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어두운 시대는 의인을 불러낸다. 나라의 명운이 흔들리던 구한말 수원지역에서 애국계몽활동가이자 인재를 길러내는 교육자로서의 면모를 발휘한 임면수(1874~1930) 선생도 그 가운데 하나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내놨다. 가족들 역시 그 뜻에 동참했다. 광복을 위해 헌신한 임면수 일가의 기록과 이를 기억하기 위한 수원의 노력을 들여다본다. 시대의 어둠을 밝힌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 임면수는 151년 전인 1874년 6월 수원군 수원면 북수리 299번지에서 태어났다. 조선 말기 수원의 지역 유지 집안에서 2남으로 태어난 그는 전통적인 한문 공부를 하고 자랐다. 하지만 성인 이후에는 실용적인 근대 학문 수용에 뜻을 두었다. 서른 살 만학도로 1903년 수원 양잠학교를 졸업하고, 일어 공부를 위해 사립 화성학교를 다니며 1905년 4월 1회 졸업생에 이름을 올렸다. 이후 서울 상동교회에서 운영한 중등 교육기관 상동청년학원의 야간학교를 다닌 임면수는 수원지역 애국계몽운동가로 명망을 떨쳤다. 대한제국기 수원지역의 다양한 조직과 단체에 임면수의 이름이 포함됐다. 고향인 수원에서 인재를 기르겠다는 의지로 수원지역 유지들과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지금으로부터 106년(1919)전 3월, 이달은 전국 방방곡곡에서 독립만세 소리가 끊이질 않았던 달이다. 특히 일제 군경이 저지른 ‘제암리교회 학살’ 현장 인근인 제암리 발안장터에서는 수천 명의 주민들이 모여들어 일제 침략에 항거하는 대규모 시위가 있었다. 이날 곧, 1919년 3월 31일 정오, 발안장터에 몰려든 군중들의 선봉장이 되어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결사적인 시가행진을 진두지휘하다가 일본 헌병의 총검에 복부를 난자당해 현장에서 순국한 이가 있으니 그가 바로 탄운 이정근(灘雲, 李正根 1863-1919) 의사(義士)다. 이정근의사는 복부에서 솟구치는 붉은 피를 움켜쥐어 일본 헌병의 얼굴에 흩뿌리며 숨이 끊어질 때까지 ‘대한독립’을 절규하다 장렬한 죽음을 맞이하였다고 역사는 증언하고 있다. 아! 선열이시여! 어제(3월29일) 낮 11시, 향남읍 (경기도 화성시 향남읍 장짐리)에 있는 이정근의사창의탑에서는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탄운 이정근 의사를 추모하는 “발안 3·1독립운동의 선구자, 탄운 이정근 의사 순국 106주기 추모제”가 열렸다. 봄을 시샘하는 꽃샘추위가 제법 쌀쌀하다고 느꼈는데 추모제가 시작되고 얼마 안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광복 80돌과 안중근 의사 순국 115주기를 맞아 안중근 의사의 독립 정신과 평화 사상을 들여다볼 수 있는 창작발레 공연이 열린다. 국가보훈부(장관 강정애)는 (사)안중근의사숭모회·안중근의사기념관이 오는 15일(토)과 16일(일) 이틀 동안 서울 예술의 전당 시제이(CJ)토월극장에서 안중근 의사를 주제로 한 창작발레 ‘안중근, 천국에서의 춤’ 공연을 선보인다고 밝혔다. ‘안중근, 천국에서의 춤’(안무 문병남, 대본·연출 양영은)은 안중근 의사의 유언인 “대한독립의 함성이 천국까지 들려오면 나는 기꺼이 춤을 추면서 만세를 부를 것이오”를 창작 동기로 2015년 창작됐으며, 죽음을 앞두고도 나라의 평화와 독립을 꿈꿨던 안중근 의사의 삶과 철학을 담아냈다. 특히, ‘안중근, 천국에서의 춤’은 일회성 창작작품에 그치지 않고 여러 해 동안 음악과 안무, 연출을 수정ㆍ보완하여 나라 밖 라이선스 작품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한국발레계에 새로운 축을 구축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틀(15일 17시, 16일 15시) 동안 펼쳐지는 이번 공연에서 안중근 역에는 유니버설발레단 수석무용수 이동탁 발레리노와 윤전일 댄스 이모션(Dance Emoti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106년 전인 1919년 3월 1일은 우리 민족 모두가 잊지 않고 기억해야 할 만세운동의 시작일이다. 총칼 앞에서도 흔들림 없이 독립을 열망한 선열의 숭고한 희생 덕분에 후손들이 자유와 평화를 누릴 수 있음을 잊지 않고 감사하는 마음을 특별히 되새겨야 하는 기회다. 