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국가보훈부(장관 권오을)는 전국에 퍼져있던 의병 세력을 모아 13도 의병 연합군을 조직하여 서울진공작전을 펼친 <13도창의군 결성>을 ‘2025년 12월의 독립운동’으로 꼽았다고 밝혔다. 13도창의군은 1905년 이후 일제의 국권 침탈이 본격화되자 전국에서 확산한 의병항쟁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결성된 전국적 연합의병부대였다. 대한제국 정부가 외교권을 빼앗기고 군대까지 강제로 해산되자, 해산 군인과 각지의 의병이 결집하며 투쟁이 확대되었다.
강원ㆍ경기에서 활동하던 이인영과 허위를 중심으로 전국 의병 지도자들이 연합하여 1907년 말 13도창의대진소를 조직했고 이인영이 총대장, 허위가 군사장으로 추대되었다. 이들은 일제 통감부를 공격해 일제와 강제로 맺은 조약을 파기하고 국권을 회복하며 친일 관료를 처단한다는 목표로 서울진공작전을 계획하였다.
1만 명 규모의 의병이 지평과 양주에 집결해 여러 전투에서 일본군과 치열하게 싸웠으나, 후속부대의 본진 도착 지연과 탄약 부족 등으로 서울까지 진공이 어려워졌으며, 일본군의 대대적 탄압이 이어지면서 민긍호(1962년 대통령장)ㆍ이강년(1962년 대한민국장)ㆍ허위(1962년 대한민국장)ㆍ이은찬(1962년 대통령장)ㆍ이인영(1962년 대통령장) 등 핵심 지도부가 잇달아 전사하거나 체포ㆍ순국하였다.
13도창의군은 비록 목표를 달성하지는 못했지만, 첫 전국적 연합의병 조직을 꾸리고, 무력투쟁과 외교운동을 함께하는 전략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큰 뜻을 지닌다. 실제로 각국 영사관에 통문을 보내 일본의 불법을 고발하며 의병을 국제법상 전쟁단체로 인정해 달라고 요구하는 등 당시 의병 지도층이 지니고 있던 국제적 안목을 보여준다.
이러한 활동은 장기간 지속된 의병운동의 역량을 보여주었으며, 나아가 나라 안팎에서 치열한 무장투쟁 운동이 펼쳐지는 전환점이 되었다.
한편, 국가보훈부는 2025년 이달의 독립운동을 꼽기 위해 1달 동안 국민의 추천을 받았다. 국민이 추천한 12월의 독립운동은 민중대회사건(1929), 중앙군관학교 한국특무대독립군 조직(1934), 대한민국임시정부 대일선전포고(1941),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전시국방복무요령 발표(1941), 평양사단 조선인 학병 탈출사건(1944), 고려독립청년당 결성(1944) 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