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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변호사의 세상바라기

<서대문형무소> 단두대를 보셨나요?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51]

[그린경제/얼레빗=양승국 변호사]  전에 안산을 오른 적이 있는데, 그 때 안산에 오르기 전에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을 잠시 들렀습니다. 안산이라고 하면 의외로 모르는 사람들이 많더군요. 연세대 뒷산이라면 다들 고개를 끄덕거리는데, 바로 이 산 반대편 자락에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이 있는 것이죠. 하긴 이날 같이 등산하는 분들 중 대부분이 안산은 처음이라고 하더군요. 

독립문역에서 내려 지상으로 올라가니 바로 앞에는 서재필 박사 동상이 있습니다. 서재필 박사가 이끄는 독립협회가 청나라 사신을 맞이하는 영은문을 철거하고 독립문을 세웠기에 당연히 이곳에 서재필 박사 동상이 있겠죠. 이번에 독립문을 자세히 보니 독립문 앞에 두 개의 큰 초석이 있습니다. 무얼까 하고 보니 헐어버린 영은문의 주초(柱礎)이더군요. 여태 무심코 지나쳐서인지 독립문 앞에 영은문의 주초가 있는 줄은 모르고 지냈습니다. 


   
▲ 사적 제32호 <서울 독립문>(문화재청 제공)

또 그 옆에 독립관이 있어, ‘? 독립문 세울 때 그 옆에 독립관도 세웠었나?’ 하며 보니, 영은문 옆에 있던 모화관인데, 서재필 박사는 영은문은 헐면서도 모화관은 그대로 두고 독립관으로 이름만 바꿔 사용하였네요. 독립관은 일제강점기 때 철거되었다가 1996년 복원되었습니다. 은혜를 환영하는 영은문(迎恩門), 중국을 사모하는 모화관(慕華館). 이름에서부터 조선 양반들의 사대주의 냄새가 물씬 풍겨나는 것을 독립문, 독립관으로 바꾸었지만 결국 한일합방의 운명은 피할 수 없었군요. 

이제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으로 들어갑니다. 저도 오래간만에 다시 와보는군요. 일제강점기 때에는 독립투사의 피와 한이 어렸고, 독재정권 시절에는 민주 투사의 피와 한이 어린 서대문 형무소. 서대문 형무소가 서울 구치소로 옮겨간 후 이곳을 없애지 않고 이렇게 역사관으로 남겨둔 것은 잘 한 일입니다. 

그런데 안산을 처음 오른다는 분들은 이 서대문형무소 역사관도 처음이라고 하는군요. 사실 우리가 서울에 살면서도 이렇게 우리 선열들의 피와 한에는 너무 무심했던 것이 아닌가 합니다. 이 날 역사관을 돌아본 분들은 다음에 다시 한 번 오겠다, 아이들을 데리고 또 오겠다며 그동안 이런 역사에 무심했던 것을 조금은 반성하는 듯합니다. 


   
▲ 서대문형무소 옥사

   
▲ 1930년대 서대문형무소 전경

역사관에는 단순히 서대문 형무소의 역사만 전시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조선말의 제국주의 침략 역사부터 나옵니다. 여기서 하나 새로운 사실을 알았습니다. 일본이 성환에 주둔하던 청나라 군대를 공격하면서 청일전쟁이 시작되었는데, 일본은 이 성환전투의 승리를 기념하여 용산에 개선문을 세웠다는 것입니다. 이때부터 왜놈들은 지 멋대로였군요. 

아무래도 역사관에서 사람들의 눈길을 제일 많이 끄는 것은 고문 모습을 재현해놓은 것일 겁니다. 물고문, 비행기 고문, 주리 틀기 등등. 그런데 고문 모습을 재현해 놓은 것 이상으로 우리들의 마음을 찌르는 것은 고문을 당하셨던 독립투사들의 육성 증언 모습을 동영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애국선열들께서는 증언할 때에 당시 고문 모습이 떠오르는지 잠시 말을 못 잇다가 말이 떨려나옵니다. 그분들의 모습을 보면서 제 볼도 실룩거리는 것 같았습니다. 


