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통신 = 권효숙 기자]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인 우리나라에서 냉전시대의 상징물로 전 세계적으로 관심을 받고 있는 비무장지대 DMZ가 새로운 관광자원으로 재탄생하여 제3땅굴 및 도라산전망대에는 일년에 관광객 80만 명이 넘고 그 중에 외국인 방문객은 50%가 넘는다. 임진강가를 따라 길게 뻗은 철조망, 그 너머로 철새는 자유롭게 넘나들지만 이곳은 1만 여개의 지뢰와 전쟁의 상흔으로 민간인이 자유롭게 거주할 수 없는 민통선 지역이다. 그러나 이 지역에 최근 숙박을 하며 DMZ를 체험할 수 있는 유스호스텔 캠프그리브스 DMZ체험관이 생겨서 이 곳을 찾는 많은 이들과 함께 평화와 공존을 이야기 하는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다. ▲ 캠프그리브스 DMZ체험관 유스호스텔 전경 이곳은 이제 분단과 아픔만을 가진 긴장감 감도는 전쟁의 흔적으로 남은 땅이 아닌 남북통일의 전진기지이자 생태계의 무한한 보고, 그리고 관광과 역사가 살아있는 교육의 장으로 그 가치가 재평가 되고 있다. DMZ 남방한계선에서 불과 2㎞ 떨어진 곳에 위치한 캠프그리브스는 한국전쟁 이후 50년 간 미군이 주둔하던 공간이었다. 2004년 미군 철수 이후 2007년 8월 한국정부에 반환되었고
[그린경제/얼레빗 = 권효숙 기자] 어서 오세요! 한국전쟁의 아픈 역사를 담은 곳, 민간인통제구역안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의 이야기 자리를 이렇게 마련하였습니다. 그런데, 별로 펼쳐놓지는 못했습니다. 40년 전, 자유의 다리 검문소 앞에서 경운기에 타고, 싣고 들어온 이삿짐이었으니 무엇이 남았겠습니까? 이미 전쟁 피난길에 잃어버린 살림이었습니다. 그래도, 이 몇 가지를 빌미로 마을이 생긴 내력과 이 마을을 일구어낸 우리들의 의지를, 그리고 지금도 휴전선 옆에서 농사를 짓고 사는 우리 속내를 한 번쯤 돌아봐 주시기를 바랍니다. 전쟁, 그리고 휴전이 지금의 현실임을. 그래서 무엇이 필요한지를 함께 공감해 주시기를 기대합니다. 먼 길, 방문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2013. 8. 14. 대한민국 경기도 파주시 통일촌 주민 일동 ▲ 통일촌 마을박물관 입구 통일촌은 경기도 파주시 군내면 백연리, DMZ 서부전선 민간인통제구역 안에 자리 잡은 마을로 군사분계선 남방 4.5km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전쟁 전에는 이 마을을 중심으로 민씨, 최씨, 박씨, 이씨 등 집성촌이 있었던 지역이다. 1973년 8월, 분단으로 인해 떠나야만 했던 고향으로 80호가 입주하여 지뢰와
