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조판형 기자 ] 영릉(寧陵)은 17대 효종(재위 1649∼1659)과 왕비 인선왕후(1618∼1674)의 무덤이다. 처음엔 건원릉(현 경기도 구리시 동구릉)의 서쪽에 조성하고, 능호를 익릉(翼陵)이라 하였으나 석물에 틈이 생겨 현종 14년(1673)에 여주 영릉 동쪽으로 옮겼다. 영릉은 임금과 왕비의 무덤을 좌우로 나란히 하지 않고 아래ㆍ위로 만든 동원상하릉으로 쌍릉 형식을 취하고 있다. 풍수지리에 의한 이런 쌍릉 형식은 조선왕릉 가운데 처음 형태고, 경종의 무덤인 의릉이 이런 형태를 하고 있다. 무덤 앞에는 상석ㆍ문인석ㆍ망주석 등의 석물이 있으며, 무덤 아래에는 정자각과 비각이 있다. 영릉(寧陵) 들머리에 있는 재실(齋室)은 제관(祭官)의 휴식, 제수장만 및 제기 보관 등의 제사기능을 수행하기 위한 능의 부속건물이다. 현재 남아있는 조선 왕릉의 재실들은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거치면서 대부분 멸실되어 원형이 훼손되었음지만 이곳 영릉 재실은 조선 왕릉 재실의 기본형태가 가장 잘 남아있고, 공간구성과 배치가 뛰어나 대표적인 조선시대 재실건축으로 역사적ㆍ가치가 높이 평가된다.
[우리문화신문=조판형 기자] ▲ 남한루 ▲외행전 ▲의청문 ▲일장각 ▲내행전 ▲재덕당 ▲좌승당 ▲이위정 ▲성벽 ▲수어장대 ▲지화문(남문) ▲ 수어장대에서 바라본 한강 ▲ 남문 주차장 ▲ 행궁 옆 오래된 벚나무 남한산성 행궁은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면 산성리에 있는 곳으로 정무시설은 물론 다른 행궁에 없는 종묘사직 위패봉안 건물을 갖추고 있는 것이 특징으로 경기도 기념물에서 역사적 문화적 가치가 인정되어 사적 제480호로 승격 지정되었다. 1999년년부터 발굴조사를 실시하여 상궐 좌전이 복원되었으며 일부 건물지에서 초대형기와 등 다량의 유물이 출토되어 조선시대 행궁제도를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유적으로 역사적 학술적 가치가 크다고 한다. 행궁 내에는 정문 누각인 남한루를 비롯하여 임금이 생활하던 내행전, 광주유수가 쓰던 일장각과 집무를 보던 좌승당 등의 건물과 광주유수가 활을 쏘기위해 세운 이위전 등이 있다. 남한산성 행궁은 유사시 왕이 피신할수 있도록 준비된 조선시대 예비궁궐로 총융사 이서의 계책에 다라 서장대 아래쪽에 1626년에 완공된 행궁으로 광주 행궁 또는 남한 행궁 이라 하였다. 행궁에는 원래 임금의 생활공간인 상궐 73칸과 집무공간인 하궐 154칸 등
[우리문화신문=조판형 기자] ▲ 산수유와 느티나무 ▲ 마을 안내도 ▲ 돌담길 ▲ 산수유 터널 ▲ 산수유 그늘 아래 ▲ 시목(시조목) ▲ 작은 개울가 밭둑 산수유 군락지가 이천의 봄꽃 구경의 명소가 된 지는 오래 되었다. 이천시내에서 여주방면의 이포대교를 향하다 현방리에 이르면 도로 왼쪽으로 영원사라는 절 이정표를 만날 수 있다. 이천에서 가장 높은 원적산 (634m) 아래 자리 잡은 영원사를 향해 가는 길은 송말리에서부터 도립리를 거쳐 경사리에 이르기까지 산수유 나무가 대규모 군락을 이루고 있다.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원적산 자락을 향하여 조금만 가다보면 이내 주변 풍경을 노란색 원색으로 물들인 산수유 꽃 군락과 마주친다. 대개 3월말 부터 꽃이 피기 시작하여 4월 10일 앞뒤로 산수유 꽃은 절정을 보인다. 이천시에서는 이와 때맞춰 산수유꽃 축제를 연다. 축제기간을 전후해서는 산진애호가나 아마추어 화가들이 대거 몰려 그 아름다운 전경을 카메라와 스케치북에 담기 바쁘다. 마을사람들은 이곳의 산수유가 수령이 족히 1백년을 넘는다고 자랑스레 이야기 한다. 다만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해 축제는 취소되었다.
