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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가씨를 만난 것은 일어나기 어려운 일

무심거사의 단편소설 13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끔찍한 이야기로군!” 김 과장은 대수롭지 않은 듯 한마디 했지만, 속으로는 뜨끔했다. 그 장로 이야기는 주인공이 바뀌어 자기 이야기가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생각이 밀려왔다. “여보, 빨리 잡시다. 그런 무시무시한 이야기는 그만두고.” 김 과장이 아내의 손을 살며시 쥐며 말했다. 그 이후로 아가씨에게서 연락은 없었고, 김 과장도 나목에는 더는 가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살인하고 자살했다는 장로 이야기가 잊히지 않아서 가지를 못한 것이다. 아내도 더 이상 여자 문제로 추궁하지는 않았다. 모든 것이 나목 이전으로 되돌아가는 듯했다. 그런데 6달쯤 지난 어느 날, 뜻밖에도 사무실에서 김 과장은 미스 나의 전화를 받았다. 깜짝 놀라 웬일이냐고 묻자, 아가씨는 자기가 점심을 사겠다며 한번 만나자고 한다. 내일 당장 삼수갑산에 갈지언정 아가씨가 만나자는데 차마 거절할 수는 없었다. 대한민국 평균의 남자라면 이런 제안을 거절할 수가 없을 것이다. 김 과장은 회사 근처의 다방에서 다음 날 열두 시에 만나기로 약속했다. 막상 약속 장소에 나가려니 약간 불안한 생각이 들기는 해도, 그 옛날 연애하던 시절 데이트하러 가는 것처럼 가슴

‘넘겨집기 작전’에는 무조건 ‘잡아떼기 작전’으로

무심거사의 단편소설 12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집에 돌아와 보니 아내는 그때까지 자지 않고 있다가 문을 열어 주었다. “왜 이렇게 늦었어요? 요즘 세월이 좋은가 봐요.” 아내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어, 우리 회사 그 박 과장 있잖아. 카페에서 대중가요 스무 곡을 가사 하나 틀리지 않고 2절까지 내리 부르고 마담한테 술을 뺏어 먹었다는 그 사람 말이야. 그 친구가 오늘 부장으로 승진했다고 전화가 와서 한잔했어.” 김 과장은 슬쩍 둘러댔다. “지금이 대체 몇 시에요?” 아내는 화가 난 모양이다. “어디 시계 좀 보자고. 어, 벌써 두 시가 넘었군. 오늘은 너무 늦었는걸. 여보 미안해.” 김 과장이 아내를 포옹하면서 달래려 했다. “빨리 가서 세수나 해요. 그 분냄새 나는 와이셔츠도 빨리 벗어 치우고요!” 아내가 뿌리치며 언성을 높였다. 김 과장은 속으로 아차 했다. 술김에 용기를 내어 아가씨와 포옹하면서 좌충우돌 키스를 두 번인가? 했는데, 아가씨의 화장이 너무 진했거나 아니면 아내의 코가 너무 예민했나 보다. 부부싸움 덜 하려면 후각이 무딘 여자를 고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하면서 김 과장은 와이셔츠를 벗어서 빨래통에 던지고 세수하고 이빨까지 닦은 뒤에 잠자

두 눈에서 흐르는 물이 빗물인지 눈물인지

무심거사의 단편소설 (11)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언젠가 박 과장이 이렇게 말하던 것이 생각났다. “김 과장은 여자에 너무 약한 것 같아. 술집 아가씨는 술집에서 술을 따르면 되는 것이요. 괜히 그 이상을 기대하는 것은 격에 안 맞는 일이라고나 할까? 달리 말하면 어리석은 짓이요. 술집에서 만난 아가씨에게 절대로 정(情)이나 명함을 주어서는 안 돼요. 나중에 괜히 귀찮아지지요.” 그러나 이 아가씨는 예외일지도 모른다. 박 과장의 경험에서 나온 조언은 존중하지만, 세상에 예외 없는 법칙은 또 없지 않은가? 어쩌면 이 아가씨는 비록 뿌리는 진흙 속에 내리고 있지만 심성은 더럽혀지지 않은 깨끗한 한 송이 연꽃일지도 모른다. 여러 가지 생각이 오갔다. 술을 한 잔 더 마신 뒤 김 과장이 말했다. “수련이, 술집 아가씨에게는 정을 주지 말라는 말을 알고 있지만 나는 수련이를 그저 술 따르며 웃음을 파는 보통 여자로는 보고 싶지 않아. 어리석은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저도 선생님을 보통 손님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어요. 대개 손님들은 저희들을 뭐라고 할까요. 노리갯감이나 감정이 없는 물건처럼 대하거든요. 그러나 선생님은 달랐죠.” 말없이 듣고 있던 김 과장이 말을 이었다. “

내가 어쩌자고 자꾸 마음이 끌리는가?

