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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승열의 명리학 다가가기

사주 감정으로 예측한 길흉이 얼마나 정확한가?

1편 입문 4장 사주 6절 ‘간명의 적중률(的中率)’

[우리문화신문=안승열 명리학도]  

 

 

총론에서 “운명은 출생시점(=년월일시)의 천기에 따라 인생사 길흉화복의 에너지로 예정되며 이 에너지를 사주의 간지로 확인하고 감정하면 일상의 언어로 표현할 수 있다”라고 정의 하고 이 정의가 명리학의 중요한 공리라고 하였다. 그동안 공부한 내용들을 참고하여 이 정의를 아래와 같이 보완하였다.

 

명리학은 인간이 별에서 온 물질과 에너지로 이루어진 소우주임으로 출생 때 천기(=우주에 가득 찬 오행의 에너지)가 그 개체에 깃들어 운명의 에너지를 활성화한다고 관념하였으며 사주를 정함에 만세력이나 유사 달력을 참조한 것은 이들이 서술한 출생 년월일시의 오행 간지에서 천기∼운명의 에너지가 추동(推動)한 인생사 길흉화복을 예언하기 위함이었다.

 

이제, 지난 절에 알아본 사주확인법이 어떻게, 얼마나 옳은지 생각해 보자.

 

현대 명리학의 기초를 다진 인물 서자평이 완성한 사주확인법은 중요한 특이점이 있다.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첫 사주가 있었다면 이는 “갑자/갑자/갑자/갑자 (시주/일주/월주/년주 순)”일 것이며 따라서 이 사주인의 출생일은 “갑자년 자월 갑자일 자시”가 된다. 그런데, 서자평의 사주확인법으로 이 출생 연월일시의 사주를 다시 확인해 보면 “甲子/甲子/丙子/甲子(시주/일주/월주/년주 순)”가 된다. 사주확인법 자체를 병자 월주가 되도록 설계하였다. 왜 그랬을까?

 

논리적인 이유는 없다. 단지 사주 감정의 적중률이 더 높이기 위한 것이었다.

 

적중률은 경험의 통계치이다. 서자평은 갑자년 자월생 사주인의 월주를 병자가 되도록 해야 사주 감정의 적중률이 높아진다는 통계적 확신이 있었다. 간명(看命)의 적중률을 높일 수만 있다면 병자가 아니라 갑자, 경자, 임자, 어떤 월주라도 좋다는 말이다.

 

지난 절의 사주확인법에 따르면 사주의 종류가 최소 50만(=60x12x60x12) 종이 넘는다. 이들 사주를 유형별로 나누고 그 검증 방식을 표준화하는 일이 너무 어려워서 적중률을 과학적 통계로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과거 길게는 이천 년, 짧게는 천 년 가량 정확히 예측한 역사적 사례가 수없이 많다. 현대 명리학자 개인적 경험을 종합하면 간명의 적중률이 60 ~70% 정도라고 하는데 인문학인 명리학의 이 같은 적중률은 내과 의사들이 청진기로 병명을 진단하는 확률인 30%와 비교할 때 매우 의미 있는 수준이다.

 

출생이라는 우연의 사건이 일어나는 연월일시에서 시작한 서자평의 사주간지가 보여주는 높은 적중율의 인생사를 보며 《사주정설》의 저자인 백영관은 “다만 어느 날 명리학의 천재가 나타나서 그 원리 밝혀주기를 바랄 뿐”이라고 하였다.

 

위 적중율은 사주 감정의 실용적 값어치를 강변한다. 사실, 핵에너지의 선용과 악용으로 인류 문명을 좌우하는 상대성이론이나 물리학의 체계를 근본부터 바꾸어 찬란한 전자 문명의 근간이 된 양자역학 원리들도 근본적인 인과(因果)는 모른다. 현존 최고의 물리학이나 명리학이 모두 경험적 필연성만으로 그들 이론의 실용적 값어치를 입증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 역사적으로 오성술, 구성법, 기학, 육임, 자미두수 등 많은 간지 예언술이 있었으나 저급한 적중률로 그 자취를 감추고 말았으니, 명리학의 성쇠(盛衰)도 적중률에 있다.

 

간명의 적중률을 더욱 높이기 위해 사주인의 인생을 탐구하고 시대의 변천을 감안하며 기존에 정의된 천간 지지의 의미나 그들의 상호 작용이 만드는 에너지, 음양오행론 나아가 사주확인법 등의 보완과 수정이 서자평 시대 이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면면히 지속되어 왔던 것이다. 이 같은 노력은 미래에도 부단히 계속되어야 할 명리학의 숙제임을 재삼 강조하며 이론 위주의 입문편을 마감한다.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