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얼레빗=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 속풀이에서는 이은관 선생과 생전에 나누었던 대화 중, 인상에 남는 이야기 하나를 소개하였다. 세상 사람들은 이은관이 소리꾼으로서의 목(성대)을 타고 났기에 그토록 지존의 자리를 오랫동안 지켜 왔다고 생각하고 있으나 그 뒤에는 누구도 따르지 못하는 후천적 노력이 있었다는 점이 간과되어서는 아니 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뿐만이 아니라 규칙적인 생활로 건강을 지켜 온 점과 상대의 조언에 경청하는 겸손한 마음가짐의 소유자라는 점도 그를 지존의 자리에 오래도록 머물게 했던 원인이라고 하였다.
그의 겸손을 알게 하는 다음과 같은 경험담 중에서 배뱅이굿 속에 3정승이 각각 한 집은 딸, 또 한 집은 계집아이, 그리고 다른 한 집은 여자아이를 낳게 된 배경을 <신수가 불길하여>로 부르고 있는데, 이를 <신수가 대통하여>로 바꾸어 부를 것과 다른 하나는 이 명창이 무대에서 장고 돌리기 쇼를 만류시킨 경험이다. 참으로 조심스러운 일이었다.
가까운 친구라도 무대 위에서 보여줄 것을 준비하고 있는 출연자에게 이래라, 저래나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인데, 하물며 천하의 이은관을 상대로 그것이 아무리 미사여구(美辭麗句)를 동원한다고 해도 “무대 위에서 장고를 돌리지 마시오.”라고 말한다는 자체는 정말 조심스러웠던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몇 가지 이유를 들어 장고 돌리기 재주를 만류하는 나의 제의에 선생은 흔쾌히 “시대가 달라졌으니 그렇게 하겠다.”고 시인하면서 장고 돌리기 연습을 접는 것이었다. 선생의 높은 인품을 확인할 수 대목이다. 이러한 선생의 모습을 보면서 선생이야말로 대인(大人)임을 확인하게 된 것이다.
이야기를 바꾸어 이번에는 선생이 남기고 간 자료 중, 《가창총보》라는 악보집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이 악보집은 400여 쪽에 달하는 대작으로 1999년 6월에 펴냈다. 내용을 개괄해 보면 <떡방아타령>을 비롯한 창작곡 및 신민요 20여곡, 서도 민요와 좌창, 서도입창 곡들을 직접 채보하고 정리한 곡조가 30여곡, 경기민요와 좌창 30여곡, 각 지방의 민요 10여곡, 그리고 도미의 아내를 비롯한 배뱅이굿, 배비장타령, 이춘풍전, 장한몽, 정선의 애화 등의 가사집과 창작소리를 작곡한 내용들이다. 예술원 회원을 지낸 원로 국악인 고 성경린 선생은 출간사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채보된 곡은 양악 5선보로 그려져 있고 그의 육필이었는데, 나는 먼저 그 방대한 분량에 놀라면서 그의 해박한 양악의 소양과 조예에 머리를 숙이지 않을 수 없었다. (줄임) 전날의 노래책은 거의 노래말, 곧 소리의 사설을 모은 노래책이었다. 하지만, 이은관의 《가창총보》는 가히 전대미문의 획기적 기획이요, 경이적 편저라고 이를 만하다. 우리나라 전통가요 연구에 귀중한 문헌으로 길이 남을 것을 짐심으로 경하하여 마지않는다.”
선생은 다른 소리꾼들과는 달리 기존의 불규칙 장단의 민요를 수십 명이 제창할 수 있도록 장단을 배열하는 작업이나 신민요, 또는 창작민요에 관심을 두고 작곡활동을 해 왔다. 그런가 하면 색소폰이나 아코디언과 같은 서양악기를 다루어 한양합주도 능했던 분이다. 이 모든 능력은 역시 악보를 볼 수 있는 곧 독보 능력을 갖추었기에 가능한 작업이 이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독보의 능력이 만든 결정적인 역작이 곧 이은관의 《가창총보》라는 악보집이다.
민속음악을 기본으로 하는 창작음악의 중요성을 일찍이 간파하여 전통은 전통대로 충실하게 지켜나가고 그러면서 시대에 맞는 새로운 창작활동을 쉬지 않아야 한다는 주장은 시대를 앞서 가야 한다는 선생의 지론이었다. 전통은 과거로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문화적 가치나 유산이다. 시대가 바뀌어도 전통을 우리사회의 기본 질서라고 보는 시각이 팽배해 가는 지금, 서도소리를 올곧게 지켜 온 선생의 자리가 더더욱 크게 느껴지고 있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정부가 중요무형문화재 제29호로 <서도소리>를 지정하고 전승체계를 마련했다고는 하나, 아직도 전문가의 육성이나 이를 즐기려는 애호가의 층은 엷기만 한 상황에서 그동안 이은관 선생의 건재는 국악계나 서도소리계의 후진들에게 커다란 버팀목이었던 점을 부정할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이제 그의 소리를 무대에서 더 이상 들을 수 없다는 점이 안타깝기만 하다. 부디 선생의 평안한 영면을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