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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남지에서 연꽃의 꿈이 이루어진다

[윤재환의 신부여팔경 9]

[한국문화신문 = 윤재환 기자]  궁남지(宮南池)는 말 그대로 왕궁 남쪽에 조성된 연못이란 뜻에서 얻은 이름이다. 이곳은 미래방죽으로도 불렀다. 방죽의 원말은 방축(防築)인데, 물의 침범을 막기 위해 쌓은 둑을 가리킨다. 하지만 둑은 아니었고 농지와 모호하게 뒤섞인 습지연못이었다. 습지와 논이 혼재한 한켠에는 쓰레기더미가 쌓이기 시작했고, 일부는 택지로 변해갔다. 

미래방죽 주위에는 휘늘어진 버드나무가 빙 둘러 있었고, 그것을 그늘로 삼은 대나무 낚시꾼이 항상 있었다. 어린 필자는 낚시꾼들 사이를 비집고 물밤으로 불리는 마름 열매를 건져내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 있다.  

마름은 물 위에 떠서 자란다. 뿌리를 물밑의 진흙 속에 내리며, 물 위까지 뻗어 있는 줄기 끝에 많은 잎들이 빽빽하게 달린다. 꽃은 7~8월에 피고, 흰색도 있고, 담홍색도 있다. 열매는 9~10월에 익는데 물에 잠긴다. 이것을 건져 삶아 말린 뒤 가루를 만들었다가 죽을 쑤어 먹으면 몸 안의 기운을 왕성하게 하고, 허약체질을 개선한다고 전한다. 

그 마름 열매는 가끔 화석으로 발견되기도 하는데, 이는 그 식물의 연대가 그만큼 오래 되었다는 걸 말해준다. 


   
▲ 궁남지 포룡정,김억,다색목판,2007년, 122 X 62cm.jpg

   
▲ 송필용, 흐르는 물처럼 - 궁남지, 캔퍼스에 유채, 162X87cm, 2007

삼국사기<백제본기> 무왕 35년조에 보면 궁의 남쪽에 연못을 파고 20리 밖에서 물을 끌어들였으며, 연못가에는 버드나무를 심었고, 연못 가운데는 섬을 만들어 방장선산(方杖仙山)을 모방하였다.”고 적혀 있다.  

삼국사기2 <무왕> 편에 보면 30대 무왕의 이름은 장()이다. 그의 어머니는 남지(南池) 둑에서 혼자 살다가 그 못의 용()과 상관하여 아기를 낳았는데, 아명은 서동(薯童)이고, 그의 재능과 도량은 헤아릴 수 없었다.”고 적혀있다.  

삼국사기삼국유사에서 궁남지를 똑같이 다루고 있는 것은 그 진정성을 입증하는 것이다. 무왕의 부왕은 법왕이다. 법왕의 시녀 가운데 한 여인이 못가에서 혼자 살다 용과 통하여 아들을 얻었는데, 그가 신라 진평왕 셋째 딸인 선화공주와 혼인한 서동이다. 서동은 법왕의 뒤를 이어 무왕에 올랐다. 이 설화는 궁남지가 백제왕궁의 별궁터였음을 짐작케 하는 한편, 우리나라 가장 오래된 인공 연못으로 연못 조경의 본보기가 되어 있다. 

1965~1967년 사이에 궁남지는 대대적인 복원사업에 들어갔다. 본래 크기만큼은 회복되지 못했지만 작업과정에서 많은 기와조각이 나왔고, 연목 동쪽에서는 주춧돌도 발견되었다. 근처에서는 3단으로 짜 올린 팔각형 우물터도 발굴되었다.  

전체적으로 볼 때 둥근 연못 모습이 되었고, 방장선산은 못 되었지만 섬 하나를 만들고, 포룡정(抱龍亭)이란 정자도 지었다. 1971년 당시 국무총리였던 김종필이 포룡정 현액을 썼다. 나무다리를 놓아서 사람들이 직접 드나들게 해놓아 사진 찍는 이들이 즐겨 애용한다. 궁남지는 원래 3만여 평에 이르렀으나 그 깊은 역사적 가치를 모르던 사람들에 의하여 농경지로 변해가다가 1964년에 사적 제195호로 지정되어 13,722평으로 축소 보존되고 있다. 


   
▲ 전설의 연꽃으로 알려진 "오가 하스 연", 2천 년 전에 폈던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연꽃이다.

그런데 요즘 궁남지는 궁련지(宮蓮池)로 불러도 될 만큼 연꽃이 밭을 이뤄 찾는 이들을 즐겁게 하고 있다. 홍련백련수련황금련 등 다양한 연꽃이 핀다. 그 가운데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오가 하스 연(大賀蓮)이다. 오가 하스는 연꽃 애호가들 사이에서 전설의 연꽃으로 알려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꽃이다. 

일본의 식물학자인 오가 이치로(大賀一郞) 박사는 19513월 치바현(千葉縣)에 있는 도쿄대학 운동장 한켠에서 미라를 발굴하던 중 2,000년 전 것으로 추정되는 연꽃 씨앗 3개를 거두었다. 그해 5월 오가 이치로는 연곷 씨앗 3개 가운데 1개를 발아시키는 데 성공했다. 1952718일 분홍빛 꽃이 피어났다.  

이 연꽃은 발굴자의 이름을 따서 오가 하스라 하였다. 수 천 년 동안 회석이던 씨앗에 생명력이 있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입증해내어 당시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런데 1973년 이석호 전 부여문화원장이 이 연꽃 씨앗을 국내 최초로 들여야 재배했다. 그러다가 2008년 부여군에 기증했다. 그 호가 하스는 사비 백제연이라는 이름으로 해마다 치르는 부여 연꽃축제의 주인공이 되고 있다. 