당시 수원에서도 만세운동이 격렬했다. 기미년 3·1만세운동의 기획하고 실행한 핵심 인사를 일컫는 ‘민족대표 48인’ 가운데 한 사람인 김세환(1889~1945)이 수원 만세운동의 도화선을 만들었고, 이후 한 달 동안 20여 회에 달하는 만세운동이 격렬하게 이어졌다. 김세환의 업적과 1919년 수원, 그리고 이를 기억하는 수원을 확인해 본다. 김세환 선생, 수원 독립과 근대 교육 이끈 정신적 지주 김세환은 수원의 독립운동과 민족운동, 교육과 체육 발전에 56년의 삶을 헌신했다. 대한민국 독립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받았다. 건국훈장 가운데 독립장 이상을 받은 인물은 1천 명이 채 되지 않는다. 특히 국가보훈부가 지난 2020년 3월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할 정도로 공로를 높이 인정한 자랑스러운 수원 출신 인물이다. 김세환은 1889년
[우리문화신문=이나미 기자] 순국선열추모 글로벌네트워크(대표 고명주)는 3.1일(토) 낮 3시 3.1만세운동과 광복 80돌 기림으로 제주도 제주시 삼양3동 한라마을도서관에서 김동호 관장의 진행으로 순국선열추모문화전을 시작했다. 이번 추모전은 주제를 “다시 새 광복으로”으로 제주 항일운동 터 기행과 추모전으로 진행되었다. 2월 29일은 순국선열추모 글로벌 네트 회원들과 <한라산 제주추모전(2020.3.1)을 한 1100고지에 들려 코로나-19로 집회가 어려운 시기에 한라산을 보며 사이버로 진행한 시간을 돌이켜 보았고 서귀포시 무오법정사로 이동하여 법정사 항일운동 기념관에서 김치옥 해설사로부터 법정사의 의미와 3대 항일운동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그 뒤로 <법정사 제주추모전(2018.10.28.)>을 시행한 기념탑과 의열사 들려 참배를 하며 3,1만세운동 보다 5달 먼저 일어난 제주도 내 가장 큰 항일운동의 의미를 되새겨 보았다. 삼일절 당일 오전에는 조천만세운동을 기념하는 조천만세 광장에서 열리는 제106주년 3.1절 기념식 참석, 기념탑 참배와 항일운동 기념관에 들러 조천만세운동의 의미를 다시 이야기해 보았다. 순국선열추모전은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광복 80돌을 맞아 한국광복군에서 국군 창설 과정과 이에 이바지한 인물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특별전이 마련됐다. 국가보훈부(장관 강정애)는 3월 1일(토)부터 7월 13일(일)까지 서울 서대문구에 있는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1층 특별전시실에서 ‘국군의 창설 과정’을 주제로 한 2025년 상반기 특별전 <한국광복군 그리고 국군>을 열고 있다. <한국광복군 그리고 국군>은 한국광복군 출신으로 광복 뒤 국군에서 활약한 100여 명의 애국지사를 의미한다. 이번 특별전은 대한제국군의 모습과 임시정부 수립과 항일무장투쟁 활동(1부, 대한제국군의 후예, 역사를 잇다),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성립과 활동(2부, 독립군의 전통을 한국광복군에 잇다), 그리고 한국광복군 출신 애국지사의 국군에서의 활약상(3부, 한국광복군 대한민국 국군의 뿌리가 되다)으로 구성되어 모두 270여 점의 전시물을 통해 국군 창설 과정과 이에 이바지한 인물들을 살펴볼 수 있다. 제1부 <대한제국군의 후예, 역사를 잇다>에서는 3면에 구현되는 도입 영상과 함께 대한제국군의 모습,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수립, 그리고 이어지는 1920~3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20세기 초 일제의 야욕으로 대한제국이 위기에 처하자, 당대의 많은 지식인, 유학자들은 항일구국운동에 나섰다. 당대에 영남에서 명망을 얻고 있었던 회당(晦堂) 장석영(張錫英, 1851~1926)도 예외가 아니었다. 장석영은 경술국치 이후 일제가 주요 조선인들의 회유를 목적으로 제공한 은사금을 단호히 거절하였으며, 항일 운동가들과 함께 만주와 시베리아를 답사하고 《요좌기행》을 남기기도 하였다. 장석영은 1919년 3.1만세운동이 일어나자 ‘파리장서(巴里長書)’의 초안문을 작성하였으며, 성주지역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가 일제에 의해 투옥되었다. 