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 전수희 기자] 학고재갤러리는 7월 1일부터 궈웨이(郭伟, Guo Wei, 1960~, 쓰촨, 중국)의 국내 첫 개인전을 연다. 이번 전시는 높이 3m에 이르는 대작을 포함, 28점의 회화 작품을 선보인다. 궈웨이의 작품은 중국의 공산주의 안에서 산업 발달로 인해 변해가는 도시와 사람들의 모습, 그로 인해 발생한 개인주의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작업 초기엔 허두어링(何多苓, He Duoling)의 영향으로 사실적이고 딱딱한 회화 스타일을 보였지만 90년대 초부터 허두어링의 영향에서 벗어나 점차 일상 생활에 대한 주제로 옮겨가 신분이 불분명한 홀로 있는 인물, 어두운 단색조의 배경으로 우울한 정서 표현을 시도했다. 2013년 이전 작품 속 인물들은 현실적인 구성 속에 설정한 아이와 청소년 이었다면, 이번에 전시하는 2013년 이후 작업은 중국의 젊은 신세대들이 도시에서 경험하는 황량함과 비어있는 감정을 즉흥적인 붓질과 속도감으로 표현하였다. 붓질로 가려진 얼굴과 뒤돌아 서있는 모습으로 특정한 인물(개인)이 아니라 알 수 없는 누군가(인류) 로 표현했다. 학고재는 2013년 학고재상하이 출범 이후 중국과 한국 미술의 교류를 꾸준히 하고 있다.
[우리문화신문= 김영조 기자] 날로 더워지는 날씨에 부채만 한 벗도 없을 것입니다. 무더운 여름철 요긴하게 쓸 부채를 만들어 주는 기술을 가진 사람을 선자장(扇子匠) 이라고 합니다. 부채에 관한 우리나라 문헌 가운데 가장 오래된 기록으로는 《삼국사기》 견훤조에 견훤이 고려 태조(재위 918∼943)에게 공작 깃으로 만든 둥근 부채인 공작선을 보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전주에 선자청을 두어 부채를 생산, 관리하도록 하기도 했지요. ▲ 방구부채(태극선),전주한지박물관 제공 선자장에는 합죽선과 태극선 두 종류의 부채가 있는데 합죽선 곧 쥘부채는 접었다 폈다 할 수 있도록 만든 부채로, 철저히 수공예품으로 전수하고 있습니다. 만드는 과정은 40개의 부채살을 만든 뒤 합죽(合竹)한 부채에 인두로 무늬를 새겨 넣는데 대나무의 때를 빼내 빛이 나게 하고, 부채 종이에 산수화나 꽃, 새 따위를 그려 넣는 작업입니다. 부채에 종이를 바르고, 부채의 목을 묶으면 완성되지요. 합죽선은 예전에 양반들의 꾸미개(장신구)로 썼으며 합죽선을 가지고 다니지 않으면 양반축에 들지 못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단오 때 진상되었던 전주 태극선은 대나무와 태극무늬의 비단헝겊, 손잡이
[우리문화신문=한성훈 기자] 국립전주박물관(관장직무대리: 이주헌)은 지난 4월부터 진안 성수면 도통리 중평마을 청자가마터(도통리 산40-1)에 대한 3차 발굴조사(4차 조사)를 실시하였다. 이번 조사는 지난 2015년 11월, 긴급발굴조사 과정에서 노출된 가마를 전면적으로 발굴조사 하여 구조 및 성격을 밝히기 위한 조사이다. 발굴조사 결과 2호 가마의 길이는 21m로 연소실(燃燒 室), 소성실(燒成室), 출입시설(2개소 ?) 등을 갖추고 있다. 불을 피워 가마의 온도를 높이기 위한 연소실은 돌로 축조하였으며, 그릇을 굽는 소성 실 안쪽 벽은 돌ㆍ진흙과 갑발(구울 때 청자에 덮는 용기)로, 바깥쪽 벽은 일부에 벽돌을 이용해 정연하게 쌓았다. 지금까지 학계의 견해에 따르면, 초기청자를 생산하던 가마는 초기에 벽돌을 이용한 벽돌가마(塼築窯)를 만들다가 이후에는 진흙가마(土築窯) 로 변화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 발굴조사 된 가마는 벽돌과 진흙ㆍ갑발을 순차적으로 쓴 것으로 보아, 벽돌에서 진흙ㆍ갑발로의 축조 재료(築窯材)의 변화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가마로 평가된다. 향후 시흥 방산동, 용인 서리에서 조사된 벽돌가마와 벽돌을 재사용한 여주 중암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