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신문 = 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 속풀이에서는 당대의 거물 정치인들이 삼청동 송병준의 별채에서 다나베를 초청하여 잔치를 베풀었으며 주 종목은 가곡과 궁중무용이었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그 자리에 참석자로 송병준, 이완용, 박영효 등이 거명되는데, 송병준은 일진회를 이끌며 고종의 퇴위와 한일 강제병합에 앞장섰던 인물이고, 이완용은 을사조약의 체결을 지지하는 등, 민족을 배반하는 일을 자행한 인물이며 박영효도 일제의 통치에 적극적으로 협력했던 친일파들이었다.
또한 그 자리에서 연주된 음악은 가곡과 궁중의 무용이었는데, 가곡을 선정한 배경은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는 노래로 조선조의 지식인들이 즐기던 점잖은 노래였기에 일본인에게 음악적 수준을 과시하기 위한 선택으로 보이며, 가곡의 특징으로 형식이 세련되고 정제되어 있다는 점, 16박과 10박형 장단 그 어느 것도 일체의 즉흥성이나 변형은 용납되지 않는다는 점을 이야기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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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앵전(문화재청) |
이처럼 가곡의 형식이나 장단은 매우 엄격한 편이다. 가곡은 5장 형식인데 이것은 시조시의 3형식을 확대한 것이다. 가곡은 세피리나 대금, 거문고, 가야금 등의 관현악 반주를 동반하기 때문에 노래가 시작되기 전에는 악기들만의 전주곡, 즉 대여음으로 시작하고 중간에는 간주격의 중여음이 있어서 노래는 쉬고 악기들만의 연주가 들어 있다.
선율은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장하게 흘러간다. 안정적이라 함은 음과 음의 연결이 근접으로 이동한다는 말이다. 고음에서 뚝 떨어져 저음으로 연결되거나 저음에서 고음으로 수직상행이 수시로 이루어진다면 안정감은 사라지고 극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는 음악이 될 것이다. 가곡은 또한 음을 꾸미는 시김새가 비교적 간결하고 단순하여 절제미를 잃지 않고 있는 점도 특징 가운데 하나이다. 창법이나 발음법에서도 특징이 나타난다. 뒷목을 쓰는 중후한 창법이라든가 가성(假聲)이라고 하는 속소리 창법을 불허(不許)하는 점도 특징이다. 그리고 관현악 반주의 다양한 음색과 노래의 조화를 연출해 내는 격조있는 노래라는 점에서 가곡이 다른 성악과 차이를 들어내는 특징적인 노래라 할 것이다.
어찌 보면 가곡은 재미있는 노래가 아니어서 일반인들이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노래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느짓한 장단위에 감정을 절제시킨 선율이 얹히면 부르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 모두가 하나가 되어 버리는 힘을 지닌 노래가 또한 가곡이다. 그래서 1920년 당시에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일본인 음악가를 초청한 자리에서 지루하리만큼 느린 가곡을 선정, 연출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잔치가 있던 다음날, 다나베는 총독부의 요청으로 조선악무의 영화촬영을 하게 되는데, 오전에는 주로 이왕직아악대에서 종묘와 문묘의 음악과 춤을 촬영하였고, 오후에는 요정이었던 명월관(明月館) 마당에서 기녀들이 준비한 궁중무용을 촬영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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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희 명무의 승무 |
조선의 음악과 춤을 촬영하는데 관하여 당시의 신문들은 대서특필을 했고 신문을 통해서 그리고 소문을 듣게 된 사람들이 아악대가 있던 봉상소로 구경하기 위해 몰려들었다. 촬영이 어렵게 되자 하는 수 없이 대문을 닫아걸었으나, 구경꾼들은 돌아가지 않고 어떤 사람들은 담장 위에 올라가 촬영 현장을 구경하다가 담장 일부가 허물어지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던 것이다.
촬영한 음악들은 제례악 일체와 이왕직아악대가 연주하는 관현합주였는데, 장면 장면에 따라서 특수 악기들의 주법을 클로즈업 하여 찍었고, 마지막으로 다나베와 아악사장 명완벽이 악수하며 인사하는 장면으로 끝을 맺었다고 한다.
아악대의 촬영을 마치고 오후에는 조선 최고의 유명한 요정, 명월관의 뒷뜰에서 기녀들의 궁중 연례악과 춤을 촬영하게 되었는데, 그 무곡은 <춘앵전> <무산향> <승무> <검무> <사고무> 등이었다. 다나베는 그날의 기록을 이렇게 적고 있다.
“이들의 춤은 모두 정상급이었으나 어젯밤 송백작 저택에서 본 관기의 춤에 비하면 다소 품위가 떨어지는 것 같아서 아쉬웠다. 이 영화 촬영이 모두 끝난 다음, 명월관 별실에서 나를 위해 유지들과 함께 조선요리 잔치가 열렸는데, 그 자리에서 특별히 조선의 명창 이동백(李東伯)이 극의 노래(판소리)를 들려주었다. 대사 외에 몸짓도 있었는데, 여하튼 조선 제일의 명우인 만큼 성량이나 음색이나 모두 탄복할 정도였다.”
다나베를 위시하여 참석자 모두가 탄복할 정도의 판소리 명창, 이동백은 누구인가? (다음 주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