장석영은 석방된 이후 성주지역 독립운동의 전개와 옥중 생활을 정리해 기록으로 남겼는데 이것이 바로 《흑산일록》이다. 그런데 후일 기억에 상당 부분 의존하여 작성된 까닭인지 《흑산일록》에는 기재되어 있지 않거나 소략한 내용들이 있다. 인동장씨 남산파 회당고택에서 한국국학진흥원(원장 정종섭)에 기탁한 《회당부군유묵》에 포함된 장석영의 옥중 편지가 그중 하나다. 일제를 척결하려다가 투옥된 노년의 유학자 회당 장석영은 인동장씨 29세로, 여헌 장현광의 증손 만익의 여섯째 아들 대해의 후손이다. 장석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수원의 3·1만세운동은 1919년 3월 1일 수원 화홍문 방화수류정에서 시작됐다. 민족대표 48인 가운데 한 명인 김세환(1888~1945) 선생이 이끌었고, 교사와 학생, 종교인들이 중심이 돼 만세운동을 했다. 방화수류정 만세운동을 시작으로 4월까지 20여 차례에 걸쳐 수원 전 지역에 “대한독립만세!” 함성이 울려 퍼졌다. 수원박물관이 광복 80돌, 3·1만세운동 106돌을 맞아 1919년 수원 사람들의 항거를 재조명하는 특별기획전 ‘항거, 수원 1919’를 3월 1일부터 6월 29일까지 연다. 수원의 3·1만세운동 함성과 전개 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전개도와 ▲3월 1일 방화수류정 만세운동 ▲3월 28일 송산면 사강리 만세운동 ▲3월 29일 수원면 수원 기생 만세운동 ▲4월 3일 우정ㆍ장안면 만세운동 ▲4월 15일 제암리ㆍ고주리 학살 사건에 관한 사진과 유물 40여 점을 전시한다. 수원의 3·1만세운동에는 종교인, 유학자, 농민, 학생, 상인, 기생들까지 모든 계층이 참여했다. 자발적이고 평화적인 만세운동으로 시작해 사전 계획에 따른 조직적인 항거로 이어졌다. 만세운동 과정에서 일제의 지배 기구였던 면사무소와 주재소를 파괴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강정애 국가보훈부 장관은 20일 김구 선생의 국적 논란과 관련해 “일제강점기 우리 국민의 국적은 한국이며, 김구 선생의 국적 역시 명백한 한국”이라고 밝히며 정부의 생각을 공식화했다. 강정애 장관은 “1965년 한일기본조약에 따라 1910년 8월 22일과 그 이전의 대한제국과 대일본제국 사이 체결된 조약과 협정은 원천무효라는 것이 정부의 공식 입장”이라며 “따라서 김구 선생을 비롯한 일제강점기 우리 국민의 국적은 ‘한국’이다”라고 명확히 했다. 강정애 장관은 19일 국회 정무위 전체회의에서 김용만, 김병기 의원들의 김구 선생 국적 관련 질의에도 위와 같은 입장을 명확히 밝혔었다. 강정애 장관은 “일제강점기 우리 국민의 국적은 한국인데도 이런 논란이 계속되는 상황이 안타깝다”라며 “광복 80돌을 맞는 뜻깊은 해인데도 독립의 중요한 값어치가 폄훼될 수 있는 이러한 불필요한 논란이 발생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국가보훈부 장관으로 입장을 밝혔다”라고 취지를 설명했다.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미국 뉴저지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윤동주의 시를 노래하는 밴드 <눈오는 지도(SNOWING MAP)>의 한은준입니다. 올해는 윤동주 서거 80주기를 맞아 고국에서 추모공연을 마련했습니다. 70주기 때에도 고국에서 했었는데 벌써 10년이 지났네요. 2007년부터 해마다 윤동주 시인의 기일을 맞아 윤동주의 시를 노래하는 밴드 <눈오는 지도>가 추모공연을 해왔는데 이번에는 특별히 고국 무대에 서게 되어 설레입니다. 윤동주를 사랑하는 고국의 많은 분들과 공연장에서 뵙고 싶습니다." 이는 미국에서 해마다 윤동주 시인의 추모 공연을 해오는 ‘윤동주의 시를 노래하는 밴드 <눈오는 지도>’의 한은준 선생이 전해온 공연 소식이다. 기타리스트인 한은준 선생을 비롯하여 <눈오는 지도> 단원들은 1945년 2월 16일, 독립운동 혐의로 일본의 감옥에서 스물일곱에 세상을 떠난 윤동주 시인을 기리기 위해 그의 작품에 곡을 만들어 음반에 수록(14곡), 지난 2007년부터 미국과 한국 등지에서 윤동주 시인의 기일인 2월 16일을 기해 추모공연을 해오고 있다. "부끄러움을 모르던 시대에 부끄러워 하면서도 부끄럽지 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