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무식한 무리들이 요사스러운 말에 혹하여, 질병이나 초상이 있으면 즉시 야제(野祭, 길가나 들에서 지내는 제사)를 행하며, 이것이 아니면 이 빌미[祟, 재앙이나 병 따위 불행이 생기는 원인]를 풀어낼 수 없다고 하여, 남녀가 떼를 지어 무당을 불러 모으고 술과 고기를 성대하게 차리며, 또는 중의 무리를 끌어오고 불상(佛像)을 맞아들여, 향화(香花)와 다식(茶食)을 앞에 벌려 놓고는 노래와 춤과 범패(梵唄)가 서로 섞이어 울려서, 음란하고 요사스러우며 난잡하여 예절을 무너뜨리고 풍속을 상하는 일이 이보다 심함이 없사오니, 수령들이 엄하게 금하고 다스리되, 만일 범하는 자가 있으면 관리와 이(里)의 정장(正長)ㆍ색장(色掌) 등을 함께 그 죄를 다스리게 하옵소서.“ 위는 《세종실록》 53권, 세종 13년(1431년) 8월 2일 기록으로 사헌부가 백성들이 길에서 제사를 지내는 것과 무당이 하는 굿 그리고 불공을 하지 못하도록 하자고 임금께 아뢰는 내용입니다. 고려시대에는 불교가 성했지만, 조선시대는 성리학이 나라의 근본이 되면서 불교를 억압하기 시작했으며, 그 바람에 큰 절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기도 했습니다. 그뿐만이 아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김제(金堤)의 ‘벽골제(碧骨堤)’는 신도 또한 한 번 가서 보았는데, 그 둑을 쌓은 곳이 길이가 7천1백 96척(1척≒ 30.3cm, 약 2.18km)이고 넓이가 50척(약 15m)이며, 수문이 네 군데인데, 가운데 세 곳은 모두 돌기둥을 세웠고 둑 위의 저수한 곳이 거의 일식(一息, 30리로 약 11.79km)이나 되고, 뚝 아래의 묵은 땅이 광활하기가 제(堤, 방둑)의 3배나 됩니다. 지금 농사일이 한창이어서 두루 볼 수 없으니, 농한기를 기다렸다가 상하의 형세를 살펴 다시 아뢰겠습니다.” 위는 《태종실록》 30권, 태종 15년(1415년) 8월 1일 치 기록으로 전라도 관찰사 박습이 김제(金堤)의 ‘벽골제(碧骨堤)’에 관해 아뢰는 내용으로 이에 태종은 장흥(長興)ㆍ고흥(高興)ㆍ광양(光陽)의 세 성을 쌓는 것은 멈추고 먼저 벽골제(碧骨堤)를 쌓으라고 합니다. 문화유산청에서 사적으로 지정한 김제 벽골제는 백제 비류왕 27년(330년) 김제평야에 벼농사를 짓기 위하여 인공적으로 제방을 쌓아서 생긴 둑이라고 하지요. 제방을 쌓아 제방 위는 거대한 저수지가 되고, 제방 아래는 거대한 농토가 되게 하여 김제평야는 벼농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지금으로부터 119년 전인 1905년 7월 29일 미국과 일본은 저 악명높은 “가쓰라-태프트 비밀협정”을 맺습니다. 일본의 내각총리대신 가쓰라 다로와 미국의 전쟁부 장관 윌리엄 태프트 사이에 오간 식민지 경영 밀약입니다. 미국은 일본에게 러시아를 견제해달라고 하면서 대신 조선 침략을 인정하고 일본은 미국의 대중국 전략의 다리인 필리핀에 대한 미국의 지배를 인정하면서 아시아 패권구도를 정리한 것입니다. 이 결과, 조선은 미국의 도움에 따라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습니다. 이 가쓰라-태프트 밀약 이후 미국과 일본은 채 1년도 안 되는 기간에 걸쳐 모두 네 차례의 협정을 맺어 일본의 한국 지배를 몇 번씩 재확인하는 과정을 거쳤다고 합니다. 이렇게 밀약을 맺은 태프트(William Howard Taft, 1857~1930)는 훗날 27대 미국 대통령이 되었고, 가쓰라 다로(かつらたろう[桂 太郎] 1847~1913)는 을사늑약과 한일강제병합시기에 이르기까지 총리대신을 지냈으니 미-일의 동아시아 제국주의 동맹체제 역사는 오래 지속된 것입니다. 이후 아시아-태평양 전쟁 종전이 있은 1945년 뒤 제2의 가쓰라-태프트 체제는 복원됩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말은 사람과 사람의 뜻을 통하는 것이라. 한 말을 쓰는 사람끼리는 그 뜻을 통하여 살기를 서로 도와주므로 그 사람들이 절로 한 덩이가 지고, 그 덩이가 점점 늘어 큰 덩이를 이루나니, 사람의 제일 큰 덩이는 나라라. 