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어제(11월 27일) 국립극장(극장장 박인건)은 하늘극장에서 기획공연 마당놀이 <홍길동이 온다> 시연회를 열었다. 11월 28일(금)부터 2026년 1월 31일(토)까지 공연하기 앞서서 언론에 미리 선보인 것이다. 국립극장 마당놀이는 2014년 <심청이 온다>를 시작으로 <춘향이 온다>(2015), <놀보가 온다>(2016), <춘풍이 온다>(2018~2020), 10돌 기념작 <마당놀이 모듬전>(2024)에 이르기까지 누적 관객 23만여 명을 기록한 국립극장의 대표 흥행 공연이다. <홍길동이 온다>는 조선시대 대표 영웅 서사인 《홍길동전》을 마당놀이 특유의 풍자와 유머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이 겪었던 불합리한 세상을 청년실업ㆍ사회적 단절ㆍ불평등은 물론 잘못된 정치적 현실 등 오늘날의 현실 문제들과 교차시켜 풀어내며, 시대를 관통하는 메시지를 전한다. 웃음과 흥 속에서 정의와 연대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이 작품은 마당놀이 특유의 활기찬 에너지를 오늘의 관객에게 나눠주었다. 과거 ‘마당놀이 홍길동’에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세종대로 네거리에서 서대문 방향으로 900m쯤 가면 서울역사박물관을 막 지나 오른쪽에 한자로 ‘興化門(흥화문)’이라고 쓰인 경희궁의 문이 보입니다. 광해군은 새문동(塞門洞 : 지금의 종로구 신문로 일대)에 왕기(王氣)가 있다는 설이 나돌자, 이를 누르기 위하여 그 자리에 경덕궁(慶德宮)을 짓게 했습니다. 이 경덕궁은 영조 36년(1760) 이름을 경희궁으로 고쳤으며, 경복궁의 동쪽에 있다고 하여 동궐(東闕)인 창덕궁에 견줘 서궐(西闕)이라고 불렀지요. 이 경희궁에는 여러 임금이 머물렀는데 숙종은 이곳에서 태어났고 승하했습니다. 또 경종이 태어난 곳도, 영조가 승하한 곳도, 정조가 즉위한 곳도 이곳이었습니다. 경희궁은 창건 때 정전ㆍ동궁ㆍ침전ㆍ제별당ㆍ나인입주처 등 1,500칸에 달하는 건물이 있었으며, 그 넓이가 자그마치 7만 평에 달했다고 합니다. 그런 경희궁은 일제강점기 때 대부분의 전각이 헐리고, 일본인들의 학교로 쓰이면서 완전히 궁궐의 자취를 잃고 말았습니다. 특히 1907년 궁의 서쪽에 통감부 중학이 들어섰고, 1915년엔 경성중학교까지 들어서게 됩니다. 심지어 광복 뒤에도 이곳은 서울중고등학교로 쓰이면서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장제급은 금표가 있는 땅에 장사를 지낸 죄가 있고, 백윤진은 점지(點指)해 준 죄가 있다. 범하지 못할 곳인 줄을 알고도 그 땅에 장사 지낸 것은 죽을죄고, 범하지 못할 곳인 줄을 알면서도 장사를 지내라 한 것도 죽을죄다. 똑같은 죽을죄로 이미 결정을 내렸으니, 나라에 법이 있는 바에 어찌 죽음을 면하겠는가? 다만 (가운데 줄임) 그 할아비의 공은 나라에서 잊지 못할 바가 있으니, 특별히 대대로 용서해 준다는 뜻으로 한 가닥 목숨만은 붙여주어 사형에서 감하고 원악도(遠惡島, 서울에서 멀리 떨어져 살기가 어려운 섬)에 유배토록 하라.” 위는 《순조실록》 32권, 순조 32년(1832년) 11월 24일 기록으로 나라가 소나무를 기르기에 금표를 세운 산에 몰래 장사를 지낸 사람을 멀리 떨어진 섬에 유배토록 한다는 기록입니다. 조선시대에는 경복궁 등 궁궐을 모두 소나무로만 지었음은 물론 소나무는 임금의 관을 짜는 데도 쓰고, 당시에 가장 중요한 수송수단인 배 만들 때도 쓴 귀한 나무였습니다. 특히 나무의 속 부분이 누런빛을 띠는 소나무를 '황장목(黃腸木)'이라 부르고 으뜸으로 쳤습니다. 또 나라에서는 '황장금표(黃腸禁標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내일(22일)은 24절기 가운데 스무째인 소설입니다. 절기 이름이 작은 눈이 내린다는 뜻으로 소설(小雪)인데 추위가 시작되기 때문에 겨울 채비를 하는 때입니다. 그러나 한겨울에 든 것은 아니고 아직 따뜻한 햇살이 비추므로 작은 봄 곧 소춘(小春)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때는 평균 기온이 5도 아래로 내려가면서 첫 추위가 옵니다. 그래서 “초순의 홑바지가 하순의 솜바지로 바뀐다.”라는 속담이 전할 정도지요. 그런가 하면 “소설 추위는 빚을 내서라도 한다.”라는 속담이 있으며, 소설에 날씨가 추워야 보리농사가 잘 된다고 믿었습니다. 