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얼레빗 = 이윤옥 기자] 이순신의 명량대첩을 다룬 영화 ‘명량’이 폭발적인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가운데 ‘명량대첩비’의 수난사에 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임진왜란(1592∼1598) 당시 명량대첩을 승리로 이끈 이순신의 공을 기념하기 위하여 지금으로부터 326년 전인 1688년 전라우도수군절도사 박신주가 해남에 세운 ‘명량대첩비’는 그러나 불행하게도 일제강점기에 ‘조선인의 민족정기 앙양에 도움을 준다.’는 이유로 제자리에서 끌어내는 수모를 당하게 된다.
▲ 충무공 '명량대첩비' 전남 해남군 문내면 우수영안길 34 (동외리)
이와 관련한 자세한 이야기가 “행방불명되었던 명량대첩비 찾음”이란 제목으로 당시 매일신보 1945년 11월 2일치 기사에 실려 있다.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충무공 이순신장군의 기념비가 일본인 관리의 손으로 전남 우수영(右水營)바다 기슭에서 자취가 없어졌던 것이 이번에 다행히도 전 총독부 박물관 구내에 내버려져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이 민족적으로 자랑할 이순신대첩비(李舜臣大捷碑)는 지금으로부터 330여 년 전 3천리 강산을 짓밟은 소위 임진왜란 때 왜국의 수병을 꼼짝 못하도록 만들어 놓았던 우리 민족의 자랑인 충무공의 공훈을 길이 새기고자 당시 우수영해전(右水營海戰)이 벌어졌던 전남 해남군 문내면 우수영 유림(儒林)에 세워 놓았던 것이다. 그런데 지난 소화 17년 5월(1942년) 어느 날 당시 경남 경찰부장 아베(阿部)가 높이 열자, 폭이 넉자, 투레가 두자나 되며 무게가 소 세 마리가 간신이 끄는 이 큰 비를 뜯어내어 어디로인가 가져가 버렸던 것이다.
그러나 그 당시야 그 누가 이 짓을 탓했을 것이냐, 그 이유가 치안에 재미가 없다고 치워 버린 그들에게 일언반구라도 그 어찌된 것을 물었을 것인가? 4년간 그 자취를 궁금히 하고 있던 그 동리에 있는 박몽익(朴夢益)이 이번에 이 비를 찾고자 상경하여 조사해 본 결과 그 비는 무사히 박물관(경복궁) 안에 있는 것을 알아내어 그 비를 그 전에 섰던 그 자리로 옮겨 세워 놓고자 군정청 밋첼 교화과장에게 여러 가지로 원조하여 주기를 구했던 바 그도 기꺼이 찬성하여 금년 안에는 미군의 원조로 다시 옛자리에 다시 서게 되리라 한다.”
좀 길지만 당시 상황을 잘 알려주는 기사이다. 일제강점기 말 일제의 문화재파괴와 약탈은 극에 달했는데 이때 ‘명량대첩비’도 그 수난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일제는 1943년 <유림의 숙정 및 반(反)시국적 고비(古碑)의 철거>지령에 의해 한국인의 민족의식이 담긴 비석들을 모조리 파괴하거나 매장해버리는 일을 저질러 20여기의 석비가 그렇게 사라졌다. 대표적인 것이 전남 해남의 이순신 명량대첩비, 충남 아산의 이순신 신도비(神道碑), 전북 남원의 이성계 황산대첩비, 경기 고양의 행주대첩 전승비 등이다.
그러나 되찾은 ‘명량대첩비’는 해방의 어수선한 상황 속에 겨우 정신을 차려 1947년에 옮겨 세우기는 했으나 원래 자리가 아니었다. 지금의 자리인 전남 해남군 문내면 우수영안길 34 (동외리 952-2)로 옮긴 것은 64년만인 2011년 3월에 이르러서이고 맨 처음 비를 세웠던 해로부터 323년 만에 제자리를 찾은 것이다.
충무공의 용감한 대첩비를 일제는 지워버리려고 혈안이 되어있었고 그 내용을 <조선 고판본(古版本) 조사> 라는 명목으로 ‘명량대첩비’ 탁본을 떠서 ‘일본 궁내청 서릉부(宮內廳 書陵部)’부에 소장하고 있다.(南海李舜臣鳴梁大捷碑 李敏敍(1633~1688)撰, 李正英(1616~1686)書. 拓本. 1件. 250×110㎝. 異名:統制使忠武李公(篆) 分類:515-194)
지금 해남에 있는 보물 제503호인 ‘명량대첩비’는 정유재란 때인 1597년 9월 16일 이순신이 명량(울돌목)에서 13척의 군함을 이끌고 133척의 일본 수군을 통쾌하게 무찌른 해전을 기리기 위해 1688년 (숙정14)에 세운 것으로 예조판서 이민서(1633-1688)가 짓고 판돈녕부사 이정영(1616~1686)이 본문을 해서체로 쓰고 ‘통제사충무이공명량대첩비’의 12자는 홍문관대제학 김만중이 쓴 것이다.
▲ 수원광교박물관에서 전시중인 <명량대첩탁본병풍>
이 충무공의 명량대첩비를 탁본하여 만든 ‘명량대첩탁본병풍’이 지금 <수원광교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다. 박물관 2층에 자리한 이종학 전시실에는 ‘명량대첩탁본병풍’ 외에도 충무공의 유고전집인 ‘이충무공전서’를 비롯해 ‘이순신신도비’ 탁본, 이순신의 쌍룡검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는 ‘돈암유고 등을 전시하고 있어 멀리 해남까지 가지 않아도 이순신의 유물을 두루 살펴 볼 수 있다.
이순신 관련 유물을 수집하여 박물관에 기증한 이종학 선생(1927~2002)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삶에 큰감동을 받고 평생 충무공이 활약한 곳을 직접 답사하는 등 수많은 유물을 모아 박물관에 기증한 분으로 2층의 ‘이종학전시실’에는 이종학 선생이 평생 사재를 털어 모은 독도관련 유물도 상당수 전시되어 있다.
<보물 제503호 해남 명량대첩비>
전남 해남군 문내면 우수영안길 34 (동외리)
<명량대첩탁본병풍 외 이순신 관련 유물>
수원 광교박물관 2층 사운 이종학 전시실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광교로 182
*전화 : 031-228-4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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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후기 문신 박종경(1765~1817)의 시문집 <돈암유고> 이순신의 검과 관련한 내용이 실려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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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이 닳도록 충무공 자료를 모은 이종학 선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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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충무공 유고전집 총 14권 8책, 1795년 정조의 명으로 지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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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촌 고상안(1553~1623)이 이순신의 진중 무과 시험 참사관으로 그를 보름간 곁에서 지켜본 기록 <태촌선생문집> 그는 이순신에 대해 " 그 언론이나 꾀와 지혜가 본시 난을 평정할 만한 재목'이라고 평하고 용모에 대해서는 '비대하지 않고 입술이 위로 치켜진 상'이라고 적어두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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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순신 신도비 탁본으로 정조의 명으로 신도비가 세워졌다. 비는 현재 충무공 무덤이 있는 아산에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