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고인도 나 못 보고 나도 고인 못 뵈. 고인을 못 뵈도 예던길 앞에 있네 예던길 앞에 있거든 아니 예고 어쩌리 - 이황 ‘도산십이곡’ 중 제9곡 (p.4) - 고인은 더는 세상에 없어도, 고인이 걷던 길은 앞에 있다. 퇴계가 지은 도산십이곡에 나오는 ‘예던길(녀던길)’은 옛 성현이 걸어갔던 길, 곧 올바른 삶의 길을 뜻한다. 비록 퇴계는 수백 년 전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걸었던 선비의 길은 고스란히 남아 있으니 어찌 아니 걸을 수 있으랴. 김병일 도산서원 원장은 퇴계가 예던길을 뚜벅뚜벅 걷고 있는 이 시대의 선비다. 1971년 공직 입문 이래 2005년까지 경제 관료로 봉직하며 통계청장, 조달청장, 기획예산처 장관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그리고 은퇴한 뒤 2008년 2월 경북 안동으로 내려가 도산서원선비문화수련원 이사장을 맡으며 지금까지 도산에서 주로 지내고 있다. 김병일 이사장이 지은 《퇴계의 길을 따라》는 퇴계의 학문과 사상, 정신과 더불어 그가 걸어간 삶의 행적을 두루 조명하면서, 퇴계의 삶에서 배울 수 있는 선비의 덕목을 전하는 책이다. 수필 형식으로 구성된 이 책을 따라가다 보면 퇴계에 대해서 잘 모르던 사람이라도 그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명력력 노당당(明歷歷 露堂堂). 무슨 일이든 밝게 당당하게 드러나는 경지. 좋은 일을 하면 응당 좋은 일이 생기고, 나쁜 일을 하면 나쁜 결과가 드러난다는 뜻이다. 수집가 하정웅이 아끼는 이 구절은 그가 걸어온 인생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하다. 그가 세상과 나눈 수집은 하나의 선한 씨앗이 되어 수많은 이들의 가슴 속에 꽃을 피웠다. 하정웅은 흔히, ‘미술 작품 1만 점을 기증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50년 동안 수집한 1만여 점의 작품들을 한국의 공립미술관에 기꺼이 기증했다. 1993년 광주시립미술관 개관 당시 212점을 기증한 것을 시작으로 포항시립미술관, 영암군립하미술관 등 전국의 미술관에 작품을 기증했고, 어느덧 그 수가 1만 점을 훌쩍 넘었다. 기증 작품의 면면도 화려해 액수로 따지면 수천억 원에 달할 정도다. 수십 년 세월, 한 점 한 점 열과 성을 다해 모은 작품을 떠나보내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개인 미술관을 세워 작품을 전시하는 경우는 많지만, 이렇듯 자신의 뿌리가 되는 고국의 공립미술관에 작품을 기부한 사례는 흔치 않다. 여기에는 한국에도 속하지 못하고, 일본에도 속하지 못한 채 부유하며 살았던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유교사회였던 조선 500년 동안 한반도 곳곳에는 많은 가문이 생겼고, 이들 가운데는 명문가로 꼽히며, 승승장구한 곳들이 꽤 많다. 그러나 이 명문가라고 하는 곳들에는 그저 고래등 같은 기와집만 있을 뿐 제대로 된 철학이 전해지지 않는 곳이 흔하다. ‘곳간에서 인심난다’는 속담처럼, 곳간이 차면 자연스레 베푸는 마음이 생겨날 법도 하건만, 사람 마음이란 게 그렇게 간단치 않다. 아무리 곳간이 그득해도 갈증이 나고, 더 많은 재물을 가지고 싶고 그 많은 재산을 꽁꽁 움켜쥐고 사는 것이 일반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인간의 본성을 거슬러(?) 무려 300년 동안이나 깨끗한 재물, 적정한 재물을 유지해 칭송받는 가문이 있다. 바로 ‘경주 최부잣집’, 경주 최씨 가암파 가문이다. 자신이 모든 것을 취할 수 있을 때 취하지 않고, 모든 것을 쓸 수 있을 때 함부로 쓰지 않는 것은 부단한 자기수양 없이는 어려운 일이다. 이 책, 《사방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는 최부자 가문에서 어떻게 이 어려운 일을 해냈는지, 그 저변에 흐르는 정신을 면밀히 분석하고 있다. 경주 최씨 가암파 가문은 최진립을 파시조로 하여 12세손인 최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여기, 21세기판 ‘디카메론’이 나왔다. 1348년, 페스트를 피해 피난한 10인의 100가지 이야기가 <데카메론>이 되었다면, 2020년 코로나를 피해 피난한 18인의 이야기는 문명의 발전과 함께 디카 사진까지 더해진 <디카메론>이 되었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도 울고 갈 이 기막힌 컨셉은 진옥섭 한국문화재재단 이사장이 제안한 것으로, 코로나19로 문화재 ODA 현장에서 국내로 복귀한 18인의 연구원들은 그간의 이야기를 ‘탁본하듯’, 탁탁 써 내려갔고, 이 수필, 아니 디카메론은 문보재를 통해 《난생 처음 떠나는 문화유산 ODA 여행》이 되어 세상에 나왔다. 