무심거사의 단편 소설 (10)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김 과장이 아가씨에게 물었다. “사람이 살아가며 크건 작건 희망이 있을 텐데 수련이의 희망은 뭔가?” “카페를 하나 차리고 싶어요. 그래서 지금 계를 들고 있죠. 현재 계획으로는 1년 정도 기다려야 될 것 같아요.” “카페를 차라기도 전에 몸이 망가지지 않을까?” “그럴지도 모르죠. 처음보다 몸이 많이 나빠진 것 같아요. 요즘은 날마다 간장약을 먹고 또 가끔 집에서 엄마가 보내 주는 보약을 먹기도 해요.” “어머니도 수련이가 여기 있는 줄 아나?” “아니요. 회사 다니는 줄로만 알고 있죠.” 태어날 때의 인간은 다 같이 평등하고 인간의 소망은 다 같이 소중할 텐데, 어쩌다가 자기 몸을 축내며 매일매일 억지로 술을 마셔야 하는 직업을 가지게 된 이 아가씨의 삶이 안타까웠다. 어떤 통계를 보니까 서울에서 직업을 가진 여성의 50%가 호텔, 여관, 사우나, 안마시술소, 이발소, 룸살롱, 다방, 텍사스촌 등 유흥업소 종업원이라던데 과연 이들의 삶에 누가 관심을 가져주는가? 유명한 정치인이나, 훌륭한 종교 지도자 가운데서 이들의 고달픈 삶에 진정으로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다 집어치우고 시집이나 가지 그래.” “사

입술에 루즈를 안 바르는 여자

무심거사의 단편소설 (9)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룸 안에 둘만이 남게 되자 갑자기 분위기가 어색해졌다. 김 과장은 ‘그냥 갈 걸 그랬나?’ 하는 약간의 후회감마저도 들었다. 썰렁한 침묵이 잠시 흐르자 김 과장이 입을 열었다. “우리 마주앙 한 병 더 할까?” “네, 좋아요.” “안주는 미스 나가 먹고 싶은 것 있으면 아무거나 시켜.” “과일 괜찮으세요?” “그래 좋아.” 조금 후 두 개의 술잔이 부딪쳤다. 술이란 이상한 액체라서 남자는 여자와 같이 술을 먹으면 기분 좋게 술술 잘 넘어간다. 반대로 여자 역시 남자와 같이 술을 마시면 잘 넘어갈 것이다. 이성(異性)과 함께 마시는 술은 그래서 사랑의 묘약이라고 말하나 보다. “그래,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 “저희들 생활이야 뻔하지요. 매일 억지로 술 마시고, 담배 피우고.” “참, 저번에 약속했던 금연 껌을 사왔지. 보통 껌처럼 씹어 먹으면 화학물질이 입에 남아 담배를 피우면 역겨운 냄새가 나서 담배가 싫어진다고 하더군. 여기 있어. 단번에 담배를 끊기는 힘들 거도 조금씩 줄여가 보도록 노력해 봐.” 아가씨는 김 과장을 애틋한 눈빛으로 바라보더니 나지막한 소리로 ‘감사합니다’ 말하며 금연껌을 받았다. 좋아하는 사람과