오가 이치로 박사는 당시 연꽃 씨앗과 함께 비자나무 조각을 세계적인 권위를 가진 시카고대학 연구소에 의뢰해 방사선탄소에 의한 연대측정으로 2천 년 전의 것임을 확인했다고 한다. 

보통 식물의 씨앗은 2~3년만 지나면 발아가 안 된다. 그런데 2천 년 동안 잠자고 있다가 다시 생명력을 나타냈으니 이 어찌 놀랄 일이 아닌가. 한데 필자는 그 연꽃 씨앗의 원래 고향은 부여 궁남지라고 생각해본다. 일본 연못 조성의 본보기가 궁남지라고 본다면 당연한 추청이 아닐까? 


   
▲ 몸 전체에 분홍빛이 감도는 홍련 하나가 고고하게 자태를 뽐내고 있다.

연꽃은 불교의 꽃이라고 단정하지만, 그것은 편견에 불과하다. 중국 송나라 때 철학자 주돈이(1017~1073)가 지은 <애련설(愛蓮說)>을 한번 읽어보자. 

水陸草木之花(수륙초목지화)
可愛者甚蕃(가애자심변)
晋陶淵明獨愛菊(진도연명독애국)
自李唐來世人甚愛牧丹(자이당래세인심애목단) 

물이나 뭍에서 사는 풀이나 나무의 꽃 가운데
사랑할 만한 것은 매우 많다.
진나라 도연명은 유독 국화를 사랑했고
이씨의 당나라 이래 세상 사람들은 모두 모란을 매우 사랑했다. 

予獨愛蓮之(여독애련지)
出於泥而不染(출어니이불염)
濯淸漣而不妖(탁청연이불요)
中通外直不蔓不枝(중통외직불만부지) 

내가 유독 연꽃을 사랑하는 까닭은
진흙에서 피어났지만 더렵혀지지 않고
맑은 물에 씻어도 요염하지 않으며
속은 비었으나 겉은 꼿꼿하고 덩굴도 가지도 치지 않으며 

香遠益淸亭亭淨植(향원익청정정정식)
可遠觀而不可褻玩焉(가원관이불가설완언)
予謂菊花之隱逸者也(여위국화지은일자야)
蓮花之君子者也(연화지군자자야) 

향기는 멀수록 더욱 맑고, 깨끗하고 꼿꼿하게 서 있으며
멀리서 바라볼 수는 있으나 함부로 만지고 놀 수는 없다
내 생각에, 국화는 꽃 가운데 숨어 사는 이요
모란은 꽃 가운데 부귀자요
연꽃은 꽃 가운데 군자이다. 

噫菊之愛陶後鮮有聞(희국지애도후선유문)
蓮之愛同予者何人(연지애동여자하인)
牡丹之愛宜乎衆矣(모란지애의호중의) 

! 국화를 사랑한다는 말은 도연명 이후 들어보지 못했고
아처럼 연꽃을 사랑하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
모란을 사랑하는 사람은 당연히 많으리라 


   
▲ 부여궁남지, 안석준, 한지에 수묵담채, 2007년, 57 X 122cm.jpg

   
▲ 궁남지의 연, 오용길, 2007년, 화선지에 수묵담채, 118X88.5cm

궁남지에서 열리는 부여 서동 연꽃축제를 한 바퀴 돌며 필자는 생각해본다. 저 연꽃들은 지금 무슨 꿈을 꿀까? 오가 하스연의 꽃잎은 눈처럼 흰 몸의 끄트머리에만 엷은 분홍빛을 남겨두고 있어 애잔하게 느껴진다. 온통 흰옷으로만 치장한 백련도 있고, 몸 전체에 붉은 빛이 돋는 홍련도 있다. 이웃 없이 핀 한 송이 연꽃은 비애스러워 보인다.  

연꽃 밭에서는 연한 색이라 해서 진한 빛깔에 주눅 들지 않는다. 그렇다고 진한 빛깔이 연한 색깔을 압도하지 않는다. 오히려 연한 색이 진한 색을 두드러지게 배려해주고 진한 빛깔 때문에 연한 빛깔은 생기를 찾는다. 노란 꽃의 화사함은 결코 붉은 꽃에 뒤지지 않으며, 노란 꽃잎 속의 진노랑 꽃술이 더욱 돋보이는 것도 예사롭지 않다. 

이곳에서는 진하고 연한 것의 구분이 중요한 게 아니라 어울려 조화를 이루며 공생하고 있다는 것이 평화로워 보인다. 연꽃의 꿈은 진흙땅을 벗어나고 싶은 것이 아니라, 뿌리 내린 진흙탕에서 고운 꽃을 피우려는 꿈을 가진 게 확실하다. 사람도 이 연꽃들의 이치와 뭐가 다를까? 달라서도 안 되고 더도 말고 연꽃처럼만 되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연꽃 밭에서 배우는 인생공부가 한둘이 아니다. 

백제 연구의 불모지에 불씨를 지펴주시고 돌아가신 전 부여박물관장 홍사준(洪思俊, 1905~1980) 선생이 문득 떠오른다. 고사 아니 질식사하던 미래방죽에 새로운 생명의 씨앗을 뿌려주셨고, 참으로 유익한 인생공부까지 시켜 주시는 선배님들에게 다시 한 번 고개 숙여 절한다.

 

   
▲ 온통 흰색으로 단장한 백련 자태가 사람들의 눈길을 강하게 끌어당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