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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이동백, 충남 서천이 낳은 판소리 대명창

[국악속풀이 204]

[한국문화신문 = 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조선의 세력가들이 다나베를 위한 만찬장에서 가곡을 들려준 것과 관련하여 가곡이 어떤 특징을 지닌 음악인가 하는 점을 간단하게 언급하였고, 궁중음악과 춤을 촬영하는 현장 이야기를 하였다.

가곡은 형식이나 선율, 시김새나 창법, 또는 발음법 등이 특징이라는 이야기와 함께 재미있는 노래가 아니어서 일반인들이 쉽게 접근하기는 어려운 노래라는 이야기, 그러나 부르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을 하나로 묶는 힘을 지닌 노래라는 이야기, 그리고  다음날 궁중음악과 춤을 촬영할 때, 이를 신기하게 여긴 구경꾼들이 모여들어 담장 일부가 허물어지는 소동이 벌어졌다는 이야기도 하였다.

명월관에서는 궁중 연례악과 <춘앵전> 등 궁중무용을 찍었고, 촬영이 끝나고 명월관 특별 연회장에는 이동백(李東伯)이 나와 판소리를 들려주었는데, 그는 조선 제일의 명우인 만큼 성량이나 음색이나 모두 탄복할 정도였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명월관 별실에서 가진 연회에 조선 명창 이동백이 어떤 소리를 들려주었는지는 분명치 않지만, 그러나 조선 제일의 명우답게 성량이나 음색이 모두 탄복할 정도라는 점에서 이동백의 위용이 대략적으로 그려지는 것이다.  


   
 
근대 판소리사에서 큰 이름을 떨친 이동백(李東伯,1867-1950)은 어떤 소리꾼이었는가?

그는 충청남도 서천에서 태어났다. 84세에 유명을 달리했으니 비교적 장수한 소리꾼이었다. 그는 평생을 판소리, 창극운동, 그리고 후진 양성 등으로 판소리 발전에 이바지한 인물이다. 원래의 이름은 이종기이고 어렸을 때의 이름이 동백이었다. 태어난 해에 아버지를 잃고 편모슬하에서 어렵게 살았으며 8~9세에 서당에서 한문공부를 했으나, 소리에 취미가 있어 글공부를 포기하고 13세 때에 김정근 문하에 들어가 소리를 배우기 시작하다가 곧이어 김세종 문하에 들어갔다.

그 이후 진주, 창원 등지에서 활동하며 이름을 날리기 시작하다가 40대 중반에 원각사가 창립되면서 서울로 올라와 김창환, 송만갑 등과 함께 창극운동을 활발하게 전개한 인물이다. 이동백을 일러 고종 때 5 명창 중의 한 사람이라고 한다. 5명창이란 일제시대(고종 후기∼1930년대)의 대표적인 판소리 명창, 다섯을 이르는 말이다.

알려진 바와 같이, 일제 강점기 때는 국권상실과 급격한 서구화의 충격으로 판소리에 많은 변화가 생기기 시작하였다. 이때 판소리를 지켜가며 창극운동에 공이 큰 5명창으로는 이동백 이외에 김창환(1854-1927), 송만갑(1865-1939), 김창룡(1872-1935), 정정렬(1876-1938) 등이다.

특히 이동백은 강건한 체격의 소유자여서 그를 대하면 누구도 겁을 먹을 정도로 맞서기가 어려웠다고 한다. 또한 그의 성음은 매우 미려하면서도 다양해서 청중을 웃기고 울리는 일을 자유자재로 했다고 하며, 특히 하청(下淸)의 웅장함은 당시 따를 자가 없을 정도였다고 하니 다나베의 표현대로“조선 제일의 명우답게 성량이나 음색이 모두 탄복할 정도”라는 말이 실감난다.

 

   
 
이동백은 심청가와 적벽가에 능했는데, 특히 그가 부른 새타령은 이날치 명창 이후에는 당대 독보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명창 송만갑과 함께 일세를 풍미하다가 1930년대 말 조선일보사가 주최한 그의 은퇴 기념식을 끝으로 현역에서 물러났다. 그의 은퇴를 아쉬워하는 애호가들이 경성 부민관에 양일간 수천에 달했다고 하니 가히 그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다. 그의 판소리제는 동편제나 서편제가 아닌 충청 판소리, 즉 중고제로 분류되고 있으며 이동백의 유명한 더늠으로는 판소리 적벽가에 나오는 <새타령>이다.

판소리의 완창시대를 연 박동진 명창은 이화중선, 이동백 등이 출연한 공연을 본 후, 본인의 말을 빌면 '눈깔이 홀랑 뒤집히는' 희열을 접하고 무작정 집을 나설 정도의 대단한 영향을 받았다고 하였다.

시대에 따라 명창들이 명멸하였으니 참고로 영, 정조 때에 판소리 초창기를 지나 순조 때에 와서는 권삼득, 송흥록, 모흥갑, 염계달, 고수관, 김제철, 신만엽, 주덕기, 박유전 등 8명창 시대가 있었고, 그 후 철종 때에도 박만순, 송우룡, 김세종, 정춘풍, 장자백, 이날치, 정창업, 김정근 등 후기 8명창 시대가 있었다.

최근에 이동백 명창이 100년 전인 1915년께 미국 음반사 '빅터'에서 녹음한 것으로 추정되는 판소리 춘향가 SP음반(유성기 음반) 희귀본 2장이 발견되어 화제를 낳기도 했다.

이제껏 그를 추모하는 사업이나 기념행사가 없었으나 다행한 것은 작년부터인가, 명창 이동백을 기리는 전국판소리 경연대회가 충남 서천군에서 열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충청남도나 서천군에서 관심과 성원을 아끼지 말고 본 대회가 의미 있는 전국대회가 되도록 힘을 기울여 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