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봄은 섬진강으로부터 온다는 말이 있습니다. 섬진강 강가에 매화 농원이 죽 이어져 있어 길 이름도 매화로이고 봄이 되면 활짝 핀 매화가 봄을 재촉하기 때문이기도 하지요. 섬진강에는 두꺼비 석상이 많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섬’자가 두꺼비 ‘섬(蟾)’을 쓰기 때문인데요. 고려 1385년에 섬진강 하구에 왜구가 침입하자 수십만 마리의 두꺼비 떼가 울부짖어 왜구가 광양 쪽으로 피해 갔다고 하는 전설이 있어 그 뒤로 섬진강이라 불렀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 매화가 언제 들어왔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백제 왕인의 시에 매화가 나오는 것으로 보아 그 이전부터 매화나무가 있었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설중매(雪中梅)’라고 하며 이른 봄 눈을 뚫고 피어나는 지조와 품격을 지닌 꽃이기에 사군자의 으뜸 위치에 놓여 있는 꽃이기도 하지요. 아직 쌀쌀하고 추운데 죽은 듯 한 가지 사이로 예쁜 꽃이 핀 것을 보면 생명의 신비에 경이감이 느껴집니다. 매화는 꽃의 색에 따라 홍매화ㆍ분홍매화ㆍ청매화ㆍ백매화로 분류하는데 매실을 얻기 위해서는 백매화를 심어야 합니다. 약 열흘 상간에 벚꽃이 피기도 하여 많은 사람이 벚꽃과 매화를 혼동하기도 하는데 벚나무는 키가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바다에 떠다니는 배들은 대부분은 짐을 싣고 있습니다. 만약에 무거운 짐을 싣지 않으면 배가 불안정하여 높은 파도를 이겨낼 수 없습니다. 선원들은 빈 배로 항해해야 한다면 밑바닥에 평형수를 채웁니다. 그래야 외부의 높은 파도나 조류에 의해 선박이 심하게 흔들릴 때 복원력을 발휘하여 균형을 잡을 수 있게 됩니다. 배가 전복되는 주요 원인 가운데는 하나는 평형수를 잘 못 관리한 까닭입니다. 평형수란 배에 짐을 싣지 않은 상태에서 배의 균형을 잡기 위해 배 안의 탱크에 바닷물을 채우거나 바다로 물을 배출하는 것을 뜻하는데 쉽게 말하면 오뚜기가 하단부의 무게로 넘어지지 않듯이 평형수도 물 위에서 중심을 잡기 위한 장치라고 보면 됩니다. 인생은 바다를 항해하는 배와 같습니다. 우리네 인생도 어느 정도의 걱정과 고통 고뇌는 항상 필요한 것입니다. 선장은 경험이 중요합니다. 선장 대부분은 거친 바다에 풍랑이 시도 때도 없이 일어난다는 것과 높은 풍랑이라도 지혜롭게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압니다. 우린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재난에 맞닥뜨리게 됩니다. 그럴 때 놀라고 두려운 마음에 좌초의 위기를 겪기도 하지만 평형수가 채워진 사람은 재난의 풍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산에는 참나무도 존재하지 않고 들국화도 없습니다. 참나무는 떡갈나무, 신갈나무, 졸참나무, 굴참나무, 상수리나무, 갈참나무를 아울러서 말하는 것이고 들국화도 산국, 감국, 뇌향국, 구절초, 갯국화, 개미취, 쑥부쟁이를 아울러서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우리말에 ‘참’이라는 접두사는 명사 앞에 붙어 진짜 또는 참이라는 뜻을 나타내니 진짜 나무라는 의미입니다. 참나무는 목재로서의 값어치와 도토리를 구황 식량으로 사용하였기 때문에 사랑받아 온 나무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느님을 만난 곳도 도토리나무 밑에서였다고 합니다. 세계적으로 도토리를 식용으로 하는 나라는 매우 드믄데, 남북한만 해당한다고 하니 우리 식문화의 다양성이 대단함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이름을 보면 생활 밀착형임을 알 수 있습니다. 큰 잎으로 떡을 싸서 쪘다고 해서 떡갈나무, 짚신 깔창으로 사용했다고 해서 신갈나무, 가을 늦게까지 단풍잎을 볼 수 있다고 가을 참나무인 갈참나무, 껍질을 굴피집 재료로 썼다고 해서 굴참나무… 흉년엔 도토리가 풍년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물론 이 말은 세월이 사람을 길러낸다는 의미로 쓰입니다. 하지만, 5월 모내기 철에 비가 많이 오면 풍년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지구상 모든 생명의 기원은 해에게 있습니다. 그리고 그 해의 기운을 받아 필요한 양분을 공급해 주는 것이 식물이지요. 그 식물 기관의 하나로 줄기나 가지에 붙어서 광합성을 통해 영양분을 만들고 모든 생명 활동의 기초가 되는 것이 잎입니다. 만약에 잎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초식동물이 존재하지 못할 것이고 육식동물 역시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니 지구는 무너진 먹이사슬로 인해 아무것도 살 수 없는 황폐한 행성이 될 것입니다. 