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그림은 시대를 보여준다. 그림이 담아낸 그 시대의 모습을 보면, 당시 사람들이 어떤 것을 좋아하고 어떤 것을 귀히 여겼는지 알 수 있다. 당대의 미감과 창의성을 고스란히 담아낸 옛 그림들을 보노라면, 오랜 세월을 뒤로하고 그것을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이 퍽 다행스럽게 느껴진다. 탁현규가 쓴 이 책, 《그림소담》은 월간 <디자인>과 <행복이 가득한 집>에 연재한 그림 가운데 간송미술관 소장품만 가려 뽑아 편집한 것이다. 옛 그림들을 선인들이 그림 소재로 즐겨 사용하였던 일곱 가지 주제인 ‘봄바람’, ‘푸른 솔’, ‘풍류’ 등에 따라 분류해 은은한 감성을 더했다. 간송미술관은 간송 전형필 선생이 평생에 걸쳐 수집한 문화유산을 보유한 사립 박물관이다. 그 소장품만으로 한국 미술사를 쓸 수 있을 만큼 으뜸 수준의 유물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 간송 선생은 한국문화가 짓밟히던 참담한 시기에 전 재산 십만 석을 우리 미술품을 지키는 데 아낌없이 쏟아부었다. 그렇게 작품을 지켜낸 덕분에 ‘진경 시대’라는 우리 미술을 바라보는 새로운 눈이 탄생할 수 있었다. 1966년 한국민족미술연구소가 세워지면서 합류한 스물여섯살의 신진학자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서울은 유난히 궁궐이 많은 도시다.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그리고 경희궁에 이르기까지 다섯 곳이나 있다. 게다가 창덕궁은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될 만큼 세계적으로 의미를 인정받았다. 역사학자 한영우가 쓴 이 책, 《조선의 집 동궐에 들다》는 창덕궁과 창경궁을 전문가의 시선으로 바라본 책이다. 역사 연구와 교육에서 현장에 관한 관심과 서술이 뜻밖에 모자라 궁궐을 다룬 수준 높은 연구서가 없을뿐더러, 본인을 포함한 역사학도들이 궁궐사를 외면해 온 현실에 일말의 책임을 느껴 집필하게 되었다고 한다. 특히 자연과 아주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창덕궁의 매력을 주목한다. 위압감을 주지 않고 누구나 살고 싶은 마음이 솟아나게 하는, 극히 인간적이고 안락한 궁전이라는 것이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니, 자연을 듬뿍 담은 자연스러운 궁궐에 끌렸던 것은 역대 임금도 인지상정이었던 것 같다. 실제로 조선 임금은 경복궁보다 창덕궁과 창경궁에 훨씬 많이 머물렀다. 경복궁은 태조 말년에 왕자의 난이 벌어진 골육상쟁의 장소이기도 했고, 풍수적으로 불길하다는 소문도 있었다. 그래서 즉위식을 하거나 외국 사진을 접대하는 특별한 국가행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궁궐. 임금이 나랏일을 보는 ‘궁(宮)’과 문 쪽에 있었던 망루인 ‘궐(闕)’을 합쳐서 부르는 말이다. ‘구중궁궐’이라 할 만큼 깊었던 이곳에서 무수히 많은 일이 일어났고, 수많은 사람이 저마다의 인생을 일구었다. 이광렬이 쓴 이 책, 《조선시대 궁궐 사람들의 숨은 이야기》는 온갖 희로애락이 넘실댔을 이곳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풀어 쓴 책이다. 온천욕과 비자금 등 다른 역사책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었던 내밀한 이야기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임금의 여가생활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온천욕이었다. 특히 세종과 세조, 현종이 온천을 참 좋아했다. 오늘날에도 유명한 ‘온양온천’은 그 명성이 세종 시절부터 자자했다. 세종이 왕후와 왕세자, 문무 군신 50여 명과 수천 명의 호위 병사와 함께 떠날 때면 그 행렬이 대단했다. 바다와 가까운 온양은 왜구의 침략이 있을 수 있어 경호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세종이 온양온천으로 행차할 때는 수많은 기병을 온양 10리밖에 배치해 놓기도 했다. 세종은 온양온천에서 씻은 뒤 눈병이 크게 좋아지자, 이곳을 더욱 즐겨 찾았다. (p.73) 세종은 온천욕으로 눈병에 많은 효과를 보았다고 합니다. 하루는 도승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이순신. 이 이름 석 자는 끊임없이 불러낸다. 불멸의 장군, 효자, 그리고 충신 … 어찌 보면 공동체가 배출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인물의 전형으로, 일은 물론이고 인격 또한 나무랄 데가 없었던 ‘완벽한 인재’의 본보기다. 