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광복회(회장 김원웅)는 14일, 수익사업 헤리티지 815카페 수익금으로 조성한 제1회 헤리티지 장학금 전달식을 가졌다. 광복회의 ‘헤리티지 815 장학금’은 국회사무처의 사용허가와 국가보훈처의 사업승인을 받고 국회 내에서 운영 중인 헤리티지 815 카페의 수익금 전액으로 조성된 장학금으로써 지난 3월 광복회보와 광복회 누리집을 통해 장학생 모집을 공고하였으며, 세 차례의 심의를 거쳐 모두 31명을 뽑고 장학금으로 중고생 100만 원씩 11명, 대학생 200만 원씩 20명, 모두 5,100만 원을 지급했다. 이 가운데 중학생 대표로 신곡중 송혜선, 고등학생 대표로 와부고 양승빈, 대학생 대표로 성균관대 이지윤과 고려대 정민규 등 4명을 뽑아 이날 직접 전달했다. 김원웅 광복회장은 이날 “이번에 제1회 헤리티지 815 장학생으로 뽑힌 학생들은 독립유공자 후손으로서 투철한 역사의식을 가지고 미래시대를 열어갈 우수한 학생이라 생각한다”라면서 “헤리티지 815 장학금은 광복회가 국회사무처의 배려로 운영하는 헤리티지 815 카페의 수익금 전액으로 조성한 첫 번째 장학금인 만큼, 자부심을 품고 성장하여 주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고즈넉한 산사가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분주한 모습이다. 경내 여기저기에 매단 연등이 눈부신 초록 나무들과 잘 어울린다. 어제 가본 공주 마곡사에는 연등을 단풍나무, 소나무 등에 매달아 마치 연꽃이 나무에 핀 느낌을 준다. 또한 대웅전 앞 앞 계곡 물에 둥둥 띄운 연등은 밤이면 더욱 화려할 듯하다. 코로나19를 몰아내고 인류가 좀 더 평화와 자비로운 삶을 이어갔으면 하는 바람을 실은 듯 살랑이는 봄바람에 연등이 화답하듯 살랑댄다. 공주 마곡사에서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마츠리의 나라 일본, 365일 전국의 어느 곳에서인가 마츠리가 열리지 않는 날이 없을 정도로 마츠리가 많은 나라에서 코로나19 타격은 크다. 교토의 3대 마츠리라고 하면 5월 15일의 아오이마츠리, 7월 16일의 기온마츠리, 10월 22일의 시대마츠리를 꼽는데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마츠리 행사를 중지한다는 일본 당국의 발표가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5월 15일은 스승의 날이지만 일본의 교토에서는 아오이마츠리 날로 코로나19가 아니었다면 일본 전역에서 마츠리를 보러 교토로 몰렸을 텐데 지난해와 올핸 사정이 다르다. 아쉽지만 아오이마츠리(葵祭)의 유래라도 살펴보자. 가모마츠리(賀茂祭)라고도 불리는 아오이마츠리는 《가모신사유래기》에 따르면 6세기 무렵, 긴메이왕 시절에 일본 전역에 풍수해가 심각하여 점쟁이에게 점을 쳤는데 가모대신(賀茂大神)이 노한 것으로 나와 그 노여움을 풀기 위한 제례 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라 한다. 노여움을 풀기 위한 수단으로 제주(祭主)는 튼튼한 말을 골라 방울을 잔뜩 달고 기수 얼굴에 동물 가면을 씌워 가모신사 주변을 돌면서 성대한 제례의식(마츠리)을 행한다. 아오이마츠리 뿐만 아니라 일본의 마츠리는 대부분이 고대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대포소리 울리는 곳에도 봄이 오니 / 청구 옛 땅에 빛은 새로워라 / 달빛 아래 산영에서 칼을 가는 나그네 / 철채 바람 맞으며 말을 먹이고 있네 / 중천에 펄럭이는 깃발은 천리에 닿은 듯 / 진동하는 군악소리 멀리도 퍼지는구나 / 섶에 누워 쓸개를 핥으며 십년을 벼른 마음 / 현해탄 건너가서 원수들을 무찌르세. " 이는 《애국지사들의 이야기(5)》에 나오는 홍성자 수필가의 ‘청산리 전투의 영웅 백야 김좌진 장군’ 편(p255~273)에 인용된 시다. 이 시는 김좌진 장군이 지은 ‘산영월하 마도객 칠색풍전 말마인’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애국지사들의 이야기(5)》는 캐나다애국지사기념사업회(회장 김대억, 이하 기념사업회)에서 해마다 1권씩 펴내는 책으로 올해로 5권을 냈다. ‘코로나19’ 상태에서도 기념사업회에서는 원고를 부지런히 모아 300쪽 분량의 책을 펴낸 것이다. 기념사업회 김대억 회장은 “캐나다에서 애국지사기념사업회가 발족한지 11년이 되었다. 처음 몇 년간은 애국지사기념사업회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동포들이 의외로 많아 어려움이 컸다. 그러나 우리는 묵묵히 애국투사들의 고귀한 조국애와 민족애를 캐나다 동포들