우린 꽃에 주목하고 상대적으로 잎은 잘 보지 않습니다. 꽃은 화려하고 부드러우며 아름다움을 주기 때문이기도 하려니와 감상에 아주 짧은 시간만 허락되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요. 물론 꽃도 중요하지만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잎의 중요성을 깨달을 필요가 있습니다. 유년 시절 과수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봄에 복사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그 아찔한 감동의 시간을 보내고 나면 나는 잎에 주목해야 했습니다. 오갈병이나 마름병으로 잎이 병들면 열매의 수확을 담보할 수 없기 때문이었지요. 어쩌면 잎은 드러나지 않는 가운데 묵묵히 일하는 수도자를 닮았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이치도 그러하지 않을까요? 꽃처럼 화려하게 전면에 나서서 부와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소나기 내리는 날 예쁜 여학생이 책을 가슴에 품고 비를 피해 도서관으로 뛰어들었습니다. 이미 몸은 젖었고 마스카라는 번져 몰골이 말이 아니었지요. 그때 초로의 교수가 묻습니다. "자네 괜찮나?" "네. 몸이 젖고 화장이 번지긴 했지만 괜찮습니다." "아니 자네 말고 자네 책 말일세…." 공자님의 일화가 있습니다. 어느 날 마구간에서 큰불이 났습니다. 이때 하인이 들어와 말하지요. "큰일 났습니다. 마구간에 큰불이 났습니다." 그때 공자님은 묻습니다. "다친 사람은 없는가?" 마구간의 불 소식을 듣고 말의 안부가 아니라 사람의 안부를 묻는 공자의 모습을 봅니다. 책의 안부를 묻는 교수와 대조적이지요. 판단의 기준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을 우린 인본주의라고 이야기하지요. 옛날 종교가 중요한 잣대로 세상을 지배했을 때를 신본주의라고 한다면 지금 물질 만능을 구가하는 시대를 물본주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린 인간의 본질로 돌아가야 합니다. 인간에 관한 것을 가장 중히 여기는 인본주의로의 회귀가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프랑스 인권선언 제1조는 이러합니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또한 평등한 권리를 가진다.“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열자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그리 많이 알려진 인물은 아니지만 약자의 편에 서서 그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말을 한 좋은 사람입니다. 그 책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옵니다. “양주 : 나는 천하를 다스리는 것을 손바닥 뒤집듯 쉽게 할 수 있소 양양 : 당신은 처첩도 제대로 거느리지 못하고 작은 밭조차 제대로 경작하지 못하면서 무 슨 말이요? 양주 : 아무리 어린 목동이라도 하더라도 양 치는 일은 임금보다 잘 할 수 있는 것이요. 호미와 쟁기의 쓰임이 다르듯이 사람도 됨됨이에 따라 쓰임새가 다른 법이라오 쟁기만 옳고 호미는 그르다는 주장은 옳지 않소. 참으로 큰 인물은 노는 물과 하는 역할이 남달라야 하는 법이라오.” 《장자》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나오지요. 탄주지어 육처즉 불승루의 呑舟之魚 陸處則 不勝螻螘 "수레바퀴를 삼켜버릴 큰 짐승도 산에서 내려오면 그물에 걸리는 재앙을 피할 수 없고 배를 삼킬만한 큰 물고기도 휩쓸려 물을 잃으면 개미에게도 괴롭힘을 당할 수 있다." 이는 익숙한 거처를 떠났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거대한 권력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그 자리에서 물러나면 사람들이 쉽게 보는 경향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또한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2,500여 년 전 손무와 손빈은 《손자병법》이란 책을 완성합니다. 그 글에는 ‘무소불비 무소불과(無所不備 無所不寡)’라는 말씀이 나오지요. "부족한 곳이 없도록 하려 한다면 부족하지 않은 곳이 없다."라는 말씀입니다. 쉽게 표현하면 모든 곳을 대비하면 모든 곳이 소홀해진다는 뜻입니다. 곧 한정된 군사를 모든 곳에 배치하면 각처마다 수가 적어져서 각개격파의 대상이 됩니다. 다시 말하면 운용상의 효율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전쟁에서 군사의 숫자는 예나 지금이나 참으로 중요합니다. 그리나 군사가 많다고 반드시 이기는 것은 아닙니다. 집중이 중요합니다. 적이 올 가능성이 가장 큰 곳에 군사력을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지요. 