   
▲ 고문실

전시되고 있는 것 중에는 독립투사들의 옥중생활기도 있습니다. 그중에서 상록수의 심훈 선생님께서 쓰신 글을 인용해보겠습니다. 

어머니! 날이 몹시도 더워서 풀 한 포기 없는 감옥 마당에 뙤약볕이 내리쪼이고 주황빛의 벽돌담은 화로 속처럼 달고, 방 속에는 똥통이 끓습니다. 밤이면 가뜩이나 다리도 뻗어 보지 못하는데, 빈대·벼룩이 다투어 가며 진물을 살살 뜯습니다. 그래서 한 달 동안이나 쪼그리고 앉은 채 날밤을 새웠습니다. 그렇건만 대단히 이상한 일이지 않겠습니까? 생지옥 속에 있으면서 하나도 괴로워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누구의 눈초리에나 뉘우침과 슬픈 빛이 보이지 않고, 도리어 그 눈들은 샛별과 같이 빛나고 있습니다. 

이 똥통은 일제강점기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1970년대 중반까지도 있었죠. 똥통 옆은 당연히 신참자 차지였겠죠? 붉은 벽돌의 감옥 외벽을 보면 뭔가 덧붙였다 제거한 것과 같은 흔적이 있는데, 이는 똥통을 치우는 대신 각 옥사 벽면에 붙여서 외부로 돌출된 형태로 화장실을 만들어놓았던 것의 흔적이지요. 이런 걸 보면 옮겨간 서울구치소는 서대문 형무소에 견주면 호텔 수준이라 하겠습니다. 


   
▲ 한센병사

   
▲ 사형장
정규 옥사 뒤쪽 담벼락에 붙여 축대 위에 올라선 외딴집이 있어 올라가보았더니 한센병사라고 되어 있네요. 그렇군요. 한센병환자들을 여기에 격리 수용하였군요. 한센 병사 왼쪽으로는 사형장이 있고, 그 앞에 통곡의 미루나무가 있습니다.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애국지사들이 마지막으로 이 나무를 붙잡고 조국의 독립을 이루지 못하고 삶을 마감해야 하는 원통함을 눈물로 토해내며 통곡하였다고 하여 통곡의 미루나무라고 한다는군요. 

미루나무를 바라보는 저의 마음속에서도 통곡이 조금씩 차오르려고 합니다. 사형장 건물은 너무 오래되고 낡아 들어가지는 못하고 밖에서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천장에는 올가미가 걸려 있습니다. 저 올가미에 목이 걸리면 이윽고 독립투사가 밟고 서있던 발판이 덜커덩 밑으로 꺼지겠지요. 그러면... 그러면...... 

이렇게 이곳에서 애통한 삶을 마감한 독립투사 중에 강우규 지사는 죽기 전에 다음과 같은 짤막한 시(絶命詩)를 지었습니다.  

단두대 위에 올라서니
오히려 바람이 부는구나
몸은 있으나 나라가 없으니
어찌 감회가 없으리오 

사형장 뒤쪽에는 조그만 문이 있습니다. 사형당한 시신들이 나가는 시구문이지요. 너무나 많은 원혼들이 이 시구문을 통하여 나갔기에, 2000년대 초반에는 뒤쪽의 깨진 유리창 사이로 사람의 형상이 촬영되었다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하였다는군요. 

 

   
▲ 추모비

사형장 옆에는 이곳에서 순국하신 애국선열들을 추모하는 추모비가 있습니다. 서대문 형무소에서 죽어간 선열들은 약 400명으로 추정하고 있다는데, 추모비에는 현재까지 발굴된 총 165분 순국선열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저는 추모비 앞에서 잠시 묵념을 올리고는 서대문 형무소를 빠져나왔습니다. 이제 안산으로 오르렵니다.

                                                                  사진 제공 : 서대문형무소 역사관(광장 박경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