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럭무럭 자라는 자식을 위해서 부지런히 먹이사냥을 하고 돌아오는 어미 왜가리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봄에알을낳아 깨어난 왜가리 새끼에게 어미새는 밤낮없이 곤충과 애벌레를 잡아다 먹인다. 자식이 건강하게 잘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은 사람이나 동물이나 다를 바 없다는 것을 새삼 느껴본다.!! 최우성 (건축사.문화재수리기술자. 한겨레건축사사무소 대표) 문화재수리기술자로 한국인의 삶을 담아온 전통건축의 소중한 가치를 찾아 기록하고 보존하는 일을 하고 있다. 현재 한국불교사진협회회원, 문화유산사진작가
▲ 김대건신부 제주표착을 기념하여 세운 성당과 기념관 제주시 한경면 용수리에 있다. ▲ 김대건신부가 타고오다 제주에 표착했던 라파엘호의 재현모습으로 기념관 오른쪽에 있다. ▲ 제주표착기념관 외벽에 있는 간판 ▲ 김대건 신부의 초상화 ▲ 김대건신부의 행적을 표시한 지도 ▲ 서해안 인천(제물포)에서 배를 타고 중국 상하이로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풍랑을 만나 제주로 표착하였다가 군산으로. ▲ 풍랑에 휩싸인 라파엘호의 재현 ▲ 제주 한경면 기념관 앞 바닷가에 표착한 모습의 재현 ▲ 라파엘호 다른 각도에서 본 모습 ▲ 김대건신부가 모시고 다니던 원죄없이 잉태하신 성모 마리아상의 모습으로 기념관 오른쪽에 있다. ▲ 기념관 바로 앞에 펼쳐진 바닷가. 바다 가운
▲ 영산재를 시작하기 전에 향을 사르며 법석을 펼치기 위한 준비를 한다. ▲ 야단에 차려진 법석으로 인도하는 스님 ▲ 인도하는 스님을 따라 들어오는 영산재에 무용 공양을 하실 스님들의 입장 ▲ 스님들의 뒤를 따라 천도제에 참석하는 영가를 모시고 들어오는 신도들 ▲ 야단 법석에서 바라춤으로 공양하는 모습 ▲ 행사를 주관하는 스님들. 앞에는 춤으로 공양할 법석이 마련되었다. ▲ 고깔을 쓰고 나비춤을 추는 스님 ▲ 바라춤을 추는 스님 ▲ 가장 높은 영가를 앞세우고 영산재가 펼쳐진 장소로 가는 중 ▲ 영산재가 본격적으로 펼쳐질 야단법석에 모인 영가들이 큰 괘불앞에 모여있다. ▲ 가장 높은 영가가 있는 가마의 야단법석에서 퇴장하고 영산재를 펼칠 준비를 한다.
▲ 오백나한상, 바로 뒤편이 마애관세음보살전 건물이다. ▲ 마애관세음보살 앞에서 본 보문사 전경 ▲ 보문사 마애관세음보살 앞에서 기도하는 신도 ▲ 보문사 마애관세음보살 앞에서 기도하는 신도 ▲ 마애관세음보살 앞에서 본 오백나한전 ▲ 마애관세음보살 앞에서 본 강화 앞바다 [우리문화신문=최 우 성 기자]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한국에는 동 남 서에 모두 관세음보살의 성지가 있다. 동해에는 양양 낙산사, 남해에는 보리암과 향일암, 서해에는 강화 보문사가 그곳이다. 그 중에서도 서쪽에 있는 큰 섬 강화도에서 다시 배를 타고 가야하는 석모도에 있는 보문사는서울에서 가까운 곳으로 수도권에 살고 있는많은 이들이 찾고 있다. 옛날 같으면 배를 두 번씩(강화까지 가서 다시 석모도로)타야 했지만, 지금은 강화도에 큰 다리가 놓였기에 외포리 선착장까지는 승용차로 가면 되고, 외포리 선착장에서 단 10분만
▲ 나한전의 중심에는 석가모니불과 좌우 보살이 자리하고 있다. 이는 부처님이 설법하는 것을 형상화 한 것 ▲ 법최에 가득 모여있는 아라한들 ▲ 오백 아라한전의 또 다른 모습. ▲ 오백 아라한전의 모습과 잠시 기도하는 신도의 모습 ▲ 500 아라한전의 중심에서 기도하는 모습 ▲ 정제된 형상화한 부처님과 보살의 모습과는 달리 아라한들의 다양한 표정속에 우리네와 같은 인간미를 느낄 수 있다. ▲ 아라한전 위에서 본 모습. 중심에는 탑과 부처님이 있다. ▲ 야외 오백 아라한전 모습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자유분방한 모습의 아라한들이 가득한 강화 석모도 보문사 야외 오백아라한전 모습은 언제 봐도 포근하다. 불교에서 아라한이란 수행의 깊이가 인간으로서는 가장 높은 단계에 들어선 사람으로, 다시는 윤회의 길에 나서지 않을 뿐 아니라 태어나지도 않는다는 뜻이다. 본래
