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신문 = 김연갑 국가상장연구회 위원] 애국가 역사에서 가장 많이 인용된 문헌을 꼽는다면 1965년 발행된 《배재팔십년사》(培栽八十年史)이다. 이 책은 아펜젤라(appenzeller)목사가 설립한 신학문 발상지 배재학당 역사를 기록한 책으로 여기에 애국가에 대한 내용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1896년 11월 21일 독립문정초식 기념식장에서 배재학당 학생들이 조선가·독립가·진보가를 불렀는데, 이중 조선가가 애국가라며 ”윤치호가 작사하였고 곡조는 벙커(D.H. Bunker) 교사가 편곡‘한 것이라고 기록한 것이다. 이는 10년 전인 1955년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애국가작사자조사위원회>를 구성하여 6개월간의 조사 끝에 ‘윤치호 작사 확정 유보’로 결론을 내린 이후 기록이기에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1955년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작사자 문제를 미결로 남긴 이후, 윤치호를 작사자로 주장하는 편과 안창호가 작사자로 보는 편으로 갈라져 최근까지도 논쟁이 이어졌다. 우리 역사에서 가장 오랜 논쟁의 주제가 바로 이 애국가 작사자 문제인데, 지난 해 까지도 국가싱징연구회 회원과 흥사단 간에 격한 논쟁이 있었다. 그래서 애국가 작사자를 윤치호로 주장하는 편에서 이 책은 2012년까지 전가의 보도(傳家寶刀)처럼 인용되었다. 특히 성악가로서 유학파인 이유선교수가 1968년 지은 《한국양악80년사》로부터 1976년 발행한 《한국양악100년사》에 인용되어 한국음악사 정전(正典)처럼 인용되었다.
▲ 독립문 정초식에 애국가는 없었다. (그림 이무성 한국화가)
그런데 2013년 5월 15일자 조선일보에 당시 독립문정초기념식 행사당일 배재학당이 부른 노래 가사를 담은 전단지가 발굴되어 공개되었다. 여기에는 조선가·독립가·진보가의 가사 전문이 수록되었는데, 그동안 현 애국가와 동일 동일 후렴의 노래로 알려졌던 조선가 가사가 전혀 없다는 것임이 확인 되었다. 독립문정초식장에서 애국가가 처음 불렸고, 작사자는 윤치호라는 신화가 50여년만에 깨진 것이다.
당시 배재학당이 사립학교였기에 학생들의 참여 사실이 정부 기록에 누락되었고, 1면짜리 전단임으로 종이가 귀한 시기였음으로 이면지로 사용되거나 담배말이(권련)로 쓰여져 버렸으며, 일제강점기 애국창가이니 소장자 스스로 소각시켰을 것인데, 참으로 용케도 독일의 한 고서점에서 당시 발행된 선교잡지 <THE KOREA REPOSITORY> 당일 기사 갈피 속에 접혀 있었던 것이다.
이 자료는 우리 신문학사, 창가사, 기념가 역사에서 매우 유용한 사료로 사료됨으로 이 번 회에서 3편의 노래 전문을 소개하기로 한다.
▲ 1896년 11월 21일 독립문 정초식(定礎式)에서 배포된 전단지. 한지(韓紙/가로 31.6㎝, 세로 23.8㎝)에 '죠션가' '독립가' '진보가' 가사가 인쇄됐고, 끝에는 'P.C.S.'(배재 크리스천 스쿨)라고 표기되었다.
죠션가 第一
一.
내나라흘 위해 샹쥬끠 빔니다
나라도아
도아주잔으면 나라 망하겟네
샹쥬끠 빔니다 나라도아
二.
우리 대군쥬를
우리 향슈게 긔도하셰
옥톄를 보호하야 강건하옵소셔
오래 향슈하게 긔도하셰
三.
내뎨쥬재끠셔 우리 대군쥬를
셜립햇녜
셩령 감동하샤 나라부강하게
대군쥬를 도아 도아줍시오
四.
자쥬독립된 것 대쥬재 힘일셰
감사하셰
자쥬독립 되니 영원독립되게
신민일심으로 쥬끠 빌셰
五.
홀노 하나 신쥬만을 죠셩햇네
찬양하셰
전국 신민들은 츙신만위하면
나라부강하고 참복엇네
100년 넘게 그 실체가 밝혀지지 않았던 ‘죠션가(朝鮮歌)’의 가사는 국가의 안녕을 기원하는 가사이지만 ‘찬미가’ 제1장과는 다른 것이다.
독립가 第二
一.
일쳔팔백구십륙년 건양원년 십일월에
아셰아쥬 독립 조션 독립문을 새로 셰녜
후렴
깃분날 깃분날 우리나라 독립한날
우리나라 독립한날
밀월갓치 빗나도다
깃분날 깃분날 우리나라 독립한날
二.
영은문이 독립되니 모화관이 공원디라
이백여년 병자지치 오날이야 씻난고나
三.
독립문 자쥬터를 닥고 문명개화 쥬초놋네
젼국 인민 굿게 보호 부강지업 일워보셰
四.
단군긔씨 독립자쥬 신라 고려 년호 썻다
셩죠승동 오백년후 건양개원 새롭고나
五.
우리 셩쥬 여쳔공덕 방국권리 다시 찻네
젼국인민 동심합력 갈츙보국 하여보셰
六.
우리 독립 장구슐은 츙애이자 뎨일이라
애국지심 잇난 이는 독립 이자 잇지 마자
七.
곤륜산이 백해되고 태평양이 륙디되나
어화 우리 독립 긔초 견고하기 반석이라
八.
태극긔를 놉히 달고 이쳔만중 일심으로
독립가를 불너보셰 승평악을 화답하네
8절로 이뤄진 이 ‘독립가’는 “영은문이 독립되니 모화관이 공원디라 / 독립 자쥬터를 닥고 문명개화 쥬초놋네 / 젼국인민 굿게 보호 부강지업 일워보세”라며 ‘자주독립’, ‘개화’라는 독립문 건립 취지를 분명히 제시하였다.
진보가 第三
一.
각국 즁 죠션이 긔이하다
구쳔 오백방리 고유디라
삼쳔리 반도국 동양의 요츙일셰
남대양 북대륙 텬뎡이네
二.
아 죠션 인구는 이쳔만명
사람에 자픔은 온량화평
인물노 말해도 동양에 뎨일이라
례의지방으로 명예잇다
三.
상뎨의 큰 은덕 권고 동방
셩샹의 큰 복력 국운길창
졍치를 곳치고 독립국권 차젓에
동양문명 긔초 죠션일셰
四.
아 죠션 인민들 진보하셰
나라 흥왕함을 경츅하네
백셩이 힘써서 방국권리 직흰다
우리 합심하여 나라돕자
五.
이 토디 이 인민 넉넉하다
우리 밧비 젼진 나아가자
각죵 학문 배화 우리 밧비 나가셰
우리 국긔 따라 나아가네(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