[그린경제=권효숙기자] 어서 오세요!한국전쟁의 아픈 역사를 담은 곳,민간인통제구역안에서 살고 있는우리들의 이야기 자리를 이렇게 마련하였습니다. 그런데, 별로 펼쳐놓지는 못했습니다.40년 전, 자유의 다리 검문소 앞에서경운기에 타고, 싣고 들어온 이삿짐이었으니무엇이 남았겠습니까?이미 전쟁 피난길에 잃어버린 살림이었습니다.그래도, 이 몇 가지를 빌미로 마을이 생긴 내력과 이 마을을 일구어낸 우리들의 의지를, 그리고 지금도 휴전선 옆에서 농사를 짓고 사는우리 속내를 한 번쯤 돌아봐 주시기를 바랍니다.전쟁, 그리고 휴전이 지금의 현실임을.그래서 무엇이 필요한지를 함께 공감해 주시기를 기대합니다.먼길, 방문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2013. 8. 14. 대한민국 경기도 파주시 통일촌 주민 일동통일촌은 경기도 파주시 군내면 백연리, DMZ 서부전선 민간인통제구역 안에 자리 잡은 마을로 군사분계선 남방 4.5km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전쟁 전에는 이 마을을 중심으로 민씨, 최씨, 박씨, 이씨 등 집성촌이 있었던 지역이다. 1973년 8월, 분단으로 인해 떠나야만 했던 고향으로 80호가 입주하여 지뢰와 철조망으로 각인된 DMZ 인근에서 분단 이전 고향의 역사를 이어가고 있
[그린경제/얼레빗=권효숙 기자] 말의 해, 갑오년 청말의 해가 밝았다. 말은 12지 중에서 일곱 번째 동물이다. 말은 탄력있고 미끈하며 탄탄한 근육을 갖고, 기름진 모발과 단단한 말굽을 가지고 빠르게 질주하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어 아주 강인하고 생동감을 갖고 있는 동물이다. ▲ 그림 이무성 한국화가 말은 사람의 생활 속에서 아주 오래 전부터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어서 역사책이나 신화,전설, 민속 등에서도 자주 등장하곤 한다. 파주 지역에서도 말과 관련된 이야기가 많은데 그 가운데 하나가 말무덤 이야기다. 이유길은 임진왜란 때 18세에 부친을 잃고 격분하여 상중의 몸으로 이순신 장군을 따라 명랑해전에서 전공을 세운 인물이다. 그러다가 임란이 종결되고 몇 년 후 1619(광해군11)년 명나라가 금나라의 침입을 막기 위해 원군을 요청하게 되는데, 그때 영유현령이 된 후 도원수 강홍립을 따라 우영장으로 선봉장이 되어 가게 된다. 그는 중국 심하지방에 출전하여 명나라의 유정과 분전하여 싸우던 중 칼을 맞는다. 이유길은 죽음이 다가오자 옷소매를 찢어 머리칼, 손톱, 발톱을 싸서 타던 말에다 매달아 말을 채찍질을 하였더니 이곳까지 말이 달려와 비명소리를 지르고는 죽었
[그린경제=권효숙기자] 파주삼릉에는 예종이 세자였을 때 세자빈으로 맞았던 장순왕후 한씨의 공릉과 성종의 첫 번째 왕비 공혜왕후의 순릉. 그리고 영조의 첫째아들 효장세자이며, 정조의 법적 아버지인 진종의 영릉 이렇게 삼릉이 조성되어있다. 지난 9월 14일 토요일 영릉에서 진종 소황제와 효순소황후를 위한 기신제가 있어 많은 시민들과 전주이씨종약원의 여러분들이 모여 정성을 올렸다. 진종은 영조의 후궁 정빈이씨의 소생으로 영조의 첫아들이라 3살 때 세자 책봉을 받은 후 9살에 13세인 풍양조씨 세자빈을 맞아 혼례를 올렸으나 다음 해에 병으로 사망하였다. 세자빈 조씨는 자식 없이 살다 37세에 창경궁에서 사망하여 남편의 묘와 쌍분으로 모셔졌다. 후손이 없었으나 동생 사도세자의 아들 정조가 법적인 양아들이 되면서 임금의 아버지로서 진종의 시호를 받았고 조선 말 고종의 황제국 선포로 소황제로 다시 추존되었다. 이 날 찾아 온 파주지역의 학생들과 시민들은 제향 때 진설해 올리는 떡만들기 체험도 해보고 제향절차에 대한 해설도 들으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조선왕릉의 문화적 가치를 다시 음미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그린경제/한국문화신문 얼레빗=권효숙 기
