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박물관은 그 자체로 하나의 훌륭한 작품이다. 전시를 보기 위해 박물관을 찾는 경우도 많지만, ‘박물관’이라는 공간이 주는 특유의 느낌이 좋아 즐겨 찾는 이들도 많다. 그러나 박물관이 갖는 존재감만큼, 그 공간의 묵직한 역사를 친절히 짚어낸 책은 흔치 않다. 박물관 마니아를 자처하는 저자 황윤이 공들여 집필한 이 책 《박물관 보는 법》은 한국에서 박물관이 어떻게 탄생했고, 어떻게 발전해왔으며, 눈여겨보아야 할 박물관에는 어떤 곳들이 있는지 진중하고도 쉽게 설명해준다. 한국에서 박물관의 역사는 일제에 의해 반강제로 시작되었다. 일제는 고종의 헤이그 특사 파견을 빌미 삼아 고종을 강제로 퇴위시키고 순종을 즉위시킨 이후, 전국에서 반일 여론이 들끓자 국면 전환용 이슈로 왕실박물관 건립을 꺼내 들었다. 왕실박물관 건립을 조선의 근대화 업적으로 내세워 조선왕조를 낡은 ‘전근대’로 보이게 함과 동시에, 새롭게 즉위한 순종이 창덕궁 내 박물관 건립을 주도하게 함으로써 일제는 조선의 근대화를 추진한 선진국으로 홍보하고자 했다. “어찌 시체와 함께하던 물건들이 궁궐 내에 전시되어야 한단 말이오?” 1907년, 순종 황제 앞에서 여러 대신이 열띤 논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뮤지엄 서울》. 이 제목을 본 독자는 서울에 있는 박물관을 소개하는 책을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결론부터 말하면, 제목에 쓰인 서울은 작가의 필명 ‘김서울’에서 따 온 것으로, 작가 (김)서울이 자신만의 재미있는 시각과 솔직담백한 문체로 전통과 유물, 박물관을 이야기하는 책이다. 저자는 2019년 텀블벅 「시리즈 오브 시리즈」 프로젝트의 하나로 9월부터 10월까지 매주 1회씩 글을 연재했고, 당시 ‘한국 문화유산 큐레이팅’이라는 소개 문구와 함께 연재했던 글을 보완하고 다듬어 한 권의 책으로 엮어냈다. 책은 ‘흐르는 시간’, ‘유물에 담긴 시간’, ‘미래의 박물관’의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흐르는 시간’에서는 명사가 아닌 동사로서의 전통, 곧 ‘흐르는 전통’을 다루고 있다. 흔히 ‘전통’이라고 하면 현재와는 단절된 과거의 한 시점을 떠올린다. 그러나 저자는 ‘전통’의 ‘전’은 ‘앞 전(前)’이 아니라 ‘전할 전(傳)’이며, ‘통’ 역시 ‘계통 통(統)’으로 두 글자 모두 이어진다는 뜻이 있음을 일깨운다. 그것은 곧,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도 전통의 일부이며 전통은 매 순간 만들어지고 있는 현재진행형이라는 것이다. 가령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귀양살이 하는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 사전에서 찾은 ‘귀양다리’의 정의다. 유배인은 세상의 업신여김을 당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이유야 무엇이든 거친 세파에 휩쓸려 유배형, 그 가운데서도 가장 죄가 중한 자만 보낸다는 제주도로 보내진 것이니 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유배를 보낸 쪽, 승자의 시각에 가까웠다. 오히려 제주 사람들에게 유배인은 앞선 지식과 문화를 전수해줄 귀중한 전령이었다. 흔히 유배살이라고 하면 집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사람을 만나지도 못하는 답답함을 떠올리기 마련이지만, 생각보다 유배생활은 꽤 자유스러웠다. 그래서 제주에 온 선비들은 제자를 양성하며 학문을 전수하기도 하고, 시회(詩會)를 조직해 지역 문화계를 주도하기도 하고, 제주 여인과의 사이에 자식을 두어 입도조(入島祖, 섬에 처음으로 정착한 각 성씨의 조상)가 되기도 했다. 《제주도 귀양다리 이야기》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저마다의 사연을 가지고 제주에 유배 온 사람들과 그들의 생활을 쉬우면서도 학술적인 문체로 차분히 풀어낸다. 풍부한 자료조사와 제주 곳곳을 누비며 찍은 직접 찍은 사진들이 인상적이다. 이 한 권만 읽어도 제주에 유배온 사람들의 면면을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우리, 그림 그린 적 많아도 우리 그림, 그린 적 정말 없다. 다들 지난 시절을 추억해보면, 주로 학교와 일상에서 그렸던 그림은 서양화일 거다. 