[우리문화신문=조판형 기자] ▲ 상위마을 전경 ▲ 서시천 ▲ 마을 둘레길 ▲ 산수유 전남 구례군 산동면에 있는 산수유마을의 유산은 척박한 땅에 농사짓기가 힘들어서 시작한 것이 효시가 되었지만 해마다 봄의 전령사로서 지리산의 상춘객을 모으고 있다. 해발 400m에 자리 잡은 구례군 산동면 위안월계 산수유마을은 해마다 3월이면 노란 산수유로 만발한다. 이 곳에 나는 산수유는 전국의 70% 이상을 점유하며, 9월의 햇살과 일조 조건은 전국 최고 우량 산수유를 만들어내고 있다. 산촌생태마을인 산수유마을은 봄에는 산수유 축제, 가을에는 산수유 열매 축제가 있으며 그밖에 여름의 수락폭포, 겨울의 만복대의 설경을 함께 갖춘 환상의 휴식을 만끽할 수 있다. 또한, 산수유 옛길 산책과 대동여지도 옛길 걷기 등 지리산 둘레길 7구간 인접구역이며 상위에서 묘봉치까지의 등산로, 당골에서 성삼재까지의 등산로, 지리산 온천에서의 휴식 등 다양한 건강과 휴식을 겸하는 몸과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여행이 될 수 있는 곳이다. 백두대간 만복대의 물줄기 산동정수장은 2010년 전국 최우수 수질로 대통령상을 받았으며 생수공장, 게르마늄이 함유된 지리산 온천 암반수와 최고 수질의 물 고장이다.
[우리문화신문=조판형 기자] ▲ 홍쌍리 매실농원 정자 ▲ 정자 아래 작은연못 ▲ 홍쌍리 매실농원 장독대 ▲ 영화 취하선 세트장 ▲ 정자에서 바라본 섬진강 지리산 자락을 수놓으며 굽이굽이 흘러가는 섬진강을 따라가면 매화나무가 지천으로 심어져 있는 섬진마을이 있다. 이 마을의 농가들은 산과 밭에 곡식 대신 모두 매화나무를 심어 매년 3월이 되면 하얗게 만개한 매화꽃이 마치 백설이 내린 듯, 또는 하얀 꽃구름이 골짜기에 내려앉은 듯 장관을 이룬다. 이곳의 맑고 온화한 강바람과 알맞게 피어오르는 물안개가 매실농사에 적합해서 수확량도 한 마을에서 연간 100톤이 넘는다. 올매화인 이곳의 매화는 지리산 능선에 잔설이 희끗희끗하게 남아 있는 3월 초순 경부터 꽃망울을 터트리며, 매실 수확은 지리산 철쭉이 한창 피어나는 6월에 시작된다. 매실은 다른 꽃들이 겨울 잠에서 깨어나기 전에 꽃이 피고, 여름 벌레들이 극성을 부리기 전에 수확이 되어 농약이 필요 없는 청정과일이다. 매화나무 집단재배를 전국에서 가장 먼저 시작한 청매실농원에는 1930년 무렵 율산 김오천선생이 심은 70년생 고목 수백 그루를 포함하여 매화나무단지가 잘 조성되어 있으며, 매실 식품을 만드는데 쓰이는 전
[우리문화신문=조판형 기자] 궁평항은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 궁평항로 (궁평리)에 있는 항구로 200여척의 어선이 드나들 수 있는 선착장과 약 1.5km 길이의 방파제를 갖추고있으며 경기도내에서는 큰 규모에 속한다. 정자각에서는 서해 풍경을 볼 수 있으며, 화성 8경에 속하는 궁평낙조가 있다. 수산물 직판장에서 신선한 해산물을 즉석에서 먹을 수 있고, 100년된 해송으로 이루어진 군락지가 있다. 요즘 모두들 코로나19로 외출을 자제하며 실내에서만 생활하는데 마음의 치유와 더불어 바닷바람도 쏘일겸 수도권에서 가까운 궁평항으로 가족과 함께 저녁노을을 즐기러 떠나보면 어떨까?
