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신문 = 이윤옥 기자] 일본의 전통극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가부키이다. 가부키는 명치유신 이후에 발달했다고 일컬어지는데 여기서 발달이란 일반서민들의 볼거리에서 상류사회의 볼거리로 자리 잡은 것을 뜻한다. 가부키는 배우가 직접 대사를 말하면서 춤과 연기를 하는 연극이라면 죠루리(淨瑠璃)는 인형을 등장시키는 연극이다. 죠루리는 우리의 꼭두각시놀음처럼 사람이 인형을 조종하며 진행하는 연극으로 검은 옷을 입은 배우가 일본 전통옷을 입은 인형을 조종하면서 극을 이어가는 게 특징이다. 죠루리는 모두 남성이 연기하며 인형을 조종하는 사람과 일본의 전통 악기인 샤미센을 연주하는 사람 그리고 연극의 대사를 말해주는 이른바 변사 역할을 맡은 세 가지 분업으로 연극이 이뤄진다 해서 이를 산교 (三業) 라고 부른다. ▲ 분라쿠인형(국립분라쿠극장 소장) 예전에는 하나의 인형을 한 사람이 조종했으나 1734년부터 세 사람이 하나의 인형을 조종하게 되었다. 유명한 인형극 작가로는 에도시대의 인물인 치카마츠몬자에몽(近松門左衛門, 1653~1725)이 있으며 그는 100작품 이상의 인형 극본을 쓴 것으로 알려졌고 이 가운데 20%는 세태를 나타내는 내용이고 나머지는
[한국문화신문 = 이윤옥 기자] 곧 3월이다, 한국은 3월하면 3.1절이 떠오르고 유관순 열사가 떠오른다는 사람이 많지만 일본의 3월은 히나마츠리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히나마츠리(ひな祭り) 란 여자아이가 있는 집안에서 장차 딸에게 닥칠 나쁜 액운을 덜기 위해 시작한 인형 장식 풍습으로 이때 쓰는 인형을 히나인형(ひな人形)이라 한다. 히나마츠리를 다른 말로 모모노셋쿠(桃の節句) 곧 복숭아꽃 잔치라고도 부르는데 이는 복숭아꽃이 필 무렵의 행사를 뜻하는 것으로 예전에는 히나마츠리를 음력 3월 3일날 치뤘다. 히나마츠리 열기가 얼마나 큰지 거리에는 붉은 색의 히나인형을 파는 곳이 많을뿐더러 크리스마스카드처럼 히나 카드도 인기다. 실제로 지난주에 일본 교토에 윤동주 순국 70주년 추도식에 참석하느라 잠시 다녀왔는데 나에게 커다란 히나인형 카드를 선물한 사람이 있을 정도다. 카드를 펼치면 5단짜리 히나인형이 새겨진 카드는 값도 제법 나갈 법하다. 히나인형은 3월 3일 이전에 집안에 장식해 두었다가 3월 3일을 넘기지 않고 치우는 게 보통이다. 따라서 히나인형 판매의 절정은 2월 한 달이다. 이때 일본을 여행하는 사람들은 일본 전국에 걸쳐 크고 작은 히나인형 판매
[한국문화신문 = 이윤옥 기자] 교토 동지사대학 교정의 매화는 이제 막 꽃망울을 피우고 있었다. 붉은 꽃, 흰 꽃송이가 긴긴 겨울을 이겨내고 곱게 피어났다. 매화꽃 교정을 거닐면서 나는 맑고 순수했던 윤동주 시인의 자취를 행여 느낄 수 있을까 싶어 정문에서 도서관과 예배당으로 이르는 붉은 벽돌의 건물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 동지사대학 교정에는 홍매화가 가득 피었다. 교토 동지사대학 안의 예배당과 핼리스이화학관 사이에 있는 윤동주 시비는 이제 교토를 찾는 한국인들에게는 명소가 되었다. 내가 이곳을 처음 찾은 것은 1995년 2월 16일 윤동주시인 순국 50돌을 맞아 시비(詩碑)를 세운 몇 달 뒤의 일이었다. 그때는 시비가 들어선지 얼마 안 되어서 인지 학교 정문의 수위 아저씨에게 물어 보아도 시원하게 시비가 서 있는 위치를 잘 설명해주지 않아 여러 건물들 사이에서 이리저리 헤맸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그로부터 1년 쯤 뒤부터였을까? 동지사 정문 수위실에 “윤” 자만 말해도 한글판 “윤동주” 안내문을 내줄 정도로 윤동주는 동지사대학의 유명인이 되었고 나는 해마다 윤 시인을 만나러 동지사를 찾았다. 그가 떠난 교정에 검은 빗돌만 서있는 외로운 모습이지만 그