[우리문화신문= 이윤옥 기자] 생존 여성애국지사 두 분(민영주, 오희옥 지사) 가운데 한 분인 민영주 (1923.08.15.~2021.04.30.) 지사께서 지난 4월 30일(금) 향년 97살로 우리 곁을 떠나셨다. 이제 남은 유일한 생존 여성독립운동가는 오희옥 지사(95살)다. 어제(5일) 오희옥 지사께서 입원 중인 서울중앙보훈병원에 병문안을 다녀왔다. 여전히 코로나19로 지난해부터 병실 면회가 금지되어 병원 로비의 지정된 구역에서만 환자 면회를 할 수 있다. 요 며칠 날씨가 따뜻하더니만 어제 내린 봄비 영향으로 오늘은 제법 쌀쌀하여 휠체어를 타고 로비로 나오신 오희옥 지사는 환자복 위로 두꺼운 스카프를 두어 겹 두르고 나오셨는데 로비에 와서 기다리던 기자를 얼른 알아보고 손을 흔드신다. 마스크를 쓴 얼굴이지만 환한 표정이 느껴져 무척 반가웠다. 워낙 꽃을 좋아하시기도 하지만 낼모레가 어버이날이라서 붉은 카네이션 꽃바구니를 선물하니 더없이 좋아하신다. 병원에 입원하시기 전만 해도 집 뜰에 피어난 꽃을 보며 편안한 일상을 보내셨는데 벌써 3년째 병원 생활을 하시니 그 갑갑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오희옥 지사께서는 “용인 집 꽃은 피었니?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한국국학진흥원(원장 정종섭)과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관장 정진영)은 만주망명 110돌을 맞이하여 모두 12회에 걸친 기획 보도를 진행하고 있다. 제4편은 독립운동을 하기 위해 만주로 향한 이들이 망명 과정에서 어떤 일들을 겪었는지 되짚어보는 시간이다. 백하 김대락 선생과 석주 이상룡 선생 일행은 만주로 망명하기 전에 집안 청년들의 치밀한 사전조사와 가산 처분 등 만반의 준비를 한 뒤 추풍령에서 서울로 가는 경부선 열차와 서울에서 의주로 가는 경의선 열차를 타고 만주로 향했다. 이들이 만주로 가는 길은 전혀 순탄치 않았다. 일제의 감시를 피해 일부 구간은 도보로 이동해야했고, 중국 지역에 퍼져있는 조선인들에게 대한 흉흉한 소문에 항상 불안을 느껴야만 했다. 특히 신의주에서 얼어붙은 압록강을 건너는 일은 목숨의 위협을 느낄 정도로 혹독한 상황이었고, 풍토가 다른 지역에서 적응하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 백하 선생이 저술한 《서정록》에는 의주 백마역에 내려 신의주까지 걸어가는 역경이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신의주에서 압록강에 도착하여 근처 객점에서 손자사위 황병일(黃炳日) 일행을 만나는데, 방금령(防禁令)에 걸려 국경을 넘지 못했다고 기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불축제’라고는 했지만 사실 활활 태우고 남은 장작더미 위를 맨발로 걷는 행사로 이 축제가 의미하는 내용보다 외형만을 볼 때 화상을 입지 않을까 아찔한 생각이 든다. 타다 남은 장작더미 위를 맨발로 걸어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처음에는 뜨거울 줄 알았는데, 불 위를 걸어보니 전혀 뜨겁지 않았습니다. 코로나19를 뛰어넘어 건강하게 공부를 열심히 하고 싶습니다.” -초등학생 4학년(남), 참여자-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많아 코로나19가 끝나기를 기원하여 불 위를 걸었습니다. 내일부터 새로운 각오로 일상에 임하고 싶습니다.” -50대 여성 참여자- 이른바 <불 위를 걸어 악귀를 쫓는 축제(柴燈護摩火渡り修行, 이하 줄여서 ’불축제‘)>는 해마다 4월 29일, 야마나시현 고슈시(山梨県 甲州市)에 있는 호코지(放光寺)에서 하는 축제(마츠리)다. 이 절에선 해마다 불축제를 해왔지만, 지난해는 코로나19로 중단되었고 올해는 인원수를 줄여 소규모로 실시했다. 