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얼레빗=양승국 변호사]
이른 아침 들판에 나가
일하는 농부에게 물어 보라.
공산주의가 무엇이며
자본주의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겠는가.
지리산 싸움에서 죽은 군경이나 빨치산에게 물어보라
공산주의를 위해 죽었다
민주주의를 위해 죽었다 할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겠는가 ?
그들은 왜 죽었는지
▲ 6.25 전쟁 중 구례 화엄사 소각을 면하게 한 차일혁 총경. 그는 진정한 민족주의자였다.
영문도 모른다고 할 사람이 태반일 것이다.
이 싸움에서 어쩔 수 없이 하지만
후에 세월이 가면
다 밝혀질 것이다.
미국과 소련
두 강대국 사이에 끼여 벌어진
부질없는 골육상쟁
동족상잔이었다고
위의 글은 남부군 사령관 이현상을 사살한 토벌대 대장 차일혁 총경이 전북일보에 기고하였던 ‘이 땅의 평화를 기원하며’라는 글입니다. 남북의 이데올로기 대결이 극한으로 치닫던 상황에서 당시 남쪽의 토벌대 대장이 이런 글을 썼다는 것에 좀 의아하게 생각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차대장은 한민족이 이데올로기에 찢겨 서로 죽고 죽이는 것에 가슴 아파했습니다. 그래서 이현상을 사살하고도 차대장은 이현상의 시신을 적장에 대한 예를 갖추어 섬진강 다리 밑 하동 송림 주변 백사장에서 스님의 독경 속에 예를 갖추어 화장을 하고, 화장이 끝난 후에는 이현상의 뼈를 자신의 철모에 넣고 M1 소총으로 빻아 섬진강 물에 뿌렸습니다. 그리고 권총을 꺼내 허공을 향해 3발을 쏘았고... 이로 인해 부대원들에게는 태극무공훈장이 3개나 수여되었지만 차대장은 하나도 받지 못했었죠.
이런 차대장이었기에 토벌대 대장을 하면서도 가급적이면 빨치산들의 귀순을 유도하여 많은 빨치산의 목숨을 살렸습니다. 당시의 시대상황에서 이런 행동을 하였으니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차대장은 전쟁이 끝나서도 제대로 승진도 못하고 진해경찰서장 재직시에는 오히려 좌익혐의로 조사를 받기도 하였지요.
차대장은 원래 독립투사였습니다. 차대장은 홍성공고 재학시절 일본 고등계 형사 구타사건에 연루되어 17세에 중국으로 건너가 중앙군관학교 황포분교를 졸업한 뒤 조선의용대에서 항일유격전 활동을 펼치며 독립운동가를 탄압하는 미와 형사와 헌병사령관 하세가와를 저격하여 죽이기도 하였습니다.
▲ 차일혁 총경의 기지로 불태움을 면한 화엄사 각황전
그런가 하면 차대장은 진정 문화를 사랑하는 문화인이었습니다. 차대장은 6.25 전쟁 때 화엄사를 소각하라는 명령에 고뇌하다가 각황전 문짝만을 떼어내 불태웠습니다. 이로 인하여 차대장은 명령 불이행으로 감봉처분을 받았지만, 그 때 차대장이 명령을 그대로 이행하였더라면 화엄사의 그 소중한 문화재들은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그래서 조계사에서는 이러한 차대장의 공을 인정하여 화엄사에 기념비를 세웠다는군요.
고독한 영웅 차일혁. 저는 그를 이렇게 부르고 싶습니다. 차대장은 1958년 금강의 곰나루에서 가족과 함께 물놀이를 하다가 38세의 젊은 나이에 심장마비로 사망하였는데, 그의 아들 차길진이 보는 앞에서 물속으로 걸어 들어가더니 나오지 않았답니다. 아들은 현실의 상황에 고뇌하던 아버지였기에 자살하신 것으로 생각하고 있더군요. 재미있는 것은 아들 차길진씨는 영능력자로 예언을 하는 법사로 유명하고, 또 현재 야구단 넥센 히어로즈의 구단주 대행을 하고 있다는 것이네요.
아무튼 전에 지리산 종주를 하면서 이현상이 사살되었던 빗점골 위의 능선을 지나면서 차일혁 대장에 대해 새삼 알게 되어 차대장의 이런 행적에 대해 함께 나누고자 이 글을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