[한국문화신문 = 이윤옥 기자] 한국에는 예전에 서당이 있어 아이들의 글공부를 전담했다. 그렇다면 일본에도 서당이 있는가라고 묻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물론 있다. 한국의 서당과 같지 않지만 일본에는 테라코야(寺子屋)라는 곳에서 아이들의 교육을 맡았다. 테라코야(寺子屋)는 한자에서 보아 알 수 있듯이 절집(테라)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에서 유래한다. 한국의 조선시대에는 유교를 중심으로 한 선비들이 글공부를 통해 과거시험을 치러 정계로 나갔지만 일본에는 가마쿠라 막부 성립 (1192) 이후부터 명치 때까지(1868) 약 670여 년간 무사정권시대이다 보니 차분하게 글공부를 시킬 상황이 되지 못했다. 권력을 장악한 무사들은 자신이 싸워서 쟁탈한 정권을 빼앗기지 않게 늘 방어를 해야 했기에 일본의 670여 년간은 한마디로 사무라이들의 싸움판이었다. 지금으로 치면 내전 상태였기에 글공부를 하고 앉아 있을 여유는 없었다. 붓 대신 칼의 시대였다. 그래도 글줄께나 하던 사람은 절집의 승려들이었다. 따라서 일찍부터 절에서는 아이들 교육을 맡아 했는데 여기서 테라코야(寺子屋)가 한국의 서당 구실을 했던 것이다. 일본의 테라코야의 시작을 흔히 중세의 절에서부터 잡고 있지만
[한국문화신문 = 이윤옥 기자] 2월 3일은 일본의 절분(세츠분, 節分) 날이다. 보통 입춘 전날을 절분으로 치는데 새로운 계절이 돌아오는 때 특히 추운 겨울이 끝나고 사람들이 활동하기 좋은 때에 귀신도 슬슬 활동하기 좋은 때라고 여겨서인지 이날 사악한 귀신을 물리치기 위한 콩 뿌리기(마메마키) 행사가 절이나 신사에서 있다. “복은 들어오고 귀신은 물러가라(福は內、鬼は外)”라고 하면서 콩을 뿌리고 볶은 콩을 자기 나이수 만큼 먹으면 한해동안 아프지 않고 감기도 안걸리며 모든 악귀에서 보호 받는다는 믿음이 있다. 절분행사는 예전에 궁중에서 했는데 《연희식, 905년》에 보면 색색으로 물들인 흙으로 빚은 토우동자(土牛童子)를 궁궐 안에 있는 사방의 문에 걸어두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 인형은 대한(大寒) 전날 밤에 만들어 입춘 전날 밤에 치웠다. 토우동자 풍습은 헤이안시대(794-1185)의 츠이나(追儺)와 밀접한데 이는 곧 귀신을 물리치는 행사로 이후 무로마치시대(室町時代)로 내려오면 토우동자의 장식은 사라지고 복숭아 나뭇가지를 신성시 하면서 콩뿌리는 행사로 변한다. 복숭아 나뭇가지는 고대 중국과 한국에서도 귀신을 쫓는 주술적인 나무로 통했다. ▲ 절분날 볶은
[한국문화신문 = 이윤옥 기자] 나의 소원은 모든 나라 사람들이 나의 조국인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바르게 이해하는 것입니다. 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국제인이 되는 첫걸음을 내딛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말은 교토에 고려미술관을 세운 정조문 선생이 고려미술관개관기념 도록에 쓴 인사말이다. ▲ 조각보(고려미술관 소장) ▲ 검은 칠 나전 화조문양 상자 (고려미술관 소장) 일본에서 평생토록 우리 문화재를 수집해 온 고 정조문(1918~89) 선생은 1925년 일본에 건너가 갖은 고생 끝에 사업에 성공하여 교토를 제 2의 고향으로 여기며 살았던 분이다. 그는 1949년 골동품상이 밀집해 있는 교토 산조(三條) 남쪽 거리를 걷다가 어느 한 가게 진열장에 놓인 둥그런 조선 백자 달항아리를 보고는 그 아름다움에 반해 당시 돈으로도 엄청난 금액을 주고 이 달항아리를 사들이게 된다. 물론 정조문 선생이 돈이 많아서가 아니다. 그는 달항아리를 사고 싶어 자그마치 1년 동안 돈을 모았고 마침내 달 항아리를 손에 쥐게 되는데 그에게 이 골동품은 호사가들이 손쉽게 사들이는 골동품 이상의 것이었다. ▲ 교려미술관 전경(왼쪽), 정조문 선생이 1년 동안 꼬박 돈을 모아
[한국문화신문 = 이윤옥 기자] 섭씨 50도 물이란 손을 대면 매우 뜨겁다는 느낌이 들 정도인데 이러한 뜨거운 물에 채소를 씻으면 어떻게 될까? 보통 상식으로는 채소가 익어 버릴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일본에서는 최근 뜨거운 50도 물에 채소를 씻어 먹는 일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한국에도 알려진 기적의 50도 세척법은 지금 일본열도를 열광케 하고 있는 데 이를 발견한 사람은 스팀조리기술연구회 대표 히라야마 잇세이(平山一政)씨다. 그는 지난해부터 기적의 50도 세척법을 개발하여 전국의 티브이 방송예약이 꽉 잡혀 있을 만큼 바쁘다. 한마디로 기적의 50도 세척법은 50도 물에 채소나 과일을 씻어 먹으면 농약이나 채소에 붙은 나쁜 물질을 씻어낼 뿐 아니라 신선도가 유지되어 재료의 맛도 살아난다는 것이다. 이는 50도의 열 충격에 의해 채소가 호흡하는 기공이 열리고 그 기공에서 순간적으로 물을 빨아들여 잃어버린 수분을 보충하기 때문에 채소가 싱싱하게 되살아나는 원리를 이용한 것이다. 지금까지 주부들은 미지근한 물이나 찬물에 푸성귀나 과일을 씻어 왔는데 히라아먀 씨가 착안한 50도 물 세척법은 그간의 상식을 뒤엎는 일로 아무도 생각해내지 못한 놀라운 발견이라는 반응이