그러하므로 말은 나라를 이루는 것인데, 말이 오르면 나라도 오르고 말이 내리면 나라도 내리나니라. 이러하므로 나라마다 그 말을 힘쓰지 아니할 수 없는 바니라.” 이 말은 말이 겨레의 정체성이요, 독립 번영의 연장이라는 뜻으로 110년 전인 1914년 오늘(7월 27일) 세상을 뜨신 한힌샘 주시경 선생(1876~1914)이 하신 말씀입니다. 평생 배달말(우리말)을 올곧게 사랑하고 실천하고 가르치신 주시경 선생은 우리 말글을 갈고 닦아 가르치는 일이야말로 암울한 시대에 국권을 회복하고 겨레의 독립을 유지할 수 있는 큰 힘이라고 믿었던 분입니다. 한힌샘 주시경 선생은 당시 유일하게 한글을 가르친 교육자로 “주보따리”란 별명처럼 커다란 책보를 끼고 동분서주했지요. 선생은 언제나 한복 두루마기 차림이었는데 한복 속에 우리 겨레의 얼이 들어 있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훈민정음을 언문(諺文), 가갸글, 조선글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작은 연못 - 김민기 깊은 산 오솔길 옆 자그마한 연못엔 지금은 더러운 물만 고이고 아무것도 살지 않지만 먼 옛날 이 연못엔 예쁜 붕어 두 마리 살고 있었다고 전해지지요. 깊은 산 작은 연못 어느 맑은 여름날 연못 속에 붕어 두 마리 서로 싸워 한 마리는 물위에 떠오르고 여린 살이 썩어 들어가 물도 따라 썩어 들어가 연못 속에선 아무것도 살 수 없게 되었죠 아침이슬, 상록수, 작은 연못, 내나라 내겨레, 공장의 불빛, 친구, 봉우리, 늙은 군인의 노래 등 수많은 명곡을 세상에 남긴 김민기는 지난 7월 21일 73살 삶을 내려놓고 영면에 들었다. 지난 4월 SBS스페셜 3부작 <학전 그리고 뒷것 김민기> 다큐를 보면서 존경의 마음을 금할 수 없었던 김민기가 세상을 뜬 것이다. 조승우, 설경구, 황정민 등 유명 영화배우와 김광석 같은 전설적인 가수를 키워낸 김민기는 대학로 학전을 운영하면서 늘 ‘뒷것’을 자처했다. 그는 연극계에 처음 계약서를 도입하고 수입을 공개한 다음 일일이 배우들과 제작진들에게 고마움을 담아 월급을 주었음은 물론 배고팠던 배우들의 밥을 꼭 챙겼다는데 배우들은 앞것, 자기는 앞것들의 뒤를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백성은 먹는 것으로 하늘을 삼으니 관계된 것이 매우 중합니다. 쌀의 품질이 세 가지가 있는데 각기 쓰이는 바는 달라도 모두 먹을 수는 있습니다. 근래에는 인심이 교묘하게 속이기를 잘해서 오직 더 남겨 이익 취할 것만 도모하여 모든 쌀에 모래를 섞는데, 시전(市廛)이나 마을에서 거리낌 없이 통용합니다. 비록 날마다 금하여 다스리지만 조금도 두려워하여 중지하지 않으므로 만약 엄하게 금지 조항을 세우지 않는다면, 징계하여 단절시킬 수가 없을 것입니다." 이는 《명종실록》 26권, 명종 15년(1560) 7월 19일 치 기록으로 명종이 쌀에 모래를 섞어 파는 미곡상을 엄히 다스릴 필요가 있다는 사헌부의 청에 그렇게 하라고 전교한 내용입니다. 현대에는 일반미를 인기가 좋은 경기미로 포장을 바꾸는 일이나, 중국산 쌀을 국산 쌀로 둔갑시키는 일들이 벌어져 미곡상이 처벌받는 일이 있었지만, 조선시대엔 얼마나 먹거리가 부족했으면 쌀에 모래를 섞었을까요? 조선시대 대부분 가난한 백성은 가뭄과 큰비로 흉년이 들면 먹을 것이 없어 흙까지 먹을 정도였습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이런 백성의 굶주림에 관한 이야기가 자주 등장하는데 가장이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오늘은 24절기 가운데 열두째인 대서(大署)입니다. 그리고 사흘 뒤면 중복(中伏)으로, 아직 장마철이기는 하지만, “염소뿔도 녹는다.”라는 속담이 있을 만큼 더위가 가장 심한 때입니다. “쇠를 녹일 무더위에 땀이 마르지 않으니”라는 옥담(玉潭) 이응희(1579~1651) 시 가운데 나오는 구절은 이즈음의 무더위를 잘 표현해 주고 있는데 이런 불볕더위, 찜통더위에도 농촌에서는 논밭의 김매기, 논밭두렁의 잡초베기, 퇴비장만 같은 농작물 관리에 쉴 틈이 없지요. 이때 우리는 ‘폭염주의보’와 ‘폭염경보’를 알리는 기상청의 재난문자를 받고는 합니다. 