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얼레빗=양승국 변호사] 도미부인 이야기를 하다보니 개로왕이 백성의 아내를 강탈하기 위하여 참 못된 짓을 많이 한 임금으로 생각되네요. 실제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고구려가 백제를 치기 위하여 고구려 첩자가 그런 유언비어를 퍼뜨렸다는 얘기도 있더군요. 당시 고구려왕은 남진정책을 펼치는 장수왕이었는데, 장수왕의 남진정책에는 백제의 근초고왕이 평양성 근처까지 쳐들어와 증조할아버지 고국원왕을 죽인 원한을 갚겠다는 것도 많이 작용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장수왕은 개로왕이 바둑을 좋아한다는 얘기를 듣고 바둑을 잘 두는 도림이라는 스님을 첩자로 파견합니다. 개로왕은 도림의 바둑 실력에 반하여 도림을 상객(上客)으로 삼아 도림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요. 개로왕의 신임을 얻은 도림은 “대궐이 너무 좁다”, “제방을 제대로 쌓아야 한다”는 등으로 개로왕에게 큰 토목공사를 부추깁니다. 가뜩이나 재정이 빈약한 백제는 이러한 토목공사로 나라 곳간이 비고, 백성들도 생활이 어려워져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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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단산에서 내려다본 한강 |
장수왕은 드디어 때는 왔다 생각하고 백제를 침공하여 개로왕을 사로잡아 죽이지요. 이로서 한성 백제는 망한 것입니다. 개로왕은 자신의 잘못으로 종묘사직이 흔들리게 되자 아들 문주왕으로 하여금 웅진(공주)으로 천도케 하여 백제의 맥을 잇도록 합니다. 이러니 왕권은 흔들릴 수밖에 없고, 또 웅진의 토착세력들이 반발하니 문주왕이나 뒤이은 삼근왕, 동성왕은 제 명에 못 죽는데, 다들 살해당한 것으로 보입니다. 백제는 뒤이은 무령왕 때 와서야 겨우 다시 살아납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동성왕이나 무령왕은 일본에서 자라나 일본에서 살다가 왕위를 잇기 위하여 백제로 귀국한 왕입니다. 개로왕의 아들 문주왕이 웅진으로 내려갈 때 개로왕의 동생 곤지는(동생인지 아들인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일본으로 가 거기서 아들을 낳았는데, 그 아들이 자라서 동성왕이 된 것이지요.
백제왕이 일본에서 태어나서 자라 다시 백제로 돌아와 왕이 되고... 이걸 보면 당시 백제와 일본이 보통 사이가 아니라는 것을 짐작하겠지요? 김운회 교수에 의하면 부여의 일파가 한반도로 남하할 때에 일부는 백제(반도쥬신)를 세웠지만, 일부는 바다 건너 일본으로 가 오사카 부근에 자리를 잡은 것(열도쥬신)이라 합니다. 그렇기에 곤지는 도움을 청하기 위해 동족이 사는 일본으로 건너간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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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령왕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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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령왕 금제 관꽂이개 |
무령왕은 탄생 이야기도 재미있습니다. 개로왕은 둘째 부인 가희(嘉喜)를 곤지에 딸려 일본으로 보내는데, 이 때 가희는 이미 만삭의 몸이었습니다. 그래서 대마도를 거쳐 일본으로 건너가는데 카와라시마(各羅島)라는 무인도(지금은 사람이 산다)를 지날 때에 애가 나올 것 같아 급히 카와라시마에 상륙하여 아이를 낳으니, 이 아이가 커서 무령왕이 되는 것이지요. 무령왕의 이름이 ‘사마’인 것도 섬에서 낳기 때문에 지어진 것이라 합니다.
무령왕 이야기를 하다 보니 1971년에 백제왕릉을 온전하게 발굴하였다고 온통 신문에 떠들썩하던 것이 기억나네요. 고고학계는 그 때 너무 흥분하여 졸속 발굴하였던 것을 지금까지 두고두고 후회하고 있지요. 그런데 무령왕의 시신을 모신 관의 나무가 우리나라에서는 나지 않고 일본에서 나는 삼나무라고 합니다. 무령왕은 자기가 들어갈 관을 일본에서 공수해온 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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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서기 |
이렇듯 백제와 일본은 형제국가였기에 백제가 나당연합군에 공격받을 때 일본은 당시 일본의 국력으로는 힘에 부치는 5만이라는 군사를 한반도로 보내는 것입니다. 일본 원군이 백강전투에서 전멸하자, 일본서기는 이렇게 전합니다. “아아! 백제라는 이름은 오늘로서 끊어졌구나. 이제 선조들의 무덤이 있는 곳을 어찌 또 갈 수 있겠는가?” 이렇게 백제와 일본은 밀접한 관계에 있었기에 오늘날 아키히토(明仁) 천황은 자기 몸에 백제의 피가 흐르고 있다고 한 것입니다.
개로왕 이야기 하다가 얘기가 여기까지 발전했군요. 하여튼 오래간만에 검단산 등산을 하면서 느끼고 생각나는 점을 얘기해보았습니다. 백제는 반도의 좁은 서남부에만 머무르지 않고 이렇게 일본, 중국으로는 요서지방, 산동반도까지 힘이 미쳤다고 하던데, 최인호 작가의 소설 제목이 된 ‘잃어버린 왕국’이 다시금 제 역사를 찾는 날이 왔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