[한국문화신문 = 이윤옥 기자] 왜 당신은 늘 그 모양일까? 왜 당신은 열등감을 극복 못하는 것일까? 왜 당신은 행복을 실감 못하는 것일까? 왜 당신은 과거에 함몰되는 것일까? 이는 한국에서 《미움 받을 용기, 원제 嫌われる勇氣》라는 책으로 출간되어 관심을 모으고 있는 일본판 책 광고 문구이다. 우리들은 매 순간 남으로부터 미움 받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면서 살아간다. 미움 받지 않을 뿐 아니라 인정받고 싶고 더 나가서는 사랑받고 싶어 하는 삶을 추구하며 산다. 그러나 그것은 말같이 쉬운 일이 아니다. 주변으로부터 사랑 받고 싶어 하는 것도 쉽지 않지만 미움 받지 않고 사는 일도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미움 받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늘 몸과 마음을 긴장해야 한다. 주변인을 의식해야 하는 것이다. 때로는 얼굴표정서부터 말투, 옷차림 하나에도 신경을 써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삶의 태도에서는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꾸밈이 필요하고 이러한 꾸밈 때문에 우리는 늘 불필요한 에너지를 써야한다. 바로 이러한 점을 《미움 받을 용기》에서는 과감히 청산하라고 한다. ▲ 《미움 받을 용기》로 한국에서 번역된 책의 일본 베스트셀러 嫌われる勇氣
[한국문화신문 이윤옥 기자] 2014년 3월 8일 도쿄 고려박물관(관장 히구치유우지)을 꽉 메운 일본인들은 나의 항일여성독립운동가 강연에 귀를 곤두세웠다. 그야말로 듣느니 처음 듣는 이야기였으리라. 그도 그럴 것이 일본의 학교 교육에서는 아시아 침략의 역사를 가르치지 않는다. 그 대신 일본의 조선 침략 등은 아시아인의 번영을 위한 것 이라는 내용으로 가르친다. 역사교육의 초점이 아시아 부흥아래 한 형제가 되어 다 같이 잘 사는 것 (대동아공영권) 이다 보니, 위안부를 부정해야하고 제암리 사건을 은폐해야한다. 또한 남경의 30만 대학살도 모르쇠로 해야 그들의 논리에 모순을 일으키지 않는다. 이러한 교육 제도 아래 길들여진 일본인들이기에 항일(抗日) 이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도 고려박물관에 모인 사람들은 아시아침략은 분명히 잘못된 것이란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고려박물관의 이사장인 하라다쿄오코 씨 같은 이는 일본은 입이 열 개라도 한국인에게 사죄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 하는 분이다. 그러하기에 과감히 일본 한복판에서 항일여성독립운동가를 알리는 시화전(2014.1.29~3.30)을 감행하고 3월 8일 특강 자리를 마련한 것이 아닌가? 2시
[한국문화신문 = 이윤옥 기자] 지난 1월 29일부터 3월 30일까지 일본 도쿄 고려박물관(관장 히구치유우지)에서는 일본 최초로 항일여성독립운동가를 기리는 시화전이 열렸다. 순수한 양심을 가진 일본시민들이 만든 고려박물관의 조선여성사연구회 회원들에게서 연락을 받은 것은 1년 전인 2012년 5월의 일이었다. 저희는 일본인들입니다만 한국의 여성독립운동가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직접 한국에 가서 여성독립운동가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네? 일본분들이요? 히구치 관장으로부터 국제전화를 받고는 깜짝 놀랐다. 잘못 들은 것이 아닌가하고 말이다. 한국인들도 무관심한 여성독립운동가들을 일본인들이 공부를? 그런 인연으로 조선여성사연구회 회원들을 알게 되었다. 통화 후에 4달 쯤 뒤 10월 23일 이들은 자비로 한국에 건너왔다. 나는 이 분들을 서대문형무소 강의실로 초대해서 하루 종일 여성독립운동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오전 3시간하고 점심을 먹고 또 오후 3시간 강의 끝에 서대문형무소 역사관(과거 독립운동가들이 갇혔던 감옥)을 보여주며 안내했다. ▲ 이무성 화백이 안중근 어머니 조마리아 시화를 고려박물관에 기증했다.(이무성, 이윤옥, 하라다 이사장, 김리박 시