[그린경제=권효숙 기자] 교하 노씨(交河盧氏)의 시조는 노오(盧塢)이다. 당나라에서 한림학사를 역임하고 신라로 건너온 노수(盧穗)의 둘째 아들로서 교하백(交河伯)에 봉해졌다. 《교하노씨세보》에 따르면 오(塢)의 후손 강필(康弼)이 신라 말에 기계라는 곳에서 살면서 학문이 뛰어나 문명을 떨쳤고, 관향을 장산(章山)으로 옮겼다가 태조를 도와 고려 창업에 공을 세우고 통합삼한개국공신으로 태자태사에 오르고 선성부원군(宣城府院君)에 봉해져서 교하(交河)로 복관(復貫)하였다고 한다. ▲교하노씨 파주문중에서 노사신의시제를 지내고 있다 그리하여 후손들이 관향을 교하로 삼고, 강필을 일세조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오면서 인재를 많이 배출시켜 명문의 기초를 다졌다. 노씨는 선대의 묘가 주로 개성에 있어 고려 때까지는 개성에 머물다가 조선에 들어와 파주로 옮긴 듯하다. ▲ 교하노씨 공숙공파의시제지내는 모습 가문을 일으킨 대표적인 인물로 2세손 안맹(安孟)이 동서면병마사를 역임했고, 그의 아들 영순(永醇)은 요즘으로 치면 국무총리 쯤 되는 문하시중(門下侍中)과 평장사(平章事)를 지낸뒤 감수국사(監修國史)에 올라 『고려사』 열전에 등장하는 등 가문을 중흥시켰다.
[그린경제=권효숙 기자] 파주 염씨(坡州廉氏)의 본관은 파주(坡州) 단일본이다. 문헌에는 파주 외에도 개성 광주 양주 충주 등 여러 본이 전하나 모두 파주 염씨의 분파 세거지(世居地)이다. 파주 염씨를 봉성 또는 서원(瑞原) 염씨라 했는데, 이는 모두 파주의 옛 별호이다. 시조는 고려 건국 때의 삼한공신으로 사도에 오른 염형명(廉邢明)이며, 중시조는 고려 공민왕, 우왕 등 다섯 임금을 섬기는 동안 문하시중을 지내고, 곡성부원군이 된 명재신 충경공 염제신(廉悌臣)이다. ▲ 2007년 5월 6일 강화사단 시향제 염제신에게는 고려 공민왕이 친히 그려 하사한 초상화가 있는데,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또 돌아가신 후 충경공 시호가 내려졌고, 왕명에 의하여 목은 이색이 찬하고 한수가 쓴 신도비가 경기도 장단군 묘소 앞에 세워졌다. 파주 염씨는 고려시대의 명문세도가로 신약(信若)은 명종 때의 명신으로 효자정문이 세워졌으며, 신약의 손자 승익(承益)은 충렬왕 때 크게 세도를 떨쳤고, 또 중시조 염제신의 아들 3형제 중 장남인 국보(國寶)가 예문관대제학을 거쳐 서성군(瑞城君)에, 차남 흥방(興邦)은 공민왕 6년 문과에 장원급제하여 좌대언을 지내고 성균관대사성을
[그린경제=권효숙 기자]8월 3일 오후 6시 30분부터 파주 임진각 평화누리에서 경기도가 정전 60주년을 기념해 '경기도 DMZ 세계평화 콘서트'를 개최한다. 관람료는 무료이다. ▲ 임진각 평화누리 전경 이번 행사는 가수 김장훈(사진)이 총 기획 및 연출을 맡아 진행하며 유튜브를 통해 세계로 생중계된다. 출연진은 안성기, 최민수, 비스트, 에프엑스, 걸스데이, 에일리, 샘해밍턴, 케이헌터 등 일본그룹 LUV도 출연한다. ▲ 평화누리 바람의 언덕 이번 콘서트가 특히 주목받는 이유는 세계평화 콘서트 출연자 전원이 출연료 전액을 기부하기로 한다는 것 때문이기도 하다. 