불축제는 1미터 남짓한 높이의 '호마단(護摩壇)'에 호마목(護摩木)을 쌓아 불을 붙인 뒤 불길이 잡히기를 기다려 타고 남은 장작더미 사이에 2미터쯤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생존 여성애국지사 두분(민영주, 오희옥 지사) 가운데 한분인 민영주 (1923.08.15.~2021.04.30.) 지사께서 30일(금) 오전 4시 30분, 향년 97살로 우리 곁을 떠나셨다. 민영주 애국지사는 서울 종로 출생으로, 1940년 한국광복군 창설 시 광복군에 입대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 내무부 부원과 중국 충칭방송국을 통한 심리작전 요원으로 활동했다. 또한 1944년 한국독립당에 가입하여 임시정부 주석판공실 서기로 근무했고, 1945년 광복군 제2지대에 복무하며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했다. 민영주 애국지사는 요양병원에서 임종을 맞았으며, 고려대학교 안암병원 장례식장(202호)에 빈소가 마련됐다. 이어 2일(일) 오전 7시에 발인 후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제6묘역에 안장될 예정이다.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 수여) 민영주 애국지사는 독립운동가인 아버지 민필호(1963. 독립장), 역시 여성독립운동가로 활약한 어머니 신창희(2018. 건국포장, 독립운동가 신규식 선생의 따님) 지사의 장녀이자 부부독립운동가로 활약한 김준엽(전 고려대학교 총장, 1990년 애국장) 지사가 남편이다. 민영주 애국지사가 작고함에 따라 생존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국가보훈처(처장 황기철)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장매성(1911~1993)ㆍ박옥련(1914~2004)ㆍ박현숙(1914~1981)ㆍ장경례(1913~1997) 선생을 ‘2021년 5월의 독립운동가’로 꼽았다고 밝혔다. 네 명의 선생은 1928년에 여성 항일운동단체로 비밀결사인 ‘소녀회’를 결성하였고, 1929년 광주학생운동에 참여하여 활동한 주요 인물들이다. 1928년 11월에 광주여자고등보통학교에 다니던 장매성, 박옥련, 장경례 등이 중심이 되어 광주사범학교 뒷산에 올라 여성 항일운동단체인 소녀회를 조직했고, 이듬해인 1929년 5월에는 장매성의 집에서 박현숙 등이 소녀회에 가입했다. 소녀회는 “여성을 남성의 압박에서, 한국인을 일본의 압박에서, 무산대중을 자본계급의 압박으로부터 해방시켜야 한다”라고 주장하며 여성 해방, 민족 해방, 계급 해방을 지향했다. 또한, 독서회 회원들이 만든 연합 단체인 ‘학생소비조합’이 출범할 때 30원을 출자하는 등 남학생들이 주도하는 독서회와 연대 활동도 펼쳤다. 특히, 1929년 11월 3일 광주역 앞에서 한국인과 일본인 학생 사이에 충돌인 광주학생운동이 일어났을 때, 소녀회원들은 “붕대와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수원박물관이 ‘수원의 유관순’이라 불리는 독립운동가 이선경(1902~1921)의 순국 100돌을 기려 주제전 ‘수원 산루리의 독립영웅들’을 연다. 4월 30일부터 7월 4일까지 기획전시실에서 열리는 ‘수원 산루리의 독립영웅들’은 이선경을 비롯한 수원 산루리 출신 독립운동가들을 재조명하는 전시회다. 독립운동가들의 사진, 관련 유물ㆍ자료 등 100여 점이 전시된다. 현재 팔달구 중동ㆍ영동ㆍ교동 일원인 산루리는 수원에서 가장 먼저 일제의 침탈을 받은 지역이다. 조선시대에는 팔달문 밖 마을을 ‘산루동’이라고 불렀다. 일제의 억압과 수탈에 시달리던 산루리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독립운동에 나서며 일제에 대항했다. 대표적인 산루리 출신 독립운동가인 이선경은 1920년 중국 상해에서 발행하던 독립신문을 마을 사람들에게 나눠줘 독립운동을 독려했다. 수원 학생들이 조직한 비밀결사단인 ‘구국민단’에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독립자금을 모아 상해 임시정부로 떠나려던 찰나에 일제에 들켜 8달 동안 옥고를 치렀다. 계속된 고문으로 죽음의 문턱에 이르렀을 때 일제는 이선경을 풀어줬고, 서대문형무소를 나온 그는 수원 큰오빠 집에서 치료받다가 석방 9일 만에 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