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 이어 <최근순 명창의 12좌창 발표회>에 관한 이야기를 이어가도록 하겠다. 이번에 그는 보다 원숙해진 소리로 완창의 무대에 재도전 하게 되었다는 점, 경기 12좌창은 한곡 한곡이 느린 속도로 진행되는 곡조들이며 단조롭게 반복되는 6박형 도드리 장단이지만, 창법이나 시김새가 다양하다는 점, 그러면서도 태도, 노랫말의 발음이나 의미의 전달이 부담스럽고 즉흥성이 용납되지 않는 까다로운 조건의 노래라는 점, 관중의 입장에서는 느리며 단조로운 가락을 선호하지 않는다는 점이 발표회를 가로막는 요인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최근순은 노래를 잘 부르지만, 소리를 좋아하는 사람이고, 스스로 즐거워하나 힘들고 어려운 노래로는 무엇보다도 12좌창을 꼽고 있다는 점, 잡가라는 이름은 소위 양반들이 부르던 <정가(正歌)>에 대한 대칭 개념에서 붙여진 명칭이란 점, 신분의 구분이 사라진 현대에 와서도 <정가>니 <잡가>니 하는 구분은 맞지도 않으며 특히 음악적 분위기나 호칭의 의미면에서 잡가란 말은 옳지 못하다는 의견을 피력하였다.
그렇다면 잡가란 어떤 노래인가?
<잡가>라는 명칭에서 잡(雜)의 의미는 순수한 것이 아닌, 잡스러운 것, 뭔가 뒤섞여 있는 것, 장황하고 번거롭다는 뜻이다. 이러한 의미로 보면 오늘날 서울 경기지방에서 전승되고 있는 고상한 표현법의 12좌창을 잡가라 호칭하고 있는 것은 노래분위기와도 어울리지 않는 이름이다. 최남선의 《조선상식문답》에서도 잡가는 가사와 명확한 구분은 없지만, 잡가 중에서 일부가 가사로 뽑혀 쓰였으며 어떠한 경우에는 가사와 잡가의 이름이 넘나들기도 하였다고 적고 있다.
특히 1910년대 이후에 쏟아져 나온 각종 노래사설집의 이름은 대부분 《00잡가집》, 예를 들면 《신구잡가》, 《신구시행잡가》, 《증보신구잡가》, 《고금잡가편》, 《무쌍신구잡가》, 《신구유행잡가》, 《신구현행잡가》 따위였다.
이들 잡가집에 실려있는 내용은 현재의 잡가만도 아니고, 잡스런 노래들을 모아 놓았다는 의미는 더더욱 아니다. 각 지방의 민요나 특징 있는 노래들을 망라해서 싣고 있다는, 다시 말해 여러 장르의 노래들이 한 책속에 잡거(雜居)해 있다는 의미가 짙은 용어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잡가>라는 아름답지 못한 명칭보다는 <경기좌창>이나 <경기의 긴소리>로 부르기를 권한다.
지난 시대, 산조(散調)음악을 연주해 온 악사들도 그들의 음악을 헛튼가락, 또는 허드렛가락이라고 했다. 아마도 정악이나 정가에 대해 자신들이 하는 음악을 낮추어 부르는 겸손이 깔린 표현이 아닐까 한다. 이를 지금도 헛튼가락이니 허드렛가락이라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 {서울경기의 긴소리 12좌창> 부르는 최근순 명창
다시 최근순의 이야기를 이어간다. 오늘의 주인공 최근순은 얼마 전 작고한 경기명창 묵계월의 애제자이다. 우리가 경기소리의 계보를 말할 때, 1800년대 초반의 <추, 조, 박>을 이야기 하는데, 추는 추교신이고 조는 조기준이며 박은 박춘경이다. 이들의 소리는 장계춘을 통해 최경식으로 이어졌고, 최경식의 소리는 그의 제자들인 최정식, 유개동, 박인섭, 김태봉, 김순태, 정득만, 이창배 등으로 이어졌다. 이 중 큰 제자는 최정식이나, 선생 앞에 오랫동안 소리를 많이 배워서 선생의 뒤를 이은 명창이 바로 오늘날 경기소리의 중시조격인 벽파 이창배 사범이다.
다시 최정식의 소리는 묵계월과 안비취 등에게 전해졌고, 묵계월의 소리는 임정란, 최근순, 최은호를 비롯하여 한국의 정상급 경기명창들에게 이어졌다. 그러므로 이번 발표회에 그가 부른 경기좌창 12곡은 가사와 장단, 고저 등의 즉흥성이 용납되지 않는 200여년을 이어온 법통의 소리임이 분명하다.
일반인들은 목청 좋고 소리 잘하는 사람이 인간문화재가 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실은 그 소리의 뿌리나 전승과정이 얼마나 올바르게 지켜진 소리인가? 하는 점이 매우 중요한 요소인 것은 두말 할 나위도 없다.
최근순 명창은 <경기도립 국악단>의 악장(樂長)직을 맡고 있으면서 정례발표 이외에도 그룹이나 개인발표회를 꾸준히 열고 있으며 아시아, 유럽의 무대에도 자주 오르고 있다. 그런가 하면 대통령상을 비롯하여 수상의 실적도 만만치 않은 명창이다.
▲ <서울경기의 긴소리 12좌창의 품격> 공연에서의 최근순 명창
연주자에겐 악기가 좋아야 하듯, 성악가는 맑고 고운 목소리, 즉 목청을 잘 타고나야 한다. 최근순의 목청은 시원시원하고 힘차며 맑고 아름답다. 선천적이라 하기 보다는 소리를 갈고 닦으며 얻어낸 후천적 노력의 결실일 것이다. 목청만이 아니다. 윗소리와 아랫소리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넓은 음폭(音幅)을 지니고 있다는 점도 남들 보다 유리한 조건이다. 치솟을 때에는 강렬하면서도 역동적인 고음이 인상적이고, 내려갈 때에는 편안하고 넉넉한 소리가 안정감을 느끼게 만든다. 이 모든 것이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훈련과 연습의 생활화가 아니면 이룰 수 없는 조건들인 것이다.
경기민요를 비롯한 좌창 12곡은 이제 더 이상 낯선 소리가 아니다. 각 지역의 문화원이나 사회단체에서도 배우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났고, 공연장에도 애호가들의 발걸음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특히 최근에는 초, 중, 고교에 국악강사가 파견되어 일선학교에서도 배우고 있다. 한국의 대표적인 성악으로, 독특성을 지닌 전통예술로 확고하게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경기좌창이 더 넓게 확산되어 하루속히 국민이 즐겨 부르는 노래로 정착되기를 바란다. 아울러 그 날을 앞당기기 위하여 최근순 명창을 비롯한 젊은 경기소리꾼들의 분발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