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얼레빗=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 이야기는 묵계월 명창이 경기민요 예능보유자 자리를 스스로 명퇴하였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스스로 몸을 가누기 어려운 경우에도 그 자리를 끝까지 지키려는 사람들이 대부분인데, 그는 남다르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10여 년 전, 어느 날 필자에게 밤새 써 온 글을 열어 보이면서 교정을 부탁하였다는 이야기, 구구절절이 경기민요를 생각하는 내용, 앞으로의 발전을 기원하는 마음을 솔직하게 드러내며 자신의 능력이 한계에 다다랐기에 예능보유자 자리를 물러나겠다는 명퇴 청원서였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방일영 국악상을 수상한 직후, 미국의 UCLA 민족음악대학 한국음악과가 폐과 위기를 맞게 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남의 나라에서 우리 한국의 음악을 심는 일에 동참 해야겠다는 생각에 2,000만원을 선뜻 한국음악과에 쾌척하였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고마운 일이다. 남을 돕는다는 일이 내가 여유가 있어서 하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다행한 것은 LA 현지의 교민들이 중심이 되어 모금운동을 펼치었고, 이에 따라 독지가들도 나타나기 시작하였으며, 국내에서도 한국음악과에 대한 관심이나 후원이 이루어져 일단 급한 불은 끈 셈이었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모금운동이나 독지가들의 주머니로 운영될 수는 없는 일이다. 국가나 기업의 정책적인 지원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아무리 그 뜻이 좋고 훌륭해도 그 명맥을 유지한다는 일이 그리 간단한 문제는 아닐 것이다. 묵계월 명창이 거액을 쾌척했다는 UCLA 한국음악과란 도대체 어떤 학교인가? 이 문제는 별도로 다룰 예정이지만 기왕에 이야기가 나왔으니 궁굼해 하시는 독자들을 위해 여기서 잠시 간단하게 근황을 소개해 보기로 한다.
▲ 묵계월 선생의 영면을 기원하면서 (그림 이무성 한국화가)
1970년대 이후 UCLA 민족음악대학 내에는 각 대륙의 소수민족들이 지켜오고 있는 9개 지역의 전통음악을 연구하는 학과가 개설되었는데, 아시아 지역으로는 한국음악학과, 중국, 인도네시아 등이 개설되어 있다. 한국음악학과에서는 가야금을 비롯한 여러 악기와 사물놀이, 성악 일반, 무용까지 포함하여 실기와 이론을 겸한 한국음악 전반을 교육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전문 국악인들조차 모르는 사람이 많은 상황이다.
그렇다면 한국음악과가 왜 폐과위기에 몰렸는가? 순전히 재정적 지원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60%를 주정부 예산으로, 나머지 40%는 기부금으로 운영해 왔는데, 지난 2004년부터 주정부 예산이 삭감되기 시작하다가 끊어졌고, 기부금도 줄었기 때문이다. 영구기금은 약 20억 원이 필요하나 이를 준비하지 못한 한국음악과의 경우 매년 자체적으로 운영자금을 마련해야 했다. 이를 마련하지 못하면 폐과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폐과위기에 내몰린 학과를 살리기 위해 그동안 주임교수인 도날드 김(한국명 김동석) 교수를 비롯해 졸업생들과 독지가들이 발로 뛰며 겨우겨우 버텨온 것이다. 특히 김 교수가 설립한‘코리안 뮤직&댄스 그룹(Korean Music and dance group)’의 도움이나 그동안 부산의 한 입시학원(서전학원)이 해마다 5만 달러를 지원해 주어 큰 힘이 되었는데, 안타깝게도 학원 형편이 어려워지면서 3년 전에 지원금이 끊긴 상태에 있다는 것이다.
UCLA가 문을 닫게 되는가의 여부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고, 국악인들의 문제만도 아니다. 세계 10위를 자랑하는 경제대국인 대한민국의 문제이기에 더욱 심각한 것이다.
필자는 특히 한국음악과가 어려울 때, Korean Music Symposium 강의와 공연시리즈에 참가해 준 국내 국악인 여러분들에게 이 지면을 통해 감사의 뜻을 전하고자 한다. 12회를 치루는 동안 어렵고 힘들 때마다 필자를 도와주고, 조건 없이 따라 나섰던 명인명창, 국악계의 선후배, 그리고 제자 여러분들에게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그들의 면면을 간단하게 소개해 보면, 공주대학의 조성보 교수를 위시하여 이창홍 명인, 한국정가원의 박문규 명인, 수원대의 임진옥 교수, 홍주희 교수, 원광대학의 임재심 교수와 제자들, 이화여대의 홍종진 교수. 문재숙 교수, 초당대의 조혜영 교수, 김병혜 교수, 단국대의 신운희 교수에게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특별히 국가중요문화재인 선소리 산타령의 황용주 명창을 위시하여 조효녀. 최숙희. 이건자 조교와 곽윤자, 유영환을 비롯한 선소리 산타령 식구들에게 감사한다. 항상 10여명 이상이 참여해 힘을 실어 준 것이다.
또한 고 백인영 명인을 비롯하여 예랑의 식구들, 노학순 명창을 위시한 경기민요 창자들과 박윤정 명창, 정순임 명창과 판소리 제자들, 임종복 조교와 그의 병창 제자들에게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최경만 명인과 유지숙 명창, 배뱅이굿의 박준영 명창, 서광일 명인, 서도소리 전미경 명창과 그의 제자들, 그리고 판소리 김수연 명창과 그의 제자들, 대전에서 활동하고 있는 고향임 명창과 그의 제자들 얼굴과 이름도 기억하고 싶다.
그밖에 단국대 대학원의 이종미 선생을 비롯하여, 유병진. 이인영, 김보라, 최진아 등 젊은 제자들과 이화여대, 수원대, 중앙대, 전남대, 원광대, 초당대 학생들, 또한 채치성 사장이나 이윤경 피디 등, 국악방송 관계자들도 열심히 미국의 UCLA를 왕래하며 학술행사 및 공연행사에 앞장서 주었다. 이 지면을 통해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하게 생각한다는 말을 전해 드린다.
특별히 묵계월 명창이 거금 2,000만원을 UCLA 한국음악과를 위해 쾌척했다는 사실은 그가 돈이 많아서가 아니다. 90평생 소릿길을 살아오면서 배고픈 설움과 소릿 광대의 설움을 누구보다 더 뼈저리게 경험한 노 명창의 용기 있는 결단이기에 더더욱 고맙게 생각하는 것이다. 그는 늘 말을 하기 전에 머릿속에서 바를 正을 먼저 그린다음, 입을 열라고 제자들에게 가르쳤다고 한다. 무척 과묵하였으나 불의에는 팔을 걷어붙였던 묵계월 명창, 그러면서도 소녀 같은 순수성을 간직했던 노명창이다.
70여년을 한결같이 소리를 했음에도 아직까지 무대에 서면 두근거리는 가슴을 가눌 길 없다고 털어놓던 묵계월 명창. 벅차고 두려워하는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으니 참으로 어려운 것이 소리라는 깨달음이 절로 생각하게 하는 어른의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오늘날 한국을 대표하는 경기 명창들이 그의 음악정신을 이어받기를 바란다.
명창의 영면을 기원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