박물관에 가서 우리 그림을 본 적은 있겠지만, 보통 ‘수묵화’, ‘문인화’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선비의 고고한 기품, 범상치 않은 위엄 때문에 뭔지 모를 부담감을 느낀 독자도 많을 법하다. 그런 의미에서 신하순ㆍ최혜인ㆍ최은혜ㆍ안지연이 함께 쓴 《우리 그림, 그려볼까요?》는 우리 미술에 관심을 두는 것은 물론, 조금씩 배워보고 싶게끔 만드는 책이다. 우리 미술에 대해 알고 싶어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감을 잡기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 서울대 동양화과 출신의 저자 네 명이 각자 자신의 특기를 살려 한 분야를 소개한다. 우리 그림의 대표적 장르인 수묵화, 채색화, 산수화, 문인화가 그것이다. 각 장에는 그림을 그리기 전 생각해 보아야 할 점, 재료 소개, 제작 과정이 담겨 있어 친근한 미술 선생님이 설명해주는 듯, 우리미술 입문서로 손색이 없다. 첫 번째 주제 <수묵화를 그려볼까요?>에서는 작은 점에서 큰 점으로, 가는 선에서 굵은 선으로 먹의 번짐과 흐름을 경험하면서 최대한 쉽고 편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유물(遺物). 선대의 인류가 후대에 남긴 물건. 이 묵직한 어감에 감히 다가갈 엄두를 내지 못했던 사람이라면, 책 속 유물이 뿜어내는 귀여움에 갑자기 무장해제된 느낌을 받을 것 같다. 지금은 유물이라는 거창한 이름표를 달고 있지만, 실은 예전에 문방구로, 장신구로, 가구로 자연스레 썼던 물건들이다. 오늘 내 책상 위, 옷장 안에 있는 물건 역시 100년 뒤에는 박물관에 있을지라도 지금은 무심히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가 어렵게 생각하는 유물도 한때는 자연스러운 일상이었다. 이해인과 이희승, 두 저자는 이런 일상성을 눈여겨보았다. 같은 학교, 같은 과에서 만난 두 사람은 전통에서 영감을 받은 각종 소품을 선보이는 디자인 브랜드 ‘이감각’을 운영하고 있다. 이들이 디자인한 소품은 기발한 디자인과 발랄한 감각으로 전통을 무심한 듯 일상으로 들여놓는다. 이를테면 복주머니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가방, ‘호담국(虎談國)’이라 불릴 만큼 유난히 많았던 호랑이 이야기에서 착안한 각종 호랑이 관련 소품은 전통을 일상에서 즐기는 유쾌한 기분을 선사한다. 책의 서문에서 밝히듯, 이들은 북유럽이나 일본, 미국은 그 나라 특유의 디자인이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세조 12년 어느 날, 세조가 주최한 술자리가 무르익었다. 5년간의 오랜 북방 근무를 마치고 조정에 복귀한 양정도 함께였다. 양정은 계유정난의 핵심 공신이나 다른 공신들이 사대문에서 벼슬을 할 때 험지로 유명한 북방에서 근무한 터였다. 바로 그날, 운명을 가른 문제의 사건이 일어난다. 세조가 자신의 명에 따르지 않은 두 신하를 벌주려 하자 뜬금없이 양정이 나선 것이다. “일이 과하십니다! 전하께서 왕위에 오르신 지가 이미 오래됐으므로 이제 쉬심이 마땅할 것입니다.” 해석하자면 왕에게 ‘그만큼 했으면 물러나라’라고 한 것이다. 참고로 이 나라 역사에서 왕보고 물러나라고 대놓고 면전에서 말한 사람은 딱 세 명이다. … 그만큼 역사에 몇 안 되는 대사건을 일으킨 양정의 운명은? 혹시 그 자리의 분위기가 궁금하신 분이 있다면 회사 술자리에서 사장님에게 이제 그만 은퇴하라고 해보자. 물론 나는 절대 책임 안 진다. (p.63) 과연 그 후, 양정은 어떻게 되었을까? 술자리에서 벌어지는 이런 사고, 오늘날에도 있을 법하지 않은가? 시대 상황과 세부 정황만 바뀔 뿐, 비슷한 일은 끊임없이 일어나고 역사는 반복된다. 하지만 동서고금을 통틀어,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어을우동, 신사임당, 황진이, 허난설헌, 김개시, 김만덕. 역사에 그다지 관심이 없어도 한 번쯤은 사극이나 소설에서 들어봤을 법한 이름들이다. 여성이 선택할 수 있는 삶의 폭이 극히 제한적이었던 ‘조선’이라는 시대, 그 한계의 틈새를 비집고 자신의 재능과 욕망에 충실한 삶을 살았던 여섯 명의 여인들. 그들의 삶은 당대에도 실록을 비롯한 각종 문헌에 이름이 남을 만큼 화제를 모았지만, 수백 년이 흐른 오늘날에도 각종 사극과 소설을 통해 다양하게 변주되고 있다. 그들이 역사에 남을 수 있었던 까닭은 무엇인가? 