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가운데 집집마다 더위에 지쳐 터져 나오는 신음소리가 천지를 진동한다. 이럴 때에 더위를 피하는 방법으로는 시원한 계곡 물에 발을 담근 채로 갖고 간 음식을 먹고 술을 마시는 것이 으뜸일 것이다. “복더위 찌는 날에 맑은 계곡 찾아가 옷 벗어 나무에 걸고 풍입송 노래하며 옥 같은 물에 이 한 몸 먼지 씻어냄이 어떠리.” ‘해동가요’를 펴낸 조선 영조 때 가객 김수장의 시조다. 그러나 '복날에 시내나 강에서 목욕을 하면 몸이 여윈다.'는 속설이 있어서 물에 들어가는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는 만큼 뭔가 다른 방도를 찾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그래서 생각나는 것이 시원한 바람을 쐬는 것이다. 옛날 우리 조상들은 무더위가 극심하면 바람이 잘 부는 나무그늘에 갔다고 한다. 옛날에는 활엽수가 우거진 곳보다는 침엽수, 곧 소나무가 있는 곳이 더 바람을 잘 전해주어 시원했던 것 같다. 그런 곳에서 나오는 시원한 바람, 곧 소나무 숲에서 솔잎사이로 부는 바람이 이른바 ‘풍입송(風入松)’이다. 옛 사람들은 이러한 풍입송의 경지를 무척 즐겼던 것 같다. 앞머리 김수장의 시조에서 무심코 지나쳤던 풍입송이란 단어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지다이(영주)의 장례식이 끝난 어느 날이었다. 아수친마님(박씨부인)에게 지출장부를 들고 왔던 안현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아수친의 얼굴이 굳어졌다. “박연폭포가 떨어지던 고모못을 잊었습니까? 이렇게 가을바람이 불면 젊은 부부들이 채련가(採蓮歌)를 부르며 연밥을 따지 않았습니까? 연꽃은 붉고, 연잎은 넓적하고 연밥은 많고 많았지요. 나는 노를 잡고 당신은 소쿠리를 들고 연잎 속으로 배를 저어 가지 않았습니까?”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가요?” “저는 아직도 돌아오는 돛대에 어리던 그 달빛이 눈에 선합니다. 아내가 부르던 채련가도 전부 기억할 수 있습니다. 아내는 예뻤고 노랫소리도 곱고 빼어났지요. 요즈음도 잠자리에 누우면 그 노래가 귓전에 들립니다. 그러면 연뿌리 끊기듯 애간장이 끓고 연밥알인양 눈물이 방울방울 흐릅니다.” 왜 이 구절이 다시 생각나는 것일까? 경남 함안에서 발견된 고려시대 연꽃 씨앗이 700년 만에 꽃으로 다시 태어났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생각난 것은 소설가 이인화가 쓴 《시인의 별(부제:채련가, 주석 일곱 개)》라는 소설의 이 구절이었다. 2000년 제24회 이상문학상의 당선작이다. 가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진흙에서 나왔으면서도 물들지 아니하고 맑은 물에 씻기어도 요염하지 아니하니 줄기의 속은 통하고 겉은 곧아서, 덩굴이나 가지 치지 않으며, 향기는 멀수록 더욱 맑으며, 맑고 우뚝하게 서 있는 모습이란 멀리서 바라볼 수는 있으되 함부로 가지고 놀 수도 없는……. 송나라 때의 신유교철학, 곧 성리학의 비조라고 할 염계(濂溪) 주돈이(周敦頤 1017~1073)가 <애련설(愛蓮說)>이란 글에서 묘사한 연꽃의 아름다움은 시대를 내려오면서 수많은 사람들의 입에 여전히 회자되고 있는데, 주돈이는 꽃의 덕을 견줘 설명하면서도 국화는 꽃 중의 숨은 선비요 모란은 꽃 중의 부귀함인데 연꽃은 꽃 중의 군자로다 라고 해서 많은 사람들은 부귀공명을 좇아 모란을 좋아할 것이지만 도연명은 홀로 국화를 좋아했고, 자신은 이제 연꽃을 좋아한다고 연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 주돈이란 분이 원래 “인품이 매우 고결하고 마음결(胸懷)이 쇄락(灑落:깨끗)하여 광풍제월(光風霽月)과 같다.”는 평을 서예가인 황정견(黃庭堅)으로부터 들은 분이다. 