우선, 이 책이 귀한 이유는 ‘문화재 ODA’에 관한 책이 굉장히 드물기 때문이다. 문화재 ODA 자체가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은 개념이거니와, 이런 일을 한국문화재재단에서 한다는 것을 풍문으로는 들었으되 실제로 어떻게 일을 하는지는 알지 못했을 독자들이 대부분일 터이다. 필자도 한때 문화유산 ODA에 관심을 가지고 찾아본 적이 있지만, 워낙 정보가 없어 관련 기사 몇 개를 읽는 것에 그쳤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이렇게 문화유산 ODA가 무엇인지, 실제로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박물관은 그 자체로 하나의 훌륭한 작품이다. 전시를 보기 위해 박물관을 찾는 경우도 많지만, ‘박물관’이라는 공간이 주는 특유의 느낌이 좋아 즐겨 찾는 이들도 많다. 그러나 박물관이 갖는 존재감만큼, 그 공간의 묵직한 역사를 친절히 짚어낸 책은 흔치 않다. 박물관 마니아를 자처하는 저자 황윤이 공들여 집필한 이 책 《박물관 보는 법》은 한국에서 박물관이 어떻게 탄생했고, 어떻게 발전해왔으며, 눈여겨보아야 할 박물관에는 어떤 곳들이 있는지 진중하고도 쉽게 설명해준다. 한국에서 박물관의 역사는 일제에 의해 반강제로 시작되었다. 일제는 고종의 헤이그 특사 파견을 빌미 삼아 고종을 강제로 퇴위시키고 순종을 즉위시킨 이후, 전국에서 반일 여론이 들끓자 국면 전환용 이슈로 왕실박물관 건립을 꺼내 들었다. 왕실박물관 건립을 조선의 근대화 업적으로 내세워 조선왕조를 낡은 ‘전근대’로 보이게 함과 동시에, 새롭게 즉위한 순종이 창덕궁 내 박물관 건립을 주도하게 함으로써 일제는 조선의 근대화를 추진한 선진국으로 홍보하고자 했다. “어찌 시체와 함께하던 물건들이 궁궐 내에 전시되어야 한단 말이오?” 1907년, 순종 황제 앞에서 여러 대신이 열띤 논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뮤지엄 서울》. 이 제목을 본 독자는 서울에 있는 박물관을 소개하는 책을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결론부터 말하면, 제목에 쓰인 서울은 작가의 필명 ‘김서울’에서 따 온 것으로, 작가 (김)서울이 자신만의 재미있는 시각과 솔직담백한 문체로 전통과 유물, 박물관을 이야기하는 책이다. 저자는 2019년 텀블벅 「시리즈 오브 시리즈」 프로젝트의 하나로 9월부터 10월까지 매주 1회씩 글을 연재했고, 당시 ‘한국 문화유산 큐레이팅’이라는 소개 문구와 함께 연재했던 글을 보완하고 다듬어 한 권의 책으로 엮어냈다. 책은 ‘흐르는 시간’, ‘유물에 담긴 시간’, ‘미래의 박물관’의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흐르는 시간’에서는 명사가 아닌 동사로서의 전통, 곧 ‘흐르는 전통’을 다루고 있다. 흔히 ‘전통’이라고 하면 현재와는 단절된 과거의 한 시점을 떠올린다. 그러나 저자는 ‘전통’의 ‘전’은 ‘앞 전(前)’이 아니라 ‘전할 전(傳)’이며, ‘통’ 역시 ‘계통 통(統)’으로 두 글자 모두 이어진다는 뜻이 있음을 일깨운다. 그것은 곧,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도 전통의 일부이며 전통은 매 순간 만들어지고 있는 현재진행형이라는 것이다. 가령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귀양살이 하는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 사전에서 찾은 ‘귀양다리’의 정의다. 유배인은 세상의 업신여김을 당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이유야 무엇이든 거친 세파에 휩쓸려 유배형, 그 가운데서도 가장 죄가 중한 자만 보낸다는 제주도로 보내진 것이니 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유배를 보낸 쪽, 승자의 시각에 가까웠다. 오히려 제주 사람들에게 유배인은 앞선 지식과 문화를 전수해줄 귀중한 전령이었다. 흔히 유배살이라고 하면 집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사람을 만나지도 못하는 답답함을 떠올리기 마련이지만, 생각보다 유배생활은 꽤 자유스러웠다. 