온어롤북스의 책 《조선왕조여인실록- 시대가 만들어낸 빛과 어둠의 여인들》을 공동 집필한 4인의 저자들은, 요즘 시대에 살았다면 역사책에 이름을 남기지 못했을 그들이 역사에 남게 된 것은 ‘조선’이라는 시대적 특수성 때문이라고 보았다. 그렇기에 그들을 그토록 남다른 인물로 만든 시대적 배경을 먼저 살펴보고, 여성의 사회적 활동에 제약이 심했던 시대에 도대체 어떤 삶을 살았기에 역사에 이름을 남길 수 있었는지, 각종 사료에 상상력을 더해 입체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그러나 사실, 그들의 삶은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아도 범상치 않다. 고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새해가 다가온다. 사주보러 가는 사람이 많아질 시기다. 한 해가 시작될 무렵, 올해의 길흉화복과 풀리지 않는 인생의 문제들에 대한 조언을 구하려는 사람들로 철학관은 늘 북적거린다. 미래를 궁금해하고, 미래를 준비하며, 과거를 돌아보는 것은 어찌 보면 생존확률을 높이기 위한 인간의 본능이다. 사주로 과거를 보면 '모든 게 내 잘못은 아니었다'는 위안을, 미래를 보면 '내일이 어제보다 나을 것'이라는 희망을 얻을 수 있으니 이래저래 매력적인 수단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이따금, 사주를 보러 간 여성들은 느닷없이 '팔자 센' 여자가 되어 역술인의 꾸지람(?)에 가까운 해석을 들으며 참담한 기분을 느끼곤 한다. '여자 팔자가 너무 세다', '남자로 태어났으면 더 좋았을 팔자다', '팔자에 남자복이 없다' 등 ... 표현은 다양하지만, 대부분 '좋은 남편을 만나 자식을 잘 낳고 현모양처로 사는 인생은 아니'라는 뜻이다. 그러나 과연, 남자에게도 여자복을 놓고 이렇게 '팔자 세다'는 표현을 쓸까? 아마 그런 경우는 극히 드물 것이다. 이성운에 관한 한, '팔자 센 사주'는 여성의 전유물이었다. 이런 일방적인 사주 해석에 반기를 든 책 《내 팔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누구나 단 한 번 살고, 단 한 번 죽는 인생. 그 한 번의 삶을 어찌 살아야 하는가. 또, 그 삶에 주어진 한 번의 젊음을 어찌 보내야 하는가.” 이는 서른을 맞은 우당 이회영이 자신에게 던진 준엄한 질문이었고, 이후 예순여섯의 나이로 눈을 감을 때까지 전 일생을 바쳐 그 질문에 답하게 됩니다. 이 이회영 선생을 그리는 책 《한번의 죽음으로 천 년을 살다》가 김태빈ㆍ전희경 공저로 레드우드출판사에서 출간되었습니다. 1부와 2부로 나누어진 이 책의 1부에는 이회영 선생과 그 가족의 삶이, 2부에는 우당기념관에서 국립서울현충원까지 이회영 선생과 관련된 장소들이 3개의 코스로 정리되어 있습니다. 특히, 서울에 남은 적지 않은 유적 가운데 사라진 곳과 보기 힘든 곳들을 일러스트로 되살리고 발품을 팔아 생생한 사진을 제공한 점이 돋보입니다. 이회영 선생은 선조 때 영의정을 지낸 오성 이항복의 10대손으로, 선생의 집안은 이항복 이후 6명의 정승과 2명의 대제학을 배출한 명문가 중의 명문가였습니다. 이회영 선생의 아버지 이유승 역시 한성판윤과 이조판서 등을 지낸 고위관료였고, 6형제의 재산은 대충 헤아려도 오늘날 값어치로 600억이 넘을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사당인 종묘 다음으로 큰 사당인 칠궁에는 임금을 낳았으나 왕비가 되지 못한 일곱 후궁의 신주가 모셔져 있다. 《왕을 낳은 칠궁의 후궁들》은 운 좋게 왕위를 이어갈 왕자를 낳았으나 끝내 왕비가 되지 못했던, 그래서 죽어서도 임금 곁에 잠들 수 없었던 일곱 여인의 삶을 연민과 공감의 필치로 그려낸다. 1392년부터 1910년까지 조선의 왕위를 승계한 27명의 임금 가운데 왕비 소생은 15명에 불과하며, 12명은 방계 혈통이다. 왕비가 왕위를 이어갈 대군을 낳지 못하면 후궁 소생의 아들이 왕위를 이어갔다. 1부 ‘실제 왕을 낳은 칠궁의 후궁들’에서는 광해군이 폐위되면서 칠궁에 들지 못한 공빈 김씨, 경종의 생모로 궁녀에서 왕비까지 초고속 승차한 희빈 장씨, 무수리 출신으로 최장수 왕 영조를 낳은 숙빈 최씨, 명문가에서 간택되어 순조를 낳은 수빈 박씨를 다룬다. 2부 ‘추존왕을 낳은 칠궁의 후궁들’은 손자 능양군이 왕위를 이음으로써 인생의 만추를 맛본 인빈 김씨, 아들 효장세자가 정조의 양부가 된 덕분에 추존왕 진종의 어머니가 된 정빈 이씨, 추존왕 장조(사도세자)의 어머니 영빈 이씨, 조선의 마지막 황태자 영친왕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