여기서 하루 가장 높은 기온이 33도 이상인 때가 이틀 이상 이어지면 ‘폭염주의보’를, 35도 이상인 때가 이틀 이상 이어지면 ‘폭염경보’를 보냅니다. 그런데 기상청은 한자어 폭염(暴炎), 폭서(暴暑)를 쓰고 있지만 더위를 뜻하는 우리말은 무더위, 된더위, 가마솥더위, 찜통더위, 강더위, 불볕더위, 불더위처럼 참으로 많습니다. 여기서 이 말들을 두 종류로 나눠볼 수 있는데 먼저 장마철에 습도가 매우 높아, 찌는 듯 견디기 어려운 더위는 무더위, 찜통더위, 가마솥더위입니다. 이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어제(7월 20일) 저녁 6시 서울 금천구 금천뮤지컬센터에서는 프로젝트팀 창작단 '햇모로' <이끌림, 그리고> 공연이 열렸다. 이 작품의 초연은 인천항구프렌즈페스티벌에서 뽑힌 '운명 같은 인연'의 작품을 극 중심으로 재구성하였으며, 지난해 8월 22일 GAF 공연예술제 단막극 〈이끌림〉으로 출전한 것을 이번 전문 국악극 연출가, 전문 연극 및 뮤지컬 연출가, 전문국악실내악단, 전문 무용수들과 협업하여 <이끌림, 그리고>로 완성도를 높인 것이다. 일반인들에겐 조금 생소한 장르일 수도 있는 융합극은 무대에 올려진 악기를 통해 표현하는 음악과 춤 그리고 영상과 낭독이 각자의 영역에서 자신의 심중을 드러내지만, 결국 그것은 하나로 향하는 극을 말한다. 무대 위에서 연기하는 몇 사람의 연기자가 중심이 되고 다른 것들은 연기자를 뒷받침하는 것에 불과한 다른 장르와 달리 각자가 나름의 개성을 보여주면서도 마지막으로는 하나의 결론에 도달하게 만드는 것이다. 무대는 먼저 신새봄 소리꾼이 판소리 <춘향가>의 ‘쑥대머리’ 창에서 시작한다. 눈이 펑펑 내리는 산길 느닷없이 나비가 나타난다. 그리곤 자아는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내 마음대로 할진대는 육례를 행할 터이나, 그러덜 못 하고 개구녁서방으로 들고 보니 이 아니 원통하랴? 이얘 춘향아, 그러나 우리 둘이 이 술을 대례 술로 알고 묵자.” 이는 《열녀춘향수절가》 곧 《춘향전》에 나오는 대목으로 “이 도령이 춘향 어머니에게서 혼인 승낙을 받은 뒤 마음 같아서는 정식 혼례 절차를 갖추고 싶으나 그렇지 못하고 합방을 하니 안타깝다.”라는 말이지요. 여기서 ‘개구녁’은 ‘개구멍’의 사투리인데 ‘개구멍’은 울타리나 담장 밑으로 남몰래 드나들 수 있도록 허술하게 낸 구멍이나 통로를 뜻하기 때문에 ‘개구멍서방’이란 떳떳하게 예식을 치르지 않고 남몰래 드나들면서 여자를 만나는 짓, 또는 그런 서방을 뜻합니다. 그런데 이 ‘개구멍’과 덧붙여진 말로 ‘개구멍바지’, ‘개구멍받이’ 같은 말도 있습니다. 여기서 ‘개구멍바지’는 오줌이나 똥을 누기에 편하도록 밑을 터서 만든 5~6살 어린아이가 입던 한복바지를 이르고, ‘개구멍받이’는 “남이 개구멍으로 밀어 넣은 것을 받아 기른 아이”를 이르지요. 예전에는 아이를 낳고도 가난 때문에 키울 수가 없어서 형편이 나은 집 개구멍에 갓난아이를 밀어 넣는 일이 종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은화의 거동봐라 가느다란 양금채를 양손에 번뜻 들고, 워따 이놈 양금아 줄이있어 현악기오, 때려놓으니 타악기라 멜로디 리듬 하나되어 음들이 퍼지나니 속삭이듯 작은소리, 표효하듯 강.한.소리 화려한 테크닉에 양금이 춤을 추네. 장구 꽹과리 장단을 맞춰, 가야금 태평소 생황 불며 양금의 영역을 확장하는, 그 이름 윤은화라 7월 17일 저녁 7시 30분 국립극장 ‘하늘극장’에서는 여우락 페스티벌 가운데 윤은화의 <페이브(PAVE)> 공연이 펼쳐지는 가운데 진행자로 나선 소리꾼 서진실이 윤은화를 대상으로 해서 판소리로 부른 대목이다. 진행자로 소리꾼을 고른 것은 탁월했다. 바로 소리의 사설이 윤은화를 그대로 얘기해주고 있음이 아니던가? ‘여우락 페스티벌’은 올해로 15회를 맞이한 국립극장의 대표적 프로그램의 하나다. ‘가장 빛나는 우리 음악의 관측’을 주제로 원ㆍ선ㆍ점 세 가지 주제 아래 23일 동안 우리 음악을 대표하는 예술가 12인의 독보적인 예술세계를 집중 조명하는 프로그램이다. 그 가운데 확연히 두드러지는 공연이 윤은화의 <페이브(PAVE)>다. 진행자 서진실은 “양금은 국악기 가운데에서 유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