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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게으름을 모르는 것이 진짜 부끄러움이다

[국악속풀이 188]

[한국문화신문 = 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남원지방에서 활동하고 있는 가야금 연주자, 이민영의 독주회 이야기를 하였다. 그는 얼마 전 작고한 백인영 명인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수제자이며 국악의 정통과정을 밟은 후에 국립 음악기관의 연주단원, 학교의 가야금 지도강사, 가야금실내악단 <예랑>의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는 이야기, 2000년도 초에 <KBS국악관현악단>과의 협연을 시작으로 <신영희 소리인생 50년 발표회> <예랑창작발표회> 등 수많은 무대에서 독주나 협연자로 활동해 왔다.

특히 18현 가야금 산조를 초연함으로 해서 국악계를 놀라게 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12줄 전용의 산조 음악을 18현 가야금으로 탔다고 하는 점은 단지 악기를 바꾼 단순한 작업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음역이 확대됨에 따라 다양한 음색이나 연주법이 요구된다는 점에서 다른 악기로 다른 음악을 연주하는 어려운 작업이란 이야기, 그래서 아직까지도 18현으로 산조를 연주하는 사람들은 극소수에 불과하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이민영은 12현의 산조가야금으로 연주해오던 산조를 18현 가야금으로 초연하면서 극찬을 받았다. 그 이후 <김계옥 작품 발표회>에서는 25현 가야금으로 북한의 작품인 ‘눈이 내린다’ 를 연주하면서 연주영역을 더욱 확대해 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가야금의 12현이나 18현은 오른손으로 줄을 뜯거나 튕겨 발현시키고, 왼손으로는 울려진 줄을 누르고 떨고 하는 기교가 유사하지만, 6줄이 더 많기 때문에 연주자들에겐 그만큼 부담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25현 가야금은 오른손과 왼손으로 동시에 줄을 뜯는 주법을 비롯하여 다양한 연주법들이 사용되기 때문에 더더욱 어려움이 가중된다 할 것이다. 그렇기에 25현 가야금과 같이 새로운 악기의 활용에 대하여 기존의 나이 많은 연주자들이나 교수들은 그 연주를 거부하거나 아예 포기하기 일쑤다. 연습을 통하여 다양한 여러 주법의 어려움을 극복해 가야 하는데, 나이가 들면 이러한 새로운 주법에 도전하는 것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민영에겐 25현 가야금 이외에도 또 잘 다루는 악기가 있다. 바로 북한의 대표적인 현악기 옥류금(玉流琴)인 것이다. 그는 이 악기를 김계옥 교수로부터 여러 해 동안 익혀서 연주 영역을 넓혔고, 구하기 어려운 악기임에도 이를 구입하여 개인 연습은 물론 전문단체와 협연하고 있을 정도로 열정이나 의욕이 대단한 젊은 연주자인 것이다.

하나같이 공력을 쌓지 않으면 무대 위에서 발표나 공연이 불가능한 일인데, 그는 12현 법금으로 풍류, 12현과 18현으로는 창작곡과 산조의 연주, 25현 다현금 연주, 이들 악기와 전혀 다르게 제작된 북한의 옥류금까지 다룰 수 있는 만능 연주자로 알려지면서 국공립의 음악기관이나 연주단체들은 그에게 협연 요청을 해 왔다. 대표적인 예로 현재 그가 정착하고 있는 전북 남원지방의 <국립민속국악원>은 18현 산조의 독주무대와 기획공연이었던 <젊은 예인전>에서 가야금 독주회를 할 수 있도록 초청해 준 것이다.

서울의 <국립국악관현악단>이나 진도의 <국립남도국악원>, 전주지방의 <시립국악단>, <전주전통문화센터>, <강원도립>, <목포시립교향악단> 등등의 정기연주회에서는 관현악과 북한의 현악기인 옥류금, 또는 25현가야금의 협연무대를 만들어 주었다.

