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사색(思索). ‘어떤 것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고 이치를 따짐’. 사색이 주는 느낌은 고요하고, 평안하다. 깊이 생각하고 이치를 따지는 일은, 유유자적 한가로울 때 할 수 있는 일일 것만 같다. 그러나 세상을 바꾸고, 나라를 구한 위대한 사색은 치열한 고통의 바다를 한 조각배에 의지해 건너는 것과 같았다. 그 위태로운 항해 끝에 나라를 구할 계책이 나오고 백성을 살릴 방도가 나왔다. 이 책 《나를 지키며 사는 법》은 ‘사색 전문가’로 활동하며 고전이나 역사 속 인물들의 위대한 사색을 소개하는 작가 김종원이,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를 읽으며 장군이 걸었을 사색의 길을 ‘사색한’ 책이다. 책의 부제 ‘삶을 괴롭히는 고통의 바다를 건너는 5가지 힘’에서 알 수 있듯, 이순신 장군이 파도와 같은 고통의 바다를 어떻게 헤쳐나갈 수 있었는지, 작가 스스로 깊은 사색을 통해 찾아낸 다섯 가지 힘을 실었다. (p.16) 지금 우리가 떠올리는 위대한 이순신의 삶의 바탕은 ‘기품’과 ‘관점’, ‘지성’과 ‘사색’, ‘인문’이었다. 사람은 보통 이 다섯 가지를 잃을 때 인생의 갈피를 잡지 못하고 무너진다. 반대로 말하면, 이 다섯 가지를 추구하는 자는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혜경궁 홍씨. 조선에서 이 여인만큼 지극한 영화를 누린 이도 드물 것이다. 아들 정조는 수원 화성행궁에서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환갑연을 열어 장수를 축원했다. 출궁하여 환궁하기까지 여드레에 걸친 원행은 화려하기 이를 데 없었다. 신분을 빼앗기고 폐서인되거나 죽지 않으면 궐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왕실 여성의 신분으로, 이런 식의 외출을 해본 여성은 혜경궁 홍씨가 유일했다. 그해 봄, 혜경궁은 조선에서 가장 존귀한 여인이었다. 그러나 그런 영화로운 날이 있기까지 그녀야 삼켜야 할 울분과 고뇌,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시아버지가 남편을 뒤주에 가둬 죽이는 것을 고스란히 지켜보아야 했던, 심지어 시어머니와 친아버지가 남편을 죽일 것을 종용하는 모습을 바라보아야 했던, 조선에서 가장 기구한 팔자의 여인이 바로 그녀였다. 《아버지의 특별한 딸》 지은이는 이런 혜경궁 홍씨의 절절한 아픔과 고뇌를, 그녀가 지난날을 돌아보며 쓴 《한중록》의 각 대목과 함께 소설 형식으로 재구성했다. 지은이가 특히 주목한 부분은 책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혜경궁 홍씨와 아버지 홍봉한의 관계다. 그녀를 둘러싼 남자들 – 아버지 홍봉한, 시아버지 영조, 남편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궁’. 이 한 글자가 전하는 따뜻한 느낌은, 설레는 발걸음으로 궁을 찾아본 이라면 모두 공감할 것이다. 궁에 가면 언제나 좋은 느낌이 들곤 했다. 머리가 복잡할 때 덕수궁을 거닐다 보면 생각이 정리되기도 했고, 경복궁 집옥재에서 책을 보면 마음이 차분해지기도 했고, 창덕궁 후원에서 맑은 공기를 마시다 보면 기분이 상쾌해지기도 했다. 이 책을 쓰고 그린 이들도, 궁을 참 좋아했다. 서울 상봉동에 있는 여행책방 ‘바람길’의 주인장인 지은이 박수현은 그래서 궁 연구모임을 만들었다. 모임에서 같이 《조선왕조실록》을 읽은 지 두 달여, 외국인에게 한국을 소개하는 책을 만드는 1인 출판사도 겸하고 있던 그는 외국어로 궁을 소개하기에 앞서 한국어로 된 간결하고 이해하기 쉬운 입문서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이 책을 펴내게 됐다. 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가장 큰 과제는 그림을 그려줄 작가를 찾는 것이었다. 궁을 수채화로 표현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에, 수채화로 궁을 그려줄 작가를 수소문한 끝에 조은지 작가를 만났다. 둘이 머리를 맞대고 궁의 색감과 느낌을 조금씩 찾아 나간 소중한 결과물이 바로 이 책, 《궁》이다. 《궁》은 모두 7장으로 구성되어 있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인생 살다 보면 별일이 다 일어난다. 그러니까 이런 일도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느 날 갑자기 모르는 사람이 나를 친추(친구추가)했다. 그리고 갑자기 쏟아지는 친구신청 알람. 