여기서 ‘광풍제월’이란 말은, 글자그대로 비가 갠 뒤의 바람과 달처럼, 마음결이 명쾌하고 집착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스웨그에이지”라는 창작 뮤지컬을 제작해 공연한다는 연락이 온 것은 개막을 며칠 앞 둔 6월 중순이었다. 카톡에 동봉해 준 포스터에 있는 ‘스웨그’란 타이틀은 60년 인생을 방송계 근처에서 보낸 필자에게도 전혀 모르는 말이었다. 사람들에게 물었다. 그랬더니 원래 ‘swag’라는 단어는 영국 셰익스피의 희곡 <한여름 밤의 꿈(A Midsummer Night's Dream)>에 나온 말로서 ‘건들거리다’, ‘잘 난 척 하다’라는 뜻이란다. 대학 때 영문학 근처에 가보긴 했지만 그 희곡을 원문으로 읽어보지 않았기에 이 단어의 뜻을 알 턱이 없는데, 2014년에 서울대 김난도 교수가 쓰기 시작한 이후 지금은 널리 쓰이고 있다는 것까지 알게 되었다. 그런데 거기서 조금 더 나가서 자신만의 여유와 멋, 약간의 허세를 여과 없이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을 말한단다. 결국 스웨그 에이지는 자신들이 생각하는 멋과 여유, 생각을 자기들 식으로 풀어 헤쳐보이는 시대라는 뜻일 게다. 그 밑의 부제가 ‘조선의 외침’이니, 조선이란 나라, 조선이란 사회에 대한 생각을 자기들 식으로 마음껏 펼치는 뮤지컬이란 뜻임을 겨우 알겠다. 확실히 나는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웃는 도깨비 - 신영훈 어릴 적에 동리 노인들 옛이야기가 생각난다. 곰의 불알로 북을 지으면 그 소리가 벽력같아서 전장(戰場)의 요괴가 달아나고 군신(軍神)이 이쪽 편이 되어 승전하게 되므로 그 북을 귀하게 여겼다는 것이다. 전장에서 북을 휘몰아 제쳐 치면 그 소리가 울려 퍼져 군사들의 마음을 흥분시켜 지쳐 들어가는 발길에 힘을 주게 되고 예기(銳氣)가 충천(衝天)하여 접전(接戰)의 이(利)가 재아(在我)하게 되므로 저절로 승리는 이쪽에 온다. 반대로 북채에 힘이 빠져 겨우겨우 두드린다면 군사들은 사기(士氣)가 떨어져 패하기 일쑤라는 것이다. 노인들의 이야기는 역사의 한 장면을 상기시킨다. 충무공 이순신이 친히 북채를 검어쥐고 다그쳐 지쳐 들어가도록 요란스럽게 북을 두드려 사기를 높이던 기록을 거론한다. 유탄에 맞아 쓰러지도록 독전(督戰)하던 그 북소리의 울림은 결국 왜수군을 참패시켰고 중국 장군의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는 것이다. 북소리, 그것은 하나의 집단최면으로 유도하는 마(魔)의 소리인지도 모른다. 인디언이나 토인족(土人族)들이 기분 나쁘게 두드리는 장면 뒤에 주인공들이 생포되던가 제물로 바쳐진다던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평소 가깝게 지내는 황평우 전 은평한옥박물관장이 지난 일요일에 어디를 가야 한다고 하더니 나중에 사진을 하나 보내준다. 병상에 누워계신 분을 문병하는 사진이었다. 한옥전문 건축가이신 신영훈 선생님이란다. 신영훈 선생님은 많은 분들이 잘 알고 있지만 우리나라 한옥 건축의 큰 기둥이셨다. 특히나 한옥 건축의 해설분야에서는 그 구수한 말씨와 알기 쉬운 설명으로 많은 팬들을 갖고 계셨다. 황평우 관장은 신영훈 선생님이 자기를 건축문화인으로 이끌어주신 분이라고 말한다. 나는 신영훈 선생님이 나를 '민학'의 길로 이끌어주신 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그 분이 젊을 때의 동글동글하고 온화하고 인자하신 얼굴을 다른 데로 보내시고 여윈 모습으로 누워계신 것을 보는 것은 정말로 살아있는 후배들로서는 괴로운 것이다. 그러나 세월이라는 것, 인간이라는 것, 살아있는 것의 운명이 곧 탄생과 죽음일진데 그것을 어이 거부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황평우 관장과 카톡을 하면서 나는 이제 우리들이 선생님을 기억해 줄 차례라고 말해주었다. 그 사진을 보고 신영훈 선생님과의 인연을 다시 회고해 보았다. 80년대 초인 1983년 KBS의 문화부 기자였던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