무엇이 이러한 완벽한 인간을 가능케 했는가. 그 배경을 깊이 있게 들여다본 책이 《태교신공과 이순신》이다. 성당에서 사목 중인 김일영 신부가 쓴 이 책은 한 인간을 길러낸 뿌리, 곧 정신문화의 지혜를 다룬다. 그 비결은 첫째, 어머니 변 씨의 훌륭한 ‘자녀교육’이었다. 변 씨가 이순신을 낳기 전 꿈을 꾸었는데, 신선의 풍악 소리가 나며 붓과 칼을 든 선녀 두 명이 나타났다. 붓에는 ‘효당갈력(孝當竭力)’, 칼에는 ‘충즉진명(忠卽盡命)’이 쓰여 있었다. 효도는 마땅히 있는 힘을 다해야 하고, 충성은 목숨을 바칠 각오로 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아버지 이정은 경건한 마음가짐과 태도로 글을 읽고 마음을 수련했고, 어머니 변 씨는 날마다 새벽기도를 드리며 마음을 정갈히 했다. 둘 사이에 낳은 아들 네 명은 모두 복희, 요임금, 순임금, 우임금에서 이름을 따 ‘희신’, ‘요신’, ‘순신’, ‘우신’이라 하였다. 네 아들을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p.92) 김덕형은 늘 화원으로 날쌔게 달려간다. 꽃만 바라보고는 하루 종일 꿈쩍도 하지 않는다. 꽃 아래 자리를 마련해 그대로 누워서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손님이 와도 아무 말 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김덕형이 미쳤거나, 멍청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손가락질하고 비웃는다. - 《백화보》 서문 중에서 꽃은 참 아름답다. 보기에도 좋고, 쓰기에도 좋다. 식물이 생명의 절정에서 피워 올린 꽃은 때로는 따뜻한 위로가 되어주고, 때로는 따뜻한 옷감이 되어준다. 옛사람들도 꽃을 예사로 보아 넘기지 않았다. 꽃을 심고, 관찰하고, 애지중지했다. 설흔이 쓴 이 책, 《따뜻하고 신비로운 역사 속 꽃 이야기》에는 꽃에 심취한 이들이 여럿 나온다. 꽃을 너무 좋아해 ‘꽃에 미쳤다’라는 이야기를 들은 김덕형과 목화씨를 가져와 목화를 대량으로 재배한 문익점이 대표적이다. 김덕형은 실학자이자 《북학의》로 유명한 박제가와 같은 시대에 살았던 인물이다. 김덕형은 꽃 그림을 잘 그리기로 소문난 화가였다. 당대의 이름난 화가였던 표암 강세황도 인정한 실력이었으니 과연 출중했던 듯싶다. 그는 새벽부터 밤까지 꽃만 보며 꽃 그림을 그렸다. 굉장히 세밀하게 줄기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일상생활에 꼭 필요한 것이 아니라고 해서 쓸모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확실한 쓸모가 없는 것이 더 아름다울 수 있다. 꾸미개 곧 장신구도 그렇다. 꾸미개가 없다고 해서 크게 불편하진 않지만, 꾸미개가 있으면 일상이 훨씬 풍요로울 수 있다. 박세경이 쓴 이 책, 《곱구나! 우리 장신구》는 일상을 아름답게 가꿔주었던 전통 꾸미개를 다룬다. 지금도 특별한 날에는 꾸미개를 즐겨 착용하지만, 예전에도 일상을 빛내주는 용도로는 꾸미개만 한 것이 없었다. 혼인이나 과거급제처럼 경사스러운 일이 있을 때, 꾸미개는 특히 빛을 발했다. 꾸미개에 얽힌 옛사람들의 생활 모습도 정겹다. 돌잔치, 혼인, 장원급제, 장례와 같이 굵직굵직한 삶의 큰 사건에는 늘 꾸미개가 있었다. 일생에 몇 번 찾아오지 않는 중요한 순간들을 가장 예를 갖추어 진중하게 맞이했던 진심이 느껴진다. 그 가운데 장원급제 때의 차림과 꾸미개가 특히 눈길을 끈다. <춘향전>에 나오는 이몽룡처럼 과거에 급제한 사람은 연두색 앵삼을 입고, ‘복두’라는 관모를 쓰고, 복두에 어사화를 꽂았다. 어사화는 보라색, 노란색, 다홍색 등 다양한 색깔로 만든 꽃으로 임금이 내린 꾸미개였다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체질이 정말 심리와 관련이 있을까? 상대방의 체질을 알면 사고방식도 짐작할 수 있다는 생각은 솔깃하다. 하긴 마음과 몸이 별개가 아닐진대, 이렇게 체질로 상대방을 파악할 수 있다면 맞춤형 의사소통으로 갈등을 훨씬 줄일 수 있을 터이다. 성격 심리학자이자 사상체질 전문강사인 류종형이 쓴 이 책, 《류종형의 사상체질 실전 심리학》은 상대방의 체질에 맞추어 소통하는 방식을 알려준다. 조선시대 이제마가 창시한 ‘사상체질 의학’을 심리학과 접목하여 인간관계에 활용할 수 있는 실질적인 소통법을 담았다. 체질과 관련된 심리는 우리가 인지하는 의식심리와 부지불식간에 일어나는 무의식심리로 나뉜다. 사상체질 심리학은 무의식심리에 더욱 주목하면서, 상대방의 무의식심리를 알면 일터에서도 조화로운 의사소통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p.46) 자신의 체질을 이해했다면 다른 체질에 대해서도 공부해야 합니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체질을 이해하면 파트너로 일할 때 아주 유용하지요. 