 명함을 주었다‘고 말을 하며, 당일 본인이 그곳에 가질 못하니 그 명함을 주며 관심이 있으면 가보라는 말에 이건 정말 하늘에서 거사를 돕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을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행사전날 그는 큰 행사가 있기 전 순찰이 강화될 것을 미리 예상해 동경시내에서 좀 떨어진 가와자키에서 숙박을 하는 모습을 보고는 정말 당신의 주도면밀함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1월8일 아침 숙소에서 나와 8시 50분쯤 시나가와 역에서 요요기연병장 입구쪽으로 이동을 했으나 경비가 삼엄하다는 것을 느끼고 국철을 타고 일왕행렬이 지나갈 것 같은 요쓰야미츠케로 이동하고 그후에 그곳이 아닌 아카사카미츠케로 지나간다는 소릴 듣고 폭탄을 양쪽 주머니에 하나씩 넣어 아카사카미츠케에까지 달려 10시경에 도착할때까지의 일정을 그대로 따라가봤습니다.

이봉창의사 거사일 예상이동루트 추정

사실 책으로 이 내용을 봤을때는 단순히 '이곳저곳을 바쁘게 돌아다녔겠구나!' 라는 생각만 들었는데, 이곳들을 직접 전철을 타고 이동하고 요쓰야미츠케에서 아카사카미츠케로 걸어보니 사실 십여분을 걸어야 할 거리였고 현장에 와보니 당신이 이곳들을 거사예상지로 선정했던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이동했던 길들이 좁은 길들이 아니라 모두 대로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큰 도로의 경우에는 과거나 현재나 기존에 있던 길을 넓히는 경우가 많기에 현재의 길들을 보며 그때 당시를 상상하기엔 충분했습니다. 선선한 날씨임에도 이곳저곳에 땀이 송글송글 맺히고, 짧은 시간에 이처럼 많은 곳들을 이동하며 따라가보니 당신이 ‘얼마나 정신없이 다녔을까?’ 하는 생각만 들었습니다. 저 또한 짧은 답사일정에서 당신의 행적을 따라가다보니 당신의 급박한 마음이 조금이나마 이해가 된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일왕행렬은 이미 이곳을 통과해 요요기 연병장으로 향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돌아오는 길에 거사를 하기 위해 근처식당에서 음식을 먹으며 대기를 하다 식당을 나오는데 일왕행렬이 그곳을 통과하고 길모퉁이를 돌아가는 모습이 보고 정신이 번쩍들었을 것 같았습니다. 저라면 '오늘 거사는 틀렸구나! 다음을 기약해야지'라고 생각했을 법도 한데, 주위사람에게 물어 지름길로 택시를 잡아타고 가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죽기를 각오하고 기회는 이번 한번 뿐이다!’ 하는 마음으로 갔던 당신의 모습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했습니다. 택시를 타고 경시청쪽으로 가던 중 정복순경에게 저지를 당했지만 당황하지 않고 택시에서 내려 이전에 받은 헌병대장 명함을 보여주며 가까스로 달려왔던 그곳 경시청 정문 앞까지 저는 당신과 함께 왔습니다. 경시청앞 경비를 서고 있는 순경을 보니 당신이 그때 만났던 그 정복순경이 생각나 가슴이 뛰기 시작했습니다. 멀찍이에서 사진을 찍으면서 제지하지는 않을까? 염려가 되어 멀찍이서 사진을 찍었던 제모습 지금 생각해보니 당신에 비하면 정말 소심했던 제 모습에 얼굴이 뜨거워집니다.