기부천사 김장훈의 소속사 공연세상은 김장훈이 총 기획하고 연출을 맡은 정전60주년 경기도DMZ세계평화콘서트의 출연자 전원이 출연료 전액을 기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 이번 콘서트의 총 기획 및 연출을 맡은 김장훈 공연세상 관계자는 섭외 처음부터 출연을 결정한 출연자 및 소속사들이 좋은 행사인 만큼 노개런티를 먼저 얘기했었다고 말문을 열었다. 김장훈은 살아오면서 많은 감동을 느껴봤지만 이번 일이 가장 감동적이지 않나 생각한다. 그냥 기적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단순한 페스티발
[그린경제=권효숙기자] 묏 버들 가려 꺾어 보내노라, 님의 손에 자시는 창밖에 심어두고 보소서 밤비에 새 닙 곳 나거든 날인가도 여기소서 (산에 있는 버들가지를 골라 꺾어 임에게 보내오니, 주무시는 방의 창문가에 심어두고 보십시오. 행여 밤비에 새 잎이라도 나거든 마치 나를 본 것처럼 여기소서.) ▲ 고죽 최경창의 무덤 연시(戀詩)를 읽으면 누구나 마음이 달달해진다. 요즘엔 문자메세지나 전화통화로 연인들이 마음을 전하지만 불과 몇 십 년 전만 해도 밤에 조용히 음악을 틀어놓고 편지를 쓰며 연인을 생각하곤 했다. 위의 시는 홍랑이라는 관기가 부임해온 최경창이라는 젊은 관리를 사모하다 최경창이 서울로 돌아가게 되자 배웅 나왔다가 작별하고 돌아가는 길에 지어 최경창에게 보낸 시이다. 비록 몸은 멀리 떨어져 있어도 임에게 바치는 순정은 묏버들처럼 항상 님의 곁에 있겠다고 다짐하며 연정가를 보낸 것이다. 최경창은... 조선 중기, 시를 멋지게 잘 쓰는 젊은 관리가 있었다. 고죽 최경창(孤竹 崔慶昌, 1539,중종34 ~ 1583, 선조16)은 평안 병마절도사 수인(守仁)의 아들로 전라도 영암에서 출생하였다. 자는 가운(嘉運)이고 호는 고죽(孤竹)이다. ▲
[그린경제=권효숙 기자] 조선시대 전기에는 억울한 일이 있거나 민원을 올릴 때 신문고를 울려 조정에 알리는 제도가 있었는데, 조선 후기에는 이를 대신하여 상언(아랫사람이 임금에게 올리는 글로 임금에게 민의를 직접 호소하는 수단), 격쟁, 와언(유언비어를 퍼뜨림), 괘서(이름을 숨기고 글을 써 정부를 비난), 산호(산에 올라가 욕지거리를 하며 읍정을 비판) 등을 이용하여 민원을 제기하였다. 이 중에 격쟁은 백성들이 궁궐에 난입하거나 국왕이 대궐 밖을 나올 때 징.꽹과리.북 등을 쳐서 눈과 귀를 집중시킨 다음 억울함을 임금에게 직접 호소하는 수단으로서 이 격쟁을 가장 잘 받아들인 임금이 정조이다. ▲ 정조의 화성행차도.정조는 이러한 행차시에 백성들의 격쟁을 많이 받아들여 해결해 주었다 정조는 수원 화성과 아버지 융릉을 다녀오는 행차에서 수많은 백성들의 민원을 현장에서 접수하고 처리했는데 자그만치 재위기간 24년 동안 4천427건이나 되었다. 이것만 보아도 정조가 얼마나 백성을 생각하는 마음이 컸는지 알 수 있겠다. 정조는 자신을 호위하는 호위대 밖에서 격쟁하는 위외격쟁(衛外擊錚)과 행차시 어가 앞에서 문자로 호소하는 가전상언(駕前上言)을 적극 받아들여 가능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