태양인과 소음인이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는지, 소양인과 태양인은 어떻게 일을 해야 하는지, 태음인과 태양인이 어떤 방식으로 일하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지 적절한 대응책을 마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역사 속 세계는 약육강식의 세계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힘이 있는 자가 다스리고, 또 그 힘을 자식에게 물려주어 대대로 이어가는 것. 우리 역사도 예외는 아니었다. 권력과 경제력이 세습되면서 사회적 강자와 약자의 구분은 공고해졌다. 이렇듯 힘이 지배하는 구조에서도, 우리 역사에는 사회적 약자를 배려했던 흔적이 꽤 많이 남아있다. 가난한 사람, 신체적 장애가 있는 사람, 어린이 … 약육강식의 세계에서는 도태되기 마련인 이런 약자들이 사회에서 잘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제도가 갖추어져 있었다. 김영주와 김은영이 쓴 이 책, 《우리 역사에 숨어 있는 인권 존중의 씨앗》은 고려의 빈민구휼 기관이었던 ‘동서대비원’부터 조선의 죄수 보호 제도까지, 우리 역사 속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따뜻한 인권 존중의 모습을 담았다. 특히 굶주림을 해결하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인권 존중 방식이었다. 흉년이 잦았던 옛날에는 굶어 죽는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조선의 4대 임금 세종은 마을 관아마다 가까운 곳에 움막을 지어 음식을 무료로 나누어 주도록 했는데, 이것이 바로 ‘진제장’이다. ‘진제장’에서는 이름과 주소를 적은 간단한 확인 서류조차 배식하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외교관. 참 많은 것을 떠올리게 하는 직업이다. 낯선 문물에 대한 기대와 설렘이 교차하다가도 한순간에 무거운 나라의 운명을 짊어져야 하는, 멋지고도 위험한 자리다. 삶과 죽음이 교차하고, 명예와 굴욕이 교차하는 삶이다. 지금이야 전문적인 외교 교육을 받은 직업 외교관이 있지만, 옛날에는 문무대신이 외교관 역할을 겸했다. 일반적인 공무를 보다가 사신이 올 때 영접하거나 타국에 사신으로 가는 방식이었다. 사신으로 잘못 갔다가 죽을 수도 있었다. 전쟁을 결심할 때 사신을 본보기로 처형하기도 하고, 옥에 가두어 돌려보내지 않기도 했다. 게다가 사신을 어떻게 영접하느냐에 따라 중요한 국가적 문제가 결정되기도 했으니,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최은영 쓴 이 책, 《역사를 바꾼 우리나라 외교관들》은 이런 압박감을 뚫고 훌륭하게 국익을 지켜낸 우리나라 외교관들의 이야기다. 흔히 훌륭한 외교관의 대명사로 알려진 고려시대 서희와 오늘날의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뿐만 아니라, 김지남, 조엄, 홍영식 등 많이 들어보지 못한 생소한 인물들이 눈길을 끈다. 그 가운데 통역을 담당하던 역관 신분으로 조선의 국경을 지켜내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한 김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p.51) 서울 달 밝은 밤에 밤늦도록 노닐다가 들어와 자리를 보니 다리가 넷이로구나 둘은 내 것이로되 둘은 누구의 것인가 본래 내 것이지만 빼앗긴 것을 어쩌랴 아라비아 상인이었던 처용이 외간 남자와 있는 아내를 보고 부른 노래다. 처용은 신라 49대 헌강왕 때 아라비아에서 건너와 오랫동안 서라벌에서 신라 사람들과 어울려 살았다. 처용은 아내를 용서했지만, 다시 혼인하지 않고 풍류를 즐기며 행복하게 지냈고, 죽어서는 동해바다의 수호신이 되었다고 한다. 정혜원이 쓴 이 책, 《우리 역사에 뿌리내린 외국인들》은 생각보다 많은 우리 역사 속 외국인들을 차례차례 조명한 책이다. 흔히 ‘단일민족’이라는 인상 때문에 역사 속 외국인이 많이 없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뜻밖에 역사에 발자국을 남긴 굵직한 인물들이 많다. 인도 아유타국에서 건너와 가야 김수로왕과 혼인한 허황옥 공주, 신라의 수호신이 된 푸른 눈의 아라비아 상인 처용, 베트남 왕실의 혼란을 피해 고려로 망명한 안남국 왕자 이용상, 조선의 유학을 사랑한 일본 장수 김충선, 《하멜표류기》로 널리 알려진 하멜이 그 주인공이다. 그뿐 아니라 외국에 뿌리내린 우리나라 역사 속 인물도 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