소수의 군사로 대군을 이기려면 ‘무소불비 무소불과’를 해야 합니다. 세상을 살다 보면 문제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또한 모든 것을 다 가진 사람도 없지요. 어쩌면 한 사람이 가지는 일생의 행복과 불행의 총량은 모두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어느 책에서 다음과 같은 구절을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 "모든 것을 다 갖는 삶은 누구에게도 오지 않는다." 세상엔 부유하고 잘 나가는 사람들이 모든 것을 다 가진 것처럼 보이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옛 어른들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자리에 있지 않고서는 그 일에 대해서 의논하지 않는다" 사람은 남의 입을 통해서 사실을 인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다 보면 나의 주관이 아니라 남의 주관대로 세상을 살아가게 됩니다. 진실을 잘 알지 못하면서 떠벌리는 경우도 많지요. 임금을 섬길 때는 임금의 존경을 받아야지 임금의 총애를 받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또한 임금의 신뢰를 받는 게 중요하지, 임금을 기쁘게 해주는 사람이 되는 것은 중요하지 않지요. 조석으로 가까이에서 임금을 모신다고 해서 존경받는 사람이 아니며, 시나 글을 잘하고 재주를 가진 사람이라고 해서 임금이 존경한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글씨를 잘 쓰는 사람도, 얼굴빛을 살펴 비위를 잘 맞추는 사람도 벼슬 버리기를 어려워하는 사람도, 차림새가 엄하지 못한 사람도, 권력자에게 이리저리 붙는 사람도 임금은 존경하지 않습니다. 경연에서 온화하게 말을 주고받고, 일을 처리할 때 비밀히 부탁하고, 임금이 마음속으로 믿고 의지하여 서신이 자주 오가고, 하사품이 자주 내려질지라도 그런 것을 총애나 영광으로 믿어서는 안 됩니다. 그럴 때 뭇사람들이 노여워하고 시기하게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요즘 산을 오르다 보면 가장 많이 보이는 짐승이 까마귀와 고양이입니다. 옛날에 토끼와 꿩이 많았던 것하고는 대조적이지요. 까마귀는 생김새와 울음소리, 식성 때문에 길조보다는 흉조로 알려진 새입니다. 그건 아마도 전쟁이 쓸고 간 계곡에 시신이 널브러져 있을 때 가장 먼저 달려드는 새가 까마귀이기 때문으로 추측합니다. 그리하여 전염병이 돌 때 까마귀가 울면 병이 널리 퍼진다고 하였고 길 떠날 때 까마귀가 울면 재수가 없다고 했지요. 또한, 귀에 매우 거슬리는 말을 할 때 ‘염병에 까마귀 소리를 듣지’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까마귀는 검습니다. 검은 것은 지저분하고 더럽다고 생각하기 마련이지요. 어머니는 어쩌다가 씻지 않은 날이면 '까마귀가 아저씨 하겠다.'라고 말씀하셨으니까요. 세종 때 이직이라는 사람은 '까마귀 검다 하고'란 시조를 씁니다. “까마귀 검다 하고 백로야 웃지 마라 겉이 검은들 속조차 검을쏘냐 겉 희고 속 검은 이는 너뿐인가 하노라.” 이는 체면문화로 겉치레하는 양반들을 꼬집은 내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까마귀의 깃털은 그냥 까만 게 아니라 보라색과 녹색이 섞인 검은색을 띠고 있고 까마귀는 까치, 앵무새와 함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올해를 검은 토끼라고 함은 60갑자에 그 기원이 있습니다. 계묘(癸卯)년의 계(癸)는 검은색을 묘는 토끼를 의미하기 때문이지요. 서양에서는 검은색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인종차별로 이어지기도 하지요. 블랙먼데이, 블랙리스트, 블랙박스, 블랙코미디... 블랙이 들어간 것 중 좋은 것이 없고, 화이트칼라, 화이트 라이, 화이트 하우스, 화이트 크리스마스…. 화이트가 들어간 것 가운데는 나쁜 것이 없습니다. 일종의 백색 우월주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하지만 동양은 조금 다릅니다. ‘현묘지도(玄妙之道)’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곧 그윽하고 현묘한 진리를 의미하는 성어입니다. 색은 각각의 명도를 갖고 있지만 명도를 낮게 하면 검은색으로 수렴한다는 것이지요. 곧 빨간색이라고 하더라도 아주 진한 빨간색은 묘한 검은 빛을 띠고 있습니다. 도라고 하는 것이 이처럼 그윽하고 깊어서 속을 가늠하기 어렵다는 말씀입니다. 또한 검은색은 인간의 지혜를 관장한다고 하지요. 예로부터 토끼는 약한 동물로 나오지만, 달에 사는 달토끼부터 지혜의 상징으로 사용되기도 했고, 다산과 성장, 풍요와 행운의 상징이기도 했습니다. 특히 귀가 길어 상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