놀라서 친구목록을 확인한 나는, 쫌 놀랐다. 아니 많이 놀랐다. 어느 날 갑자기 메신저로 찾아온, 조선시대 그분들의 시시콜콜 사는 이야기 (p.13-15) 카톡으로 보는 《조선왕조실록》, 아니 《조선왕조실톡》은 이렇게 포문을 연다. 갑자기 내 친구목록에 조선 임금들이 쭉 뜨고, 그들이 신하들과 나눈 대화를 채팅으로 볼 수 있다면? 생각만 해도 재밌는 이 아이디어를 웹툰으로 구현해낸 것이 바로 역사웹툰작가 ‘무적핑크’의 《조선왕조실톡》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 웹툰은 작가가 2014년 페이스북과 트위터에 올린 이후 언론의 큰 주목을 받았고, 네이버 웹툰 연재를 거쳐 7권의 책으로도 출판됐다. 이 《조선왕조실톡》 시리즈는 국민 채팅앱 카카오톡을 활용한 친근한 전달방식, 작가 무적핑크의 재기발랄한 창작, 해설자 이한의 재치 있는 해설, 실록에 기록된 것과 기록되지 않은 것을 구분해 짚어주는 친절한 기획 덕분에 모두가 즐길 수 있는 훌륭한 역사콘텐츠로 탄생했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조선은 ‘기록의 나라’다. 이렇게 세밀하게 기록하고, 또 기록한 나라가 있을까 싶을 만큼 조선은 통치 행위의 모든 것을 기록으로 남겼다. 물론 왕의 언행을 기록으로 남긴 나라는 조선 외에도 많다. 중국과 베트남, 일본에도 실록이 있지만 조선왕조실록은 수록내용의 다양성과 방대함, 공정성 측면에서 가히 독보적이다. 이 책은 이런 실록의 이모저모를 청소년과 성인도 알기 쉽게, 풍부한 자료사진과 함께 풀어냈다. 사계절이 펴내는 ‘고전맛집’ 시리즈는 ‘어른이 되기 전 꼭 읽어야 할 고전을 쉽고 맛있게 엮는다’는 취지로 기획되었고, 조선왕조실록편은 그중 두 번째다. 자신의 행동 하나하나가 기록되고 있었기에 조선의 왕은 살아서도, 죽어서도 역사의 책임을 무겁게 의식해야 했다. 내가 한 일을 후대의 누구도 알 수 없다면, 그저 하고 싶은 대로 살다 가면 그만이다. 하지만 내가 내린 결정들이, 행동들이 낱낱이 기록되어 수백 년 후에도 전례로 쓰이고, 영원히 역사 속에 박제된다면? 그때는 그 누구도 행동을 가벼이 할 수 없었다. 이런 기록문화는 조선왕조를 500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지탱한 ‘역사의 소금’이자, 지배권력의 부패를 막는 방부제 역할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제주 앞바다에는 해녀가 많다. 바닷가를 거닐다 보면 심심치 않게 테왁이 보인다. 테왁은 해녀들이 잡은 해산물을 보관하거나 몸을 기대어 쉬는, 그물을 매달아 놓은 동그란 튜브다. 주황색 테왁이 동동 떠 있으면, 그 밑에서 해녀가 열심히 물질하고 있다는 뜻이다. 위험하지는 않을까? 물속에 잠수장비도 없이 들어가 전복이며 소라를 잡는다는 것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바닷속에서, 온전히 자신의 숨에 기대어 머문다는 것은 어찌 보면 무모한 일이다. 실제로 가끔 해녀들이 작업 중에 목숨을 잃기도 한다. 그러나 위험천만한 바닷속에서, 자신의 숨이 허락하는 만큼만 머물다 가는 해녀의 모습은 전 세계를 매혹시켰다. 글쓴이 고희영과 그린이 에바 알머슨도 그중 한 사람이다. 두 사람이 글과 그림을 그리고, 통역사로 유명한 안현모가 이를 영문으로 번역해 함께 실은 동화책 《엄마는 해녀입니다》는 아이부터 어른까지, 누가 읽어도 마음이 뭉클해지는 삶의 지혜를 선사한다. 제주가 고향인 지은이 고희영은 어릴 때부터 해녀들을 보며 자랐다. 그녀는 항상 궁금했다. 해녀들은 해가 뜨고 해가 지듯이 바다로 나가고 바다에서 돌아오는데, 그들은 바다가 두렵지 않을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제주에 살다 보면 수시로 제주어가 들린다. 제주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가 아니면 얼핏 들어서는 알 수 없는 말들. 제주어로 빠르게 하는 대화는 흡사 외국어나 다름없다. 분명히 한국어는 맞는데 도저히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는, ‘듣고 있지만 들리지 않는’ 느낌이다. 그러나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한번 제주어에 눈을 뜨고 나면 제주어로 된 가게 이름이나 지명이 그렇게 정겨울 수가 없다. 제주어로 하는 대화를 완전히 이해하는 건 좀 어렵지만, 제주어를 조금만 알아도 버스정류장을 지나칠 때, 올레길 푯말을 볼 때 슬며시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저자 현택훈은 제주도에서 태어나 제주도에서 시를 쓰고 있는 시인이다. 그는 돌하르방 공장 한편에 버려져 있던 팔 하나 없는 돌하르방, 그 돌하르방을 품는 마음으로 시를 쓴다고 한다. 