그래서 제주에 온 선비들은 제자를 양성하며 학문을 전수하기도 하고, 시회(詩會)를 조직해 지역 문화계를 주도하기도 하고, 제주 여인과의 사이에 자식을 두어 입도조(入島祖, 섬에 처음으로 정착한 각 성씨의 조상)가 되기도 했다. 《제주도 귀양다리 이야기》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저마다의 사연을 가지고 제주에 유배 온 사람들과 그들의 생활을 쉬우면서도 학술적인 문체로 차분히 풀어낸다. 풍부한 자료조사와 제주 곳곳을 누비며 찍은 직접 찍은 사진들이 인상적이다. 이 한 권만 읽어도 제주에 유배온 사람들의 면면을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우리, 그림 그린 적 많아도 우리 그림, 그린 적 정말 없다. 다들 지난 시절을 추억해보면, 주로 학교와 일상에서 그렸던 그림은 서양화일 거다. 박물관에 가서 우리 그림을 본 적은 있겠지만, 보통 ‘수묵화’, ‘문인화’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선비의 고고한 기품, 범상치 않은 위엄 때문에 뭔지 모를 부담감을 느낀 독자도 많을 법하다. 그런 의미에서 신하순ㆍ최혜인ㆍ최은혜ㆍ안지연이 함께 쓴 《우리 그림, 그려볼까요?》는 우리 미술에 관심을 두는 것은 물론, 조금씩 배워보고 싶게끔 만드는 책이다. 우리 미술에 대해 알고 싶어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감을 잡기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 서울대 동양화과 출신의 저자 네 명이 각자 자신의 특기를 살려 한 분야를 소개한다. 우리 그림의 대표적 장르인 수묵화, 채색화, 산수화, 문인화가 그것이다. 각 장에는 그림을 그리기 전 생각해 보아야 할 점, 재료 소개, 제작 과정이 담겨 있어 친근한 미술 선생님이 설명해주는 듯, 우리미술 입문서로 손색이 없다. 첫 번째 주제 <수묵화를 그려볼까요?>에서는 작은 점에서 큰 점으로, 가는 선에서 굵은 선으로 먹의 번짐과 흐름을 경험하면서 최대한 쉽고 편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유물(遺物). 선대의 인류가 후대에 남긴 물건. 이 묵직한 어감에 감히 다가갈 엄두를 내지 못했던 사람이라면, 책 속 유물이 뿜어내는 귀여움에 갑자기 무장해제된 느낌을 받을 것 같다. 지금은 유물이라는 거창한 이름표를 달고 있지만, 실은 예전에 문방구로, 장신구로, 가구로 자연스레 썼던 물건들이다. 오늘 내 책상 위, 옷장 안에 있는 물건 역시 100년 뒤에는 박물관에 있을지라도 지금은 무심히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가 어렵게 생각하는 유물도 한때는 자연스러운 일상이었다. 이해인과 이희승, 두 저자는 이런 일상성을 눈여겨보았다. 같은 학교, 같은 과에서 만난 두 사람은 전통에서 영감을 받은 각종 소품을 선보이는 디자인 브랜드 ‘이감각’을 운영하고 있다. 이들이 디자인한 소품은 기발한 디자인과 발랄한 감각으로 전통을 무심한 듯 일상으로 들여놓는다. 이를테면 복주머니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가방, ‘호담국(虎談國)’이라 불릴 만큼 유난히 많았던 호랑이 이야기에서 착안한 각종 호랑이 관련 소품은 전통을 일상에서 즐기는 유쾌한 기분을 선사한다. 책의 서문에서 밝히듯, 이들은 북유럽이나 일본, 미국은 그 나라 특유의 디자인이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세조 12년 어느 날, 세조가 주최한 술자리가 무르익었다. 5년간의 오랜 북방 근무를 마치고 조정에 복귀한 양정도 함께였다. 양정은 계유정난의 핵심 공신이나 다른 공신들이 사대문에서 벼슬을 할 때 험지로 유명한 북방에서 근무한 터였다. 바로 그날, 운명을 가른 문제의 사건이 일어난다. 세조가 자신의 명에 따르지 않은 두 신하를 벌주려 하자 뜬금없이 양정이 나선 것이다. “일이 과하십니다! 전하께서 왕위에 오르신 지가 이미 오래됐으므로 이제 쉬심이 마땅할 것입니다.” 해석하자면 왕에게 ‘그만큼 했으면 물러나라’라고 한 것이다. 참고로 이 나라 역사에서 왕보고 물러나라고 대놓고 면전에서 말한 사람은 딱 세 명이다. … 그만큼 역사에 몇 안 되는 대사건을 일으킨 양정의 운명은? 혹시 그 자리의 분위기가 궁금하신 분이 있다면 회사 술자리에서 사장님에게 이제 그만 은퇴하라고 해보자. 물론 나는 절대 책임 안 진다. (p.63) 과연 그 후, 양정은 어떻게 되었을까? 술자리에서 벌어지는 이런 사고, 오늘날에도 있을 법하지 않은가? 시대 상황과 세부 정황만 바뀔 뿐, 비슷한 일은 끊임없이 일어나고 역사는 반복된다. 하지만 동서고금을 통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