▲ 수월봉 근처의 해안 전경. 검은 용암들로 이루어진 화산지형. ▲ 화산의 분출로 물과 수증기 화산재와 화산탄이 분출하여 흐르다가 멈추어 화산층을 이루면서 쌓여있다. ▲ 육지에 있는 퇴적암은 물이 흐르면서 돌이나 모래 흙을 시대별로 쌓아서 생기는 것이나, 수월봉은 화산재와 화산탄으로 화쇄난류가 흐르면서이루어진화산퇴적층이다. 화산의 폭발시 화산재가 분줄하여 급격히 흐르면서쌓인 곳에 다시 또다른 종류의 화산물질들이 분출하여 흐르다쌓이면서 층을 이루고 있고, 그 중간 중간에크고작은화산탄들이 분출되어 박혀있는 형상이다. ▲ 깎아지른 절벽으로 화쇄난류가 흐르면서켜켜이 쌓여있는 화산재와 화산탄들은 지질학적으로 큰 가치를 자랑한다. ▲ 화산재가 분출하여 층을 이루고 있는 곳에도 들꽃이 피어난다. ▲ 수월봉 화산절벽은 그 길이가 2.km,에 이르는 긴 거리에 펼쳐져 있다. ▲ 해안 절벽에는 군데 군데 일제강
숭렬전 전경 맨 위에 숭렬전이 있다 오른쪽 맞배지붕 건물이 숭렬전, 왼쪽의 건물은 이서장군의 사당 오른쪽 건물이 온조의 사당인 숭렬전 담장으로 둘러싸인 숭렬전 외부모습 사당 앞에 있는 건물로 제사 때 주로 쓰이는 강당 일제강점기에 찍었던 사진. 복원공사가 끝난 enl에 발견되어 현재의 모습과는 조금 다르다. 그러나앞으로는 사진의 모습으로 복원될 것이다. [우리문화신문= 최우성 기자] 이제는 세계문화유산이 된 한양의 남쪽에 있는 남한산성. 남한산성은 삼국시대부터 요충지였고, 백제가 처음 도읍을 정한 하남 위례성과도 인접하여,삼국시대부터 성을 쌓고 지켜왔다. 처음에는 흙을 다져서 쌓은 토성이었다가 차츰 석성으로 바뀌었고, 조선 시대 임진왜란을 당한 뒤에 인조때대대적으로 수리하여 완비했는데 인조는 여진족인 북방 오랑캐가 중원을 차지한 것이 국가간의 위계를 어기는 불충의 극치라며, 여진족이 세운 청나라를 인정하지 않으려 하였다
연천군 장남면 고랑포리에 있는 신라 56대 경순왕릉 조감도 능으로 가는 길은잘 포장되어있다 경순왕릉 전경, 능의 좌우와 뒤로는 곡장이 둘러있고, 앞에는 비각과 작지만 재실도 갖추었다. 재실은 1986년에 세워졌다. 왕릉으로 최소한의 격을 갖춘 경순왕릉. 한때 유실되었다가 조선 영조 때 다시 찾았다. 조선왕릉의 경우에는 석양이 능 주변에 배치되었으나, 경순왕릉의 경우에는 능의 앞에 좌우로 배치되었다. 전쟁의 흔적인지 입부분과 엉덩이 부분이 손상되었다. 최근에능 주변을 호석으로 둘렀고 앞부분에는 꽃장식이 있다. 왕릉의 뒤에서 본 모습 제사 때 사용하는 재실 비석으로 당시에는 많은 내용을 기록했을 것이나, 지금은 전혀 글씨를 알수가 없다. 릉 앞에 세워진 경순왕의 능표
윗세오름 전망대를 내려와 영실기암으로 내려가는 길 윗세오름 전망대를 내려오면 키작은 조릿대나무뒤로 한라산 암반영봉이 보인다. 영실기암 능선에서 본 한라산 아래 정경 영실기암 능선에는 고사목 사이로철쭉이 피어나고 있다. 영실 기암괴석인 오백나한상과 철쭉 산을 즐기는 부산아주머니들의 인증샷 영실기암 전망데크에서 한 컷 철쭉을 배경으로 또 한 컷 탐방로 주변에 돌탑도 쌓고 부산 아주머니들과 일행들이 즐거운 추억을 함께하며. 부지런히 영실주차장을 향하여 내려가는 부산 탐방객들 해발고도가 낮아지니 교목으로 숲을 이룬 영실계곡. [우리문화신문= 최 우 성 기자] 계절이 무르익어 이제 철쭉이 피어났을 것으로 짐작하고 한
윗세오름 대피소에서 본 한라산 암벽으로 둘러싸인봉우리, 고지에 자라는 구상나무와 조릿대나무들의 군락이 펼쳐져있다. 활화산으로 폭발한 검은 용암이 분출하여 그대로 굳은 한라산 봉우리. 바위들의 모습이 마치 산을 오르는 거북이들 같다 윗세오름에서 남벽분기점으로 가는 탐방로. 끝없이 이어지는 계단이다. 더 이상의 훼손을 방지하기 위하여 계단과 데크로 이루어진 탐방로 분출한 용암괴들로 이루어진날카로운 암반들 남벽분기점으로 가는 길에 만난 구상나무 솔방울이 자주빛 꽃을 피우고 있다. 용암괴의 남측 바위들도 마치 거북이들이 꼭대기를 향해 기어오르는 듯 보인다. 탐방로에서 본 왼쪽의 한라산 꼭대기 용암괴, 바람에 다 날리고흙이 없이 바위로만 되어있어 더욱 날카롭게 보인다. 조릿대나무밭과 잡목으로 이루어진 탐방로에서 고산지대로 키작은 나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