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상훈 교수] 오늘은 귀국해야 하는 날이다. 새벽 4시에 일어나 4시 반에 시작하는 예불에 참여했다. 5시 50분에 아침 공양을 하고 병산과 헤어졌다. 병산과 하라상은 순례를 계속할 것이다. 두 사람은 네팔 국경을 넘어 다시 인도로 가고, 계속 서쪽으로 가서 다람살라에 도착하여 유명한 종교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를 만날 계획이다. 달라이 라마를 만나면 무슨 말을 하겠느냐고 병산에게 물었더니 전 세계에 450개나 있는 핵발전소와 인류의 미래에 관해서 가르침을 주시라고 말하겠단다. 부디 병산의 꿈이 이루어지기를 부처님에게 기원한다. 아침 8시에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갔다. 아주 작은 시골 공항이다. 부다 에어 (Buddha Air) 항공기를 예약했는데, 30명 정도 탈 수 있는 작은 프로펠러 비행기이다. 오전 11시에 출발하여 30분 정도 비행하여 카트만두 공항으로 갔다. 네팔은 북쪽으로 길이가 2,500km나 되는 히말라야 산맥이 길게 펼쳐 있다. 날씨가 맑으면 비행기에서 히말라야를 볼 수도 있다는데, 이날은 날씨가 흐려서 흰 눈이 쌓인 히말라야는 보이지 않았다. 대신 카트만두 공항 대합실에 있는 커다란 에베레스트 산 사진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우리문화신문=이상훈 교수] 새벽 4시에 잠이 깨어 4시 30분에 시작하는 예불에 참석했다. 오늘은 스님 한분과 그리고 나 이렇게 두 사람만 예불에 참여했다. 그런데 5시 쯤 되었을까 아직 예불 중인데 멀리서 확성기 소리가 들리면서 소란스러워졌다. 무슨 기도문을 외우는 것 같기도 하고 노래를 틀어놓은 것 같기도 하고. 예불을 방해할 정도로 소란스러웠다. 소음의 근원지는 국제사원단지 어디인 것 같으나 정확히는 알 수가 없다. 나중에 네팔 사람 사무직원에게 물어보니 근처의 힌두교 사원에서 9일 동안 기도회가 열렸는데, 오늘이 마지막 날이어서 새벽부터 시끄러웠을 것이라고 말해 준다. 기독교로 말하면 부흥회를 9일 동안 열었는가 보다. 겨울에는 농사일이 없이 한가하니 9일 동안이나 기도회를 할 수가 있을 것이다. 아침 공양 뒤에 대성석가사에서부터 순례를 출발하였다. 오늘 목표는 24km 서쪽에 있는 카피라바투인데 근처에 있는 유적지인 카필라 성까지 가기로 했다. 오늘도 험난한 코스였다. 길에서는 먼지가 풀풀 나고 햇살이 따갑게 비쳐서 날씨가 더웠다. 일요일인데도 학생들이 가방을 메고서 학교에 간다. 지나가는 어른에게 물어보니 네팔은 힌두교를 따라서 토요일에 쉬고
[우리문화신문=이상훈 교수] 오늘도 새벽 예불에 참여했다. 만물이 깨어나기 전 캄캄한 새벽에 산사의 법당에서 진행되는 예불의 분위기는 매우 경건하며 사람의 마음을 신비하게 흔드는 묘한 매력이 있다. 내가 20대 청년이었을 때에 내장산 백양사에서 처음으로 새벽 예불을 경험한 이후, 나는 누구에게나 불교의 진면목을 경험하려면 새벽 예불에 꼭 참석해 보라고 권하고 있다. 한국의 불교가 때로는 일부 승려들의 일탈로 문제를 일으키기도 하지만 그래도 무너지지 않는 것은 경건한 새벽 예불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마찬가지로 한국의 기독교가 세습이니 기복이니 하는 부작용이 있어도 무너지지 않는 것은 열성적인 새벽 기도회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오늘은 순례자 세 명이 정식으로 실크로드 순례길을 걸었다. 아침 8시 30분에 대성석가사를 나와서 근처에 있는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갔다. 일반 버스를 타고 룸비니 공항으로 16km를 이동하는데 거의 한 시간이나 걸렸다. 지난 번 순례의 끝 지점이 룸비니 공항이었는데, 공항의 정식 이름은 가우탐 부다 공항이었다. 오늘 아침 9시 30분부터 낮 3시까지 16km를 걸었는데, 도로 사정이 좋지 않아서 고생을 하였다. 도로가 비