이 아가씨와 할 비밀 이야기가 있어요

무심거사의 단편소설 (8)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나도 사장 한번 되고 싶은 욕심 때문에 첫아들을 낳은 뒤 둘째는 생략하려고 했지. 양육비가 많이 들 것 같아서. 그런데 마누라는 애가 하나면 외롭다고 하나 더 낳자고 박박 우기더라고. 그래서 미스 나처럼 예쁜 딸을 기대하면서 둘째 애를 낳았는데 그만 아들 쌍둥이가 나왔지 뭐야. 결국 사장될 꿈은 사라지고 세 녀석 키우기에도 바빠서 허덕이면서 살아가고 있지.” “그래도 아들 부자니까 부자는 부자네요.” 미스 나가 웃었다. “내가 말하려고 하는 요점이 바로 거기에 있소. 요즘같이 집값이 비싸서야 20대 신혼부부가 봉급 모아서 언제 집 한 칸 마련하겠소? 요즘 신문에 부동산투기 억제다, 토지 공개념이다, 뭐다 하면서 요란하지만 내 집 마련의 꿈은 그저 꿈일 뿐이요. 결혼해서 인생의 황금시기에 먹고 싶은 것 안 먹고, 입고 싶은 옷 못 입고, 가고 싶은 구경 한번 못 가고, 허리띠를 졸라매며 오로지 집을 사기 위해 근검절약하는 그들을 보면 가련하기도 하오.” “그래 박 과장님의 연구 결과 묘안이 있습니까?” “남자와 여자의 결혼 연령에 20년 시차를 두면 됩니다. 자, 들어봐요. 우선 20대 여자는 40대 남자와 결혼하는 겁

왜 순탄치 못한 남녀관계가 많을까?

무심거사의 단편소설 (7)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미스 정의 어깨 안마를 받던 박 과장이 끼어들었다. “청춘남녀 연애하는 것 같아서 보기는 좋지만, 술집에 와서는 술을 마셔야 하지 않겠소? 그래야지 매상이 오르고, 주인 마담도 좋아하고, 이 아가씨들도 밥 벌어 먹고살고.” “맞습니다. 제가 미스 나에게 홀려서 그만 깜빡했습니다. 술 한 잔 받으세요.” 술잔이 돌았다. 김 과장은 미스 나가 따라주는 술잔을 거듭 비웠다. 박 과장이 농담을 걸었다. “미스 나! 김 과장이 겉으로는 점잖은 것 같아도 속으로는 바람기가 있다고. 조심해야 할 걸!” 김 과장이 말로 반격했다. “남자가 바람피우는 것은 본능적이지 않나요? 박 과장님은 바람피우고 싶다는 생각이 한 번도 없었어요? 예쁜 여자를 보면 마음이 움직이지 않나요?” 박 과장이 움찔했다. “허허, 남자가 바람피우는 것은 본능이라!” 김 과장이 미스 나와 러브샷을 한 후 말을 이어갔다. “이런 글을 읽은 적이 있어요. 한 아이가 태어날 때 여자 처지에서 보면 분명히 자신의 분신이다. 그러나 남자의 처지에서 보면 여자가 정숙하지 못할 수도 있으므로 그 아기는 자기가 뿌린 씨가 아닐 가능성도 있다. 생물체의 본능은 후손을 통하여 자

꽃이 지기로서니 바람을 탓하랴

무심거사의 단편소설 (6)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물수건으로 손을 닦은 뒤 술과 안주를 시키고 아가씨를 한 사람 불렀다. 술집아가씨들은 자주 자리를 옮긴다던데 4달 전에 만났던 미스 나가 아직 있을까? 약간은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는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미스 나가 커튼을 열고 들어오다가 김 과장을 보더니 깜짝 놀랐다. 박 과장이 웃으며 말했다. “미스 나라고 했던가? 아가씨는 저 양반과 나 중에서 누가 더 좋은가? 좋은 사람 옆에 앉도록 해.” “두 분 다 좋은데 어떡하죠?” “김 과장이 너 보고 싶다고 여기 오자고 했는데 내가 양보해야지. 어이 웨이터! 아가씨 하나 더 보내. 영계면 더욱 좋고.” 조금 후에 예쁘장한 젊은 아가씨가 와서 박 과장 옆에 앉으며 자기 소개를 했다. “미스 정이에요” 박 과장은 여자의 심리를 잘 아는 남자였다. “아이고, 내가 여복이 있나 보네. 이런 절세미인을 만날 줄이야! 어쩐지 오늘 운세가 좋더라니까.” 곧 이어 마주앙과 마른 안주가 들어왔다. 김 과장이 입을 열었다. “나수련 씨. 내가 기억나나?” “그럼요, 지난 6월 17일에 들리셨잖아요.” “어떻게 날짜까지 기억해?” “일기장에 써 있는 걸요.” “일기를 써?” “매일은 못 쓰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