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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변호사의 세상바라기

납치당했던 와룡매 후손, 고국에 돌아와 활짝 펴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68]

[한국문화신문 = 양승국 변호사]  지난주에 안중근 기념관의 이혜균 처장이 안중근 기념관 앞의 정원에 와룡매가 활짝 꽃을 피웠다며 홍매와 백매 사진을 찍어 보내오셨습니다. ! 와룡매가 지기 전에 보러가야 하는데... 그런데 매화는 다른 곳도 많은데, 왜 굳이 남산의 매화를 보러 가려고 하냐고요? 사실 이 와룡매는 사연이 많은 매화입니다.  

저는 이 사연을 뒤늦게 알고 난 후, 얼마 전에 동서 부부들과 남산 간 김에 잠시 와룡매를 보러 갔었습니다. 그런데 안내문이 없어 어느 나무가 사연 많은 와룡매인지 알 수 없어, 대충 짐작이 가는 나무에 눈길만 주고 왔네요. 그래서 그 이야기를 이혜균 처장에게 얘기를 했더니, 이번에 와룡매가 꽃이 피는 화려한 시간에 사진을 찍어 보내오셨네요. 

   
 

   
▲ 안중근 기념관 앞 정원에 심어진 와룡매 후손 2

! ! 제가 와룡매’, ‘와룡매하면서, 아직도 와룡매가 무엇인지 제대로 설명을 안 드렸군요. 이거~ 성질 급하신 분들은 벌써 슬슬 눈꼬리가 올라가고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하하! 말씀드리겠습니다. 와룡매는 임진왜란 때 조선을 침략한 미야기현 센다이의 맹주 다테마사무네(伊達政宗)가 매화의 자태가 너무 마음에 든다며 1593년 일본으로 납치해간 매화인데, 매화의 모습이 용이 누워있는 자태와 닮았다고 하여 와룡매(臥龍梅)라고 합니다.  

이렇게 일본으로 납치된 와룡매는 1609년 다테가()의 보리사(菩提寺)인 마츠시마(松島)의 즈이간지(瑞巖寺)를 중건할 때에 절 본당 앞으로 옮겨 와, 이때부터 400여 년간 화려한 빨간 매화와 순백의 매화꽃을 피우며 즈이간지를 대표하는 유명한 매화가 됩니다. 그리고 와룡매는 옆으로 누운 뛰어난 자태에다가 진한 꽃향기와 열매를 자랑하고 있어 미야기현 유형문화제22호로도 지정되어 있습니다. 

그러다가 즈이간지의 129대 주지로 부임한 히라노소죠(平野宗淨) 스님이 일본의 무의미한 침략으로 조선에 많은 피해를 입힌 것에 대해 참회한다는 뜻으로 와룡매를 한국에 반환하겠다고 합니다. 물론 애초 납치된 와룡매는 이미 매화들의 천국으로 돌아갔기에, 그 후손 매화를 돌려주겠다는 것이었지요.  

그리하여 1999326일 안중근 의사 순국 89주기를 맞아 홍매와 백매 한 쌍이 드디어 고국으로 돌아왔고, 돌아온 와룡매 후손은 이곳 남산공원에 심었습니다. 당시 안중근 기념관에서 와룡매 후계목 환국식도 거행하였다는군요. 와룡매는 원래 지금 있는 안중근 의사 기념관 앞 정원이 아니고, 처음에는 남산식물원 앞에 심었습니다. 그런데 요즈음 남산식물원 자리에서 한창 한양도성과 일제시대의 조선신궁터 유물 발굴 작업을 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의 자리로 피난 온 것입니다. 

그나저나 히라노소죠 스님이 왜 와룡매 후계목을 안중근 기념관에 반환하게 되었을까요. 199896일 미야기현의 다이린지(大林寺)에서 열린 제18회 안중근 의사 추도법회가 끝나고 난 후, 한일친선 간담회가 열렸는데, 이 자리에 히라노소죠 스님도 참석하였었지요. 스님은 안중근 의사의 의거에 감명을 받았던지, 이 자리에서 자기네 절에 임진왜란 때 조선에서 가져온 와룡매가 있는데, 마침 당시 그 와룡매 묘목을 생산해내는데 성공했음을 밝히면서, 이 묘목을 한일 우호친선의 상징으로 안중근 기념관에 기증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힌 것이지요 

 

   
▲ 일본 서암사 경내의 와룡매 어미나무

이에 안중근 기념관측에서도 환영의 뜻을 표하여 구체적인 반환 절차를 위해 몇 차례 실무진이 현해탄을 오간 후 1999310일 드디어 와룡매의 후계자는 고국의 품으로 돌아옵니다. 400여년만의 귀향인데, 이왕이면 와룡매가 처음 납치되었던 그 장소에 심는 것이 좋을 것이나, 다테마사무네가 구체적으로 어느 장소에서 와룡매를 납치해갔는지는 기록상 명백하지 않은 모양입니다.  

! 왜 일본에서 안중근 의사 추도법회를 하느냐며 의아해 할 분도 있겠군요. 안 의사가 이또오 히로부미를 저격한 뒤 여순 감옥에 수감되어 있을 때에, 안 의사를 감시하던 간수 치바 도시찌는 안 의사의 인품에 감복하여 진심으로 안 의사를 존경하게 됩니다. 안 의사는 이런 치바에게 위국헌신 군인본분(爲國獻身 軍人本分)’이라고 쓴 유묵을 선물해주었습니다.  

치바는 제대하고 고향 미야기현으로 돌아온 후 안 의사의 위패를 자신의 집안에 모시고 목숨이 다할 때까지 평생 안 의사를 공양하였으며, 치바가 죽은 후에는 그의 아내가 남편의 유언에 따라 안 의사를 공양하였습니다. 그리고 치바의 아내마저 죽은 후에는 양녀가 이를 이어받아 공양하다가, 양녀가 집에서 모시기가 힘이 들었던지 다이린지(大林寺)에 안 의사의 위패를 모셨지요. 

그 후 치바의 후손들도 안 의사의 유묵을 한국에 돌려줌이 마땅하다고 생각하여 19791211일 이를 한국에 반환하였고, 그 대신 19819월 초순경 다이린지(大林寺) 경내에는 爲國獻身 軍人本分유묵비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이 때부터 해마다 9월 첫 번째 일요일에 안 의사 추도법회가 열리는데, 한국에서도 매번 이 추도법회에 참석해오고 있는 것이지요.  

저도 작년에 처음 참석하여 많은 감동을 받고 왔고요. 어쨌거나 와룡매가 고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안중근 의사의 음덕이 아니겠습니까? 와룡매! 다음에 너를 찾을 때에는 결코 너를 소홀히 대하지 않으리라.(2015. 4.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