[우리문화신문=이상훈 교수] 아침 일찍 일어나 4시 30분 새벽 예불에 참여했다. 도량석 소리를 들으면서 일어나 옷을 입고 방문을 나섰다. 스님이 두 명, 그리고 신도 3명이 법당 안에 앉아서 예불을 시작하였다. 큰 절에서는 예불을 시작하기 전에 경내에 있는 범종, 법고, 목어, 운판의 이른바 불교 사물을 두드려서 소리를 내는 데, 사물은 각자 의미가 있다. 범종은 지옥의 중생들을, 법고는 길짐승을, 목어는 물고기를, 그리고 운판은 새를 깨워서 부처의 가르침을 전한다는 의미이다. 사물을 치는 순서는 법고가 처음이고 이어서 운판과 목어를 치고, 마지막으로 범종을 친다. 의식을 간략히 할 때에는 목어와 운판을 생략하는데 법고와 범종은 생략할 수 없다. 예불이 끝나고 각자 좌선하는 자세로 침묵 속에서 기도를 계속하였다. 나는 75억 명이 살고 있는 아름다운 지구에 핵발전소가 없어지는 날이 빨리 오기를 기원하는 기도를 하였다. 내가 사랑하는 손자들에게 핵발전소가 없는 안전한 지구를 물려주기 위하여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았다. 거의 한 시간 정도 법당에 있다가 법당 문을 살며시 열고 나왔다. 법당 문 아래 계단을 조심조심 내려갔다. 고개를 들
[우리문화신문=이상훈 교수] 36시간 동안 음식을 먹지 않고 뜨거운 물만 마셨더니 설사는 멈추고 위와 장은 정상으로 돌아온 것 같다. 아침 식사를 호텔 식당에서 간단히 해결하고 오늘의 목표지인 룸비니로 이동했다. 바랏푸르에서 룸비니까지는 120km 거리인데 룸비니는 인도와의 국경지대에 있다. 아침 9시에 호텔을 나서서 먼지가 풀풀 스며드는 버스를 두 번 타고 다시 택시를 타고, 8 시간 걸려서 룸비니에 도착하니 저녁 5시가 되었다. 네팔은 남쪽으로는 인도와 인접해 있지만 북쪽으로는 티베트와 접경을 이루고 있다. 한때 네팔은 티베트의 지배를 받았는데, 이때 티베트의 라마교가 자연스럽게 네팔에 뿌리내리게 되었다. 오늘의 네팔 불교는 곧 라마교를 지칭하며 티베트에서 온 라마승들에 의해 명맥이 유지되고 있다. 기원전 3세기에 아쇼카 왕이 룸비니에 세운 석주가 1896년에 발견되었다. 그러나 룸비니는 1967년까지만 해도 황폐한 모습의 유적지였다. 당시 이곳을 방문했던 미얀마 출신 우탄트(전 유엔사무총장)가 룸비니의 재건을 호소하였고, 세계 불교인들의 호응을 얻어 룸비니를 불교 성지로 개발하기 시작하였다. 1990년대에 네팔 정부에서는 룸비니 북쪽 지역을 국제사원
[우리문화신문=이상훈 교수] 호텔 식당에서 아침을 먹은 후에 병산과 하라상은 근처에 있는 치트완 국립공원에 갔다. 나는 설사가 그치지 않아서 병산을 따라가지 않고 그냥 호텔에서 쉬겠다고 말했다. 아열대 밀림인 치트완 국립공원의 면적은 932 km²인데 (우리나라 지리산 국립공원은 483km²), 유네스코 지정 세계자연유산에 등록되어 있다. 이 공원의 숲에는 원숭이는 물론 코끼리, 코뿔소, 그리고 멸종 위기에 있는 벵갈 호랑이가 있어서 세계적으로 알려진 관광지이다. 치트완 국립공원은 지프차를 타고 구경할 수도 있고 가이드를 따라 걸으면서 둘러 볼 수도 있다는데, 병산은 순례자답게 걸었다고 한다. 나는 여행 가방에 넣어서 가져온 ‘코스모스(Cosmos)’라는 제목의 두꺼운 책을 하루 종일 읽었다. 이 책의 저자는 칼 세이건이라는 물리학자인데 천체 물리학이 밝힌 우주의 실상을 과학자가 아닌 일반 대중이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써서 유명해진 작가이다. 나는 이 책을 지난해에 샀는데, 무려 719쪽이나 되는 두꺼운 책이어서 읽을 엄두를 내지 못하고 가지고만 있었다. 이번 네팔 여행에서는 아무래도 시간이 많을 것 같아서 챙겨서 가져 왔다. 자세히 살펴보니 이 책은
[우리문화신문=이상훈 교수] 오늘 우리는 카트만두를 떠나 남쪽 룸비니로 내려가야 하다. 순례자 세 사람은 아침식사는 간단히 호텔에서 먹고 택시를 타고 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시외버스는 아침 9시 30분에 출발하였다. 버스의 최종 목적지는 남쪽 평원에 있는 룸비니이지만 오늘 우리는 중간 조금 지나서 바랏푸르라는 도시에서 내려야 한다. 카트만두에서 바랏푸르까지는 160km이다. 우리가 탄 시외버스는 내가 어렸을 때에 탔던 버스보다도 훨씬 작고 자리는 비좁았다. 승객은 30명 정도 탈 수 있는데, 의자 사이 통로에 사람들이 서서 갔다. 외국 관광객이 타는 관광버스는 크기도 컸지만 깨끗하고 근사해 보였다. 병산에게 왜 관광버스를 타지 않았느냐고 물어보니 우리가 탄 시외버스가 비용이 1/3 정도로 싸다고 한다. 무릇 좋은 일을 하려면 제일 먼저 해결해야 하는 것이 재정 문제이다. 병산은 2년 동안의 실크 로드 순례를 후원할 100인 위윈회를 모집하였다. 100인 위원회 위원이 되면 한 사람이 100만원을 기부하는데, 기부자에게 제공하는 혜택은 순례에 동참하면 그 기간의 숙식을 무료로 제공해 준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오고 가는 항공료는 본인 부담이다. 지금까지 9