또 사람들은 소설 전에 김장하기 위해 서두르고, 여러 가지 월동 준비를 위한 일들에 분주합니다. 시래기를 엮어 달고 무말랭이나 호박을 썰어 말리고, 목화를 따서 손을 보기도 하며, 겨우내 소먹이로 쓸 볏짚을 모아두기도 하지요. 참고로 같은 동아시아권인 중국과 일본의 소설 풍습 가운데 재미난 것을 알아보겠습니다. 중국 북방 지역에서는 영양 보충과 체온을 높이기 위해 만두, 고기 등을 먹습니다. “겨울엔 따뜻한 음식으로 기를 보한다(补冬)”라는 관념 때문입니다. 그런가 하면 일본은 “츠케모노(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최근 언론에는 종묘 주변 세운4구역 재개발과 관련하여 온갖 기사가 올라오고 있다. 특히 제목만 보면 한겨레의 “오세훈, 종묘서 본 ‘세운 재개발’ 예상도 공개…‘숨 막힐 경관 아냐’를 비롯하여 ”서울시, 세운4구역 완공 경관 시뮬레이션 첫 공개…‘조화 이루는 높이 찾은 것’“, ”서울시, 종묘 앞 개발 논란에 ‘이번 사업은 도심 녹지축 완성하는 것’“ 등으로 서울시 주장을 긍정적으로 묘사하거나 ”종묘ㆍ덕수궁 주변 고도제한 풀린다.“로 고도제한 풀리는 것이 확정된 것인 양 보도하는 것 일색이다. 이에 반하여 경향신문은 사설을 통해 ”유네스코 요구한 ‘종묘 세계유산평가’, 서울시는 받으라.”라고 주장하여 다른 언론과 차별성을 보인다. 경향신문은 “유네스코는 외교문서에서 재차 ‘고층건물에 의한 세계유산 종묘 훼손 우려’를 표하면서 세계유산영향평가를 권고했다. 그저 권고가 아닌 사실상 요구라고 봐야 한다. 서울시가 계속 무시한다면 세계유산 지정 취소 같은 최악 상황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종묘의 지정이 취소된다면 문화강국 한국과 서울의 국제적 평판이 하락하고 국민적 자부심도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다.”라고 강하게 지적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몇 해 전에 우리나라에서 요구한 대장경(大藏經) 인쇄판을 귀국에서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나라 절과 신사(神祠)에 비치해 둘 것이 없습니다. 이제 귀국의 사신이 돌아가는 배에 부탁하여 한 질을 청구하오니, 반드시 7천 권을 모두 갖춘 인쇄본으로 부쳐 오면 백마(백마를 잡아 그 피를 마시어 맹세한 것)의 지난 일을 금오(金烏) 해가 돋는 곳에서 거듭 보게 되겠습니다. 이웃나라의 변하지 않는 서약이 어떤 일이 이와 같겠습니까.“ 위는 《세종실록》 102권, 세종 25년(1443년) 11월 18일 기록으로 일본이 우리나라에 대장경을 보내달라고 요청했음을 말합니다. 우리나라의 국보인 《팔만대장경》은 목판본이 6,815권으로 모두 8만 1,258매이며 초조대장경(初雕大藏經)과 속장경(續藏經)은 몽골의 침입 때 불타버린 뒤 1236년(고종 23) 만들기 시작하여 1251년 9월에 완성되었습니다. 이는 현존하는 세계의 대장경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일 뿐만 아니라 체재와 내용도 가장 완벽한 것으로 오자(誤字)와 탈자(脫字)가 거의 없기로 유명합니다. 팔만대장경은 고려 우왕 14년(1388) 포로 250명을 돌려보내 주면서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올해에 낸 문제가 혹 다음 해에 나오기도 하고, 서울에서 출제한 것이 혹 지방에서 나오기도 하며, 유생이 사사로이 지은 문제가 역시 국시(國試)에서도 나올 수 있어서 혹 남의 작품을 외웠다가 합격하는 자도 있고, (가운데 줄임) 또 과장이 엄격하지 못해 무뢰배가 요란하게 밟고 다니는 것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갖은 수단으로 엿보고, 책을 끼고 들어와 답안을 대신 써주므로 공부하는 자가 이 탓에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으니 극히 온당치 못합니다." 위는 《명종실록》 8년(1553) 6월 9일 자 기록입니다. 그런가 하면 정조 18년(1794)에는 "손으로 붓 잡을 줄도 모르는 사람들까지 분수없는 생각을 가지고 함부로 과거에 응시한다."라는 말까지 있을 정도였습니다. 또 응시생인 양반집 자제들은 과거장에 여러 명의 조수를 데리고 들어가는데 글을 짓는 '거벽(巨擘)', 글씨를 써주는 '서수(書手)'가 따라 들어갑니다. 