[우리문화신문=조판형 기자] 명승 제8호. 두무진은 백령도 북서쪽 약 4㎞에 걸친 해안선에 따라 오랜 세월동안 파도와 비바람에 깎여 만들어진 높이 50여m 안팎의 규암절벽을 일컫는 이름이다. 두무진이라는 명칭은 ‘뾰족한 바위들이 많아 생김새가 머리털 같이 생겼다’하여 두모진(頭毛鎭)이라 칭하였다가 뒤에 ‘장군머리와 같은 형상을 이루고 있다’하여 두무진(頭武鎭)이라 개칭하였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두무진에 솟아 있는 바위들은 그 모양에 따라 코끼리바위ㆍ장군바위ㆍ신선대ㆍ선대암ㆍ팔각정 등의 이름으로 불려지고 있다. 1612년(광해군 4)은 선대바위를 보고 ‘늙은 신의 마지막 작품’이라고 그의 《백령지 (白翎誌)》에서 극찬했을 정도로 기암괴석의 모양이 기이하고 훌륭하다. 석양에 고깃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두무진을 바라보면 그 아름다운 자연의 조화와 조물주의 솜씨에 정신을 잃고 무아지경으로 들어가게 된다. 두무진을 이루고 있는 암석들은 원생대 진현통(8억 5천만 년 전)에 속하는 백색-암회색 사암 또는 규암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암은 분급( 퇴적물이 물이나 바람에 의하여 운반될 때 알맹이의 크기에 따라 나뉘는 것)이 매우 양호하고 층리(퇴적을 이루는 암석의 겹친
[우리문화신문=조판형 기자] [우리문화신문=조판형 기자] 부산 기장군 기장읍 죽성리에 있는 관광지다. 바다 바로 앞에 아담한 성당이라는 뛰어난 경관으로 사진촬영의 명소가 된 곳이다. 해당 건물은 성당이라고 되어있지만, 정식 명칭은 “죽성드림세트장”이다. 2009년에 SBS에서 방영된 드라마 드림(드라마)의 촬영을 위해 지은 세트장이다. 드라마 촬영 이후 철거와 존치 의견 속에서 존치하기로 결정하고서 남겨두었는데, 뒤에 출사지로 명성이 높아지면서 졸지에 관광지가 되었다. 바다 바로 앞에 있는 성당은 그야말로 영화나 애니메이션에나 나올만한 건축물이기 때문에, 많은 관광객들이 몰렸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임시건축물이었고, 이 임시건축물이 바다 바로 앞에 있었기 때문에 안전에 문제가 많았다. 그러다 결정적으로 2016년 태풍 차바로 인하여 세트장이 크게 망가진다. 철거할 수도 있었지만, 이미 관광지로 유명해졌기에 부산시는 성당을 세트장이 아닌 정식건축물로 지어올렸고, 2017년 2월에 새로 죽성성당을 공개했다. 이 과정에서 건축물의 형태가 약간 변경되었고, 십자가와 성모마리아 상을 철거했다. 그리고 이 재건축을 기점으로 성당의 사용도 변화가 생겼는데, 예전 세트장 시
[우리문화신문=조판형 기자] 고스락은 으뜸을 뜻하는 순수 우리말로 4,000여개의 장독 정원과 3만여평의 청정 솔숲속에서 국내산 유기농원료를 사용하여 전통항아리로 유기농 전통장과 발효식초를 생산 판매하는 곳으로 전북 익산시 함열읍 익산대로 1424-14 에 있다.
[우리문화신문=조판형기자] ▲ 정면 ▲측면 ▲석조여래좌상(보물제108호) ▲세계유산 표지석 부여 정림사터에 세워져 있는 석탑으로, 좁고 낮은 1단의 기단(基壇)위에 5층의 탑신(塔身)을 세운 모습이다. 신라와의 연합군으로 백제를 멸망시킨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백제를 정벌한 기념탑’이라는 뜻의 글귀를 이 탑에 남겨놓아, 한때는 ‘평제탑’이라고 잘못 불려지는 수모를 겪기도 하였다. 기단은 각 면의 가운데와 모서리에 기둥돌을 끼워 놓았고, 탑신부의 각 층 몸돌에는 모서리마다 기둥을 세워놓았는데, 위아래가 좁고 가운데를 볼록하게 표현하는 목조건물의 배흘림기법을 이용하였다. 얇고 넓은 지붕돌은 처마의 네 귀퉁이에서 부드럽게 들려져 단아한 자태를 보여준다. 좁고 얕은 1단의 기단과 배흘림기법의 기둥표현, 얇고 넓은 지붕돌의 형태 등은 목조건물의 형식을 충실히 이행하면서도 단순한 모방이 아닌 세련되고 창의적인 조형을 보여주며, 전체의 형태가 매우 장중하고 아름답다. 익산 미륵사터 석탑(국보 제11호)과 함께 2기만 남아있는 백제시대의 석탑이라는 점에서도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며, 세련되고 정제된 조형미를 통해 격조높은 기품을 풍기고 있는 아름다운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