[우리문화신문=이상훈 교수] 호텔에서 아침 식사를 간단히 마친 후, 순례단장인 병산은 카트만두 시 외곽 파탄에 있는 힌두교 사원을 방문하자고 말했다. 네팔에는 석가모니가 탄생한 룸비니가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네팔이 불교 국가일 것으로 예상하지만 네팔은 국민의 87%가 힌두교를 믿는 나라다. 그런데 병산은 뜻밖에도 파탄의 더르바르 사원까지 걸어가자고 자연스럽게 말한다. 나는 이제 순례자가 되었기 때문에 순례단장의 말에 이견을 제시하지 않고 따랐다. 세 사람은 순례 깃발을 들고서 세로로 5m 간격으로 떨어져서 걸어갔다. 파탄까지는 6km이므로 먼 거리는 아니지만 신호등이 있는 시내를 통과하느라고 2시간이 넘게 걸렸다. 날씨는 이른 봄 날씨이고 또 바람이 없어서 그렇게 춥지는 않았다. 시내를 벗어나자 먼지 나는 비포장도로가 계속되어 걷는 것 자체가 유쾌하지는 않았다. 길가에는 초라하고 낡은 집들이 보였다. 거리에서 만날 수 있는 아이들의 얼굴과 옷에서 가난이 뚝뚝 묻어났다. 길은 지저분하고 먼지가 났다. 아마 우리나라도 1960년대에는 거리가 이런 모습이었을 것이다. 가게에서는 손잡이가 달린 펌프로 지하수를 품어 올려서 사용하고 있었다. 마을마다 작은
[우리문화신문=이상훈 교수] 병산은 네팔의 남부 룸비니 공항에서 아침 11시 비행기로 출발한다고 했는데, 안개 때문에 비행기가 지연된다고 카톡으로 연락이 왔다. 아마도 낮 2시 이후에 출발할 것 같다고 한다.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지기 때문에 나는 관광 지도를 살펴보았다. 호텔에서 멀지 않은 곳에 더르바르 지역이 관광지로 표시되어 있다. 그래서 생수 한 병을 배낭에 넣고 휴대폰을 들고 구글 지도를 참고하여 카트만두 더르바르 사원을 걸어서 찾아갔다. 더르바르는 사원이 있는 작은 광장 같은 곳이었는데, 안내판에 있는 사진과는 아주 다른 모습이었다. 안내판을 자세히 읽어 보니 2015년 4월 25일 네팔에서 큰 지진이 발생하였다고 한다. 나중에 추가로 검색해 보니 모멘트 규모 7.8 지진의 진앙은 네팔의 고르카 지역이며 이 지진으로 인해 네팔, 중국,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등지에서 8,400명 이상이 사망하고 16,000명이 부상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네팔에서만 6,000명 이상의 사망자가 나왔고 인도에서도 76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인명 피해 외에도 지진으로 인해 네팔에 있는 유네스코 등재 세계 문화유산이 많이 파괴되었다. 카트만두 더르바르 광장
[우리문화신문=이상훈 교수] 병산은 일요일인 내일 카트만두로 오기 때문에 오늘은 하루 종일 자유 시간이었다. 내가 머무는 호텔이 있는 타말 지역은 수많은 호텔과 상점, 음식점 등이 모여 있는 시내 중심부다. 히말라야로 등산이나 트레킹 가는 사람들이 이곳 타말 거리에서 모든 준비물을 구입한다고 한다. 나는 등에 작은 가방을 매고서 혼자서 이리 기웃 저리 기웃 타말 거리를 구경하였다. 마침 주말이라서 수많은 사람들이 타말 거리로 모여들었다. 상점에서 파는 물건들은 각종 장신구, 향료, 기념품, 옷, 과일, 등산 장비, 차 종류 등등 다양하고 이국적이었지만 품질이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나는 물건은 사지 않고 그저 구경만 하면서 이리 저리 쏘다녔다. 예전에 나는 네팔의 구르카 용병이 매우 용맹하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다. 그런데 오늘 우연히 거리를 지나다가 군장을 파는 상점에 구르카 용병의 사진이 마네킹 옆 벽에 걸려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사진에는 다음과 같이 영어로 쓰여 있었다. “If man says he is not afraid of dying, he is either lying or he is Gurkha.” (어떤 남자가 죽음을 두려워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