정작 과거를 보는 사람은 손도 까닥 안고 대리시험을 보는 것입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좋은 자리를 먼저 잡고 답안지를 다 쓰면 폭력을 써가면서까지 답안지를 대신 내주는 '선접군(先接軍)'이 있었습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해우림국악관현악단은 ‘첫 숨을 걷다’라는 주제로 2025년 11월 12일 저녁 7시 30분, 강북솔밭국악당에서 창단 연주회를 열며 공식적인 첫 발걸음을 내디뎠다. 지휘자이자 대표인 안준용의 섬세한 음악 해석과 따뜻한 지도 아래 단원들은 오랜 준비 끝에 첫 무대를 성공적으로 빚어냈다. 이번 공연은 단순한 창단 무대를 넘어, 해우림국악관현악단이 앞으로 추구할 새로운 국악관현악의 방향성과 음악적 미학을 관객에게 제시한 의미 있는 자리였다. 공연은 「얼씨구야」를 시작으로 「장단기행」, 「대지」, 「축복의 날」 순으로 이어졌다. 각 작품은 전통의 기반 위에 현대적 감성을 더해 국악관현악이 지닌 폭넓은 가능성을 입체적으로 드러냈다. 「장단기행」에서는 리듬의 변주와 타악의 생동감이 돋보였고, 「대지」에서는 묵직한 음향과 서사적 흐름이 어우러져 깊은 여운을 남겼다. 마지막 곡 「축복의 날」은 창단을 향한 축복과 기원의 메시지를 음악적 언어로 담아내며, 무대를 기쁨과 의미의 결실로 마무리했다. 창단 공연에는 합창단 레이디스앙상블이 객원으로 참여해 특별한 축하 무대를 더했다. 김란 단장의 지휘 아래 펼쳐진 이 공연은 여성 앙상블 특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성을 쌓는 데에 든 비용이 거의 80만에 가까운데, 소중한 역사를 조금이라도 구차하게 하고 싶지 않은 것이 나의 본래 생각이었다. 이 책을 간행하여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성의 공사에 관한 본말을 분명히 알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는 《정조실록》 45권, 정조 20년(1796년) 11월 9일 기록으로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을 펴냈음을 날리고 있습니다. 《화성성역의궤》는 조선시대 화성유수부 시가지를 둘러싼 성곽 ‘화성(華城)’을 쌓은 경위와 제도ㆍ의식을 기록한 책입니다. 정조 18년(1794) 1월부터 정조 20년(1796) 8월에 걸쳐 쌓은 화성성곽은 큰 토목건축 공사로서 많은 경비와 기술이 필요하였으므로, 그 공사 내용에 관한 자세한 기록을 남겨야 하겠다는 뜻에서 정조가 김종수(金鍾秀)에게 명을 내려, 1796년 9월에 시작하여 그해 11월 9일에 원고가 완성되었고 1801년(순조 1) 9월에 인쇄하였습니다. 화성성곽은 정조가 그의 아버지인 장헌세자의 무덤을 1789년(정조 13) 10월 화산(花山: 지금의 융건릉)으로 이장한 뒤 3년에 걸쳐 쌓은 곳으로, 전체 길이 5.4km가량의 조선시대 축성기술이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서울 종묘 주변에 초고층 건물을 지을 수 있도록 허용된 것에 문화체육관광부 최휘영 장관과 국가문화유산청 허민 청장이 나란히 세계문화유산 서울 종묘를 찾아 모든 수단을 동원해 반드시 막겠다며 강경 대응을 예고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종묘 세운4구역 관련해서 입장발표문을 통해 “종묘는 대한민국 정부가 1995년 첫 등재한 유네스코 세계유산이며, 500년 넘게 이어오는 종묘제례와 종묘제례악이 정기적으로 이어지는 공간으로 살아있는 유산입니다. 하지만, 이 종묘가 지금 심각한 위험에 처해있습니다. 종묘 앞에 세워질 종로타워 수준 높이의 건물들은 서울 내 조선왕실 유산들이 수백 년 동안 유지해 온 역사문화경관과 종합적 값어치를 직접적으로 위협할 것입니다. 국가유산청은 정부의 지원 아래 주어진 권한 아래 세계유산법 개정 등 모든 방법을 세워 종묘의 세계유산 지위를 지키고, 종묘가 가진 값어치가 미래 세대에게 온전히 전승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오늘 이 사안은 단순히 높이냐, 그늘이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초고층 건물들이 세계유산 종묘를 에워싼 채 발밑에 두고 내려다보는 것을 상상해 보십시오. 미래세대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