그리고 당신은 이곳에 도착해 숨을 고를 시간도 없이 그곳을 지나가는 일왕행렬의 마차를 첫번째 마차는 보내고 두번째 마차에 폭탄을 던지셨지요. 엄청난 소리가 울려 퍼지고, 그 곳은 아수라장이 되었지만 소리만큼 폭탄의 위력이 세지는 않은 것을 보고 거사가 실패했음을 직감했을 겁니다. 즉시 순경들은 범인을 색출하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고 당신 앞에 있는 일반인을 연행하려하자 당신은 자신이 범인이라며 거칠게 대하지 말라는 말과 함께 순경들에게 붙잡혀갔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목표했던 일왕 폭살 의거는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제가 이 답사를 준비하기 전까지 제가 아는 이봉창 의사 의거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까지였습니다. 그랬기에 당신의 의거는 실패한 의거로 기억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사건은 일본에 대단한 충격이었고 그 여파 또한 대단했었습니다, 당시 일본인들은 경시청 앞에서의 폭탄테러를 그 당시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고, 그것도 다름 아닌 일왕에 대한 테러는 일본인들로는 정말 경악스러운 일로 여겨졌습니다. 이 일로 인해 일본 핵심 내각은 사퇴를 하였으며, 경시청장 부터 고위직은 다 옷을 벗었습니다. 또한 일왕 테러에 대한 소식은 전세계에 타전되었으며, 만주사변 이후 일본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았던 중국에서는 기사를 통해 '폭탄이 일왕에게 적중하지 않았다' 또는 '일왕에 대한 테러가 불행히도 실패했다'는 등 제목의 기사를 쓰며 중국내의 항일운동을 불붙이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문제로 일본인들은 폭동을 일으키게 되고 이를 계기로 상해사변이 발발하게 되었고 일본군의 승리로 끝이 났습니다. 하지만 상해 사변의 승리를 축하하고 일왕의 생일을 기념하는 4.29일 천장절 행사 때 윤봉길 의사가 또 한번의 폭탄을 던졌습니다. (윤봉길의사가 던진 폭탄은 이봉창의사의 실패를 거울삼아 강력한 폭탄을 만들기 위해 수많은 테스트를 했다고 함)

결국 윤봉길 의사 의거가 성공하게 만든 밑거름에는 당신의 의거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를 통해 쓰러져가던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존재가 확고해졌고 다양한 곳의 지원이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이봉창의사가 수감되어 있던 토요타마 형무소(현재는 입구만 보존되어 있음)

이후 당신은 경시청에서 조사를 받고 토요타마 형무소로 옮겨셔서 심문을 받고 이후 이치가야 형무소에서 생을 마감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현재 그가 생을 마감했던 이치가야 형무소는 허물어지고 없고, 당시 사형장이 있었던 곳에 그곳에서 죽은 이들을 위로하기 위한 위령비만이 아이들 놀이터 한귀퉁이에 덩그러니 놓여있는데. 이곳에 서니 당신의 의거전 폭탄을 들고 있던 사진이 눈앞에 겹쳐집니다.

 

이봉창의사 순국지(옛 이치가야형무소 사형장자리)

당신이 동경에서 그리 숨가쁘게 다녔던 그 장소를 밟아보고 이 자리에 섰습니다. 당신이 보시기엔 그 때의 마음을 다 담지 못했겠지만 저 개인으로는 조금이나마 당신의 마음을 가깝게 느꼈던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제 당신이 거사를 완수하지 못하고 눈을 감았을 이곳에서 당신에게 당당히 말해주고 싶습니다.

‘당신의 의거는 대 성공이었습니다’ 라고..

다른 독립운동가들처럼 독립운동을 하겠다는 오랜시간 준비를 했던 분이 아니고 과거 황국식민으로 살아보고자까지 했던 당신이 불꽃처럼 자신의 목숨을 던져 해냈던 일! 마치 당신의 어리석었던 과거와 함께 폭탄과 함께 던진 것처럼 보였습니다. 만약 당신의 의거가 없었다면 윤봉길의사도 대한민국임시정부도 지금의 대한민국도 어떠한 모습이 되었을지 상상할 수 없습니다.

대한민국임시정부내 한인애국단 1호 이봉창의사! 다시 한번 당신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최희주

 

                경향신문사 미디어전략실 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