 

   
 
그런가 하면 해외연주 활동도 활발했다. <인도 PUNE 반디쉬 음악학교> 외 초청공연을 시작으로 미국 뉴욕시의 <한국인의 밤>에 초대되었고, 필자와 함께 서부의<UCLA> 및 한국문화원, 그리고 초, 중 고교에서 한국의 문화를 소개하는 특별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그의 가야금 솜씨를 보여 주었다. 그 외에도 <베트남 HANOI 대학>, 중국의 <연변예술대학>, <북경대학>, <대련>한인회의 초청을 받아 가야금 음악의 진수를 소개했다.  

이민영이 이 길에 얼마나 열심히 정진해 왔는가 하는 점은 각 지역이나 연주단체에서 주최한 경연대회에서 그가 수상한 등위나 내역이 잘 증명해 주고 있다. <전주대사습놀이> 기악부 수상을 비롯하여 대상이나 높은 등위의 수상 경력이 그의 실력을 입증해 주고 있다. 특히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상이나 <문화관광부> 장관상이 1~2개가 아닌 점을 본다면 그가 얼마나 가야금타기를 좋아했고, 또한 전문 연주자가 되기 위해 남다른 노력을 기우렸는가 하는 점을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지난 주 독주회에서 발표한 곡들은 <백인영류 18현 산조>, 북한의 악곡인 <달빛 밝은 이 밤에> 미노루미끼(三本捻)의 <아생지(芽生之)> 김계옥 편곡의 <아리랑>과 <쾌지나 칭칭>, 황의종의 <뱃노래>등이다.  특히, 첫 곡인 18현 산조는 고 백인영 명인이 2002년부터 직접 가락을 읊어 주면서 짠 18현 산조인데, 선생을 생각하며 먼저 이 곡을 골랐다고 한다. 선생을 생각하는 제자의 애틋한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달빛 밝은 이 밤에>는 북한의 가극 그리운 금강산의 삽입곡을 주제로 만든 가야금 독주곡이며 일본 작곡가, 미노루 미끼의 <봄·여름·가을·겨울> 중 아생지(芽生之-A Young Sprout)라는 곡은 ‘새싹’이라는 뜻이다. 땅 속에서 세상 밖으로 처음 몸을 내민 새싹이 하나의 생명체로서 본연의 모습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보고 그 분위기를 가야금으로 표현하고 있는 곡이다. 25현 가야금 독주곡인 <아리랑>이나 <쾌지나 칭칭> <뱃노래> 등은 화려한 양손 주법으로 단순한 선율을 폭넓고 풍성하게 발전시킨 악곡이다.

현재 남원에 거주하고 있는 그는 두 아이의 엄마로, 가정주부로, 가야금 연주에 전력투구하지 못하는 점에 자신이 나태하다고 생각하고 있고, 그래서 자신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있다. 반드시 어느 음악기관이나 단체에 소속되어야만 당당하고 떳떳한 연주자가 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그에게 나는 이럴게 말해주고 싶다.

  “게으른 줄 알면서도 이를 고치지 못하는 것이 진짜 부끄러움이다.
   또한 부끄러운 짓을 하면서 이를 모르고 있거나 고치려고 시도하지
   않는다면  이것이야말로 진짜 게으름이라 할 것이다.”

이번 연주회처럼 창작곡 위주로 독주회를 준비한 그 자체로도 결코 그가 게으른 사람이 아니라 부지런한 연주자임이 분명하고, 가야금을 통하여 숨을 쉬고 있고, 가야금 속에서 건재하다는 점을 확인시켜 주고 있어서 부끄럽게 생각할 아무런 까닭이 없는 것이다. 나는 진정 이민영 양의 가야금 음악을 좋아하고 있다.

그가 더 큰 연주자로 성장할 수 있도록 그에게 관심과 격려가 모아지기를 바란다. 그래서 세상을 등지고 사는 사람들의 마음을 따듯하게 녹여주는 훌륭한 연주자가 되어 주기를 기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