누군가 부러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잊히기 쉬운 어떤 것, 시인은 그것을 기억하고 싶은 것이다. 어쩌면 제주어도 시인에겐 그런 대상이 아니었을까. 실제로 제주어는 위기다. 유네스코는 제주어를 소멸 위기 언어로 지정했다. 제주어를 쓸 줄 아는 몇 세대가 사라지고 나면, 제주어가 더는 들리지 않게 된다. 그때는 제주어에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지금도 수능이 다가올 무렵이면 온 나라가 들썩들썩하지만, 조선에서도 과거시험은 온 나라의 관심이 집중되는 ‘뜨거운 감자’였다. 지금처럼 진로가 다양하지 않던 시대, 과거시험은 벼슬에 나아가 뜻을 펼치고자 한다면 반드시 거쳐야 할 관문이자 평생을 바쳐 이뤄내야만 하는 ‘인생과업’이었다. 때로는 일찍 과거에 급제, 순탄하게 벼슬길에 나아가기도 했으나 현실은 녹록하지 않았다. 지금의 ‘고시낭인’ 못지않게 ‘과거폐인’도 많았고, 평생을 적성에 맞지 않는 과거시험에 매달리느라 고생하는 이들도 많았다. 다른 길을 찾고 싶어도, 양반은 과거에 합격해 벼슬을 하는 것 외에 달리 선택지가 없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1894년 갑오개혁으로 폐지될 때까지 수많은 이들의 피, 땀, 눈물을 삼킨 채 936년간 치러졌던 과거시험. 이 책 《과거제도 조선을 들썩이다》는 그런 과거시험의 모든 것을 청소년의 눈높이에 맞추어 친절히 풀어낸 책이다. 책에서 풀어내는 과거시험의 이모저모를 문답 형식으로 재구성해 보았다. 1.한양에 사는 것이 과거 급제에 유리했다? 그렇다. 과거시험은 확실히 한양, 그중에서도 성균관에서 공부하는 유생에게 여러모로 유리했다. 과거
[우리문화신문= 우지원 기자] ‘말 키우는 오랑캐’, 목호(牧胡)! 목호는 고려 말, 제주도에 뿌리내리고 살았던 몽골인이다. 그들은 몽골이 제주에 탐라총관부를 설치하고 직속령으로 편입한 이래 제주에서 말을 비롯한 각종 가축을 키우며 100여 년 동안 살아가고 있었다. 고려를 부마국으로 만든 몽골은 제주가 필요했다. 일본 정벌을 위한 전초기지이자 말의 산지로서 제주의 가치는 상당했다. 몽골은 제주를 원이 경영하는 14개 목장 중 하나로 삼고, 약 1,500명의 군사를 주둔시키며 말을 길러냈다. ‘목호’라 불리는 이 군사들은 처음에는 낯선 존재였지만, 점차 제주 토착민과 혼인을 하고 아이를 낳으며 깊숙이 섞여들었다. 강산이 세 번이나 바뀌는 100여 년간 살을 맞대고 살며 이들은 더는 오랑캐가 아닌, 이웃집 아들이자, 남편이자, 가장인 그런 존재가 되었다. 이들은 1374년, 최영 장군이 이끄는 토벌군에게 깡그리 몰살당한다. 도대체 그 섬에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단지 ‘제주의 목호가 일으킨 반란을 최영 장군이 진압한 사건’으로 갈무리하기에는 너무나 응어리진 그해 여름의 역사를, 작가 정용연이 《목호의 난, 1374 제주》이란 한 권의 만화로 숨가쁘게 풀어낸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한 줌의 자살 약을 품에 안고 살아야 했던 혹독한 세월을 임은 어찌 참아내셨단 말입니까? 시인의 안타까운 절규가 귓전을 울린다. 나라 잃은 35년은 실로 혹독한 세월이었다. 독립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았던 임들에게는 더욱 가혹한 시간이었다. 갓난아기가 어엿한 성인이 될 만큼의 긴 시간 동안 일제는 흥성했고 독립은 점점 멀어져갔다. 그러나 임들은 계속 싸웠다. 아무리 현실이 어려워도 의로운 길을 걸어야 한다는 신념, 그것이 용기의 원천이었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이윤옥 교수가 2019년 펴낸 《여성운동가 100분을 위한 헌시》는 이런 임들을 위한 헌사다. 이들은 가족을 따라, 혹은 스스로 뜻을 세워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그 대가는 혹독했다. 모진 고문을 이기지 못하고 순국하기도 했으며 경찰에 의해 피살되기도, 독살되기도, 의문의 죽음을 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나라의 얼을 지켜낼 수 있었던 것은 이처럼 대의를 위해 자신을 내던진 수많은 ‘임’들 덕분이었다. 이들의 분투가 없었더라면 오늘날 우리는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아주 간략한 서사밖에 배우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분투에 비해, 우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